왕실 이야기/라마의 태국

노예제도를 폐지한 라마 5세

정준극 2009. 12. 29. 04:28

노예제도를 폐지한 라마 5세

 

방콕 출라롱코른대학교 마하 출라롱코른 건물

 

라마 5세 출라롱코른 대왕은 4명의 공식 왕비와 77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의 공식 이름은 프라 바트 솜뎃 프라 포라민트라 마하 출라롱코른 프라 춘라 촘 클라오 유 후아(Phra Bat Somdet Phra Poraminthra Maha Chulalongkorn Phra Chunla Chom Klao Yu Hua)이다. 이름이 좀 길지만 하여튼 간단하게 출라 대왕 또는 라마 5세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출라롱코른 대학교’ 역시 그냥 ‘출라대학교’라고 부름). 출라롱코른 대왕은 참으로 위대한 왕이었다. 태국의 세종대왕이었다. 방콕의 왕궁 옆에 있는 ‘출라롱코른 대학교’는 태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에서 알아주는 학문의 전당이며 태국의 정계, 관계, 재계는 이 대학교 출신들이 주름잡고 있다. 출라롱코른 대왕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아 서양 문물을 과감하게 도입하였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왕궁에 발전시설을 설치하여 전등을 밝힌 것도 바로 라마5세 시절이었다. 일본 에도보다 훨씬 앞서서 전기 불을 밝힌 것이다. 이어서 덴마크 기술자를 초청하여 방콕에 전차를 설치했다. 방콕의 전차는 덴마크의 코펜하겐 보다 10년 앞선 것이었다. ‘출라 대왕’은 태국에서 처음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한 왕으로도 이름나 있다. 하여튼 오늘날 태국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역사적 인물은 다름 아닌 바로 이 ‘출라 대왕’이다. 1853년에 즉위하여 1910년 서거할 때까지 무려 57년을 재위하였다.

 

 

출라롱코른 대왕과 왕비

 

라마 5세가 노예제도를 폐지한 이면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왕국은 방콕에 있었지만 여름 별장은(하기야 태국에는 여름이라는 계절도 없지만) 방콕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가량 되는 방-파-인(Bang-Pa-In)이란 곳에 있다. 옛 수도 아유타야와 같은 지역에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방콕을 감싸며 흐르는 챠오프라하 강이 고속도로 역할을 했다. 누구든지 방콕에서 방- 파-인에 가려면 배를 타고 가는 것이 훨씬 편하고 빨랐다. 어느 날, 라마5세 출라 대왕의 왕비가 배를 타고 방-파-인에 있는 국왕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라마5세에게는 수많은 비빈이 있지만 이 왕비야 말로 라마5세 출라 왕이 각별히 애지중지하는 왕비였다. 천사가 따로 없을 정도로 대단한 미모에 마음씨마저 고와 온 동리 사람들의 흠모를 받던 왕비였다. 방-파-인에 거의 다 왔을 때 배가 갑자기 기우뚱하면서 한쪽으로 급하게 쏠렸다. 난간에 있던 사람들 몇 명이 물에 빠지게 되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 노릇을 어찌하랴? 왕비도 강물에 빠졌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왕비를 구할 수 없었다. 당시 규정에 의하면, 노예 신분의 사람은 왕족등 귀한 분의 몸에 절대로 손을 댈 수 없었다.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그 자리에서 사형이었다. 그러니 왕비의 몸을 얼싸 안아야 하는 구조 작업에 그 누가 감히 자원할 수 있단 말인가? 옆에서 그저 ‘어! 어!’라고 소리 지를 뿐, 감히 왕비를 구하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들은 라마5세는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하면서 땅을 쳤지만 이미 사랑하는 미인 왕비는 수중고혼이 된 후였다. 국왕은 당장 노예 제도를 폐지하였다. 세종대왕도 노비 제도만은 없애지 못했는데! 노예 제도 폐지 이후, 백성들은 성은에 감읍하여 ‘더 겸손하자! 겸손해서 남 주나!’라고 다짐했다. 오늘날에도 태국 백성들은 다른 사람에게 인사할 때 겸손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공손히 합장한다.

 

방파인의 수상 파빌리온. 방파인은 챠크리왕조의 여름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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