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Das Waisenkind) - The Orphan
영국의 제프리 칭(Jeffrey Ching)의 2막 오페라
제프리 칭(1965-)
제프리 칭(Jeffrey Ching: 1965-)이라는 젊은 작곡가가 작곡한 2막의 오페라 '고아'(Das Waisenkind)는 사실상 중국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옛 이야기인 '조씨고아'(趙氏孤兒: 차오쉬구얼)를 대본으로 삼아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14세기 원나라 시대에 써졌다는 '조씨고아'는 중국의 극본으로서는 처음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작품이다.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로 번역되어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그 이야기를 21세기에 필리핀에서 태어난 중국계 작곡가가 동서양의 문화교류라는 정신에 입각하여 오페라를 만들어 바야흐로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따지고 보면 얼마전에는 역시 중국의 전설인 '뮬란'을 오페라로 만들어 비엔나에서 공연하였는데 이번에는 사기(史記: 시지)에 기록된 스토리인 '조씨고아'를 바탕으로 오페라로 만들어 독일에서 초연하였다. 중국의 문화적 신장을 느낄수 있는 대목이다.
'고아' 초연의 무대. 에어푸르트극장. 무대 상단에 오케스트라를 배치하였다.
오페라 '고아'의 대략적인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조정의 높은 관리로서 닥 은간스 카그(Dag Ngans Kagh)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름이 베트남 사람의 이름처럼 보이는 것은 어찌된 연유인지 잘 모르겠다. 황제로부터 역적을 재판하라는 명을 받은 그는 오스밍티(Osmingti)를 사형에 처해야 했다. 오리지널 극본에는 오스밍티의 성이 조씨(趙氏: Zhao)라고 되어 있다. 오스밍티는 정승의 처남이어서 아무도 그의 재판을 맡지 않았으나 신중치 못하고 경솔한 성품의 닥이 그 일을 맡았다. 오리지널 스토리에는 사형에 처해질 운명의 인물이 황제의 부마, 즉 공주의 남편인 조씨라고 되어 있다. 아무튼 오스밍티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닥은 오스밍티의 자손들이 자기에게 복수할 것이 두려워서 오스밍티는 물론 그의 가족까지 3족을 멸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명예를 존중하는 오스밍티는 억울한 누명을 벗고자 참형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아름답고 정숙한 부인인 아르피사(Arfisa)도 남편의 뒤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시 말하지만, 오리지널 스토리에는 조씨의 부인이 공주로 되어 있다. 아르피사는 자결하기 직전에 어린 아들을 궁전의 어의로서 평소 의를 존중하던 쳉 잉(Cheng Ying)에게 맡기며 가문을 잇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쳉 잉은 오스밍티의 어린 아들이 병사들에게 잡히기 직전에 임기응변으로 궁전에서 도망쳐 나올수가 있었다. 닥은 오스밍티의 어린 아들이 도망간 것을 알고는 도성의 사대문을 즉시 걸어 잠그도록 한후 도성에 있는 어린아이는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현대적 연출의 '고아'. 카운터테너 데니스 레이키가 공주(아리피사)의 역할을 맡았다.
어의에게도 어린 아들이 있었다. 오스밍티의 아들과 나이가 같았다. 어의는 자기의 아들을 급히 친구인 알싱고(Alsingo)에게 맡기고 오스밍티의 아들은 그대로 데리고 있었다. 병사들이 어의인 쳉 잉의 집은 감히 샅샅이 수색하지 못할 것이며 어린 남자아이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어의의 아들인 것이 확실하므로 감히 죽이지는 못할 것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의 집에 맡긴 아이는 단번에 병사들에게 발견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즉, 자기의 아들을 희생하여 오스밍티의 아들을 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닥은 알싱고의 집에서 오스밍티의 아들을 발견하고 그자리에서 죽였다. 그리하여 진짜 오스밍티의 아들은 의원의 희생에 의해 무사할수 있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의원인 쳉 잉은 고관인 닥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닥과 형제처럼 친하게 된다. 닥은 형제와 같은 쳉 잉에게 고아로 데려와 길렀으나 지금은 헌헌장부가 된 청년이 있는 것을 알고 자기의 양자로 삼아 후계자가 되도록 한다. 그러던 어느날, 고아로 자라난 아들은 쳉 잉으로부터 자기 신분의 비밀을 전해 듣는다. 고아는 양아버지인 닥을 찾아가 자기가 누구인 것을 밝히고 부모님의 원수를 이제야 갚게 되었다고 하면서 닥을 죽인다. 그리하여 범죄로 인하여 파괴된 우주의 균형이 회복된다.
오스밍티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살을 강요 당한다.
오페라 '고아'의 미국 초연은 2003년 9월 19일 뉴욕 링컨 센터에 속하여 있는 앨리스 털리 홀(Alice Tully Hall)에서였다. 줄리아드에 있는 현대적 건물이다. 11장면으로 구성된 오페라 '고아'에서 주인공인 첸인은 페니 쳉화 왕(Penny Cheng-Hua Wang)이 맡았고 다른 출연진도 상당수는 베이징오페라단의 멤버들이 직접 참여했다. 또한 오케스트라 멤버들도 중국의 톱 클래스 연주가들이 초청되어 연주했다. 이 오페라는 선과 악, 교활함과 정직함, 비겁자와 영웅이 대조를 이루는 작품이다. 어찌보면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또는 '햄릿'에 담겨 있는 철학과 흡사하다.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관중들은 아름다운 아리아에 매혹되며 아울러 오페라가 지니고 있는 극적인 감동에 젖어갔다.
링컨 센터의 앨리스 털리 홀. 오페라 '고아'가 초연된 공연장이다.
유럽에서의 오페라 '고아'는 2009년 11월 15일 독일의 에어푸르트(Erfurt)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에어푸르트극장은 독일에서 가장 현대적인 오페라하우스이다. 오페라 '고아'는 에어푸르트극장에서 2009-20년도 최우수 오페라 제작상을 받았다. 관중들이 선정하여 주는 상이므로 추샤우어프라이스(Zuschauerpreis: 관중상)라고 부른다. 현대 오페라로서 관중상을 받는 경우는 극히 예외인데 오페라 '고아'가 받았다. 유럽의 내노라하는 음악평론가들은 오페라 '고아'를 대단히 높이 평가하였다. 음악뿐만 아니라 스토리의 구성도 드라마틱하다는 평을 받았다. '고아', 즉 '조씨고아'(趙氏孤兒: Orphan of the House Tscho: Orphan of Zhao)는 유럽의 언어로 번역되어 소개된 최초의 중국 극본이다. 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로 본역되었다. 그리고 메타스타시오(Metastasio: 1698-1782), 볼테르, 괴테 등 주로 계몽주의 작가들이 번역된 '조씨고아'를 바탕으로 극본들을 만들었다. 베이징 출신의 극작가인 지 준샹(Ji Junxiang: 紀君祥)이 전래 전설인 '조씨고아'(또는 趙氏孤兒大報仇: The Great Revenge of the Orphan of Zhao Family)를 현대적 감각의 극본으로 다시 정리하였다. 그것을 작곡가 제프리 칭이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제프리 칭이라는 작곡가는 필리핀에서 중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현재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제프리 칭의 중국식 이름은 추앙 추신(莊祖劤)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음악스타일의 전통을 연계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작곡가이다.
오페라 '고아'가 초연된 독일의 에어푸르트극장(Theater Erfurt)
유럽에 처음 소개된 중국의 극본으로서 '조씨고아'는 조셉 앙리 마리 드 프레마르(Joseph Henri Marie de Premare: 1666-1736)가 처음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다. 그는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던 프랑스의 예수회선교사였다. 프랑스어 타이틀은 Tchao-chi-cou-euhl(차오시쿠얼: 조씨고아)였으며 부제로는 L'orphelin de la maison de Tchao 라고 하였다. 그리고 tragedie chinoise(중국의 비극)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예수회선교사인 드 프레마르가 번역한 '조씨고아'는 프랑스 예수회 소속의 중국역사 전문학자인 장 바티스트 뒤 알드(Jean Baptiste Du Halde)가 1735년에 편찬한 Description géographique, historique, chronologique, politique et physique de l'empire de la Chine et de la Tartarie Chinoise 에 수록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에어푸르트극장에서의 초연장면. 팬더 곰이 배경에 등장한다.
영어로는 토마스 해쳇(Thomas Hatchett: 활동기간 1721-1741)이 1741년에 The Orphan of China 라는 타이틀로 처음으로 번역하여 출판했다. 다만, 토마스 해쳇은 극본의 피날레를 해피엔딩 형식으로 마무리하였다. 볼테르는 1755년에 L'orphelin de la Chine 라는 타이틀로 별도의 극본을 출판하였다. 아일랜드의 작가인 아서 머피(Arthur Murphy: 1727-1805)가 볼테르의 극본에 영향을 받아 1759년에 The Orphan of China 라는 타이틀로 영어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프랑스의 중국학자인 스타니슬라스 줄리앙(Stanislas Julien: 1797-1873)은 1834년에 Tchao-chi-kou-eul 또는 L'orphhelin de la Chine: drame en prose et en vers 라는 타이틀로 다시 프랑스어로 된 극본을 출판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극본은 2003년 링컨센터 극장에서 채택되어 연극이 음악극 형태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음악은 인도 계통의 록음악 작곡가, 가수, 작사가인 스테핀 메리트(Stephin Merritt: 1966-)이 맡았다. 2010년에는 첸 카이게(Chen Kaige: 1952-)가 Sacrifice 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다.
친 카이게(陳凱歌)가 감독한 영화 '趙氏孤兒'. 영어 제목은 Sacrifice이다.
오페라, 연극, 영화의 스토리는 오리지널 스토리에 비하여 약간의 차이가 있다. 물론 기둥 줄거리에는 변함이 없다. 14세기에 쓰여졌다는 오리지널 극본의 스토리를 알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야기는 고대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에피소드이다.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722-481년에 군웅이 할거했던 시기를 말한다. '조씨고아'는 춘추전국시대의 진나라에서 승상을 지낸 조씨 가문을 멸족시킨 역사적인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The Orphan of Zhao(조씨고아)는 '하나를 위한 여덟 명의 지고한 희생'(The Supreme Scarifices of Eight for one)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진나라 시대에 진링공의 폭군적인 통치하에서 폭군을 몰아내기 위한 승상(총리대신) 자오던(Zhao Dun)의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고 가담자들이 모두 처형을 당하는 입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오던 승상의 손자 한 사람을 위해 여덟 명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진왕은 백성들을 위한 정사는 돌보지 않고 미색에 빠져 술과 향락으로 밤낮을 지새었다. 진왕은 신하들이 권력을 위해 서로 알륵하고 다투도록 하여 자기의 왕권을 교묘하게 유지하였다. 이에 자오던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충신들이 나라의 앞날을 위해 진왕을 폐하기로 뜻을 함께 한다.
공주가 어의 첸 인에게 앞으로 태어날 아기의 앞날을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진 나라의 또 다른 야심가인 포악한 투안구 장군은 자오던 승상과 웨이지안 장군의 계획을 미리 파악하고 이들의 의로운 거사를 사전에 분쇄하여 자기의 권력을 더욱 강화할 생각이다. 교활한 투안구 장군은 진 왕에게 얘기하여 걸림돌이 되는 웨이지안 장군을 북방 전선으로 보내어 국경을 지키도록 한다. 이어 투안구는 들개들을 풀어서 자오던 승상을 죽일 계획이다. 자기 손으로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들개들이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승상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 들개들만 죽이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들개를 이용한 암살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자객을 풀어 승상을 죽이고자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객들이라고해도 자기들이 죽여야 할 사람이 다름아닌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자오 승상인 것을 알고는 스스로 물러선다. 자오 승상을 죽이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화가 치민 투안구는 이번에는 진 왕에게 자오승상이 모반을 획책하고 있다고 고해바쳐 진 왕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드디어 자오 승상을 죽인다. 이어 투안구는 왕명을 빙자하여 자오 승상의 4족을 멸하라고 하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려 3백여명에 이르는 자오 가문의 사람들을 모두 처형한다. 자오 가문의 사람과 결혼한 중지(Zhung Ji) 공주는 목숨만을 건졌으나 왕궁에 연금되어 있게 된다.
첸 인이 자오 가문이 당한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의로운 사람인 어의 첸인(Chen Yin)은 자오 승상의 일족에 대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중지 공주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오 승상에 대한 사건이 일어나자 첸인은 얼른 중지 공주와 부마인 자오수(Zhao Shou)를 은밀히 만나 아기가 태어나면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고 약속한다. 얼마후 자오 승상에 대한 멸문지화의 사건이 발생하고 부마인 자오수도 목숨을 잃는다. 다만, 공주는 왕족이기 때문에 목숨만은 건진다. 그리하여 아기가 태어난다. 어의인 첸인은 아기를 감싸 안고서 경비가 삼엄한 대궐을 무사히 빠져 나온다. 잠시후 공주가 낳은 아들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투안구 장군은 급히 병사들을 풀어서 도성에 있는 생후 3개월 미만의 아기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다. 자오 가문의 대가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첸이는 투안구가 새로 태어난 자오의 손자를 찾아 죽이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아들인 진거(Jin Ge)를 공주의 아들을 대신하여 희생키로 결심한다. 첸이는 평소에 믿고 지내던 노대신인 공순추지우(Gong Sun Tsu Jiou)에게 도움을 청한다. 공순은 이 일이 자기 목숨을 내놓는 중요한 일인줄을 알지만 첸이의 설명을 듣고나서는 기쁜 마음으로 자오 가문의 유일한 혈육인 고아를 위해 자기 자신도 희생하겠다고 약속한다. 첸이는 공순 노대신에게 투안구의 병사들이 수색하러 오면 노대신이 직접 공주의 아기를 데리고 대궐을 빠져 나와 집으로 데려 온 사람이라고 말해 달라고 당부한다.
첸인이 웨이 지안 장군으로부터 오해를 받고 있다.
첸인은 투안구를 찾아가 노대신인 공순추지우가 공주의 아기를 데리고 나간 사람이라고 고변한다. 투안구는 즉시 병사들을 노대신의 집에 보내어 아기를 빼앗아 온다. 첸인은 자기 자신의 어린 아들이 투안구의 병사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첸인은 나아가 자오 가문의 유일한 혈육인 아기의 안전을 위해서 투안구에게 자기의 아들(실은 공주의 아들)을 양자로 받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하여 아기는 투안구의 집에서 안전하게 자란다. 이제 아기는 장성하여 훌륭한 청년이 된다. 어느날 첸인은 노환으로 죽음을 앞두고 젊은 자오를 오라고 하여 그제서야 모든 비밀을 밝힌다. 젊은 자오는 드디어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인 공주를 만나서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과감히 투안구를 찾아가 그를 죽여서 가문의 원수를 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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