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297. 프란체스코 카발리의 '엘리오가발로'

정준극 2011. 11. 29. 13:06

엘리오가발로(Eliogabalo) - Heliogabalus

Francesco Cavalli(프란체스코 카발리)의 4백년만에 재발견된 오페라

 

프란체스코 카발리(1602-1676)

 

'엘리오가발로'(Eliogabalo)는 17세기 이탈리아의 작곡가인 프란체스코 카발리(Francesco Cavalli: 1602-1676)가 작곡한 오페라이다. '엘리오가발로'는 로마 황제 헬리오가발루스(Heliogabalus: 203-222)에 대한 스토리이다. 헬리오가발루스는 라틴어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Marcus Aurelius Antoninus Augustus)라고 쓰는 사람을 말하며 기원후 218년에 로마 황제가 되어 4년후인 222년 암살당한 인물이다. 프란체스코 카발리의 오페라 '엘리오가발로'는 1668년, 베니스의 카니발 기간중에 테아트로 산 살바토레(Teatro San Salvatore)에서 초연되었으나 몇번 공연된 이후 자취를 감추었으며 그로부터 4백여년이 지난 2004년에 벨기에의 작곡가인 르네 야콥스(Rene Jacobs: 1946-)가 편곡하여 리바이벌함으로서 비로소 빛을 보게된 작품이다. 그리고 2010년에는 북미 최초로 아스펜음악제에서 선을 보였다. 대담한 연출의 현대적 공연이었다.

 

로마시대의 엘리오가발로 기념 주화

 

로마제국의 주화인 데나리온을 보면 아퀼라 세베라(Aquilla Severa)라는 여인의 초상이 있는 것이 있다. 엘리오가발로(또는 엘라가발루스)의 두번째 부인이다. 엘리오가발로와 아퀼라 세베라의 결혼은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왜냐하면 아퀼라 세베라가 베스타 여사제였기 때문이다. 베스타 여사제가 되면 30년간 독신으로 지내며 금욕생활을 해야한다. 그 결혼을 기화로 엘리오가발로의 섹스 취향과 성별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어났다. 엘리오가발로는 다섯 명의 여인과 결혼하고 이혼했다. 첫 부인은 줄리아 코르넬리아 파울라(Julia Cornelia Paula)라는 여자였다. 두번째 부인은 앞에서 말한 베스타 여사제인 줄리아 아퀼라 세베라였다. 그러나 엘리오가발로는 아퀼라 세베라와 결혼하고나서 1년도 되지 않아 아퀼라 세베라를 버리고 아니나 아우렐리아 파우스티나(Annina Aurelia Faustina)라는 여자와 결혼하였다. 이 여자는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후손으로 엘리오가발로가 그의 남편을 반역죄로 처형했기 때문에 과부가 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엘리오가발로는 아니나 아우렐리아 파우스티나와 결혼하고 나서 1년이 겨우 지나자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두번째 부인이었던 아퀼라 세베라에게 돌아왔다. 그래서 다시 결혼해서 잘 살겠거니 생각을 했지만 실상 엘리오가발로의 관심은 황제의 전차를 모는 히에로클레스(Hierocles)라는 남자 노예였다. 히에로클레스는 카리아(현재의 터키 아나톨리아의 서부) 출신의 노예로서 금발의 잘생긴 남자였다. 카시우스 디오라는 사람이 쓴 기록에 의하면 엘리오가발로는 히에로클레스를 '남편'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엘리오가발로가 게이였다는 것이다.

 

현대적 연출의 오페라 '엘리오가발로'. 여장을 한 엘리오가발로가 플레이보이의 바니걸스들과 환락적인 파리를 갖고 있다.

 

역대 로마황제들의 생애를 기록으로 남긴 Historia Augusta(아우구스탄 역사서)에 의하면 엘리오가발로는 초디쿠스(Zodicus)라는 남자와 결혼한 일이 있다고 한다. 스미르나(Smyrna) 지방 출신의 운동선수였다. 엘리오가발로는 로마에서 초디쿠스와 공식적으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다시 카시우스 디오(Cassius Dio)의 기록에 의하면 엘리오가발로는 눈화장을 짙게 했고 머리털을 박박 밀었으며 창녀들을 찾아 갈 때에는 가발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왕궁에서도 간혹 가발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엘리오가발로는 왕궁에서 극도로 사치한 환락의 연회를 자주 베풀었으며 그럴 때에는 남자들에게 여장을 하도록 하고 자기는 여자 흉내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엘리오가발로는 왕궁의 방 하나를 별도로 마련하여 마치 매춘부의 집처럼 꾸미고 그 곳에서 온갖 외설적이고 추잡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엘리오가발로는 그 방의 문 앞에 누드로 서서 금사슬로 만든 커틴을 부여 잡고 부드럽고 느끼한 목소리로 마치 매춘부가 손님을 끄는 듯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렀다고 한다. 엘리오가발로는 상당히 잘생긴 얼굴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화장을 너무 짙게 하여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일부러 손상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엘리오가발로는 어찌된 영문인지 '황제폐하'라고 불리는 것보다 정부(情婦), 와이프, 심지어는 히에로클레스의 왕비라고 불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참으로 별나게도 자기 몸에 여성의 생식기 형태를 닮은 장치를 달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 장치를 교묘하게 해준 의사에게는 상당한 상금을 주었다고 한다. 아무튼 현대의 작가들은 엘리오가발로를 '트랜스젠더' 또는 '트랜스섹슈얼'(Transsexual)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엘리오가발로의 장미'. 로렌스 알마 타데마(Lawrence Alma-Tadema: 1836-1912) 작품

 

오페라 '엘리오가발로'의 스토리는 이상과 같은 배경설명으로 더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래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젊은 황제 헬리오가볼루스(엘리오가발로)는 음탕하고 부정한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엘리오가발로는 정사를 돌보기 보다는 아름다운 여인들을 하나하나 정복하는데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엘리오가발로는 고대판 돈 조반니이다. 엘리오가발로는 프레토리아 수비대장인 줄리아노(Giuliano)와 결혼한 에리테아(Eritea)를 유혹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소비한다. 엘리오가발로는 일단 에리테아를 유혹하여 정복하자 이번에는 줄이아노의 여동생이 젬미라(Gemmira)를 손에 넣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쓴다. 젬미라는 엘리오가발로의 친사촌인 알레산드로와 약혼한 사이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젬미라를 유혹하는데 성공하고 줄리아노와 알레산드로를 파탄에 몰아 넣는다. 

  

현대적 연출의 '엘리오가발로'. 난잡한 파티 후에는 처참하게 죽은 사람들이 생긴다.

 

오페라에는 악인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중에서 몇몇은 진정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물이다. 자기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후회할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그렇다. 그렇다고해도 탐욕적인 섹스를 위해 생각하기도 힘든 추잡한 행동을 한 로마황제 엘리오가발로보다는 덜 혐오스러울 것이다. 오페라 엘리오가발로는 엘리오가발로의 주변 사람들에 대하여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없는 거짓, 욕망, 천박함에 맞서서 인간의 존엄과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결국 엘리오가발로가 암살당하는 것은 인과응보의 교훈이라고 할수 있다.

 

아퀴리아 세베라역의 이베트 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