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298. 에두아르 랄로의 '이스의 왕'

정준극 2011. 11. 30. 00:20

이스의 왕(Le roi d'Ys)

Édouard Lalo(에두아르 랄로)의 3막 오페라

 

에두아르 랄로(1823-1892)

 

'이스의 왕'(Le rei d'Ys: The King of Ys: 또는 이스의 임금님)은 프랑스의 에두아르 랄로(Édouard-Victoire-Antoine Lalo: 1823-1892)가 음악을 작곡하고 에두아르 블라우(Édouard Blau: 1836-1906)가 대본을 쓴 3막 5장의 오페라이다. 스토리는 프랑스 북서부 브리타니(Brittany: Breton: Bretagne) 지방에 있었다는 코르누에이유(Cornouaille)라는 전설 속의 왕국의 수도인 이스(Ys)가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는 전설을 다룬 것이다. 브리타니 지방에서는 잘 알려진 전설이다. '이스의 왕'은 1888년 5월 7일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다. 서곡도 유명하지만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3막에 나오는 테터 아리아인 Vainement, mam bien-aimée(헛되도다, 나의 사랑이여: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것은 헛된 짓)이다.

 

'이스의 왕' DVD

                   

랄로는 '이스의 왕'을 1875-78년 사이에 작곡했다. 랄로는 브리타니 지방의 민속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그것은 그의 부인인 콘트랄토 줄리 드 말리니(Julie de Maligny)가 브리타니 지방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랄로는 원래 '이스의 왕'의 주역인 마르가르(Margared)를 줄리 드 말리니를 위해 작곡했다. 그러나 초연이 지연되는 바람에 세계초연에서는 블랑셰 드샹 즈앙(Blanche Dechamps-Jehin)이라는 콘트랄토가 마르가르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오페라 '이스의 왕'은 방대한 무대장치 때문에 무대에 올리는 것이 어려웠다. 최근 베이징의 국가대극원에서 있었던 공연에서는 물 13톤을 무대에 쏟아붇는 엄청한 작업을 해야 했다. 랄로는 '이스의 왕'을 완성하고 공연할 극장을 찾았으나 모두 거대한 규모의 무대장치 때문에 난색을 표명하였다. 테아트르 리릭(Théâtre Lyrique)이 거절하였고 오페라 드 파리(Opéra de Paris: 현재의 파리오페라)가 거절하였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우선은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되었다. 물론 마르가르는 줄리 드 말리니가 맡았다. 몇년후 랄로는 '이스의 왕'의 무대에 더 적합한 수정본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이스의 왕'은 마침내 1888년 5월 7일 파리의 샤틀레궁전(Place du Châtelet)에서 오페라 코믹(Opéra Comique)이 초연하였다. '이스의 왕'은 이곳에서 100회 공연을 마치고 마감하였다. 당시로서는 대성공이었다.

 

 

'이스의 왕'의 초연에서 마르가르 공주역을 맡았던 메조소프라노 블랑셰 드샹-제앵

 

'이스의 왕'은 초연이 있은 그 해의 11월에는 제네바에서 공연되었고 12월에는 암스텔담에서 공연되었으며 이듬해 2월에는 앤트워프와 브뤼셀에서 공연되었다. 그리고 1890년 3월에는 로마에까지 진출하였다. 런던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는 1901년 7월에 공연되었다. 프랑스어 대본은 초연 이후 순식간에 화란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체코어, 러시아어, 루마니아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이스의 왕'은 초연 이후 유럽 전역에서 약 5백회의 공연을 기록한 후 자취를 감추었다가 약 50년 후에 다시 무대에 등장하였다. 반세기만에 리바이벌 된 것은 1941년 1월 드디어 파리오페라에서였다. 한편, 미국 초연은 1890년 1월 뉴오를레안스의 프렌치오페라하우스에서였다. 그러나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된 것은 한참 후인 1922년이었다. 메트로폴리탄 공연에서는 로사 폰셀레(Rosa Ponselle)가 마르가르 역할을 맡았으며 베냐미노 질리(Beniamino Gigli)가 밀리오 역할을 맡았고 프란시스 알다(Frances Alda)가 로젠 역할을 맡았다. 1차 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의 오페라 극장들은 로맨틱하거나 서정적인 오페라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다. 마스네와 라이어(Reyer)의 오페라들은 점차 관심 밖으로 밀려나갔다. 오히려 푸치니 등의 베리스모 오페라가 인기를 끌었다. 그런 때문인지 '이스의 왕'도 메트로폴리탄에서 단 6회의 공연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밀리오가 승전하고 돌아온다. 뒤에는 이스를 바다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수문이 보인다. 수문을 열수 있는 열쇠는 이스의 왕 글라들롱만이 가지고 있다. 이스의 왕인 글라들롱이 잠들어 있을 때 마르가르 공주가 열쇠를 훔쳐서 적국의 왕자인 캬르낙에게 주어 수문을 열게 한다.

 

가장 최근에 풀 스케일로 공연된 것은 2007년 10월 프랑스 툴루스의 테아트르 뒤 캬피톨(Théâtre du Capitole)에서 였다. 인바 물라(Inva Mula), 조피 코흐(Sophie Koch)등이 출연한 것이었다. 툴루스의 팀은 2008년 4월 베이징의 국가대극원에서 공연을 가졌다. 중국 출연진도 포함한 공연이었다. 베이징에서는 아마 처음 공연되는 프랑스의 그랜드 오페라였을 것이다. 중국 당국은 '이스의 왕'의 공연에 심혈을 기울였다. 오페라 '이스의 왕'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이스의 왕인 그라들롱(Bar), 공주인 마르가르(Margared: MS), 또 다른 공주인 로젠(Rozenn: S), 캬르낙(Carnac)왕자(Bar), 기사 밀리오(Mylio: T), 왕의 전령이며 궁전 집사장인 자엘(Jahel: Bar), 생 코렌탱(St Corentin: B) 등이다. 시기는 중세이며 무대는 브리타니 해안의 이스(Ys) 도시이다.

 

용감한 기사 밀리오와 로젠 공주

 

[제1막] 이스의 왕의 딸인 마르가르는 적국과의 평화협정에 따라 적국의 왕자인 캬르낙과 결혼키로 되어 있다. 이스의 궁전에서 결혼식이 진행된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중에 마르가르는 동생 로젠에게 자기는 실은 기사 밀리오를 사랑하고 있다고 털어 놓는다. 밀리오는 마르가르와 어릴 때부터의 친구로서 몇년 전에 먼 곳으로 배를 타고 떠난바 있다. 마르가르는 밀리오가 언젠가는 자기를 다시 찾아 돌아올 것으로 믿고 있다.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 마르가르는 밀리오가 이미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마르가르는 결혼식이 더 이상 진행되는 것을 거부한다. 결혼식을 거부당한 캬르낙 왕자는 이스의 왕을 저주하고 언젠가는 복수하겠다고 위협한다.

 

캬르낙 왕자와 마르가르 공주의 결혼식은 마르가르가 사랑하는 기사 밀리오가 돌아왔다는 소식과 함께 중단된다.

 

[제2막] 마르가르는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밀리오가 실은 자기의 동생 로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복수를 다짐했던 캬르낙이 군대를 이끌고 이스를 침공한다. 이스의 왕은 밀리오에게 캬르낙과의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로젠과의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한다. 그 소리를 들은 마르가르는 질투심으로 분노한다. 얼마후 밀리오는 캬르낙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돌아온다. 밀리오는 그의 승전이 이스의 수호성인인 성 코렌탱의 도움이라고 말하며 성자의 석상에게 감사한다. 마르가르는 전투에서 패배한 캬르낙 왕자를 만나 둘이 힘을 합쳐 밀리오와 이스에게 복수를 하자고 제안한다. 생 코렌탱의 석상은 마르가르에게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마르가르는 듣지 않는다. 마르가르는 이스를 바다로부터 보호하는 수문의 열수 있는 열쇠를 캬르낙에게 준다.

 

밀리오와 로젠의 결혼식

 

[제3막] 기사 밀리오와 로젠 공주의 결혼식이 진행된다. 마르가르는 잠시 자기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주저한다. 그런 마르가르를 보고 캬르낙이 마르가르의 질투심에 다시 불을 붙인다. 마르가르는 복수를 다짐하며 캬르낙과 함께 수문으로 향한다. 이스의 왕은 결혼식장에 마르가르가 없는 것을 알고 무슨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 걱정한다. 잠시후 마르가르가 돌아와 이제 이스는 저주를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전한다. 캬르낙이 수문을 열었던 것이다. 밀리오가 칼을 빼어 들어 캬르낙을 죽인다. 그러나 이미 바다물이 이스에 넘쳐 들어와서 이스를 구할 수가 없다. 이스의 시민 중에서 절반 정도는 이미 바다물에 빠져 죽었다. 나머지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여서 어찌할줄 모르고 있다. 마르가르는 크게 후회하는 마음이다. 마르가르는 바다가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면서 높은 벼랑에 올라가 스스로 바다에 빠져 자기의 목숨을 버린다. 마르가르가 바다에 빠져 죽자 성 코렌탱이 나타나 파도를 잠잠하게 하고 이스를 구한다.

 

마르가르가 기사 밀리오와 로젠이 결혼식을 거행하는 중에 이스를 바다로부터 보호하는 수문을 열어 놓았으므로 이스가 곧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스의 왕'에 대한 전설은 19세기와 20세기의 여러 예술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회화에 있어서는 E.V. Luminais(뤼미네)의 작품인 Flight of King Gradlon(그라들롱 왕의 도주)가 유명하다. 그라들롱 왕이 거대한 파도가 덮쳐 파괴되고 있는 이스로부터 도피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스의 왕'은 클로드 드빗시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1910년에 출판한 '전주곡'(Preludes)의 '파도가 삼킨 성당'(La cathedrale engloutie)는 거대한 파도가 이스를 집어 삼키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마르가르는 자기가 사랑하는 밀리오가 동생 로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질투심으로 낙담한다.

 

['이스의 왕' 전설따라 삼천리]

이스(Ys: Ker-Is라고도 부른다. Ker는 브레통어로서 도시라는 뜻이다)는 브리타니의 해안에 세워진 전설 속의 도시이다. 이스는 나중에 바다가 삼키는 바람에 사라진다. 사람들은 전설의 도시 이스가 오늘날 두아르네네즈만(Douarnenez Bay)에 있었던 중세 도시로서 현재의 두아르네네즈 항구라고 믿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스는 현재의 브리타니 지방에 있던 코르누에이유(Cornouaille)의 왕 그라들롱(Gradlon)이 바다를 무척 사랑했던 다위(Dahut) 공주의 요청에 따라 해면보다 낮은 지역에 조성한 도시라고 한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이스는 지금부터 약 2천년 전에 세워진 도시로서 현재의 두아르네네즈반의 해안을 따라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라들롱 왕이 다스리기 훨씬 전의 일이다. 그러나 이스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서서히 바다에 씻겨서 점차 땅을 잃게 되었으며 바닷물이 만조가 되었을 때 남아 있는 땅에 다시 건설된 도시라고 한다. 그때부터 그라들롱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는 해수가 범람하여 침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커다란 수문을 설치하였으며 해수가 빠지면 그때 수문을 열어 배가 드나들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수문을 열수 있는 열쇠는 이스의 왕만이 가지고 있었다.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한 생활을 한 다위(다후트:Dahut) 공주.

 

이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기억에 남는 도시였다. 그러나 다위 공주의 영향으로 세상에서도 가장 죄악이 많은 도시로 변했다. 그는 주신제라는 명목으로 난잡한 파티를 자주 개최하였다. 그리고 매일 밤 남자를 데려다가 함께 지내고는 아침이면 죽였다. 브리타니의 성자인 성 윈왈로(Saint Winwaloe)는 다위 공주에게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이 있을 것이므로 타락과 퇴폐를 중지하라고 경고했지만 다위 공주와 이스의 시민들은 그같은 경고를 무시하였다. 어느날 붉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이스에 나타났다. 다위 공주는 그 기사에게 자기와 함께 하룻밤을 지내자고 말했다. 붉은 갑옷의 기사가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했다. 한반중에 폭풍우가 심하여 성난 파도가 수문과 놋쇠로 만든 방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다위 공주는 기사에게 '폭풍이 아무리 불어도 우리 수문은 든든하기 때문에 걱정 없지요. 그리고 수문을 열수 있는 열쇠는 우리 아버지인 그라들롱 왕께서 항상 목에 걸고 있으므로 아무도 가져갈수 없답니다'라고 말했다. 기사는 '그대의 아버지인 왕은 지금 잠들어 있소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 열쇠를 손쉽게 가져올수 있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다위 공주는 기사의 말대로 잠든 아버지의 목에서 열쇠를 빼내어 기사에게 주었다. 기사는 다름아닌 악마였다. 어떤 버전에는 악마가 다름아닌 다위 공주 자신이라고 되어 있다. 아무튼 열쇠를 받아든 기사는 밖으로 나가 수문을 열었다.

 

브리타니 지방의 항구도시인 코르누에이유 . 옛 이스가 있던 곳이라는 주장이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조수가 몰려오는 때에 수문을 열었으므로 산더미 같은 파도가 당장 이스 도시를 집어 삼켰다. 깜짝 놀란 그라들롱 왕과 딸 다위는 모르바츠(Morvarc'h)라는 마법의 말에 올라타고 급히 도피코자 했다. 이때 성 윈왈로가 나타나서 그라들롱 왕에게 '왕이여, 그대의 뒤에 타고 있는 악마를 어서 속히 밀쳐내시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라들롱 왕은 자기 딸이 악마일리가 없다고 믿어서 성 윈왈로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니 성자의 말을 무시할수 없어서 뒤에 앉아 있는 딸을 밀쳐서 바다 속으로 빠지게 했다. 파도가 다위 공주를 집어 삼켰다. 다위 공주는 인어가 되었고 다른 버전에는 모겐(물의 정령)이 되었다고 한다.

 

그라들롱 왕이 성 코렌탱의 경고를 받아들여 마침내 뒤에 타고 있던 딸 다위를 바다에 내던지는 장면의 그림. E.V. 루미네 작품. 큄퍼미술관 소장.

                         

그라들롱 왕은 큄퍼(Quimper)로 피난하였다. 큄퍼는 현재의 브리타니 지방에 있는 도시로서 두아르네네즈만의 아랫쪽에 있다. 그라들롱 왕은 큄퍼를 코르누에이유 왕국의 새로운 도읍으로 정했다. 지금도 큄퍼의 성 쿠렌탱 대성당의 두 첨탑 사이에 그라들롱 왕의 기마상이 있는 것은 이로부터 연유한다. 소문에 따르면 이스 성당의 종이 울리면 바다의 파도가 잠잠해 진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만일 파리가 바닷물의 범람으로 물에 잠기게 되면 그때 이스가 바다 속으로부터 솟아오르게 된다고 한다. 이스의 왕 그라들롱에 대한 전설은 간혹 이단의 드루이드교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그라들롱 왕은 결국 성 윈왈로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을 하였기 때문이다. 다위 공주를 비롯한 이스의 대부분 백성들은 켈트족 신을 믿었다. 주로 드루이드 신도들이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그라들롱 왕이 브리타니에 남아 있던 마지막 드루이드 교도를 만나 그를 설득하여 개종시켰으며 그가 우상들을 땅에 파묻는 것을 직접 감독하였다고 한다. 그라들롱 왕은 드루이드 교도가 우상을 파묻은 그 장소에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브리타니 지방 오데(Odet) 강을 끼고 자리잡은 큄퍼. 그라들롱 왕이 이스의 멸망 이후 새롭게 도읍으로 정한 도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