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아리아호의 '에밀리' - 6
에밀리(Emilie)
카이야 사아리아호의 모노드라마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과학자인 에밀리 뒤 샤틀레의 마지막 생애를 조명
카이야 사아리아호
파리를 중심으로 하여 국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핀랜드 출신의 여류 작곡가인 카이야 사아리아호(Kaija Saariaho: 1952-)의 최근 오페라 '에밀리'(Emilie)가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소프라노 1인만이 출연하는 모노오페라(모노드라마)인 '에밀리'는 2010년 3월 1일 프랑스의 리옹국립오페라극장에서 세계초연되었고 이어 암스테르담, 런던, 뉴욕에서 공연되어 갈채를 받았다. 오페라 '에밀리'는 18세기의 뛰어난 여성과학자인 에밀리 뒤 샤틀레(Émilie du Châtelet: 1706-1749)의 업적과 말년의 생애를 조명한 작품이다. 에밀리 뒤 샤틀레는 근대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여성과학자라고 일컬어지는 인물로서 그로부터 160여년 후에 등장할 큐리부인의 앞길을 예비한 인물로 간주되고 있다. 18세기 당시에 계몽운동의 선구에 있었던 볼테르(본명: Francois-Marie Arouet: 1694-1778)는 에밀리에 대하여 '위대한 인간이다. 다만 여성인 것이 잘못일 뿐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에밀리는 과학자이기 전에 여성으로서 찗다면 짧은 생애를 보내야 했다. 에밀리는 자유스러운 연애주의자이기도 했다. 볼테르와 에밀리는 오래동안 연애관계에 있었다. 이어 시인인 장 프랑수아 랑베르와도 관계를 가졌다. 현대를 이끌고 있는 여성작곡가인 사아리아호가 계몽주의 시대를 살았던 에밀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오페라 '에밀리'는 여성의 운명과 삶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작품이다.
에밀리 뒤 샤틀레
에밀리 뒤 샤틀레는 계몽시대의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이고 작가였다. 에밀리의 가장 큰 업적은 불에 대한 물리학적 연구와 빛의 본성에 대한 연구였다. 오늘날 적외선으로 알려진 존재는 바로 에밀리 뒤 샤틀레의 연구에 힘입어 발견된 것이다. 에밀리의 또 다른 업적은 아이작 뉴턴의 저서인 Principia Mathematica(수학원리)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코멘트를 붙인 것이다. 번역된 책은 에밀리가 세상을 떠난지 10년 후인 1759년에 출판되었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표준 프랑스어 번역본으로 간주되어 많은 수학도들이 참고로 삼는 것이 되어 있다. 에밀리는 볼테르의 좋게 말해서 애인, 나쁘게 말해서 정부로서 특별한 관계에 있었지만 두 사람은 실은 어린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볼테르가 영국으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후에 에밀리를 만나 사랑의 감정을 키웠다는 것이다. 볼테르 자신은 에밀리를 1729년 에밀리의 아버지의 살롱에서 처음 만났었다고 주장했다. 에밀리가 26세의 부인이었을 때였다. 에밀리는 집안의 주선에 의해 18세가 되던 해에 플로랑-클로드 뒤 샤스테예 로몽(Florent-Claude du Chastellet-Lomont) 후작과 결혼하였다. 그로부터 에밀리는 샤스테예 후작부인이라는 칭호로 불렸다. 후작의 아버지는 아들의 결혼을 축하하여서 아들을 부르군디(Burgundy) 지방의 스뮈르 앙 오수아(Semur-en-Auxois)의 지사로 임명했다. 에밀리는 남편을 따라 부르군디 지방으로 옮겨 살았다. 에밀리가 볼테르를 다시 만나 사랑의 감정을 키우게 된 것은 이미 플로랑 클로드와의 사이에서 세 아이를 낳은 후였다.
리옹 초연의 장면. 소프라노 카리타 마틸라가 에밀리 역을 맡았다.
볼테르와 가까워진 에밀리는 볼테르를 프랑스 동북부 오트 마른(Haute-Marne)에 있는 시골별장으로 초대하여 지내도록 했다. 그로부터 두 사람은 그동안 억제하였던 애정을 표현하기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에밀리의 남편은 에밀리가 볼테르와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체 했다. 에밀리는 오트 마른의 시골별장에서 지낼 때에 물리와 수학을 공부했고 영어로 된 과학서적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는가 하면 자기 자신의 과학적 발견을 저서로 남기는 작업도 수행하였다. 에밀리와 볼테르는 서로 뜻이 같았고 지식에 대한 열망도 같았으므로 서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 이상으로 지냈다. 일각에서는 에밀리와 볼테르의 연애가 우정을 발판으로 한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우정어린 연애는 사실상 오래가지 못했다. 에밀리가 다른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에밀리는 40세가 넘었을 때 시인인 장 프랑수아 드 생 랑베르(Jean Francois de Saint-Lambert)와 깊은 관계에 있게 되었다. 그때 에밀리는 이미 랑베르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에밀리는 그 임신으로 자기의 생애가 종료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아이는 1749년에 태어났다. 딸이었다. 에밀리는 딸을 낳은지 1주일 후에 42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이는 공기의 기포 따위로 폐의 혈관이 막히는 혈전증에 걸려 생후 18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사아리아호의 오페라 '에밀리'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딸의 출산과 죽음에 대한 예감, 그리고 필생의 작업인 뉴톤의 저서를 번역하는 일을 다룬 것이다.
에밀리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훠탈
사아리아호는 '에밀리'를 핀랜드 출신의 소프라노 카리타 마틸라(Karita Mattila: 1960-)가 타이틀 롤을 맡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 그리하여 카리타 마틸라는 2010년 3월 1일 리옹국립오페라극장에서의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다. 2011년 링컨센터의 미국 초연에서는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훠탈(Elizabeth Furtal)이 타이틀 롤을 맡아 갈채를 받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에밀리'는 모노오페라이다. 대표적인 모노드라마(또는 모노오페라)로서는 쇤버그의 '기대'(Erwartung), 플랑크의 '인간의 음성'(La voix humaine)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모노오페라에는 남성보다도 여성 혼자만이 출연하고 있어서 왜 그럴까 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고 있다. 사아리아호의 '에밀리'는 모노오페라이지만 과거의 모노오페라와는 다르다. 작곡자인 사아리아호는 모노오페라를 등장인물의 외형적인 연기보다는 정신세계를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에밀리'는 계몽주의 사상이 싹트던 시대에 여성에 대한 사회적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한 여인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데 중점을 둔 작품이다. '에밀리'의 대본은 레바논 출신의 프랑스계 극작가인 아민 말루프(Amin Maalouf)가 썼다. 오페라 '에밀리'는 9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면마다 제목이 붙어 있다. 예를 들면 '볼테르', '아이', '불', '망각에 대한 저항'(Against Oblivion)등이다. 무대는 1749년 9월 1일 에밀리의 저택이다. 그날로부터 9월 4일 네번째 아이를 낳은 일, 9월 10일 에밀리가 세상을 떠난 일을 다룬 오페라이다. 모노오페라이면서도 26인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연주토록 하였다. 에밀리가 듀엣을 부르는 장면은 놀랍도록 감동을 준다. 소프라노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미리 녹음한 노래를 동시에 트는 것으로 진행했다.
에밀리 역의 엘리자베스 훠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