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24. 주세페 베르디의 '두 사람의 포스카리'(I due Foscari)

정준극 2013. 4. 15. 20:43

두 사람의 포스카리(I due Foscari) - The Two Foscari(포스카리의 두 사람)

베르디의 3막 오페라. 역사적 사실에 기본을 둔 내용

 

프란체스코 포스카리(플라치도 도밍고)와 루크레치아 콘타리니(마리나 포플라브스카야). LA오페라. 2011.

 

2013년, 베르디 탄생 200 주년에 즈음하여 진작부터 '두 사람의 포스카리'(I due Foscari)와 '시몬 보카네그라'(Simon Boccanegra)가 오페라 애호가들의 특별한 관심을 끌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플라치도 도밍고이다. 테너 플라치도 도밍고는 이윽고 바리톤으로서 이 두 오페라의 타이틀 롤을 맡았다. 도밍고는 이미 2010년에 '시몬 보카네그라'의 타이틀 롤을 맡아 69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린 딸을 잃고 고통 속에서 지낸 제노아 총독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그리고 2011년에는 워싱턴에서 '두 사람의 포스카리'에서 베니스의 총독 프란체스코 포스카리를 맡아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잃고 고뇌의 세월을 보낸 사람의 역할을 놀라운 능력으로 보여주어 오페라 애호가들의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러한 쉽지 않은 역할들을 훌륭하게 소화한 배경에는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큰 몫을 맡아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의 포스카리'를 다시한번 집중탐구해 본다. 그러다보니 '시몬 보카네그라'와 '두 사람의 포스카리'에는 비슷한 점들이 많이 있다. 보카네그라는 딸을 어릴 때에 잃었다가 나중에 다시 찾게 되며 프란체스코 포스카리는 아들이 멀리 추방당한다는 점이 비슷하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총독(Doge)의 자리에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치이다. 그리고 두 오페라 모두 결국은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는 점도 간과할수 없는 사항이다.

 

'두 사람의 포스카리' 무대

 

'두 사람의 포스카리'(이하 '포스카리'라고 간단히 표현함)의 원작은 잘 아는대로 영국의 유명한 시인인 로우드 바이런(Lord Byron)의 The Two Foscari 이다. 이것을 베르디와 최대 콤비인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Francesco Maria Piave: 1810-1876)이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었다.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는 베르디를 위해 '에르나니' '아틸라' '맥베스'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운명의 힘' '시몬 보카네그라' 등 주옥과 같은 대본을 제공한 사람이다. '포스카리'가 로마의 아르젠티나극장에서 초연된 것은 1844년 11월 3일이었지만 베르디가 '포스카리'를 오페라로 만들어야 겠다고 구상한 것은 그 전해인 1843년 초였다. 그러므로 '포스카리'는 거의 2년이나 걸려 완성된 셈이다. 베르디는 처음에 베니스의 라 페니체극장에게 바이런의 '포스카리'를 주제로 하여 오페라를 작곡하겠다고 제안하였으나 라 페니체는 내용에 베니스공화국을 비난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곤란하다고 하면서 거절했다. 게다가 포스카리 가문은 당시에도 베니스 일원에서 내노라하는 입장이므로 아무리 오페라라고 하더라도 그런 가문의 비극적인 내용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베르디는 로마의 아르젠티나극장으로부터 새로운 오페라의 작곡을 의뢰받고 로렌치노 데 메디치(Lorenzino de' Medici)라는 사람을 주제로 한 오페라를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로마의 아르젠티나극장도 베니스의 라 페이체극장과 마찬가지로 메디치 가문에 대한 비극적인 내용이므로 곤란하다고 거절했다. 실존인물이었던 로렌치노 데 메디치(1514-1548)는 1537뇬에 플로렌스 영주인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 공작을 암살한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아직도 무시하지 못할 메디치 가문을 위해서 그런 내용의 오페라를 만들어서 공연한다면 공연한 소란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거절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베르디는 기왕에 작곡을 시작한 '포스카리'를 완성하여 메디치 사람에 대한 것을 대체하여 로마 아르젠티나극장에서 '두 사람의 포스카리'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렸던 것이다.

 

루크레치아 역의 타티아나 세르얀. 파르마  

                                                        

'포스카리'는 로마에서의 초연 이후 이탈리아의 각자에서 2년 동안 20회 이상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플로렌스, 볼로냐, 크레모나, 밀라노, 나폴리, 모데다 등지에서 공연되었다. 아무래도 내용이야 어떻든 음악이 너무 훌륭하므로 너도나도 공연을 했던 것이다. 그 후에는 다른 새로운 오페라들이 자꾸 나오는 바람에 잠잠해 졌지만 그래도 간헐적인 공연은 있었다. 1846년에는 리스본에서 공연되었고 1850년에는 팔레르모에서, 1851년에는 토리노에서 공연되었다. 파리에서는 1846년 12월에 이탈리아극장(Theatre des Italiens)에서 공연되었고 영국에서의 첫 공연은 여왕폐하극장에서 1847년 4월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다음달인 5월에 보스턴에서 첫 공연되었다. 그후 '포스카리'는 세계의 오페라 무대에서 거의 잊혀져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인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밀라노의 라 스칼라가 새로운 감각으로 무대에 올렸다. 바리톤 레나토 브루손이 프란체스코 포스카리를 맡은 것이었다. 라 스칼라의 공연은 뛰어난 것이어서 DVD로 제작되어 있다. 라 스칼라의 공연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다른 극장들도 '포스카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로열오페라하우스가 바리톤 블라디미르 체르노프(Vladimir Chernov)와 준 앤더슨(June Anderson)을 내세워서 공연했다. 2000년에는 나폴리의 산 카를로극장이 공연했다. 역시 DVD로 나와있다. 2008년에는 플로리다의 사라소타오페라(Sarasota Opera)가 '베르디 사이클'의 일환으로 공연했다. 이외에도 스페인 등지에서 꾸준히 공연되었다. 콘서트 오페라 공연도 여러번 개최되었다. 예를 들면 1992년 뉴욕오페라오케스트라가 블라디미르 체르노프를 총독으로 하여 콘서트 공연을 한 것이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로스안젤레스오페라가 테너에서 바리톤으로 전향한 플라치도 도밍고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포스카리'를 공연한 것은 워싱턴에 이어 2012년이었다. 이때 야코포 포스카리는 테너 프란체스코 멜리(Francesco Meli)가 맡았고 루크레치아는 소프라노 마리나 포플라브스카야가 맡았다. '포스카리'는 2011-2013년 시즌에 미국의 9개 도시에서 공연되었고 공연이 계획되어 있다.

 

산 마르코 광장에서의 베니스 카니발

                                    

'포스카리'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의 포스카리는 아버지와 아들을 말한다. 아버지인 프란체스코 포스카리(Bar)는 베니스의 총독이다. 아들의 이름은 자코포 포스카리(T)이다. 자코포 포스카리의 부인이 루크레치아 콘타리니(S)이다. 피사나(Pisana: MS)는 루크레치아의 친구이다. 당시 베니스는 10인 위원회(Council of Ten)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자코포 로레다노(Jacopo Loredano: B)는 그 중의 하나이다. 바르바리고(Barbarigo: T)는 베니스의 원로의원이다. 이밖에 '10인 위원회'의 위원들과 보좌관들, 총독의 하인, 루크레치아의 하녀들, 베니스의 귀부인들, 군중들, 카니발에서 마스크를 쓴 남녀들, 감옥의 간수들, 곤돌라 사공들, 심부름꾼들, 그리고 자코포 포스카리의 어린 두 아들이 등장한다. 장소는 베니스이고 시기는 1457년이라고 되어 있다. 1457년이면 우리나라에서는 영월의 창령포에 유배되어 있던 단종(노산군)이 세상을 떠난 해이다. 수양대군 세조가 임금이 된지 3년째 되던 해였다.

 

프란체스코 포스카리의 레오 누치. 멀리 산 마르꼬 대성당이 보인다.

                                

1막 1장. 총독궁이 무대이다. '10인 위원회' 위원들이 총독의 아들인 자코포 포스카리에 대한 판결을 하기 위해 회의장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자코포 포스카리는 살인혐의를 받고 있다. 자코포 포스카리의 철천지 원수인 로레다노가 그의 친구인 상원의원 바르바리고와 함께 나타난다. 총독이 이미 회의장에 들어와 있다는 알림이 있자 위원들이 모두 서둘러서 회의장으로 들어간다. 이어 감옥에 있던 자코포를 데려온다. 자코포는 추방되어 있다가 얼마전에 돌아온 처지이다. 자코포는 베니스에 대한 사랑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자코포의 아리아가 Dal piu remoto esilio(추방되어 멀리 떠나 있다가)이다. 자코포는 재판이 벌어질 회의장으로 들어오기 전에 위원들의 보좌관들로부터 '회의장에 들어가면 무조건 자비를 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충고를 받지만 정작 회의장 안에 들어가자 감정이 북받쳐서 Odio solo ed odio atroce(오직 증오뿐, 잔혹한 증오가 저들의 마음을 닫아 놓았도다)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루크레치아(마리나 포블라브스카야)와 아이들

                          

장면은 바뀌어 총독궁의 어떤 방이다. 자코포 포스카리의 아름다운 부인인 루크레치아 콘타리니는 시녀들로부터 지금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루크레치아는 시아버지가 되는 총독을 어서 만나서 선처를 받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녀들로부터 지금은 만날수 없으므로 그저 자코포가 석방되기만을 기도하라는 얘기를 듣는다. 루크레치아는 분노를 참지 못하여 하늘에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루크레치아의 아리아가 Tu al cui sguardi onni possente(모든 사람의 기쁨과 눈물을 보시는 전능하신 이여)이다. 루크레치아의 친구인 피사나가 눈물을 흘리며 들어온다. 피사나는 자코포가 다시 먼 곳으로 추방가야 한다는 판결이 받았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 소식을 들은 루크레치아는 또 다시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La clemenza! s'aggiunge lo scherno(그들의 자비라고? 이제 그들은 모욕을 더하였도다)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피사나를 비롯한 부인들이 루크레치아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믿으라고 간청한다.

 

3장은 위원회 회의장 밖이다. 10인 위원들이 회의장을 떠나면서 자코포에 대한 혐의가 분명하므로 자코포에 대한 판결은 공정한 것이었다는 얘기들을 나눈다. 다시 장면은 바뀌어 총독의 개인 거실이다. 방에 들어온 총독은 피곤에 지친듯 의자에 주저 앉는다. 프란체스코 총독은 비록 자기 아들이지만 아버지로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것이 괴로원서 번민한다. 프란체스코의 유명한 아리아가 O vecchio cor che batte(오 나의 마음을 두드리는 옛 심정이여)이다. 잠시후 루크레치아가 눈물을 흘리면서 뛰쳐 들어온다. 루크레치아가 위원회의 결정을 소리쳐 비난하자 프란체스코 총독은 베니스의 법을 수호해야하는 입장에서 어찌할수가 없다는 점을 설명한다. 루크레치아는 법이라는 것이 증오와 복수로만 충만해 있다고 비난하면서 어서 남편을 자기에게 돌려달라고 간청한다. 루크레치아의 아리아가 Tu pur lo sai che giudice(너무나 잘 알고 계시잖아요)이다. 총독은 자기의 힘에 한계가 있음을 한탄하며 총독이라는 직책과 아버지라는 혈연의 갈림길에서 번민을 한다. 루크레치아는 시아버지인 총독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한 줄기의 희망을 갖는다. 루크레치아가 계속 총독의 도움을 요구하는 가운데 1막이 끝난다.  

 

총독(레오 누치)에게 탄원하는 루크레치아(알렉산드리나 펜다챤스카). 나폴리 산 카를로. 2000.

                                 

2막 1장은 감옥이다. 감옥에 홀로 있는 자코포는 그의 운명을 탄식한다. 자코포는 잔혹한 용병으로 이름난 카르마뇰라로부터 습격을 받은 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자코포의 아리아가 Non maledirmio prode(힘센 전사요, 나를 저주하지 말아다오)이다. 아리아를 불러 절규하던 자코포는 이내 그 자리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자코포는 정신이 몽롱한 중에 루크레치아가 자기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다. 루크레치아는 위원회가 자코포를 더 멀리 추방키로 했다는 결정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루크레치아는 아직도 한 가닥 희망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려워서 추방의 길을 가야 한다면 함께 떠나겠다고 말한다. 잠시후 총독이 나타나서 비록 아들을 사랑하지만 법을 집행하지 않을수 없는 처지임을 얘기한다. 자코포는 아버지의 그 말에 한 줄기의 위안을 받는다. 자코포의 아리아가 Nel tuo paterno amplesso(아버지의 포옹으로 나의 슬픔은 정지했다)이다. 그러나 자코포는 아버지 총독이 아들에 대한 사랑보다는 의무가 우선한다는 점을 강조하자 혼란스러워한다. 로레다노가 들어와서 공식판결의 내용을 전하며 자코포에게 어서 떠날 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로레다노는 루크레치아를 비롯해서 포스카리의 두 사람이 조금 더 시간을 달라고 간청하지만 그 말을 무시하며 비웃기나 하듯이 부하들에게 자코포를 어서 감방에서 꺼내 결박을 지어 호송하라고 명령한다. 자코포, 총독, 루크레치아의 트리오는 각자의 엇갈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2장은 위원회 회의실이다. 로레다노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자비란 있을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루크레치아와 아이들은 절대로 자코포를 따라 갈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총독은 아들의 비운에 대하여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로서보다는 총독으로서의 역할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자신의 입장을 탄식한다. 루크레치아가 두 아이들과 함께 들어선다. 자코포가 아이들을 포옹하며 마음의 동요를 억제하지 못한다. 루크레치아가 위원들에게 다시 한번 자비를 호소하지만 아무런 보람이 없다. 자코포가 머나먼 추방의 길로 끌려 나간다.

 

루크레치아 역의 타티아나 세르얀. 로마. 위원회에 아이들과 함께 나타나서 다시 하번 남편 자코포에 대한 자비를 호소한다.

                      

3막 1장은 산 마르코 광장이다. 로레다노와 바르바리고 등 음모를 꾸민 자들이 모여 그들의 음모가 성공한 것을 기뻐한다. 이들은 자코포를 멀리 보낼 노예선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자코포가 끌려나오며 루크레치아가 뒤를 따른다. 자코포는 루크레치아에 대한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리아를 부른다. All'infelice veglio(불행한 여인, 나로 인하여 불행하도다)이다. 대합창이 이어진다. 자코포, 루크레치아, 피사나, 바르바리고, 로레나도, 그밖의 베니스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심정을 표현하는 합창이다. 자코포가 O padre, figlia, sposa(오 아버지, 아이들아, 부인이여)를 부르며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자코포가 노예선으로 끌려 들어가자 루크레치아는 피사나의 팔에 안겨 정신을 잃는다.

 

'두 사람의 포스카리'의 무대. LA 오페라.

 

2장은 총독궁이다. 슬픔에 잠긴 총독이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아리아를 부른다. Egli ore parte(이제 떠났구나)이다. 프란체스코는 그가 너무 늙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바르바리고가 나타나서 자코포의 무죄를 밝히는 증거를 보여준다. 그때 루크레치아가 뛰어 들어와서 자코포가 죽음을 당했다는 비통한 소식을 전한다. 루크레치아의 아리아가 Piu non vive...l'innovente(그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아무 죄도 없는데)이다. 루크레치아가 정신을 잃은 듯 방에서 나가자 하인이 들어와서 10인 위원회가 총독을 만나기를 청한다고 전한다. 로레나도가 위원회를 대표하여 총독에게 위원회의 결정을 전한다. 총독이 나이가 너무 들어서 총독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수 없으므로 총독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분노한 총독이 위원회의 결정을 비난한다. 총독의 아리아가 Questa dunque e l'inqua mercede(공정하지 않은 처사이다)이다. 루크레치아가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들어와서 총독을 보고 별다른 뜻이 없이 평소 부르는대로 '공자님'(Prince)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자 총독은 '나는 더 이상 공자가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그때 산 마르코 대성당의 종이 울린다. 새로운 총독을 선출했다는 종소리이다. 프란체스코는 마지막 순간이 왔다는 느낌을 갖는다. Quel bronzo feral(운명의 종소리인가)이다. 종소리가 다시 들릴 때 총독은 숨을 거둔다. 로레다노는 '이제 값을 치루었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포스카리' 그림. 오른쪽에서 자코포 포스카리가 자비를 구하는 중에 가운데의 총독 프란체스코 포스카리는 어쩔수 없음을 탄식하고 왼쪽의 루크레치아와 두 아이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는 모습이다.

 

[명음반] - 프란체스코 포스카리, 자코포 포스카리, 루크레치아, 로레다노 - 지휘자, 오케스트라

- 1951년: Giangiacomo Guelfi, Carlo Bergonzi, Maria Vitale, Pasquale Lombardo - Carlo Maria Giulini, RAI of Milan Orchestra and Chorus

- 1977년: Piero Cappuccilli, Jose Carreras, Katia Ricciarelli, Samuel Ramey - Lamberto Gardelli, ORF Symphony Orchestra and Chorus

- 1988년: Renato Bruson, Alberto Cupido, Linda Roark-Strummer, Luigi Roni - Gianandrea Gavazzeni, Teatro alla Scala Orchestra and Chorus

- 2000년: Leo Nucci, Vincenzo La Scola, Alexandrina Pendatchanska, Danilo Rigosa - Mello Santi, Teatro San Carlo Orchestra and Chorus

 

총독 역의 플라시도 도밍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