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 유태인/포그럼이 뭐길래?

포그럼도 유행인가?

정준극 2009. 11. 11. 06:34

2차 대전 이후의 포그럼

세계2차 대전은 끝났지만 폴란드에서는 아직도 유태인에 대한 포그럼(Pogrom: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소수민족 학살, 특히 유태인에 대한 학살)이 끝나지 않고 있었다. 1945년 8월 11일에는 크라코우(Krakow)에서 포그럼이 일어났고 1946년에는 키엘체(Kielce)에서 포그럼이 진행되어 37명의 유태인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다만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했다. 문제는 이 두 도시에서뿐만 아니라 폴란드의 다른 도시에서도 유태인을 학살하는 포그럼이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주동이 되어 그런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단 말인가? 좌익분자들이 주동을 했는가? 그렇지 않으면 우익 민족주의자들이 주동을 했는가? 해답도 없이 2차 대전후 폴란드에서 유태인을 살해한 것이 좌익인지 또는 우익인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유태인들은 폴란드에서 우익이나 좌익이나 그게 그놈들이어서 다를바가 없다고 말했다. 유태인들은 결국 폴란드와 동유럽국가에서는 앞날이 없다고 생각하여 살던 집을 떠나기로 했다. 폴란드를 비롯해서 다른 동구 지역에서 유태인들이 대거 빠져 나가자 이들 지역에서의 경제가 휘청거리게 되었다. 아무렴 세금납부가 줄어들게 된것은 분명했다. 그러자 포그럼에 대한 후회의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워낙 머리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유태인들은 음흉한 사람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보라!'라는 생각때문인지 유태인 혐오 및 증오는 막을 내릴줄을 모르고 있다.

 

키엘체 포그럼 이후 영국이 주선하여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려는 유태인들이 기차역에 모여 있다. 그래도 이때에는 고향에 돌아간다는 희망이 있었다. 2차 대전중 키엘체에 남아 있던 유태인들은 모두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가스실에서 죽었다.

  

[세계 곳곳에서 포그럼 유행]

포그럼은 유태인에게만 해당하는 용어가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민족간 또는 종교간 만행들이 모두 포그럼이다. 예를 들어 중세 후반에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기독교도들이 유태인과 무슬림을 싸잡아서 공격하고 박해했다. 유태인과 무슬림을 합하여 모리스코스(Moriscos)라고 불렀다. 원래 모리스코는 무슬림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하기보다는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람들을 의미했다. 한편, 현대사에 있어서 동구에서의 민족폭력은 하나의 통치수단이 되었다. 너무나 복잡한 민족들이 얽혀 사는 동구권에서 정치적 세력을 잡으려면 같은 나라에 사는 같은 국민이면서도 소수민족들을 박해해야 했다. 역사학자들은 1863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흑인에 대한 폭력사건도 포그럼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New York Draft Riot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이 세계의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큰 논란이 없었다. 1871년 LA에서 히스패닉 계통들이 중국인들에게 집단 폭행을 저지른 것도 포그럼이라고 할수 있다. 이때 19명의 중국인이 살해되었다. 아시아에서도 수많은 민족포그럼이 있었다. 

 

터키의 박해를 받아 추방되는 아르메니아인 가족. 1915-1923년 사이에 수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터키에서 추방되었다. 이들은 당장 갈곳이 없어서 아르메니아로 향하였으나 그곳에서의 생활도 어려웠다.

 

1909년 아르메니아에서는 오토만제국의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에 대한 학살이 이루어졌다.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재산상의 피해는 말할수 없이 컸다. 이를 아다나(Adana)학살이라고 한다. 1923년 관동지진 때에 어떤 신문이 일본에 사는 조선족(한국인)들이 조직적으로 우물에 독약을 탔다는 보도를 하는 바람에 최대 2만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어디 일본에서뿐인가? 우리나라 땅에서도 일본인들에 의한 참혹한 만행은 이루 열거할수 없을 정도가 아니던가? 사악하고 잔인한 일본인들이 자기들만 우수한 민족이고 다른 민족들은 사람도 아니라고 하면서 무수히 학살을 자행하였다. 일본인들이 저지른 난징대학살은 참으로 끔찍한 만행이었다. 일본인들은 인간도 아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운동 시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하여 취했던 대우도 포그럼으로 간주된다. 1955년 이스탄불에서는 터키주민들이 그리스 주민들을 집단 폭행하였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비아프라 전쟁 중에 이그보스(Igbos)족이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학살당했다.

 

1908년 아르메니아 아다나시의 기독교 구역이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인도에서는 시크교도들이 포그럼을 경험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84년 인디라 간디수상이 두명의 시크교도 경호원에 의해 살해되자 격분한 군중들이 시크교도들을 공격하고 시크사원을 파괴한 사건이었다. 1990년 아제르바이잔의 바쿠(Baku)에서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포그럼의 희생물이 되었다. 1998년 자카르타에서는 중국인 화교들에 대한 포그럼이 일어나서 중국인 주택과 상점들이 화염에 휩싸이고 여러명의 중국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1999년에 구 유고슬라비아의 여러 지역에서 인종청소 작전이 펼쳐진 것은 참혹한 포그럼이 아닐수 없다. 주로 세르비아에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또 하나의 가혹한 포그럼은 2002년 3월 인도의 구자라트(Gujarat)주에서 발생했다. 무슬림들이 조직적으로 살해된 포그럼이었다. 이때 수백명에서 최대 2천명까지의 무슬림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수단의 다르푸르(Darfur)에서는 아직도 포그럼이 진행되고 있다. 원래는 무슬림 다수가 기독교와 정령숭배자(Animist)에 대한 포그럼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아랍과 비아랍과의 분쟁에 이어 종족간의 투쟁으로 번지고 있다. 이밖에도 세계에는 종족간, 종교집단간, 정치적 세력간의 포그럼이 수도 없이 많다. 일일이 설명할 여우가 없으므로 이만 줄인다.

 

인도 구자라트 주의 아메드바드에서의 폭동으로 시가지가 검은 연기로 덮혀 있다. 2002년 월드컵이 서울에서 열린 해.

 

마지막으로, 유태인들은 어찌하여 포그럼의 타겟이 되었는가? 겉으로의 종교적인 이유는 유태인들이 인류의 구세주인 그리스도를 죽였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일부 기독교 국가에서는 유태인들이 예수를 메시아(구세주)로 받아 들이지 않고 단순히 선지자 중의 한사람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분개하여서 유태인들을 학대하였다고 한다. 역시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인간적으로 유태인이었으며 성모 마리아와 베드로 및 바울도 모두 유태인들인데 기독교에서는 이들을 모두 성자로 받들고 있으면서도 유태인들이라면 죽어라고 미워하고 있으니 아이러니컬하다.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큰 것이다. 자기들 나라도 아닌데 들어와서 살면서 경제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꼴보기 싫어서이다. 아무튼 경제동물이라고 하는 유태인들이 자기 나라에 와서 살면서 온갖 방법으로 돈을 벌어 부자로 살고 있으면 배가 아프지 않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유태인들은 선민주의 사상이 커서 자기들이야말로 하나님이 선택한 위대한 민족이라고 내세우고 있으므로 그럴 때마다 한 대씩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고 죽일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유태인들은 자녀를 많이 갖는다. 모세의 율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 유태인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것도 꼴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 이유가 있지만 생략코자 한다.

 

1955년 이스탄불에서의 포그럼. 터키인들이 그러면 안되는데 유태인과 기독교인들의 상점을 파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