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수원

서장대(西將臺)

정준극 2010. 6. 3. 08:03

화성의 서장대(西將臺) - 화성장대

 

서장대의 위용. 수원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다.

 

수원을 방문하는 분들은 힘이야 들겠지만 부디 팔달산 꼭대기의 서장대(화성장대)를 한번 올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서장대는 서쪽에 있는 장대를 말한다. 수원성에는 동장대와 서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동문(창룡문) 부근 연무대가 그것이다. 장대는 지휘하는 장수가 올라서서 명령을 내리는 본부건물을 말한다. 장대로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남한산성의 수어장대일 것이다. 임금을 직접 수호하는 장수의 지휘본부이기 때문에 수어장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장대는 장수가 군사에게 명령을 내리는 곳이므로 외적의 공격을 막는 성곽과 연계하여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서장대라는 건물은 진주에도 있지만 수원 화성의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를 우선 생각하게 된다. 팔달산의 서장대는 사적 3호로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함께 지정된바 있는 귀중한 존재이다. 서장대를 가려면 화성행궁 주차장 뒤편에서 천천히 계단 길을 따라 걸어서 올라가도 되고 화성관광 열차를 타고 팔달산의 중간쯤까지 간후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된다. 화성관광 열차는 동문(창룡문)이 있는 연무대 앞에서 탈수도 있고 화홍문이 있는 방화수류정 앞에서 타도 된다. 요금은 2010년 6월 현재 어른이 1천5백원이며 65세 이상은 750원이다. 죽어라고 걸어서 올라가면 화성행궁 뒤편으로부터 250 미터의 거리이다.

 

화성관광열차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기 때문에 올라가면 시원하다. 바람도 시원하지만 사방팔방으로 수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여서 시원하다. 월드컵 경기장도 지척으로 보이며 화성행궁도 바로 눈 앞에 내려다 보인다. 수원성을 둘러싸고 있는 긴 성벽과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 장안문의 4대문도 손으로 가르키며 찾아 볼수 있다. 옛 수원의 한 복판인 종로 네거리와 종루인 여민각의 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이렇듯 시원하고 전망이 좋은 까닭에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들 올라온다. 그러다보니 무릇 이 나라의 모든 문화재가 그렇지만 이곳도 안전무방비였던 시절이 있었다. 2006년 5월 1일 노동절에 안씨 성을 가진 어떤 취객이 서장대에서 내복을 벗어 라이타로 불을 붙여 방화하는 바람에 귀중한 문화재가 거의 전소된 일이 있다. 카드 빚 3억원을 갚을 길이 막막하여 홧김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도대체 빚은 왜 지고 사는가? 문화재에 불을 지르려고 빚을 졌나? 그로부터 바로 1년전인 2005년 4월 5일 식목일에는 산불인지 무언지 때문에 양양의 낙산사가 전소되는 비참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서장대에 활활 불이 나서 거의 모두 타버리기 바로 며칠 전에는 또 어떤 못된 백성이 창경궁의 문정전에 불을 질러 큰일이 날뻔 한 일이 있었다. 다행히 주변의 시민들이 합세하여 소화하였길래 그나마 옆의 명정전에는 불이 옮겨 붙지 않았다고 한다.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고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사정이야 어쨋든 문화재에 불을 지르는 인간은 극형에 처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2008년 2월 10일에는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채씨 성을 가진 노인에 의해 불에 탔다. 아무튼 서장대 방화사건 이후 안전에 보다 신경을 쓰게 되었지만 밤중에도 아무나 올라가서 소주병을 비울수 있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 아닐수 없다.

 

수원의 북쪽. 가운데 길처럼 보이는 것이 수원성벽이다. 

여름이면 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서장대. 날렵하다.

 

아름답고 웅장한 2층 누각인 서장대는 1784년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조할 때에 세웠다. 정조대왕은 '화성장대'라는 친필휘호를 내려 서장대의 완성을 치하하였다. 그후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피폐를 거듭하다가 1975년에 가서야 복원되었다. 그리고 2006년 5월 1일에 방화로 거의 전소되었으나 이듬해인 2007년 4월 6일, 신문의 날에 복원되었다. 서장대는 건축양식에 있어서 특별하다. 12개의 기둥을 둘러 세웠다. 열두 방위를 말하는 것 같다. 동장대는 월대 위의 단층인데 서장대는 날렵한 2층이다.

 

서장대에서 내려다 보면 화성행궁이 한눈에 보인다. 왼쪽 작은 공터가 신풍초등학교이다.

 

서장대 올라가는 길에 있는 효원(孝園)약수. 예전부터 팔달산에는 약수터가 많았다. 약수가 흘러나오는 용두는 방화수류정의 용연으로부터 화홍문으로 물이 흘러 나오는 곳에 있는 용두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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