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수원

수원역사박물관

정준극 2009. 5. 7. 02:52

수원역사박물관

 


수원은 정조대왕 및 화성(華城)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수원에서 가까운 신갈에 있는 경기도박물관, 경기대 후문 있는 곳에서 가까운 수원역사박물관, 수원천변에 최근에 문을 연 화성박물관, 수원 남쪽 용주사에 있는 효박물관, 수원 북쪽 지지대고개에 있는 효행기념관 등이 모두 정조대왕과 화성을 기본 테마로 삼고 있다. 화성행궁 바로 앞에 있는 박물관 스타일의 화성홍보관도 당연히 정조대왕 및 화성을 주제로 삼고 있다. 팔달산에는 장대한 정조대왕 기념상이 세워져 있다. 수원은 온 성읍의 백성들이 모두 정조대왕의 유지를 충실히 받들고 있는 듯 하다. 박물관이나 기타 기념관들의 건물 디자인도 화성의 성곽이나 포대 또는 봉수대를 모델로 삼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정약용이 개발한 거중기 등은 가는 곳 마다 마치 단골 메뉴처럼 전시되어 있다. 경기도박물관에도 있고 화성박물관에도 있다. 수원은 정조대왕의 음덕을 단단히 보고 있다. 해가 거듭할수록 관광객들이 쏠쏠이 늘고 있다. 화성은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므로 수원으로서 자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랑기(佛狼機). Frank를 우리말로 그렇게 표현했다. 설명판에는 블랑기라고 적혀 있다. 박물관 안내원도 블랑기라고 주장한다. 불랑기는 중국 명나라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화포이다. 아랍인들이 중국으로 전파한 것이다. 아랍인들은 서양인들을 파랑기(Farangi)라고 불렀는데 이는 중세의 프랑크(Frank)를 말하는 것이었다.

신기전. 그 옆에 일부만 보이는 것이 축소판 거중기. 그래도 돌을 들어 올리도록 되어 있다. 


오늘날 수원의 또 하나 특징은 중심 되는 행정관청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청은 저만치 있고 수원 시청은 이만치 있다. 경기도경찰청은 이만치 있고 법원은 저만치 떨어져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경기도박물관은 저만치 용인시 신갈 한쪽에 있고 수원역사박물관은 영통구의 경기대 후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주소는 영통구 창룡문길 443번지이다. 하기야 당연히 한곳에 몰려 있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있을 만한 데에 있으면 찾아다니느라고 애쓰지 않아도 될 터인데 예상 이외의 장소에 있어서 핀잔이라도 주고 싶다. 수원역사박물관의 바로 옆에는 외국어고등학교가 있으며 박물관 초입에는 동수원성당이 있다. 오히려 외고의 위용이 당당한것 같다. 지하철과는 연계가 되지 않고 있으며 버스를 타고 가려면 경기대 후문 정류장에서 내려 그래도 상당히 걸어야 한다. 그리고 큰 길에서 한참 들어가서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자가용을 타고 가지 않으면 다리품을 좀 팔아야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대체로 수원역사박물관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른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 듯도 싶다. 수원역사박물관은 5년의 준비 끝에 2008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그래서 새건물이다. 박물관의 전시공간은 별로 넓지 않지만 반면에 구내가 넓어서 시원하다. 수원역사박물관의 전체 부지 면적은 약 4만평에 이른다. 하기야 4만평이라고 하면 20평짜리 아파트 2천 채를 깔아 놓은 것과 마찬가지이니 넓기는 넓다. 정원에는 거중기, 신기전, 불랑기와 같은 정약용표 신장비들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한쪽에는 연자방아와 장독대도 고즈넉이 있어서 정겹다. 벤치들도 많아 가족단위나 단체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도 좋은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연자방아와 장독대(뒤에 보이는 건물들은 경기대)

 

입구로부터 올라오는 동산의 야외 전시가 볼만하다. 조선시대에 수원 유수나 부사를 지낸 인물들에 대한 선정비(善政碑)와 불망비(不忘碑)들이 도열되어 있는가 하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지만 장승들도 많이 가져와서 세워 놓았다. 송덕비와 불망미 중에는 비록 잠시나마 수원 유수를 지냈던 인물 중에서 명성왕후의 오빠 민승호(閔升鎬)에 대한 것, 흥선대원군의 조카 이재원(李載元)등에 대한 것이 눈길을 끈다. 1701-03년 수원부사를 지낸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원(閔鎭遠)에 대한 선정비도 있다. 그러고보면 선정비라는 것이 자꾸만 정치 쇼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높은 사람들이 은근히 압력을 넣어서 백성들이 어쩔수 없이 만들어 세웠을까? 그렇지않으면 이방들이 자신들의 보신을 위해 자진해서 만들어 세웠을까? 하기사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하니...정려문(旌閭門)도 있다. 영조시대의 우승지 류태명과 순조시대의 호조참판 류의의 효자정문(孝子旌門)을 재현해 놓았다. 박물관 본관 건물 뒤편에는 인공폭포와 화홍문(華虹門)을 닮은 수문도 있다. 한마디로 대단히 정성들여 잘 만들어 놓은 야외공간이다. 그리고 직원들도 모두 친절하다. 하지만 직원들이 너무 많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유수민공승호영세불망비(유수를 지내신 민승호공을 영원히 잊지맙시다라는 뜻. 설마 무척 똑똑한 사람인데 무얼 물어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집사람이 한 일이라서 모른다고 대답하는 어떤 무능하고 뇌물만 좋아했던 사람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뜻은 아니겠지)

박물관2층에서 내려다본 박물관 건물 뒤편의 인공폭포와 화홍문 스타일의 수문.


수원역사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서예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한국서예박물관과 사운 이종학 사료관이라는 것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서예박물관에서는 정조대왕의 여러 글씨들을 볼수 있어서 감회를 더해 준다. 사운 이종학 선생(1927-2002)은 수원지역 출신으로 주로 일제 강점기의 귀중한 자료들을 자세히 수집한 인물이다. 유족들이 사운선생이 수집한 유품 2만여점을 수원역사박물관에 기증하였기에 별도의 사료관이 마련된 것이다. 사운선생은 독도에 대한 자료도 참으로 많이 수집하였는바 얼마 전에 울릉도에 마련된 독도전시관에 모두 기증하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수원역사박물관은 아직은 비록 한갓진 곳에 위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화성과 수원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진실로 일차재차 방문해야할 곳이다. 특히 일제(日帝) 시대와 사변후 수원의 모습을 상기할수 있는 전시물이 다대하므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한편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교육적 가치도 크다.

 

사운 이종학 선생 사료관의 한 코너. 선생의 흉상과 평소 검소했던 선생의 면모를 보여주는 서재.


수원역사박물관은 기본적으로 역사박물관이므로 구석기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원의 역사에 대한 것이 당연히 전시되어 있다.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를 거쳐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그리고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질서 있게 전시되어 있어서 특히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을 준다. 일제 강점기의 자료들을 보면 우리가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에 대하여 얼마나 소홀히 대하였는지 자성의 기회를 준다. 허물어져 가는 화성의 4대문들과 성곽들, 그리고 화성행궁과 화령전에 대한 사진을 보면 그렇다. 그리고 사변 때에는 또 얼마나 파괴되었던가? 화성의 4대문은 남문인 팔달문(八達門)과 서문인 화서문(華西門)만 제외하고 온전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오죽하면 사변 후에 ‘남문은 남아 있고 동문은 도망가고 북문은 부서지고 서문은 서 있다’라는 말이 유행했겠는가? 사변후 1950년대 후반기의 남문 인근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전시는 이때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에게 실로 감회의 기회를 갖게 해준다. 남문(팔달문) 로터리의 한쪽에 있었던 중앙극장을 중심으로 수원의 명물 갈비집 화춘옥(華春屋)이 그대로 재현되었으며 이밖에 생선가게, 양복점, 목욕탕, 이발소, 한복점, 그릇점, 과일점 등이 스피커를 통한 장사꾼들의 소음과 함께 생생하게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50년대 중반, 남문 옆 중앙극장과 그 언저리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전시

소문난 갈비집 화춘옥의 옛 모습

남문에서 삼거리 방향으로 나 있는 대로변의 모습


사운 이종학 사료관을 보면 일제 시대의 각종 책자와 사진첩, 엽서 등이 눈길을 끈다. 일본 사람들은 수원(水原)을 ‘수이겐’이라고 불렀다. 수이겐이라고 하니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수원 종로에 있는 성당에도 수원을 일본어로 수이겐이라고 적어 놓았다. 꼭 그래야 했나? 수원은 수원이지 수이겐이 아님을 왜 모르고 있을까? 팔달문은 ‘핫다츠몬’이었다. 팔달문, 화홍문,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등의 사진엽서를 보면 ‘우째 저렇게 한심하게 방치해 두었던고?’라는 자괴감만 생긴다. 그런데 일제 시대의 방화수류정에 대한 엽서를 보니 방화를 ‘防花’라고 적어 놓아서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수원의 역사를 전시하는 전시장의 한쪽에는 수원 농업진흥청에서 개발한 통일벼 샘플이 전시되어 있다. 수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에 벼의 샘플이 있으니 이상하기는 이상하지만 그래도 수원의 자랑인 농촌진흥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없는 것보다는 낫다. 농진청은 조선시대로부터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이라는 그럴듯한 건물을 마련하고 농업에 대한 여러 가지를 연구하게 했던 사연을 지닌 곳이다. 특히 잠사관에는 순종황후가 친히 방문하여 잠사를 권면한 일도 있다. 아무튼 그런저런 사연을 간직한 우리나라 유수의 농업연구기관이 노무현 정권시절의 무모한 정책에 따라 진주인지 어딘지로 이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수 없다. 경기도지사와 수원시장은 무엇하고 앉았는지 모르겠다. 농진청 이전만을 막았어야 했다. 안내해주던 분은 그분도 공무원 신분일터인데 역사적으로 수원을 대표하는 농진청을 엉뚱하게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하며 전 정권을 비난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장승군락과 서낭당의 돌무덤. 장승들은 요즘 만든것 같다.


1950년대 후반, 중앙극장 주변을 재현한 곳에서 재미난 포스터를 보았다. 담배 가게 옆의 널빤지 담장에 붙어 있는 포스터이다. 정부통령선거추진 기독교도중앙위원회라는 곳에서 만들어 붙인 것으로 ‘강하고 담대한 사람 장로 이승만 박사, 착하고 진실한 사람 권사 이기붕 선생’이라고 내용의 포스터이다. 이 선거 포스터를 보고 ‘아, 과연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이다’라는 생각을 가질수 있을까? 또한 불현듯 ‘우리는 언제까지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 인하여 국제적인 망신을 당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민들을 기만하며 사리사욕만 채운 대통령들은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수원역사박물관에 붙어 있는 한 장의 옛날 포스터가 때 아닌 우국심을 발로케 해주었다. 사족: 국부 이승만 박사님과 이기붕 씨는 모두 감리교인이었다.

 

옛날 포스터. 1950년대 후반.


사운 이종학 사료관에서 뜻하지 아니한 귀중한 자료들을 보았다. 프랑스의 Le Petit Parisien이라는 신문에서 특집으로 실은 그림들이다. 하나는 1894년 고종황제와 무관들을 묘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07년 서울거리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만행과 그에 저항하는 조선백성들에 대한 그림이며 또 다른 하나는 1909년 자동차를 처음 보고 놀라는 서울 사람들의 표정을 담은 그림이다. 너무 신기하여 사진을 찍어 두었다. 노플래쉬!

 

고종황제와 무관들

일제의 만행

남대문 앞 길에서 자동차의 출현을 보고 놀라서 혼비백산하는 조선인들

 

수원역사박물관, 한국서예박물관, 사운 이종학 사료관은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다만, 관례에 따라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그 다음 날에 휴관을 한다. 입장료는 어른 2천원, 청소년 및 군경은 1천원이다. 20인 이상의 단체는 깎아주어 어른들 단체는 한사람당 1천원, 학생들 단체는 한사람당 5백원을 받는다. 자세한 내용은 http://museum.suwon.go.kr을 참고하면 된다. 한국서예박물관을 관찰하여 소개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필자의 게으름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서예박물관을 잠시 들여다 보았는데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거니와 지루한것 같아서 그냥 지나쳤다.

 

 아름다운 수원역사박물관. 조경이 아주 잘되어 있다.

휴게시설도 관찮게 마련되어 있다. 삼겹살 구어먹지 못하도록 단단히 경계해야 할것이다.

야외 전시장의 문인석들. 누구 산소에서 이렇게 가져왔을까? 혹시 후손들이 돈이 아쉬워서 판것이나 아닌지?

박물관 정원. 여름엔 시원한 분수도 한몫.  

 야외공간에 있는 약사불. 서문밖 화서동의 동래 정씨 선산 인근에 있던 마애석불.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전시실 일각. 벽면의 초상화는 인조반정에 참여한 공신인 박유명이란 양반의 초상화. 17세기 전형적인 공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초상화라는 설명. 보물 제1489호라고 한다.

 영조시대와 순조(정조의 아들)시대를 살았던 류씨문중 사람들에 대한 효자정문(旌門)

 해피 수원의 마크가 있는 수원역사박물관 겸 한국서예박물관 겸 사운 이종학 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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