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영국왕실과 성공회

노덤벌랜드경의 도박

정준극 2010. 2. 9. 06:03

 노덤벌랜드경의 도박

 

존 더들리. 1세대 노덤벌랜드경. 1558년

 

에드워드가 죽은 후, 한 많은 메리가 가장 적법한 왕위 계승자로서 왕위에 등극하자 그동안 메리의 생모 캐서린 추방에 앞장섰던 인물들은 죽기 아니면 죽기라는 심정으로 메리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되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에드워드의 삼촌 노덤벌랜드경(Earl of Northumberland)이 주도한 것이었다. 노덤벌랜드경은 영국이 가톨릭 왕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기 위해 그의 개신교 며느리인 레이디 제인 그레이(Lady Jane Grey), 즉 일찍 죽은 에드워드왕의 부인을 영국의 여왕으로 삼으려고 했다. 실제로 에드워드가 죽은 날, 왕의 삼촌인 노덤벌랜드 경은 레이디 제인 그레이를 영국의 국왕으로 삼는다는 칙령을 급하게 발표했다. 하지만 노덤벌랜드경의 횡포에 반감을 갖고 있던 영국 귀족들과 왕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아니했다.

  

에드워드6세. 1550년. 1537-1553(15세), 재위 1547-1553(6년), 제인 세이모어와 헨리8세의 아들.
                                             

영국은 전통적으로 외국 출신이 영국을 통치하는 것을 증오하는 만큼 왕위찬탈이라는 중차대한 사건에 대하여도 대단한 배타심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에드워드의 삼촌에 의한 왕위찬탈 음모는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당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메리에 대하여 상당한 동정심을 갖고 있었던 것도 큰 함수로 작용했다. 실제로 불쌍한 케서린과 그의 딸 메리에 대하여 국민들의 지지는 생각 밖으로 폭넓었었다. 결국 나중에 여왕이 될 뻔하였던 레이디 제인 그레이와 그의 아들, 그의 남편인 얼간이 귈포드 더들리, 그리고 노덤벌랜드경은 도끼날의 이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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