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세계의 오페라극장

러시아의 '사립오페라단'과 '솔로도브니코프극장'

정준극 2013. 11. 22. 07:33

러시아의 '사립오페라단'(루스카이 챠스트노이 오페라)과 '솔로도브니코프극장'

 

사바 마몬토프. 러시아 사립 오페라단의 창설자이다.

 

러시아에는 전통적으로 국립오페라단이 있지만 이와는 별도로 '사립오페라단'(Private Opera: Chastnoi Opera)이 있어서 러시아 오페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러시아의 '사립오페라단'은 1885년에 설립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신교육의 요람인 배재학당이 처음 문을 열었던 해이다. '사립오페라단'은 러시아의 저명한 기업가이며 음악애호가인 사바 마몬토프(Savva Mamontov)가 설립했다. 그는 자기 재산을 투입하여 오페라 공연을 기획하고 배우들과 성악가들을 교육시키는 등의 활동을 했다. 그는 자기가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다. 마몬토프의 사립오페라단은 모스크바 북쪽에 있는 아브람체보(Abramtsevo)에서 조직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오페라단의 명성이 높아지자 많은 음악인들이 이 오페라단과 일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1896년에는 유명한 베이스인 표드로 샬리아핀이 멤버로 합류했고 1897년에는 작곡가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전속 작곡가로서 합류했다. 설립자인 마몬토프는 당대의 성악가들을 스카웃하여 멤버로 삼았다. '사립오페라단'에서 활동했던 세계적인 성악가로서는 샬리아핀은 물론이고 나데츠다 차벨라 브루벨(Nadezhda Zabela-Vrubel), 표트르 로디(Pyotr Lodiy), 블라디미르 로스키(Vladimir Lossky), 표트르 올레민(Pyotr Olemin), 베라 페트로바 츠반체바(Vera Petrova-Zvantseva), 나데츠다 살리나(Nadezhda Salina), 안톤 세카르 로찬스키(Anton Sekar-Rozhansky), 니콜라이 셰벨레프(Nikolai Shevelev), 바실리 슈카퍼(Vasily Shkafer), 엘레나 츠베트코바 (Elena Tsvetkova) 등이 포함되었다.'

 

'짜르를 위한 삶'(이반 수사닌)에서 이반 수사닌의 역할을 맡은 베이스 표도르 샬리아핀

 

마몬토프는 재능있는 작곡가들도 초빙하여 오페라를 작곡토록 지원했다. 신비주의 작곡가인 세르게이 바실렌코(Sergei Valilenko: 1872-1956), 지휘자 겸 작곡가인 미하일 이폴리토프 이바노프(Mikhail Ippolitov-Ivanov: 1859-1935), 교향곡으로 유명한 바실리 칼리니코프(Vasily Kalinnikov: 1866-1901), 그리고 러시아 고전음악 시대의 마지막 낭만주의 작곡가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와 러시아 국민음악파 5인조의 한 사람인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1844-1908) 등이다. 이와 함께 마몬토프는 성악가와 작곡가 또는 지휘자만 있으면 오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설계와 의상 등의 전문가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 분야의 사람들을 스카웃하여 활용했다. 예를 들면 나탈리아 곤챠로바(Natalia Gonchatova), 이반 빌리빈(Ivan Bilibin) 등이다.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 러시아 사립 오페라단의 주요 멤버였다.

                       

'사립오페라단'은 아브람체보 지역을 중심으로 지방에서 활동하다가 결국은 모스크바로 진출하였다. 모스크바에서는 볼쇼야 드미트로브스카야 거리에 있는 어떤 건물에 사무실을 차렸다. 그 건물은 1895년에 완공된 솔로도브니코프 극장이었다. 이 극장은 러시아의 부유한 상인이며 음악애호가인 가브릴라 솔로도브니코프(Gavrila Solodovnikov: 1826-1901)가 사재를 투자하여서 지은 건물이다. 그후 1910년대 초반에 솔로도브니코프 극장이 화재로 파손되자 '마몬토프의 사립 오페라단'은 1913년에 볼쇼이 니키츠카야 거리에 있는 '파라디스'(Paradis) 극장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오늘날의 마야코브스키(Mayakovsky)극장이다.

 

오늘날의 마야코프스키 극장

 

'사립오페라단'은 창단 이래 여러번에 걸쳐 명칭이 바뀌는 고난과 영광의 시간들을 보냈다. 처음 발족하였을 때에는 '러시아사립오페라'(The Russian Private Opera: 루스카이 챠트노이 오페라)였다. 그후 모스크바로 이전하여서는 '모스크바사립러시아오페라'(Moscow Private Russian Opera)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후에는 '마몬토프의 모스크바소재 러시아사랍오페라'(Mamontov's Private Russian Opera in Moscow)라고 불렀다. 1899년부터 1904년까지는 '사립오페라협회'(Private Opera Society)라고 불렀다. 1895년부터는 솔로도브니코프 극장에 전속되다시피하였다. 솔로도브니코프극장은 후에 치민(Zimin) 오페라단, 모스크바 오페레타단, 헬리콘 오페라단 등이 사용하기도 했다. 한편, 마몬토프는 1890년대 말에 모스크바 중앙지대인 극장광장에 있는 자기 소유의 부지를 정리하여 대규모의 시립센터를 건설코자 했다. 시립센터에는 오페라 하우스와 고급 호텔도 들어서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마몬토프는 1899년에 뜻밖에 정당한 이유도 없이 체포되어 기금을 유용하고 착복했다는 죄명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이후로 마몬토프는 일체의 공식활동을 하지 않고 은거하였다. 그러는 중에도 건설공사는 진행되어 페터스부르크보험회사가 오페라 극장은 만들지 않고 호텔 메트로폴만을 완공했다. '러시아사립오페라단'은 1899년부터 1904년까지 마몬토프가 없이 운영되었다. 그리고 이름도 '사립오페라협회'(토바리슈첸스트포 챠스트노이 오페리)로 바꾸었다. 미하일 이폴리토프 이바노프가 음악감독 겸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솔로도브니코프 극장은 1909년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황금 닭'의 러시아 초연을 마지막으로 가졌다.

 

러시아사립오페라단이 오랫동안 본부로 사용했던 솔로도브니코프 극장

                                                    

러시아사랍오페라단(사립오페라협회)가 공연했던 주요 오페라는 다음과 같다.

- 1885: 미하일 글링카의 '짜르를 위한 삶'(이반 수사닌)

- 1885: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눈아가씨'

- 1885: 알렉산더 다르고미츠스키의 '루살카'

- 1886: 알렌산더 다르고미츠스키의 '석상손님'

- 1886: 알렉산더 세로프의 '로그네다'(Rogneda)

- 1886: 알렉산더 보로딘의 '이고르 공'

- 1886: 안톤 루빈슈타인의 '악마'(The Demon)

- 1897: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사드코' - 세계초연

- 1897: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커반슈치나'

- 1898: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 세계초연

- 1898: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보야리냐 벨라 셸로가'(Boyarinya Vera Sheloga)

- 1898: 알렉산더 세로프의 '유딧'

- 1899: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짜르의 신부' - 세계초연

- 1899: 차이코브스키의 '오를레앙의 처녀'

- 1900: 차이코브스키의 '마제파'

- 1900: 림스코 코르사코프의 '짜르 살탄의 이야기' - 세계초연

- 1900: 미하일 이폴리토프 이바노프의 '아샤'(Asya)

- 1901: 안톤 루빈슈타인의 '상인 칼라슈니코프'

- 1902: 미하일 글랑카의 '루슬란과 루드밀라'

- 1902: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불사조 카슈체이'(Kashchey the Immortal)

- 1903: 세르게이 바실렌코의 '위대한 도시 키테츠와 조용한 호수 스베토야르에 대한 전설'

- 1909: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황금 닭' - 세계초연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황금 닭'의 한 장면. '황금 닭'의 러시아 초연은 1909년 모스크바의 솔도도브니코프 극장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