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영국왕실과 성공회

남가일몽의 공화제

정준극 2010. 2. 9. 06:07

방탄조끼를 입고 다니는 왕

 

통치는 폭군적으로 했지만 제임스1세는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사건이후 제임스1세는 혹시 비가톨릭 분자들이 자기를 암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항상 방탄조끼를 입고 다녔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1세는 가톨릭 완화 정책을 버리지 않았다. 제임스1세는 아르메니아인 또는 앵글로-가톨릭에게 까지 호의적 자세를 버리지 않았다. 앵글로-가톨릭은 개신교 스타일이면서도 교회에서 가톨릭 예배의식을 보존하기 위해 은근히 세력을 키워가고 있던 터였다.

 

의회를 해산하는 크롬웰.  Andrew Carrick Gow 작품


그런데 제임스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둘째 아들 찰스1세는 더 문제가 많았으며 더 위험한 인물이었다. 찰스1세도 기본적으로는 성공회 신자였다. 하지만 아르메니안인(Armenian)들에게 기울고 있었다. 당시 아르메니아인들은 영국 왕실에서 경제권을 쥐고서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므로 찰스 1세는 영국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고 아르메니아인들의 말을 더 잘 들었다. 한편, 찰스1세는 군주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임명해야 왕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며 하나님만이 군주의 요구에 답을 주신다고 믿고 있었다. 왕권신수설을 주창한 사람이 바로 찰스1세였다. 찰스1세의 통치는 가히 폭군적이었다. 영국의 관행과 전통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영국의 젠트리(Gentry: 지주와 상인 등을 말함. 젠틀맨으로 발전)들이 저 멀리 야만적인 스코틀랜드 혈통인 찰스1세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게 된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부왕 제임스1세와는 달리 찰스1세는 간이 큰 사람이었다. 찰스1세는 종교문제에 있어서나 정치문제에 있어서 의회의 비위를 맞추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우리나라의 노모씨 처럼 함부로 말하는 인간이었다. 

 

영국에도 공화제가

 

찰스1세는 의회가 뭐라고 그러던지 말던지 주교급 인사들을 영국인이 아닌 아르메니안인으로 임명했고 세금을 불법적으로 올리기도 했다. 찰스1세는 이렇듯 의회를 무시하고 11년 동안이나 통치하였다. 결국 내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찰스1세의 왕당파군이 의회군에게 패배하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아 비록 찰스1세가 절대적 왕권을 추구했고 또 가톨릭에 대하여 호의적 태도를 버리지 못했지만 의회의 막강한 권세, 또는 개신교 확대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물론 의회가 가톨릭에 대한 반대의 기치를 거세게 올리기 시작하자 찰스1세는 굴복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왕당파군이 우세하였으나 크롬웰이 편성한 ‘철기군’의 활약으로 왕당파군은 대패하고 말았다. 청교도의 열렬한 신앙으로 무장한 의회군은 찬송가를 부르면서 용감히 돌진하는 전투를 감행했다. 그야말로 ‘싸우는 교회’ 자체였다.  국왕 찰스1세는 평민 찰스 스튜어드가 되었고 끝내 1649년 처형되었다. 의회와 청교도들이 승리함으로서 영국은 왕이 통치하지 않는 국가가 되었다. 영국 역사에 있어서 유일한 공화국 시대였다.

 

1649년 1월 4일. 찰스 1세의 처형


이 시기에 사실상 권세를 잡은 것은 청교도 군사정권이었다. 크롬웰은 병사들에게 줄 급료를 마련하기 위해 아일랜드를 침략하여 점령했고 해상에서 네덜란드의 세력을 약화시킴으로서 대서양의 판도를 영국으로 끌어들였다. 아무튼 청교도가 세상을 휘어잡자 그 결과 영국 성공회와 가톨릭이 모두 박해를 받게 되었다. 예배의 자유도 없었고 재미있는 일이나 즐거움은 모두 금지되었다. 크롬웰의 청교도 정권은 금욕적이고도 검소한 생활을 국민들에게 강요하였다. 청교도가 달리 청교도인가? 예를 들어 화려한 옷을 입는다든지 극장에 가서 연극을 구경한다든지 하는 일까지도 금지되었다. 하지만 영국 국민들도 보통 국민이 아니었다. 은근히 놀기를 좋아하고 사치를 좋아하는 백성들이 아니던가? 그러니 점점 청교도 정치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공화국 체제하의 영국은 지도자이며 수호자인 올리버 크롬웰 경(Lord Oliver Cromwell)이 세상을 떠나자 얼마 가지 않아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올리버 크롬웰 경은 최근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켄트공작부인의 직계 조상이다. 크롬웰이 세상을 떠나자 영국은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2년도 되지 않아서 왕권이 회복되었고 찰스1세의 후계자인 찰스2세가 귀양지에서 풀려나 왕위에 올랐다.

 

올리버 그롬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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