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영국왕실과 성공회

영국에도 토사구팽

정준극 2010. 2. 9. 06:07

토사구팽

 

대관식 의상을 입은 찰스2세(1630-1685) 

 

왕위에 오른 찰스2세의 좌우명은 ‘다시는 아버지 및 할아버지와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련다. 귀양까지도...’였다. 결과적으로 이 세계적으로 문제가 많은 군주는 자기의 입맛에 맞는다고 하면 의회와 달콤한 대화를 서슴치 않았으며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의원들을 토사구팽하듯 내몰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왕실 재정에 대한 의회의 세력을 약화시킨 것이었다. 찰스2세는 친척인 프랑스왕으로부터 비밀자금을 지원받았다. 돈이 있었으므로 의회의 간섭에 대결할수 있었다. 찰스2세는 부유한 사람들을 역적으로 몰아 그 재산을 몰수하여 자기의 이득을 챙기는 재주가 비상했다. 물론 자기의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결국 그의 이런 행동은 머지않아 권력에서 쫓겨 날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찰스2세 자신도 자기의 그런 행위가 장차 재앙을 불러 올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찰스에게는 적출 소생이 없었다. 그러므로 후계자는 자기 동생 제임스였다. 요크 공작(Duke of York)인 제임스는 세상이 다 아는 가톨릭이었다. 찰스2세는 가톨릭인 자기 동생 제임스가 왕위를 계승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여러 방법을 통해 방해를 했다. 찰스는 영국에서 성공회가 구박을 받고 대신 가톨릭이 재건된다면 상당한 재난이 온다고 믿었다. 의회도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을 했다. 가톨릭 신자가 군주가 되는 것을 환영할리 없었다. 의회는 다음 국왕으로 제임스의 딸 메리를 내세웠다. 메리는 개신교였다. 하지만 펄펄 살아있는 제임스가 서열에 따라 왕위를 계승하고 말았다.


제임스2세는 3년간 왕위에 있었다. 그 3년 동안에 과거 우려하였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제임스2세는 개신교의 줄기찬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을 요직에 임명함으로서 가톨릭 세력을 강화했다. 아일랜드 총독(Lord Lieutenant of Ireland), 해군 장관, 그리고 상당수의 장관급과 시장, 고위 판사들을 가톨릭으로 임명하였다. 제임스2세는 대학과 시청의 주요직까지도 가톨릭을 임명토록 압력을 가했다. 제임스2세는 의회의 고유 권한인 법률 제정 및 폐기권에 대하여도 간섭을 했다.


1649년을 기억하는가? 의회 알기를 개떡으로 알던 찰스1세가 의회군에 의하여 처형당한 해이다. 그런 사실을 상기한 의회는 현재 제 멋대로 하고 있는 제임스1세에게 할 말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주, 귀족 및 기타 영향력 있는 인사들은 의회의 은밀한 반항에 동조하며 기회만 오기를 은인자중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참으로 생각치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왕립첼시병원에 있는 찰스2세 기념상. 로마황제의 복장이다. 자기가 무슨 네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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