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영국왕실과 성공회

하노버 왕조의 시작

정준극 2010. 2. 9. 06:09

 열부만세

 

메리2세 여왕은 여왕에 등극한지 5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자녀가 없었다. 이제 메리2세와 공동으로 통치하던 영국은 남편 오렌지공 윌렴, 즉 윌렴3세가 유일하게 통치하게 되었다. 주위에서는 윌렴3세에게 '폐하, 나라를 위해 재혼하옵소서'라고 간청했지만 윌렴3세는 '세상 떠난 아내를 위해 그럴수는 없소이다'라면서 재혼을 거부했다. 열부만세였다. 다음 왕위계승 서열은 메리여왕의 여동생인 앤의 자녀였다. 만일 앤에게 아들이 있다면 영순위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앤의 다섯 자녀는 1700년 이전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 다음 순번은 누구인가? 찾아보니 추방당한 제임스2세의 열네살난 아들뿐이었다. 나중에 조지1세가 된 인물이다. 제임스2세는 유배지에서 1701년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인 조지가 가톨릭이란 점이었다. 그러나 조지가 법적으로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에 있으니 이를 어찌하란 말인가. 만일 그 소년 왕자가 자기의 권리를 주장한다면 달리 무슨 방안이 없는 형편이었다.


영국의 의회가 달리 영국의 의회인가? 죽은 제임스2세의 아들인 조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성공회 왕위 계승자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결과, 제임스1세의 딸인 엘리자베스의 딸로서 ‘하노버 선제후’ (Electress of Hanover)인 소피아(Sophia)를 찾아내었다. 제임스1세는 누구인가? 앞에서도 설명하였듯이 스튜어트 왕조의 제임스1세는 가톨릭 후원자였고 그의 아들 찰스1세는 한발 앞장서는 가톨릭 옹호자가 아니었던가. 성난 개신교의 저항을 받아 1649년 처형된 인물이 바로 찰스 1세였다. 그 찰스1세의 누이가 엘리자베스였고 엘리자베스의 딸이 소피아였다. 그러므로 소피아는 제임스1세와 항렬이 같았으며 현재 왕위승계를 주장할지도 모르는 제임스의 어린 아들에게는 고모가 되는 셈이었다. 아무튼 영국을 가톨릭의 위기로부터 구하려고 부랴부랴 1701년 ‘화해법’을 만들었던 것이며 그 ‘화해법’에 따르면 몇 년 전 사망한 메리2세 여왕의 동생인 앤이 자손 없이 사망할 경우, 소피아와 그의 자손에게 영국의 왕관이 이어지도록 되어있었다.

 

하노버 왕조의 시작

 

일이 묘하게 돌아가는 것인지 또는 제대로 돌아가는 것인지, 하여튼 어머니 앤과 딸 소피아는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1714년이었다. 그리하여 소피아의 아들 조지1세가 왕위에 올랐으니 이것이 하노버왕조(Hanoverian Dynasty)의 시작이었다. 그 조지1세 부부가 독일에서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상륙하자 왕은 대항도 하지 않고 다른 나라로 도망가 버렸다. 영국에서는 이 정치 혁명을 ‘명예혁명’이라고 부른다. 조지1세 때문에 불편한 점도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독일에서 살다가 50세가 넘어 영국으로 들어온 조지1세는 영어를 한마디도 몰랐다. 그래서 각의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돌이켜 보건대 헨리8세에 의하여 주도된 성공회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왕조의 이름이 두 번이나 바뀌는 역사를 거쳤지만 그래도 영국의 개신교 왕조는 왕위를 면면히 이어왔으니 오늘날 엘리자베스2세는 하노버 왕조의 창시자 조지1세 이후로부터 계산하여 11대 군주이다.

 

하노바 왕조를 시작한 조지1세(1660-1727). Godfrey Kneller 작품


이처럼 한때는 피에 얼룩지고 또 한때는 격론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까지 성공회를 지키기 위해 걸어온 영국의 역사이지만 이제는 사정이 변한 것 같다. 일각에서는 성공회 고집 일변도는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근대적 처사라고 하면서 항의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왕실에서는 성공회 전통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켄트 공작부인의 가톨릭 개종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왕위 계승 서열에 있지만 거의 실현성이 없는 입장에서 종교의 자유를 가지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옛날에는 종교 때문에 왕실 사람으로서의 특권과 명예와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 오늘날에는 잃을 것이 무엇인가? 단지 왕위 서열의 순번에서 제외되는 것뿐이다.

 

역사의 뒤안길에서도 의연히 서 있는 런던 타워 

 

(2004년 6월 씀. 2010년 1월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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