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시컬 뮤직 팟푸리/음악가와 음식

음악가의 이름을 붙인 음식 이야기

정준극 2007. 8. 23. 14:12

음악가와 음식 에피소드

- 음악가의 이름이 붙은 음식들 -


[진짜 오페라 매니아라고 하면 기회가 있어서 아래 소개하는 몇가지 음식들을 음미할 때에 일부러 약간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게 될지도 모른다.]

 

* 노르마 스파게티(Spaghetti alla Norma)

‘스파게티 알라 노르마’는 글자 그대로 ‘보통 스타일의 스파게티’(Spaghetti in the normal way)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스파게티 알라 노르마'라고 말할 때의 노르마와 벨리니의 '노르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탈리아의 식당에서는 '파스타 알라 노르마'라는 메뉴가 더 보편적이다. 스파게티도 파스타에 속하기 때문이다. '파스타 알라 노르마'가 보통 스타일의 파스타를 말하는 용어이지만 벨리니를 사랑하는 시실리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있다. 시실리 사람들은 오페라 '노르마'가 나오자 가만 있지 못했다. 너무나 감동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이어서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카타니아의 어떤 요리사가 벨리니의 노르마를 보고 너무 감격하여 집에 돌아오자마자 새로운 스파게티를 만들고 가장 훌륭하다는 뜻에서 그 스파게티의 이름을 '스파게티 알라 노르마'라고 붙였다. 가지와 토마도 즙에 리코타 살라타라는 치즈로 만든 스파게티였다. 그로부터 카타니아의 어떤 요리사가 만든 ‘스파게티 알라 노르마’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벨리니는 시실리의 카타니아 출신이다.

파스타 알라 노르마. 보통의 일반적인 파스타라는 의미이다. 대개의 경우 가지를 넣는다.
                                   

또 다른 설명도 있다. 벨리니의 친구들은 오페라 노르마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훌륭한 물건에 Una vera Norma(진짜 노르마)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몇 년후 유명한 작가 니노 마르타리오(Nino Martaglio)가 카타니아에 왔다가 이 지방의 특별 스파게티를 먹고 감격하여 이것이야 말로 Una vera Norma 라고 소리쳤다. 그로부터 ‘스파게티 알라 노르마’는 더 유명해졌다.

 

* 도밍고 초콜릿 (Chocolate Domingo)

도밍고 초콜릿은 세계적인 테너 겸 바리톤 겸 지휘자 겸 연출가 겸 제작자인 플라치도 도밍고의 이름을 따서 붙인 초콜린인것만은 확실한데 배경에 대하여는 분명치 않다. 아무튼 뉴욕의 몇몇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맛 볼수 있다. 소금으로 간을 한 카라멜로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는 로즈  초콜릿(Rose Chocholate)이라는 것이었다. 너무 부드러워서 흩으러지기가 쉬운 케이크여서 장미꽃닢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실은 뉴욕의 로즈 리바이 베란바움(Rose Levy Beranbaum)이란 제과상이 고전적 스타일에 현대 감각의 맛을 입힌 새로운 스타일의 초콜릿 케익을 내놓았으면서 도밍고 초콜릿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아마 대단한 도밍고 팬이었던 모양이다.

 

도밍고 초콜릿 케이크

           
* 로시니 스테이크(Tournedos Rossini)

작곡가중에서 로시니처럼 미식가, 음식애호가 겸 대식가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18세때 첫 오페라를 내놓은 로시니는 30세에 이미 국제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로시니는 무명시절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을 못 마시며 살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도처에 외상이 깔려 있었다. 사실 로시니는 그 때로부터 음식에 대한 식견을 넓혀갔다. 가리지 않고 잘 먹었기 때문이었다. 유명인사가 된 로시니는 돈도 잘 벌게 되어 아쉬울 것이 없었다. 파리의 내노라하는 식당들은 모두 로시니의 단골식당이었다. Tour d'Argent, Bonfinger, Cafe des Anglais, Masion Doree 등 유명 식당의 주방장은 로시니와 친구 사이였다. 로시니는 식당에 들어서면 우선 주방부터 찾아가 주방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에 홀(Hall)로 나와 테이블에 앉았다. 대부분 식당에는 로시니 전용 테이블이 있었다. Masion Doree의 대주방장 카스미르 무아쏭(Casmir Moisson)은 특별히 로시니를 존경했다. 그는 로시니가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언제나 제일 좋은 소고기를 준비해 두었다. 투르네도(Tournedos)는 Tenderloin 소고기 중에서도 가장 연한 허리살(fillet)이다. 주방장은 보통 스테이크에 비해서 상당히 두터운 투르네도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고기를 버터에 녹여 마르살라, 틸트등 향신료를 가미한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아무튼 그로부터 ‘투르네도 로시니’라는 이름의 스테이크가 고유명사로 존재하게 되었다.  

 

로시니 투루네도 

 

로시니 계란 요리(Eggs Rossini)라는 것도 있다. 끓는 물에 익힌 계란을 몇가지 양념을 넣어 만든 것이다. 로시니가 제일 좋아했다고 한다.

 

* 리고 얀치 초콜릿 케이크(Rigo Jancsi Chocolate Slices)

헝가리의 유명한 집시 음악가인 리고 얀치의 이름에서 따온 초콜릿 케이크이다. 보통 그냥 리고 얀치라고 부른다. 산딸기와 아프리코트를 넣은 두 층의 스폰지 케이크이다. 스폰지 케이크는 초콜렛 무쓰로 채운 것이다. 위에는 진한색의 초콜렛으로 덮는다. 어느때 리고가 파리 알함브라 살론에서의 음악회에 출연했다. 마침 미국에서 온 어떤 돈 많은 부부가 참석하고 있었다. 부인은 리고의 멋진 모습과 애수에 넘친 노래를 듣고 그만 리고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날 밤 리고와 미국 부인은 둘이서 손잡고 헝가리로 돌아왔다. 나중에 남편이 찾아와 죽어라고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로부터 리고와 미국부인과의 로맨틱한 스캔들은 부다페스트의 화제꺼리가 되었다. 어떤 약삭빠른 제과점 주인이 자기가 만든 초콜릿 케이크에 ‘리고 얀치 초콜릿 케이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날개가 달린 듯이 팔렸다. 오늘날도 부다페스트의 전통적인 헝가리 식당인 군델(Gundel)에 가면 매력적인 헝가리 민속음악과 함께 ‘리고 얀치 초콜릿 케이크’를 슬라이스로 서브받을수 있다.  예쁜 접시에 담아서! 


헝가리의 리고 얀치 초콜릿 무스 케이크

 부다페스트의 군델 식당에서 서브되는 리고 얀치 초콜릿

                                 

* 모차르트 생선 수프(Mozart Fish Soup)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전 잘츠부르크에 있는 ‘황금목동호텔’(Hotel Goldener Hirsch)의 헤르베르트 페르켈호퍼(Herbert Perkelhopher)라는 요리장은 반짝 비즈네스 아이디어로서 메기(Catfish)로 만든 ‘모차르트 생선 수프’를 만들고 이것이 모차르트 가족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라고 선전했다. 과연, 너도나도 모차르트생선수프를 먹기 위해 몰려들었다. 페르켈호퍼는 17세기 잘츠부르크 지방의 음식문화에 대하여 오랫동안 많은 연구를 했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메기 수프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은 아무데도 없다. 대신 모차르트는 잉어(Carp)를 좋아했다는 주장이 있다. 아무튼 잘츠부르크의 황금목동호텔에서는 지금도 모차르트생선수프를 만들어 서브하고 있다.


모차르트 피쉬 수프


* 모차르트 쿠겔(Mozart Kugel) - 모차르트 초콜릿

모차르트의 초상화로 포장한 초콜릿이다. 원래는 모차르트 봉봉(Mozart Bon Bon)이라고 불렀다. 물론 모차르트는 모르는 일이었다. 잘츠부르크의 제과상인 파울 휘르스트(Paul Fuerst)가 1890년부터 순전히 수작업으로 모차르트 봉봉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마르치판(Marzipan: 설탕과 알몬드를 혼합한 것)에 누가를 넣어 만든 초콜렛이다. 사람들은 모차르트라는 이름만 들어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형편이므로 모차르트 봉봉(초콜렛)은 날개 돋힌듯 팔렸다. 모차르트 쿠겔은 모양이 대포알처럼 둥글게 생겼으므로 쿠겔(Kugel)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모차르트 쿠겔른이란 상표는 특허로 등록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제과업자들도 공장을 차리고 대량으로 모차르트 쿠겔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잘츠부르크 부근 그뢰디히(Groedig) 소재의 미라벨(Mirabell)회사가 대표적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팔리고 있는 모차르트쿠겔은 거의 모두 미라벨공장 제품이다. 독일의 바바리아에도 모차르트쿠겔 공장이 생겼다. 스위스의 네슬레(Nestle)도 모차르트쿠겔을 생산하고 있다. 오리지널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쿠겔은 잘츠부르크에 가야 살수 있다. 잘츠부르크의 오리지널 모차르트쿠겔은 1905년에 파리 엑스포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모차르트쿠겔을 만들려면 14개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오늘날 비록 산업화로 인하여 모차르트쿠겔을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14개의 단계는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모차르트 쿠겔른


* 모차르트 쿠키

시카고의 앤느 크뢰머(Anne Kroemer)라는 독일계 제과상이 1993년 모차르트 쿠키라는 과자를 만들고 상표를 등록했다. 레몬, 바닐라, 아프리코트에 럼을 넣어 만든 과자이다. 사람들은 모차르트라는 이름때문에 이 쿠키를 많이 사먹었다.

 

* 베를리오즈 계란(Eggs Berlioz)

베를리오즈(1803-1869)의 이름을 딴 반숙 계란 음식이 있다. 요즘에는 계란을 삶아서 소금을 뿌려 먹으면 그만이지만 옛날에는 미식가들이 반숙 요리를 위한 소스를 별도로 만들어서 발라 먹었다. 파리의 어떤 요리사가 개발한 소스는 마데이라 소스를 기조하여 여기에 더치 감자를 으깬 것, 트러플(송로)이라는 구형의 버섯, 양송이 버섯, 크루스타드(Croustades)등을 혼합하여 만든 것이다. 이런 음식에 어찌하여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이름이 붙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이 소스를 개발한 요리사가 베를리오즈의 숭배자인 모양이다.


* 제니 린드 수프(Jenny Lind Soup)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고 하는 소프라노 제니 린드(1820-1887)는 여행을 자주 다녀야 하므로 항상 건강에 유의해야 했다. 그러나 무조건 밥만 많이 먹을수는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몸이 자꾸 둔둔해 지려고 하므로 조심해야 했다. 제니는 닭고기에 치즈와 계란을 섞은 수프를 좋아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런 스타일의 수프를 ‘제니 린드 수프’라고 불렀다. 제니 린드는 1850년에 연주를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전대미문의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그로부터 제니 린드의 이름을 붙인 음식들이 출현했다. 예를 들면 제니 린드 멜론(칸타루페의 일종), 제니 린드 햄, 제니 린드 굴 요리, 제니 린드 티 케이크, 그리고 앞서 언급한 제니 린드 수프 등이다.

 

제니 린드                                    

제니 린드 케이크


* 카루소 스파게티(Spaghetti Caruso)

나폴리 출신의 엔리코 카루소는 음식 만들어 먹기를 즐겨했다. 특기는 파스타였다. 기본적으로 고기를 다져 넣은 파스타를 즐겨 만들었다. 물론 카루소 비법의 양념도 들어갔다. 나중에 이를 스파게티 카루소 또는 스파게티 알라 카루소(카루소 타입의 스파게티)라고 불렀다. 스파게티 카루소는 닭의 간과 버섯을 주로 사용한다.

 

스파게티 알라 카루소


훌륭한 수프를 카루소 수프라고 부른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카루소는 포병으로서 군대에 복무한 일이 있다. 카루소는 막사에서 시간만 나면 노래를 불렀다. 멀리까지 들렸다. 마침 장교가 카루소의 노래를 듣고 그를 불러 자기 친구에게 소개했다. 장교의 친구는 돈많은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돈많은 아마추어 음악가는 카루소에게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카르멘’의 테너 아리아를 불러 달라고 했다. 카루소는 장교의 명령 및 장교 친구의 부탁으로 노래를 부르고 식사를 함께 했다. 다음날 장교는 다시 카루소를 불렀다. 장교의 친구가 카루소의 노래를 듣고 싶어해서였다. 그러나 카루소는 가지 않았다. 장교가 궁금해서 오히려 찾아왔다. 카루소는 ‘어제처럼 기름기가 많은 수프를 먹을 것 같으면 목소리에 지장을 주므로 오늘도 그런 수프를 줄것 같이므로 그걸 먹고는 노래를 부를수 없어서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튿날 저녁, 카루소를 초청한 저녁식사에는 최고급 수프가 등장했다. 그로부터 최고급 수프를 ‘카루소 수프’라고 부르게 되었다.

 

해산물 수프 카루소(Seafood Soup Caruso)

 

카루소가 뉴욕에 있을 때 브루클린의 이탈리아 식당들은 카루소의 왕림을 학수고대하였다. 음식감정에 있어서도 탁월했던 카루소가 어떤 식당에 가서 이 집의 무슨 음식이 관찮다고 하면 그날로 그 식당은 문전성시가 되었다. 카루소는 친구들을 불러 음식을 만들어 주기를 좋아했다. 토마도 소스에 노란 고추와 애호박 튀긴 것으로 만든 부카티니(Bucatini)는 ‘부카티니 알라 카루소’라고 부르게 되었다. 카루소가 즐겨 만든 칵테일에도 ‘카루소 칵테일’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진과 드라이 버무스, 크림 드 멘테를 혼합한 칵테일이다. 말년에 카루소는 나폴리에서 지냈다. 나폴리의 그랜드 호텔 베수비오(Grand Hotel Vesuvio)의 식당은 카루소가 자주 이용하던 곳이었다. 나중에 이 호텔의 옥상 식당은 아예 ‘카루소 레스토랑’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소렌토의 리스트란토 뮤제오 카루소(카루스 박물관 식당)

               

* 테트라치니 치킨(Tetrazzini Chicken)

'플로렌스의 나이팅게일'이라는 별명의 루이자 테트라치니(Louisa Tetrazzini: 1871-1940)는 어느때 샌프란시스코에서 독창회를 가지기 위해 팔레스 호텔에 투숙한 일이 있다. 테트라치니는 1910년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빌딩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독창회를 가졌다. 차가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20만명이라는 기록적인 인파가 빌딩 주변에 모여 들었다. 팔레스 호텔은 그런 테트라치니를 위해 정성을 다 했다. 아르보가스트(Arbogast)라는 이름의 주방장은 추위에 고생했을 테트라치니를 위해 특별 닭고기 요리를 개발하여 내놓았다. 닭고기를 얇게 저민후 여기에 화이트 크림 소스로 볶은 스파게티와 버섯을 넣은 음식이었다. 그리고 셰리와 파메르장 치즈를 뿌렸다. 테트라치니가 대단히 기뻐하였음은 물론이다. 이후 이 닭고기 요리는 테트라치니 치킨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1912년뉴욕 니커보커(Knickerbocker)의 파바리(Pavari)라는 요리사가 테트라치니를 위해 개발했다고 한다.

 

 전설적인 소프라노 루이자 테트라찌니

 치킨 테트라치니. 쉽게 만들수 있으므로 인기요리이다.

 

* 마담 슈만 하인크 쿠키(Madam Schumann Heink Cookies)

1940년대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유명했던 과자의 이름이 마담 슈만 하인크 쿠키였다. 프라하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오페라 디바 슈만 하인크(1861-1936)를 기념하는 과자이다. 오페라 무대에서 은퇴한 슈만 하인크는 캘리포니아주의 산디에고 부근에 큰 목장을 사서 살았다. 그는 인근 학교로부터 학생들이 목장을 찾아와 음악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 슈만 하인크는 과자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오렌지 주스와 오렌지껍질을 섞어 만든 과자였다. 학생들은 그 과자를 먹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슈만 하인크는 자선활동을 많이 했다. 그리고 언제나 겸손했다. 슈만 하인크가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여 마담 슈만 하인크 쿠키를 만들어 학교의 사친회(PTA)를 위해 사용했다.


브륀힐데의 에르네스티네 슈만 하인크


* 토스카니니 라이스-셀러리 수프(Toscanini's Rice and Celery Soup)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오페라를 지휘하러 나가기 전에 거의 습관적으로 라이스-셀러리 수프를 한 접시 먹었다. 쌀과 셀러리 야채 등에 소고기를 다져 넣은 따듯한 수프를 한 접시 먹고 들어가면 몸이 훈훈해지고 몸 놀림도 부드러워 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토스카니니가 지휘 전에 즐겨 먹었던 수프를 토스카니니 라이스-셀러리 수프로 부르기 시작했다.

 

토스키니니 수프

* 파바로티 게살-새우 수프 (Crab and Shrimp Pavarotti Soup)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역시 미식가 겸 음식 애호가였다. 파바로티는 자서전인 My Own Story에 ‘인생에서 가장 멋있는 일 중의 하나는 먹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의 글을 남긴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현대 음악가 중에서 미식가 겸 애식가라면 지휘자 번슈타인,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 바이올리니스트 메누힌, 소프라노 서덜랜드, 지휘자 제르킨, 지휘자 펄만, 지휘자 스토코브스키 그리고 파바로티를 꼽을 만큼 파바로티는 음식과 관계가 깊다. 우리나라의 꽃게탕과 같은 ‘파바로티 게살-새우 수프’, ‘해물 파바로티’(Clams Pavarotti), '파바로티 토르텔리니‘(Tortellini Pavarotti) 등은 모두 파바로티가 대단히 즐기는 음식이다. 그래서 파바로티의 이름을 붙였다. 파바로티가 자주 찾아온 뉴저지의 마마 미아(Mama Mia)식당은 파바로티를 위해 여러 가지 고향음식을 개발하였다. 마마 미아 식당은 파바로티표 메뉴개발의 본산이었다.

 

게살새우로 만든 파바로티 수프
                             

* 피치 멜바(Peach Melba)

피치 멜바를 칵테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피치 멜바는 아이스크림이다. 고전적인 디저트이다. 런던에서 처음 만들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설적 디바인 넬리 멜바(Nellie Melba: 1861-1931)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넬리 멜바는 예명이며 원래 이름은 헬렌 포터 미첼(Helen Porter Mitchel)이다. 두 가지의 여름 과일, 즉 복숭아와 산딸기(Raspberry)를 소스로 만들어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입힌 것이다. 1892년(또는 1893년)의 어느날 멜바는 코벤트 가든에서 로엔그린의 엘자를 맡아 공연한 일이 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사보이 호텔에서 멜바가 주최하는 간소한 파티가 열렸다. 멜바의 열렬한 팬이었던 사보이 호텔의 주방장 오거스트 에스코피어(Auguste Escoffier)는 멜바를 위해 무언가 특별한 것을 만들고 싶었다. 멜바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얻었다. 오거스트 주방장은 아이스크림을 백조 모양으로 만들었다. 로엔그린의 백조였다. 고고하기만 하던 멜바도 이때 만은 감격했다. 그로부터 이 스타일의 아이스크림은 피치 멜바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멜바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너무 차가우면 목소리에 영향이 있을 것이므로 삼갔다. 오거스트는 이 점을 고려하여 과일을 섞어 아이스크림이 지나치게 차갑지 않게 했다.

 

피치 멜바

 

* 푸아르 메리 가든(Poires Mary Garden)

메리 가든(1874-1967)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소프라노로서 프랑스와 미국에서 특히 높은 인기를 끌었다. 런던의 사보이 호텔의 에스코피어는 메리 가든을 존경하여서 아이스크림에 배를 얹은 후식을 만들고 이를 푸아르 메리 가든이라고 불렀다. 멜바를 위한 피치 멜바와 같은 스타일이지만 푸아르 메리 가든에는 복숭아 대신에 배(푸아르)를 사용하였다.

 

푸아르 메리 가든


* 멜바 토스트(Melba Toast)

1897년 멜바는 피곤이 겹쳐 앓아눕게 되었다. 병마와 싸우는 멜바는 바삭바삭 구운 얇은 토스트를 먹었다. 토스트에는 살라드를 얹거나 녹인 치즈를 발랐다. 식이요법을 해서 그런지 아무튼 멜바는 병마를 이기고 일어났다. 그로부터 바싹 구운 얇은 토스트를 멜바 토스트라고 부르게 되었다. 호주 사람들은 할 일도 많을터인데 멜바가 먹은 토스트에도 감격하여 따라 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식당에서 멜바 토스트를 주문하면 대체로 토스트에 살라드를 얹어 서브한다.



멜바 토스트 판매용

멜바 토스트 2


* 샬리아핀 스테이크(Chaliapin Steak)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베이스인 페오도르 이바노비치 샬리아핀(1873-1938)은 1936년에 일본을 방문하여 연주회를 가진 일이 있다. 샬리아핀은 토쿄의 제국호텔에 머물렀다. 피곤해서인지 입안이 헐은 샬리아핀은 제국호텔의 식당 주방장에게 특히 부드러운 스테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주방장은 대단한 정성을 들여서 특히 부드러운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샬리아핀은 크게 만족하였다. 샬리아핀은 토쿄에 머무는 동안 내내 그 특제 스테이크만을 주문하여 먹었다. 그로부터 제국호텔은 샬리아핀에게 서브했던 특별 스테이크를 샬리아핀 스테이크라고 이름 붙였다.

 

샬리아핀 스테이크. 소고기를 특별히 부드럽게 만들었다.

 

* 아델리나 패티 닭요리(Poularde Adelina Patti)

아델리나 패티(1843-1919)는 아름다운 리릭 음성과 벨칸토의 테크닉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소프라노이다. 패티의 부모는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스페인에서 살았다. 패티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어릴 때에 뉴욕으로 가서 오페라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패티가 뉴욕에서 처음으로 오페라 무대에 섰던 것은 일곱살 때였다고 한다. 영국 사보이 호텔의 요리장인 에스코피어가 쓴 '현대 요리 가이드'에 의하면 아델리나 패티 닭요리는 영계의 뱃속에 쌀을 넣은 후 역시 닭고기를 삶아 우려낸 육수에 넣고 끓여 만든 음식이라고 되어 있다. 푹 삶아낸 영계에는 진한 크림을 넣은 닭고기 육수를 붓는다. 여기에 양송이 버섯 등을 얹고 글레이즈(젤라틴의 일종)를 넣어 맛을 낸다고 한다. 이런 닭요리에 어찌해서 아델리타 패티의 이름이 붙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 아델리나 패티가 너무 유명하니까 음식이 잘 팔리도록 그의 이름을 붙인 것같다. 

 

스페인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활동한 아델리나 패티

 

* 얀손스 프레스텔세(Janssons Frestelse)

얀손은 스웨덴의 유명한 오페라 테너인 펠레 얀존(Pelle Janzon: 1844-1889)의 이름에서 가져온 단어이며 프레스텔세는 '유혹'(Temptation)이라는 뜻이다. 스웨덴의 노르쇠핑 출신인 얀존의 원래 이름은 페르 아돌프 펠레 얀존(Per Adolf "Pelle" Janzon)으로서 스톡홀름의 오페라극장 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오페라 극장에서 이름을 떨친 사람이었다. 얀손스 프레스텔세는 마치 감자전을 만들때처럼 곱게 간 감자를 집어 넣고 (혹은 맥도날드에서의 감자 튀김처럼 감자를 썰어서 넣기도 하며)여기에 멸치와 잘개 다진 양파를 넣어 양념을 하여 구워낸 것이다. 크림을 얹어서 구을수도 있다. 스웨덴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것이기에 더 먹고 싶은 생각이 나므로 '유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얀손스 프레스텔세

테너 펠레 얀존 

                                                        

토스트 펠레 얀존(Toast Pelle Janzon)이라는 음식도 있다. 소고기를 얇게 썰어서 접시에 깔고 가운데에는 계란 노른자를 생선알과 함께 놓으며 여기에 골파와 빨간 양파를 다진 것을 둘러서 만든 음식이다. 설명이 어설프다고 생각되므로 아래 사진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준비한 것을 토스트에 얹어 먹는다.

 

토스트 펠레 얀존

 

* 라 디바 르네(La Diva Renee)

1999년에 뉴욕의 유명한 다니엘 레스토랑의 주방장인 다니엘 불루드(Daniel Boulud)는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을 대단히 존경한 나머지 초콜렛 케이크를 만들고 이를 '라 디바 르네'라고 이름 붙였다. 초콜렛 케이크는 몇 겹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 샴페인 크림, 헤즐넛 웨이퍼스, 알몬드 비스켓으로 장식을 한 것이다. 케이크의 위에는 르네 플레밍의 모습을 사진으로 넣은 초콜렛 웨이퍼를 얹었다.

 

디바 라 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