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 없는 방문 문고리 없는 방문 건청군의 방문들을 가만히 보면 밖에서 문을 열때 잡아 다니는 문고리가 없다. 방 안에서는 문고리가 있다. 왜 없을 까? 방문들이 닫혀 있으면 밖에서 힘들여도 방문이 열리지 않는다. 밖에서는 함부로 문을 열지 못하도록 한 배려이다. 하지만 트릭이 있다. 왼쪽 문을 조금 누르면 반.. 오궁 일화/아, 건청궁 2009.08.31
수라간의 담장 수라간의 담장 건청궁에도 당연히 수라간이 있었다. 수라간에서 음식을 만들 때 생기는 냄새가 장안당으로 번지지 않도록 담장을 설치한 것은 특별한 배려였다. 아마 건청궁들의 전각들이 비좁게 서있기 때문에 그런 배려를 했던 것 같다. 건청궁 행각들의 일부 방문들은 특별하게 설계되어 있다. 문.. 오궁 일화/아, 건청궁 2009.03.31
관문각 터전 한국 최초의 전기 발상지 - 향원지 옆 건청궁 뒤편에는 서양건물인 관문각이 있었다. 지금은 공터로 남아 있다. 원래는 전통적인 목조건물이었으나 1891년 러시아 건축가인 사바틴(A. Sabatin)의 설계로 서양식 3층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사바틴은 덕수궁(경운궁)의 정관헌(靜觀軒)을 설계한 사람이다. 사.. 오궁 일화/아, 건청궁 2009.03.31
아관파천을 지켜본 신무문 고종의 아관파천을 지켜본 신무문 신무문(神武門)은 경복궁의 북문이므로 건청궁에서 가깝다. 신무문 북쪽의 경복궁 후원 영역에는 여러 전각들이 있었다. 왕이 직접 농사를 지어보던 내농포(內農圃)도 그곳에 있었고 왕이 군사훈련을 점검하던 경무대(景武臺)도 그중의 하나였다. 일제는 광화문 앞.. 오궁 일화/아, 건청궁 2009.03.31
비극의 현장 옥호루 비극의 현장 옥호루 명성황후(민비)가 시해된 장소는 정확히 어딘지 모른다. 건청궁의 옥호루(玉壺樓)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일각에서는 장안당(長安堂)의 어느 방이라는 얘기도 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당시 민비는 친러정책을 .. 오궁 일화/아, 건청궁 2009.03.31
조선미술관을 세우다 조선미술관을 세우다 1895년 저 유명한 민비 시해사건이 벌어진 후 일제는 되도록 건청궁을 보이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드디어 일제는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를 한지 2년후인 1909년 이런 저런 구실로 건청궁을 허물고 비어 놓았다가 1939년 그 자리에 볼품도 없는 조선미술관 건물을 지었다. 조선미술관.. 오궁 일화/아, 건청궁 2009.03.31
궁 안의 궁 궁 안의 궁 경복궁 안에 또 하나의 궁이 있다. 건청궁(乾淸宮)이다. 고종이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나 친정체제로 간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지은 것이다. 고종이 임금이 된지 10년만인 1873년에 지었다. 원래 건청궁 터에는 세조 때에 지은 취로정이라는 전각이 있었으나 세월의 흐름.. 오궁 일화/아, 건청궁 2009.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