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소프라노 대분석

세계의 10대 소프라노

정준극 2014. 8. 13. 09:11

신피니 뮤직(Sinfini Music)이 선정한 세계의 10대 소프라노

디바들의 대표적인 노래는 어떤 것들인가?

 

세계의 베스트 소프라노를 선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세계의 소프라노들 중에서 베스트 10을 선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의 소프라노 취향이 넬리 멜바, 키르스텐 플라그스타드와 같은 지나간 세기의 디바들에게 초점을 둔 것이라면 선정작업은 더욱 어려워 질수 밖에 없다. 만일 소프라노 취향이 르네 플레밍, 안나 네트렙코와 같이 현재 활동하고 있는 디바들에게만 중점을 둔 것이라면 베스트 10을 선정하는 것 또한 어려울수 밖에 없는 일이다. 어떤 소프라노를 가장 뛰어난 소프라노로냐 하는 기준이 문제이다. 엠마 커크비와 같은 초기의 순수한 음성에 치중한다든지, 또는 비르기트 닐슨과 같이 스케일이 큰 바그너 소프라노에 한정된 것이라면 이 또한 선정에 어려움이 따를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 웹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신피니 뮤직이 세계 10대 소프라노를 다음과 같이 선정했다. 아무래도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소프라노들을 대상으로 선정한 것 같다. 아무튼 그야말로 이 분들을 세계의 베스트 소프라노라고 생각한다면 무난할 것이다. 무순.

 

○ Maria Callas(마리아 칼라스) -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토스카에서)

 

 

'라 스칼라의 여왕', '라 디비나'(La Divina), '오페라의 바이블'이라고 하면 마리아 칼라스를 빼놓고 생각할수 없다. 우리는 마리아 칼라스를 두가지 면에서 바라본다. 하나는 소프라노로서의 칼라스, 다른 하나는 여인으로서의 칼라스이다. 그러나 관중들의 경우에는 다르다. 소프라노로서의 칼라스와 화려했지만 비참했던 여인으로서의 칼라스를 혼합하여 생각한다. 무대에 나선 칼라스를 보면 마치 마법의 약에 취한 듯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카리스마가 넘쳐 있다. 과연! 칼라스는 전설의 소프라노였다. 하지만 전설적인 소프라노라고 단언하기에 앞서 전설을 만든 여인으로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칼라스는 벨칸토로부터 바그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한다. 수많은 오페라의 역할 중에서 토스카는 칼라스를 가장 뛰어나게 만든 것이었다. 칼라스가 열정을 담아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d'arte, vissi d'amore)는 바로 그러한 칼라스의 두 모습을 한꺼번에  볼수 있는 노래이다.

 

○ Joan Sutherland(조앤 서덜랜드) - 레슨 장면('연대의 딸'에서)

 

 

조앤 서덜랜드에 대하여 '백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소프라노'라고 말한다면 그 말에는 분명히 어떤 의미가 있다. 대단히 특별한 의미일 것이다. 서덜랜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이다. 서덜랜드는 대단히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다. 음성은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은쟁반에 옥구슬을 굴리는 것 같다. 그리고 노래를 이어나가는 테크닉이 매우 민첩하다. 서덜랜드가 남편 리챠드 보닝을 만난 것은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보닝은 서덜랜드의 멘토이며 앞날에 대한 리더였다. 보닝은 서덜랜드에게 바그너로부터 탈피하여 벨칸토에 몰입하도록 코치하였다. 이후 서덜랜드는 마치 천상의 인물이 이 땅에 내려온듯 도니체티와 벨리니의 주역들인 루치아, 노르마, 아미나 등을 을 훌륭하게 맡아하였다. 그런데 서덜랜드가 가장 좋아하는 역할은 '연대의 딸'에서 말괄량이 아가씨 마리였다. 서덜랜드는 누구나 푸근하게 사랑할수 있는 귀부인이었다.

 

○ Montserrat Caballe(몽세라 카바예) - '정결한 여신'(노르마에서)

 

 

바르셀로나 출신의 몽세라 카바예는 원래 메조로서 성악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965년에 메트로폴리탄에서 도니체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를 맡았던 매릴린 혼이 갑자기 공연할수 없게 되자 카바예가 드 역할을 대신하였다. 뛰어난 음성으로 대단한 찬사를 받았다. 이후 카바예는 메트로폴리탄에서 99회의 출연이라는 놀라운 실적을 기록하였다. 그로부터 카바예의 이름은 국제적으로 드높아지기 시작했다. 카바예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폐활량이 많다. 고음에서의 피아니시모는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따라할수 없는 놀라운 테크닉이다. 카바예는 벨칸토 소프라노로서 경력을 쌓아갔다. 주로 도니체티와 벨리니의 여주인공들을 맡았지만 베르디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카바예를 대표하는 벨칸토 아리아로서는 벨리니의 '노르마' 중에서

'정결한 여신'(Casta Diva)이다. 사람의 소리인지 천상의 소리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팝 가수인 프레디 머큐리와 듀엣으로 부른 '바르셀로나'도 대단한 히트를 기록하였다.

 

○ Kiri Te Kanawa(키리 테 카나와) - 빛나는 세라핌(헨델)

 

 

뉴질랜드 출신의 키리 테 카나와는 말할수 없이 부드럽고 성숙하며 감미로운 음성으로 사랑을 받았다. 콜린 데이비스 경은 테 카나와가 출전한 오디션에서 심사를 하면서 '나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토록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음성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하며 찬사를 보냈다. 테 카나와의 음성은 고귀한 여인의 음성으로 만들어져 있다. 예를 들면 '장미의 기사'에서 마샬린, 엘리자베스 드 발루아(돈 카를로), 안나 볼레나, 백작부인(피가로의 결혼) 등이다. 테 카나와가 명성을 드높혀 준 역할은 아무래도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일 것이다. 코벤트 가든에서의 백작부인은 전영국을 놀라게 만든 것이었고 모두들 테 카나와를 사랑하지 않을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그렇지만 보다 드라마틱한 역할도 훌륭히 소화하였다. 메트로폴리탄에서 '오텔로'의 데스데모나를 맡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때 테 카나와는 공연 세 시간 전에 통보를 받고서 데스데모나로서 분장하고 무대에 나섰다. 무대 밖에서의 가장 대표적인 노래는 챨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식 때 부른 헨델의 '빛나는 세라핌'(Let the Bright Seraphim)이다.

 

○ Lucia Popp(루치아 폽) -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 속에 불타고: 밤의 여왕의 아리아(마술피리)

 

 

오스트리아-슬로박 출신의 루치아 폽이 소프라노로서 경력을 시작한 것은 세번째 도전이었다. 처음엔 약학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극장 직원으로 일했다. 성악에 전념하게 된 것은 세번째 직업이었다. 폽의 음성은 도금한 것과 같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었다. 금빛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고귀하다는 의미이다. 성악도였을 때는 메조였다. 그러다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발전하였다. 폽은 처음에는 비교적 가벼운 역할을 맡아 하였으나 나중에는 무거운 역할도 소화했다. 그래서 바그너는 물론이고(뉘른베르크에서 에바) 모차르트의 무거운 역할도 훌륭하게 맡아하였다. 그러나 무어라해도 폽의 대표적인 상징은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이다. 그가 부른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 속에 불타고'(Die Holle Rache kocht in meinen Herzen)이다. 아직까지 폽 만큼 이 아리아를 잘 부른 사람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폽은 소녀처럼 예쁜 모습에 마음씨도 착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 Renee Fleming(르네 플레밍) - 사랑을 주소서(피가로의 결혼)

 

 

세계적 지휘자인 게오르그 솔티 경은 '내 평생에 두 명의 뛰어난 소프라노를 만난 것은 나의 행운이었다'라고 말했다. 그 두 명의 소프라노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하여 솔티 경은 서슴치 않고 레나타 테발디와 르네 플레밍이라고 대답했다. 펜실베이니어주 인디아나에서 태어났고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자란 플레밍은 학교때부터 소프라노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어 메트로폴리탄의 오디션에 무난히 합격할수 있었다. 첫번째 맡은 역할은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이었다. 타고난 미모와 함께 우아하고 감미로운 음성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로부터 플레밍은 메트로폴리탄의 대표 소프라노로서 무대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플레밍의 레퍼토리는 모차르트, 베르디는 물론이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까지 대단히 폭이 넓다. 플레밍이라고 하면 언뜻 생각나는 아리아는 '피가로의 결혼'에서 '사랑을 주소서'(Porgi amor)일 것이다. 플레밍은 세사메 스트리트에도 출연해서 '리골레토'에서 질다의 노래들을 불렀다.

 

○ Victoria de los Angeles(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 내 이름은 미미(라 보엠)

 

 

무대에서 조명을 받는 일에 관심이 없는 소프라노가 있다. 착하고 순수한 여인이다. 스페인 출신의 데 로스 앙헬레스는 국제성악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그는 24세였다. 너무나 아름답고 순수한 음성이어서 모두들 감탄했다. 라 스칼라의 음악감독은 데 로스 앙헬레스가 경연대회의 수석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은 당장 주역으로 초빙하기 위해 데 로스 앙헬레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마 다른 소프라노일 것 같으면 라 스칼라 음악감독의 스카웃 제의에 감사를 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데 로스 앙헬레스는 집에 가서 어머니, 아버지부터 만나야 한다면서 출연제안을 거절했다. 물론 나중에 그는 라 스칼라 뿐만 아니라 메트로폴리탄, 코벤트 가든, 비엔나 슈타츠오퍼 등 세계적 오페라 무대의 주역으로서 대단한 활동을 하였다. 데 로스 앙헬레스는 푸치니와 드빗시로부터 바그너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였다. 순수하고 착한 그는 주로 스캔들이 있는 여인의 역할을 맡았다. '라 보엠'에서 '내 이름은 미미'(Mi chiamano Mimi)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데 로스 앙헬레스표 아리아이다.

 

○ Jessye Norman(제시 노만) - 내가 땅 속에 묻힐 때에: 디도의 탄식(디도와 이니아스)

 

 

제시 노만은 오페라 역사에서 하나의 전설이다. 그는 성격이 강인한 것처럼 노래에 있어서도 힘이 있다. 미극 흑인인 노만은 풍부한 성량과 깊이 있는 음색으로서 오페라 무대를 압도하였다. 그는 특히 바그너의 여주인공 역할에서 뛰어났다. 이졸데(트리스탄과 이졸데), 엘리자베트(탄호이저), 쿤두리(파르지팔), 지글린데(지그프리트) 등 그는 비르기트 닐슨 이후의 또 하나의 바그너 소프라노였다. 그런가하면 퍼셀의 디도, 글룩의 알체스트에서도 놀라운 감동을 던져 주었다. 콘서트 가곡에 있어서는 슈트라우스의 가곡에서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한편, 현대작품의 해석에 있어서도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쇤버그의 '기다림'(Erwartung)에서 싱글 주역을 맡은 것은 대표적이다. 그러나 노만의 명성은 어떤 잡지가 그를 비하하는 기사를 실었다고 해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였는데 어쩐 일인지 그 사건 이후에 안타깝게도 점점 빛을 잃었다. 하지만 누구도 노만이 음악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인물이라는 데에는 의심하지 않는다. 노만의 진면목은 '디도와 이니아스'에서 '내가 땅 속에 묻힐 때에'(When I am laid in earth)에서 찾아 볼수 있다. 디도의 탄식이다.

 

○ Anna Netrebko(안나 네트렙코) - 너무나 뜨겁게 입맟춤하는 나의 입술(주디타)

 

 

모두들 안나 네트렙코를 음악의 신데렐라라고 부른다. 네트렙코는 생페터스부르크 마리인스키 극장에서 빗자루로 마루바닥을 쓸던 아가씨였다. 그때 그는 22세였다. 그러다가 2002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전격적으로 '돈 조반니'의 돈나 안나로 기용되었다.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예쁘게 생긴 얼굴, 늘씬한 몸매, 부드럽고 매력적인 음성, 뛰어난 연기력...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세기의 프리마 돈나였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07년, 네트렙코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100 인의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소프라노로서는 유일하였다. 네트렙코는 현재 비엔나에서 살면서 계속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출연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세계의 오페라극장들은 한 줄로 서 있을 정도이다. 라 스칼라, 코벤트 가든, 메트로폴리탄, 비엔나 슈타츠오퍼 등등. 네트렙코의 음성은 금으로 도금한 것과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서정적이다. 그는 미미, 비올레타, 줄리에트, 마농, 아디나(사랑의 묘약), 루치아(람메무어의 루치아)등 폭 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하고 있다. 그의 명랑하고 활달한 성격은 그의 노래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아마 레하르의 '그대에게 키스하는 나의 입술은 너무나 뜨겁고'(Meine Lippen Sie kussen so heiss)를 들어보면 금방 알수 있다.

 

○ Gundula Janowitz(군둘라 야노비츠) - 산들바람은 불고: 편지의 2중창(피가로의 결혼)

 

 

허버트 폰 카라얀은 군둘라 야노비츠를 가장 이상적인 소프라노로 인정했다. 그래서 평생을 야노비츠의 후견인 격으로 활동했다. 야노비츠는 아마 역사상 가장 훌륭하고 세련된 모차르트 소프라노일 것이다. 야노비츠의 음성은 대단히 서정적이다. 놀랄만큼 투명하고 순수하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역할에 가장 합당하다. 하지만 지글린데 또는 엘자와 같은 바그너의 주인공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그런가하면 파미나와 마르첼리네와 같은 비교적 가벼운 역할도 훌륭하게 소화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오토 클렘페러와 함께 취입한 '마술피리', 폰 카라얀과 함께 녹음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네개의 마지막 노래'는 아직까지도 음반계의 하일라이트로 남아 있다. 그러나 야노비츠라고 하면 우리는 먼저 '피가로의 결혼'에서 '편지의 2중창'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야노비츠와 에디트 마티스가 함께 부른 편지의 2중창인 '술랄리아'(산들바람은 불고'는 영화 '쇼생크의 탈출'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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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시 노만의 명예훼손 사건 -

제시 노만은 거구의 소프라노이다. 그런 그가 어느날 콘서트에 참석코자 어떤 건물에 들어가려는데 회전문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그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제시 노만에게 '아니, 옆에 있는 문으로 들어갔으면 문제 없었을 터인데..'라고 말했다. 제시 노만은 '나는 옆문을 갖고 있지 않아요'라고 농담조로 대답했다. 그런 내용이 가십기사를 좋아하는 어떤 음악잡지에 게재되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며칠 후 노만은 '회전문을 사용하지 말고 옆 문을 사용하라'고 말한 것은 자기를 조롱하고 비하한 발언이며 나아가 인종차별을 염두에 둔 말이라면서 그 잡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결론적으로 그 고소사건을 맡은 판사는 '제시 노만 여사가 조금 과잉반응한 것 같다. 농담으로 흘려 보내면 될 것을...'이라면서 노만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노만은 이 때문에 덩치는 큰데 소심하고 속이 좁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기사 고소한 노만의 진심은 그렇지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