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징슈필 이야기

독일 징슈필이 뭐길래?

정준극 2007. 10. 16. 14:15

징슈필이 뭐길래?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인 휘델리오(Fidelio)는 오페라의 장르로 보면 징슈필에 속한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도 징슈필에 속한다. ‘어, 오페라인줄 알았는데 징슈필이라니?’라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휘델리오’와 ‘마술피리’는 말할 필요도 없이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오페라이다. 다만 음악사적으로 볼 때에 오페라에는 여러 장르가 있는데 '휘델리오'와 '마술피리'는 독일에서 비롯한 징슈필이라는 장르에 속한다는 것뿐이다. 징슈필은 말하자면 독일식 오페라의 원조이다. 어찌보면 비엔나에서 꽃피운 비엔나 오페레타의 원조이기도 하다. 독일어의 징슈필(Singspiel)은 글자 그대로 Sing+spiel, 즉 Song+play(노래 연극)를 말한다. 다시말하여 징슈필은 독일어로 된 음악드라마를 말한다. 징슈필에서는 말하는 스타일의 대사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노래들이 대중가요, 발라드, 민요풍의 노래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대사에는 대체로 코믹한 요소가 들어 있다. 돈내고 들어온 관중들에게 웃음이라도 선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코믹한 대사라고 해도 이탈리아나 프랑스 스타일의 코믹한 대사라기 보다는 철학적인 내용을 코믹하게 대사로 옮겼다고 보면 무난하다. 그래서 대체로 무슨 코믹한 대사가 나오더라도 한참은 생각해야 본래 의미를 알수 있다. 그것이 독일 징슈필의 특징이기도 하다.

 

모차르트의 '후궁에서의 도주'의 장면. 사실 이 오페라는 코믹하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징슈필이 등장한 것은 18세기 후반이라고 한다. 1736년에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공연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영국주재 프러시아(독일)대사가 영국에서 유행하던 The Devil to Pay(뒤탈)을 독일로 가져와 번역하여 공연토록 했다. 이 오페라는 1740년대에 함부르크와 라이프치히에서 상당한 인기를 차지했다.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공연한 주역은 작곡가인 요한 크리스티안 슈탄트푸스(J.C. Standfuss)이다. 그리고 번역 담당자는 크리스티안 펠릭스 봐이쎄(Christian Felix Weisse)였다. 그러다가 '어찌하여 우리는 영국 것만 가져다가 번역해서 공연하느냐?'는 불만이 싹텄고 이에 따라 독일어로 된 오리지널 코믹 음악연극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물론 징슈필이란 용어도 없었다. 그저 가벼운 내용의 연극이었으며 그런 연극을 하는 중에 간혹 독일의 대중가요를 넣어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40년대 초반, 함부르크와 라이프치히에서의 원조 징슈필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베토벤의 '휘델리오'도 징슈필의 장르에 속한다. 다만 내용이 좀 무거워서 걱정이다. English National Opera 무대.

 

독일의 노래연극은 당시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와 프랑스의 오페라 코미크와 흡사하였다. 독일 사람들은 이를 발라드 오페라 또는 오페라 코미크라고 부르는 대신 징슈필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아무리 제목을 바꾸었다고 해도 뭔가는 영국 냄새가 남아 있어서 어색한 점이 있었다. 당대의 작곡가 요한 힐러(Johann Hiller)가 1766년에 이 징슈필을 독일 백성들의 구미에 알맞는 스타일로 수정하였고 제목을 Der Teufel ist los(제멋대로의 악마) 또는 Die verwandelten Weiber(변화한 부인)이라고 붙였다. 요한 힐러는 독일 징슈필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로부터 영국의 발라드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코믹 오페라(Opera comique)도 독일어로 번역되어 독일 백성들의 기호에 맞게 무대에 올려졌다. 징슈필에 대한 인기가 점점 높아졌다. 이탈리아의 비극적 오페라도 간혹 공연되었지만 대중들은 재미있는 징슈필만을 찾았다. 그리고 더군다나 이탈리아 오페라가 판을 치는 것을 은근히 경계하고 싫어하였으므로 징슈필이 인기를 끌었다. 이런 징슈필은 대도시의 전문 오페라단보다는 지방을 돌아다니는 순회오페라단이 더욱 즐겨서 공연하였다. 이와 함께 번역본 징슈필보다는 독일 작곡가들에 의한 독자적인 징슈필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독일 징슈필의 테마는 주로 코믹하면서도 로맨틱하다. 때문에 주인공들은 코믹한 연기를 위해 과장되기가 일쑤이다. 때에 따라서는 악마에 의한 마법적인 내용도 포함되며 용과 같은 상상의 동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독일 징슈필의 아버지 요한 힐러

                                

시대의 변화와 함께 웃기는 것도 시들해지고 심각한 내용의 오페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오페라라면 역시 마음을 감동시키는 뭔가가 있어야 해~!’라면서 신중한 내용을 좋아했다. 말하자면 순수오페라이다. 이에 질세라 독일의 징슈필도 심각한 내용을 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휘델리오’와 베버의 ‘마탄의 사수’였다. 모차르트는 1782년 비엔나의 새로운 궁정극장의 개관에 즈음하여 신성로마제국의 요셉2세 황제로부터 독일어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렇게 하여 나온 것이 ‘후궁에서의 도주’였다. 모차르트는 사실상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를 작곡하는 한편 독일어로 된 오페라, 즉 징슈필의 작곡에도 관심을 가졌다. 모차르트는 징슈필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어 대본으로 된 ‘차이데’(Zaide), '음악감독'(Der Schauspieldirektor), '마술피리'(Die Zauberflöte) 등을 만들었다. 다만, ‘마술피리’의 경우에는 음악적으로 볼때나 연극적으로 볼때 다른 장르에서 여러 요소를 가져와 만들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별로 보아서 징슈필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슈베르트의 음악극은 거의 모두 징슈필 스타일인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징슈필은 오페라극장에서 보다는 순회극단이 주로 공연했다. 대중적인 엔터테인멘트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대도시에서보다는 지방에서 자주 공연되었다. 독일에서는 징슈필을 전문으로 공연하는 단체들이 있어서 순회공연을 자주 다녔다. 예를 들면 코흐(Koch), 되벨린(Doebellin), 코버봐인(Koberwein) 등이었다.

 

모차르트의 징슈필 '마술피리'.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코믹한 장면.

                                    

요한 아담 힐러를 이어 독일 징슈필의 발전에 주요한 역할을 한 작곡가들은 지리 안토닌 벤다(Jiri Antonin Benda), 칼 디터스 폰 디터스도르프(Karl Ditters von Dittersdorf) 등이다. 징슈필은 훗날 등장한 독일 낭만적 오페라의 전신이라고 할수 있으며 또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비엔나 오페레타의 기초를 닦아 놓은 것이다. 징슈필의 장르에 속한 베토벤, 베버등은 다음 세대에 등장하는 보다 복잡한 스타일의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길을 닦아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오페라 역사의 발전과 함께 징슈필은 19세기 말에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베르디, 푸치니 등이 세계의 오페라 무대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다만, 요한 슈트라우스, 프란츠 폰 주페, 프란츠 레하르 등이 비엔나 오페레타를 통해 그나마 독일 징슈필을 연계하였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쿠르트 봐일(Kurt Weil)의 '마하고니'(Mahagonny: Aufstieg und Fall der Stadt Mahagonny)가 징슈필의 스타일을 계승하였을 뿐 이제는 새로운 징슈필을 거의 찾아볼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쿠르트 봐일은 그의 작품인 '마하고니'를 설명함에 있어서 송슈필(Songspiel)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창조하였다. 그래서 제목을 Mahagonny-Songspiel 이라고 적었다. 영어와 독일어를 합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도 관찮은지 잘 모르겠다.     

 

쿠르트 봐일의 '마하고니'의 한 장면. 

 

[대표적인 징슈필 작품들]

 

징슈필 장르에서 가장 대표적인 유명 작품들 20편을 선정해 보았다. 징슈필의 제목, 작곡자, 대본가, 초연일, 주요 등장인물들을 소개한다. 타이틀의 알파벳 순서로 정리했다.

 

○ 아부 하싼(Abu Hassan)

칼 마리아 폰 베버. 1811년 6월 4일. 단막의 오페라

 

○ 바스티엔과 바스티엔느(Bastien und Bastienne)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68년 10월 1일. 징슈필

 

모차르트의 '바스티엔과 바스티엔느'

 

○ 크뢰서스(Crösus)

라인하르트 카이저(Reinhard Keiser). 1711년 1월 1일. 크뢰서스, 솔론, 사이러스 대왕

 

○ 공작축제(Das Pfaunfest)

요한 루돌프 춤슈테그(Johann Rudolf Zumsteeg). 1801년 2월 24일. 징슈필

 

○ 연극감독(Das Schauspieldirektor: 음악감독)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86년 2월 7일. 고트리프 슈테파니 대본. 징슈필

 

모차르트의 '연극감독'(또는 음악감독)


○ 도공(Der Töpfer: 陶工)

요한 안드레(Johann Andre). 1773년 1월 22일. 징슈필

 

○ 두 명의 조카(Die beiden Neffen)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징슈필

 

○ 후궁에서의 도주(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82년 7월 16일. 고트리브 슈테파니 대본. 블론드, 벨몬테

 

○ 카마초의 결혼(Die Hochzeit des Camacho)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1827년 4월 29일. 징슈필

 

○ 사냥(Die Jagd)

요한 아담 힐러. 크리스티안 펠릭스 봐이세 대본. 1770년 1월 29일

 

○ 스위스 가족(Die Schweizerfamilie)

요셉 봐이글 이그나츠(Joseph Weigl Ignaz). 프란츠 카스텔리 대본. 1809년 3월 14일

 

○ 변화한 부인(Dei verwandelten Weiber)

요한 아돌프 힐러. 크리스티안 펠릭스 봐이쎄 대본. 1766년 5월 28일. 징슈필(코믹 오페라)

 

○ 슐레지엔에서의 야영(Ein Feldlager in Schlesien)

자코모 마이에르베르. 루드비히 렐슈타브 대본. 1844년 12월 7일. 프러시아의 프데레릭 2세. 징슈필

 

○ 에르빈과 엘미레(Erwin und Elmire)

요한 안드레.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원작. 1775년 5월 1일. 징슈필

 

○ 슈봐르첸부르크의 귄터(Günther von Schwarzburg)

이그나즈 홀츠바우어(Ignaz Holzbauer). 징슈필. 바바리아의 루돌르2세.

 

○ 하리 야노스(Háry János)

촐탄 코다이(Zoltán Kodály). 1926년 10월 16일. 징슈필

 

헝가리의 민속적인 향취가 배어있는 '하리 야노스'의 무대

 

○ 칼 왕의 사냥(Kung Karls jakt)

프레드릭 파치우스(Fredrik Pacius). 차카리아스 토펠리우스 대본. 1852년 3월 24일. 징슈필. 스웨덴의 칼11세. 징슈필

 

○ 옥타비아(Octavia)

라인하르트 카이저. 1705년 8월 5일. 징슈필. 네로, 마르쿠스, 에밀리우스, 레피두스

 

○ 마술피리(Die Zauberflöte)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에마누엘 쉬카네더 대본. 1791년 9월 30일(또는 10월 1일). 타미노, 파미나, 자라스트로, 파파게나, 파파게노, 밤의 여왕.

 

○ 차이데(Zaide)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866년 1월 27일. 징슈필(구원 오페라)

 

모차르트의 '차이데'


독일 징슈필의 선구자들

 

지그문트 슈타덴의 '젤레비히' 음반

                                                                        

독일어로 된 최초의 독일 오페라는 1627년 하인리히 쉬츠(Heinrich Schütz: 1585-1672)가 작곡한 '다프네'(Dafne)라고 한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스코어가 남아 있지 않다. 당시에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18세기 후반까지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을 휩쓸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어로 된 독일 오페라는 꾸준히 발전하였다. 1644년에 지그문트 슈타덴(Sigmund Staden: 1607-1655)이 독일어로 된 최초의 징슈필을 발표했다. '젤레비히'(Seelewig)라는 타이틀이었다. Das geistliche Waldgedicht(성스러운 숲의 시)라고도 하며 Freudenspiel genant Seelewig(젤레비히라고 부르는 환희의 연극)이라고도 불리는 징슈필이다. 반인반수의 사티르(Satyr)가 아름다운 님프인 젤레비히를 유혹하려 하지만 실패한다는 내용이다. 독일의 여러 극장들은 하인리히 쉬츠와 지그문트 슈타덴의 영향을 받아 독일의 작곡가들이 만든 징슈필을 공연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함부르크의 테아터 암 갠제마르크트가 징슈필의 공연에 가장 앞장 섰다. 이 극장에서 카이저(Keiser), 텔레만, 헨델 등의 징슈필이 공연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오페라 상당수 작곡가들은 아직도 이탈리아 오페라에 심취하여서 이탈리아어로 된 이탈리아 스타일의 오페라들을 열심히 만들어냈다. 헨델 자신은 물론, 그라운(Graun), 하쎄(Hasse), 그리고 나중에는 글룩도 그랬다.

 

독일 오페라의 아버지인 하인리히 쉬츠. 렘브란트 작품

 

모차르트의 징슈필인 '후궁에서의 도주'(1782)와 '마술피리'(1791)는 독일 오페라(징슈필)를 국제적으로 알리는데 중요한 공헌을 한 것이었다. 모차르트에 의한 도전과 전통은 19세기에 베토벤이 '휘델리오'를 통해 더욱 발전되었다. '휘델리오'는 스페인을 배경으로 했지만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칼 마리아 폰 베버는 이탈리아의 벨 칸토 오페라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상황에 반하여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를 진작시킨 작곡가이다. 베버의 '마탄의 사수'(1821)는 초자연적인 분위기를 창조하는 독일 낭만주의의 독특함을 보여주었다. 19세기에 독일 오페라를 발전시킨 인물들로서는 마르슈너, 슈베르트, 슈만, 로르칭 등을 꼽을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독일 오페라를 가장 발전시킨 뛰어난 인물은 바그너가 아닐수 없다.

 

최초의 징슈필을 작곡한 지그문트 슈타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