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 집중탐구/아라랏 산

신성한 산 아라랏

정준극 2008. 7. 25. 12:05
 

[신성한 산 아라랏]

대홍수 후에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곳이 아라랏 산(Mt Ararat)이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8장 4절에 ‘일곱째 달 곧 그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라고 되어 있다. 아라랏 산은 터키에 있다.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터키 동북부 코너의 이그디르(Igdir) 지방에 있다. 이란 국경으로부터 서쪽으로 16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아르메니아 국경으로부터는 32km 떨어져 있다. 산정은 만년설로 덮여 있으며 휴화산이므로 분화구의 모습이 남아 있다. 히브리인들은 티그리스강 상부의 아르메니아 고원 지대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있다고 믿었다. 대홍수 이후에 노아가 아라랏 산에 도착했다는 기록은 히브리인들의 전래 믿음에 의한 것이다. 아라랏 산에 대한 탐험은 여러 사람이 시도하였다. 현대에 처음으로 아라랏 산정을 정복한 탐험가는 독일의 프리드리히 패롯(Friedrich Parrot: 1792-1841) 박사이다. 그는 1829년 9월 27일 아르메니아 시인인 카차투르 아보비안(Khachatur Abovian)과 함께 아라랏 산정을 역사상 처음으로 정복하였다.


아라랏 산의 위용


아라랏 산에서 노아의 방주의 파편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누가 발견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 목편들이 과연 노아의 방주에서 나온 것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다. 다만,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 산에 도착했다고 되어 있으므로 그곳에서 커다란 나무토막을 찾아내고 그것을 노아의 방주의 일부분이라고 추정했던 것 같다. 앙리 니쎈(Henri Nissen)이란 사람이 쓴 ‘노아의 방주 발견’(Noah's Ark Uncovered)이라는 책에는 아라랏 산에서 방주의 잔해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전 대덕연구단지내 도룡동에 있는 창조과학회던가 하는 곳에도 노아의 방주의 파편이 전시되어 있다. 이집트정교회는 네 개의 산을 하나님의 산으로 정하고 신성시하고 있다. 에덴동산, 시내산, 시온산, 그리고 동방의 산이라는 아라랏 산이다. 최근 이란 정부는 아라랏 산에서 3백 km 떨어진 사발란(Sabalan)산을 노아의 방주가 정착한 곳으로 보고 발굴조사하고 있다. 만일 사발란 산에서 노아의 방주가 발견된다면 창세기에 나오는 아라랏 산의 기록은 재고되어야 할 입장이다.   

 

아라랏 산정을 처음 정복한 프리드리히 패롯


아라랏이라는 말은 원래 아르메니아어에서 유래되었다. 터키어로는 아그리 다기(Agri Dagi)라고 부른다. ‘고통의 산’이라는 의미이다. 터키의 북부지방에는 쿠르드(Kurd)족이 살고 있다. 아라랏 산은 쿠르드어로 시야예 아기리(Ciyaye Agiri)라고 한다. ‘타오르는 산’이라는 뜻이다. 아라랏 산은 높이가 5,165m에 이른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등 다른 자료에는 5,137m라고 되어 있다. 아라랏 산에서 마지막으로 화산이 폭발한 것은 기원전 1만년이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화산이 폭발했다는 어떠한 기록도 없다. 다만, 1840년 7월에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나 아라랏 산에 영향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아라랏 산의 북쪽 경사진 곳에 교회와 수도원과 마을이 있었는데 지진으로 모두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아라랏 산의 어떤 봉우리에서 소규모의 화산이 폭발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아라랏 산맥에는 두 개의 산정이 있다. 아라랏 산과 리틀 아라랏 산이다.


유태교와 기독교에서 똑같이 신성시하는 아라랏 산이 있는 지역은 여러 나라에 점령당하여 지배를 받는 수난을 겪었다. 처음으로 이 지역을 지배한 나라는 고대 우라르투(Urartu)라는 나라였다. 우라르투는 BC 585년 스키타이족(Scythians)과 메데족(Medes)의 침공을 받은 후 반독립적인 아르메니아 주가 되었다. 당시 이 지역을 지배했던 것은 오론티드(Orontid) 왕조였다. 오론티드 왕조는 페르시아 아케메니드(Achaemenid) 족과 계속되는 결혼을 통하여 결국은 왕조의 쇠퇴를 보았고 대신 아케메니드 왕조가 오론티드 왕조의 실권을 잡게 되었다. 그러던중 BC 330년경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되어 비로소 다시 오론티드 자치지역이 되었다. 물론 오론티드 자치지역은 마케도니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로마 시대에 이르러 아라랏 지역에는 로마군단이 주둔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 군인들 중 수천명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고 한다. 이에 로마 황제는 이들을 모두 아라랏 산에서 처형했다고 한다. 이때에 십자가에 처형당한 로마 군인이 1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들을 ‘아라랏 산의 순교자’라고 부른다.     


BC 201년 안티오쿠스(Antiochus) 대왕이 잠시 아르메니아를 정복한 일이 있다. 이와 함께 아라랏 지역에 대한 오론티드의 통치도 막을 내렸다. 안티오쿠스 대왕이 아르메니아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자 이 지역은 새로운 아르메니아 왕국의 지배를 다시 받게 되었다. 아르메니아 왕국은 BC 198년부터 AD 428년 로마에게 다시 정복당할 때까지 거의 6백년을 존속하였다. 로마제국은 페르시아의 사산(Sassanid)왕조와 협상하여 아르메니아를 분할하였다. 이후 아라랏 지역은 로마제국과 페르시아간의 영토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 되었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할되자 아라랏 지역에 대한 영토분규가 마무리되는 줄 알았으나 이번에는 아랍 칼리프와 비잔틴제국간의 영토분규가 재연되는 곳이 되었다.


9세기경 아라랏 지역은 아르메니아 왕국에 다시 복속되었다가 11세기에는 비잔틴제국에 병합되었다. 그후 1071년에는 비잔틴제국이 셀주크 터키(Seljuk Turks)와의 전투에 패배하여 셀주크 터키의 영토가 되었다. 12세기 초반부터 13세기 초반까지는 그루지아 왕국(Georgian Kingdom)이 셀주크 터키의 영토였던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13세기와 14세기에는 몽골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1517년 오토만(Ottoman) 제국이 이 지역을 정복하였다. 1855년에는 제정 러시아가 아라랏 산의 북쪽을 차지하였고 남쪽만 오토만 터키의 영토로 남게 되었다.

 

신성한 산 아라랏 ,  아르메니아의 예레벤에서 바라본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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