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 이야기/마리아의 몽소승천

마리아의 무덤

정준극 2008. 8. 20. 17:12

[마리아의 무덤]

예루살렘의 마리아 무덤은 감람산 자락, 만국교회와 겟세마네교회의 부근인 키드론(Kidron)골짜기에 있다. 이곳은 옛부터 그저 예루살렘 성밖의 공동묘지 자리였다. 사람들은 여러 무덤중에서 마리아의 무덤을 선별하여 보존하여 왔다. 무덤은 12세기에 발견된 바위동굴의 안에 있는 형태였다. 중세에 이르러 동방교회가 그 무덤 자리 위에 ‘신의 어머니’(Theotokos, 즉 마리아에게 봉헌하는 교회를 세웠다. 바위무덤으로 내려가려면 계단을 통해야 한다. 계단의 왼쪽에는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에게 봉헌된 예배처(채플)가 있다. 오른쪽에는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힘과 안나에게 봉헌된 예배처가 있다. 바위동굴에는 예루살렘 여왕인 멜리센드(Melisende)의 무덤도 있다고 한다.

 

 마리아의 관이 있었다고 하는 지점으로 내려가는 계단


마리아의 무덤은 바위동굴 위에 세워진 교회의 동쪽에 있다. 그리스정교회와 아르메니아정교회의 제단은 동쪽 회랑에 있어서 같이 사용되고 있다. 마리아 무덤의 남쪽 벽감에는 메카방향을 가르치는 미라브(mihrab)가 있다. 무슬림이 교회에 대한 공동권리를 행사할 때에 설치된 벽감이다. 교회의 서쪽에는 콥틱교회의 제단이 있다. 마리아 영묘는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정교회와 아르메니아사도교회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이집트의 콥틱교회, 시리아정교회도 마리아 영묘에 연고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무슬림도 영묘 안에 기도처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마리아의 무덤이 있는 교회는 여러 교단이 연고권을 주장하며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다.    


마리아의 무덤은 초기에 현지에 사는 기독교인들이 오래동안 보존하여 왔다. 그러다가 유태인이 아닌 기독교인들이 넘겨받아 주변에 있는 여러 묘지들과 구분하여 관리하였다. 묘비도 세웠다. 5세기경에 어떤 족장이 작은 다락방 스타일의 교회를 세웠다. 그러다가 614년 페르시아가 침공하여 이 교회를 파괴하였다. 그후 몇 세기동안 교회를 다시 짓고 파괴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무덤 자체는 파손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었다. 무슬림들은 이 무덤이 선지자 이사(Isa)의 어머니의 무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후 1130년경 십자군들이 들어와 마리아의 무덤에 있는 교회를 재건하였다. 그리고 베네딕트 수도원도 함께 건축하였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여호사밧(Jehoshaphat) 골짜기의 성모 수도원’이란 이름이었다. 십자군이 세운 교회는 1187년 살라딘(Saladin)이 파괴하였다. 그러나 무덤 자체는 아직도 존경을 받아 보존되었다. 교회를 건축할 때 쌓은 돌들은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데 사용하였다. 14세기 중반에 프란체스코 수도승들이 교회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1757년 이후에는 이 교회가 동방정교회에 속하게 되었다.


1972년에 홍수가 있고 난후 고고학자들이 무덤을 발굴하였다. 1세기때 만든 묘지라는 것이 밝혀졌다. 동굴형태의 무덤은 기본적으로 세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무덤은 가장 안쪽에 있는 방에 있다. 이슬람에서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예언자 마호메드가 메카로부터 예루살렘까지 밤여행(Night Journey)을 할 때에 마리아의 무덤 위에 빛이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마리아를 장사지냈다고 하는 석관


[진실게임]

신약성경과 초기의 경외서에는 마리아가 어떻게 생애를 마쳤는지, 그리고 어느 곳에 묻혔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동방기독교회는 마리아가 일반 사람들처럼 자연사했으나 그의 영혼은 죽은후에 그리스도의 영접을 받았으며 그의 육신은 죽은지 3일후에 부활하여 하늘로 들림을 받아 올라갔다고 설명한다. 이와는 반대로 로마 가톨릭은 마리아가 육신의 형태로 그냥 승천했다고 믿는다. 마리아가 실제로 죽음은 경험한 후에 승천했는지, 또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승천했는지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논란중에 있다. 하지만 대부분 신학자들은 마리아가 승천하기 전에 죽음을 경험했다고 믿고 있다.


동방정교회에 따르면 마리아는 에베소 부근, 현재 ‘성모의 집’으로 알려진 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성모의 집’은 기독교인이거나 무슬림이거나 모두로부터 숭배를 받고 있는 곳이다. 마리아는 이곳에서 몇 년간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마리아가 이곳 에베소에서 세상을 떠났는지 또는 일반적인 생각대로 예루살렘에서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한 논란 역시 계속되고 있다. 395년에 기록된 ‘예루살렘 약사’(Breviarius of Jerusalem)에는 키드론 계곡에 성모교회가 있으며 그 안에 성모의 무덤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5세기경에 키릴(Cyril)이란 사람이 쓴 Euthymiaca Historia에는 당시 로마 황제인 마르시안(Marcian)과 왕비인 풀케리아(Pulcheria)가 예루살렘의 족장인 유베날(Juvenal)에게 마리아의 유해에 대하여 물어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족장 유베날은 제3일에 마리아의 무덤에 가 보았더니 무덤이 비어 있었으며 다만 수의만이 남아 있어서 겟세마네교회에 보관하였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중에 여러 신학자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마리아의 무덤이 예루살렘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거하였고 이에 따라 모든 교회가 그 내용을 받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