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대전-천안

만년초등학교와 우리집

정준극 2008. 9. 30. 12:18

만년초등학교와 우리집

 

서구 만년동에 만년초등학교가 있다. 내가 우거하던 상록수 아파트는 만년초등학교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옆집에 어떤 나이 지긋한 양반이 있어서 목례나하고 지내던 터였는데 어떤 날 아침 출근길에 공연스럽게도 그 양반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게 되었다. 너무 한적하여서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회사에 나가시는 모양이시지요?' 그랬더니 그 양반께서 '아, 예. 만년 선생이올시다'라고 대답했다. 얼핏 들으니 종신으로 학교선생님이라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속으로 '아, 이 양반은 학교 선생님을 천직으로 여기시어 만년 선생이라고 그래셨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만년초등학교 선생님이란 말이었다. 얼마후 별로 할일도 없고 하여서 동네를 순찰하다가 보니 만년중학교도 있고 만년고등학교도 있다. 이런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은 모두 만년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서구 만년동은 놀랍게도 발전하여 내가 살았던 상록수 아파트에서 대로 건너편에는 서구보건소가 들어서더니 이어 무슨 예식장도 들어서는등 많은 건물들이 경쟁이나 하듯 들어섰다. 가장 많이 들어선 업종들은 물론 식당이다. 전국토의 식당화! 그중에서 '우리집'이라는 고기집이 문을 열었다. 고기를 몇인분씩 파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 당 마음껏 먹을수 있는 메뉴여서 간혹 이용했던 터였다. 하루는 직장의 동료들과 함께 저녁이나 할 요량으로 '우리집'에서 몇시에 만나자고  사발통보했다. 직장동료들은 필자와 함께 그 고기집에 전에도 갔던 일이 있어서 집 찾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작은 오산이었다. 그중 어떤 동료는 아무도 없는 상록수아파트의 진짜 우리집 문 앞에서 노상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집'에서 만나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음식점 등에 좀 어색한 이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삼계탕을 전문으로 하는 '처가집'이다. '야, 오늘은 처가집에나 가야겠어'라고 말한다든지 '나말야, 여기 처가집인데, 저녁먹고 갈께!'라고 말한다면 재빠르지 못한 사람들은 약간 혼돈을 가질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 동경에는 '대사관'이라는 한국식당이 있다. '거기 대사관이죠, 아무개 씨좀 바꿔 주세요'라든지 '나 지금 김의원, 이국장하고 대사관에 있는데 올테면 와!'라고 한다든지, '이따가 저녁때 대사관에서 만나지 그래!'라고 하면 아무튼 헛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만년초등학교 운동장 계단에서 열린 알뜰장터. 필자도 구경갔었다. 학부형들의 수고가 다대하였다.

'발길 따라, 추억 따라 > 대전-천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조산 성불사  (0) 2009.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