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대전-천안

태조산 성불사

정준극 2009. 11. 30. 08:39

태조산 성불사

(太祖山 成佛寺)

 

잘 아는 대로 우리나라 역사상 태조라고 불리는 양반은 두 사람이 있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과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태조라고 하면 우선 이성계를 연상하게 되며 ‘이 사람아! 왕건도 태조야!’라고 면박을 주면 ‘아 왕건도 태조였나?’라면서 그제서야 생각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천안의 안서동이라는 곳에 태조산(太祖山)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 고속도로 천안 톨게이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태조산은 산은 산이로되 지리산, 태백산에 비하면 산 축에도 끼지 못하는 작은 산이다. 하지만 이름만은 거룩하다. 고려를 개국하였고 조선을 개국한 두 임금의 타이틀을 산의 이름으로 삼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태조산이라고 하니까 태조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너자너 어떤 태조인가?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무슨 관련인가? 왕건께서 이곳까지 와서 잠시 쳬류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왕건께서 잠깐 쉬어 간 산은 모두 태조산이라고 불러야 하나?’라는 약간은 어리석은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전국에서 태조산이라는 이름은 천안의 이곳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불사 대웅전. 산중에 축대를 쌓고 지었다. 바로 뒤의 암벽에 부처님 모습의 조각이 있다. 불입상이다.

이것이 대웅전 뒷편 암벽이다. 가운데를 자세히 보면 마치 부처님이 서 있는 듯한 조각이 그럴듯하게 보인다. 먼 옛날, 고려 초에, 당시 천안에 살고 있던 세마리의 학이 날아와서 수고스럽게도 부리로 쪼아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보시는 바와 같이 성불사의 대웅전에는 삼존불을 모신 위치에 가운데에 있어야할 석가모니 부처님이 없다. 대신 유리창이 있어서 밖에 있는 암벽의 불입상을 볼수 있게 해 놓았다. (Credit)

 

성불사는 마치 산성의 성벽처럼 쌓은 돌담이 훌륭하다.

 

잠시동안이지만 지금의 태조산 서쪽 기슭에 거처를 정한 일이 있는 왕건(877-943)은 어느날 현재의 성불사가 있는 곳까지 걸어왔다가 다리가 아파서 잠시 쉬는 중에 주변을 둘러보니 경개가 관찮아서 미상불 절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부하직원들에게 절을 세우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하직원이란 사람들도 공무원인지라 아무리 임금의 지시라고 해도 자기들에게 이익이 없으면 말을 듣지 않는 법. 그래서 당시 태조의 부하 공무원들은 신라시대부터 고승이라고 하는 도선(827-898)국사를 불러서 ‘이보시오 국사님, 임금께서 천안 안서동에 절을 세우라고 하는데 우리야 뭘 알겠습니까? 그러나 스님께서는 절 세우는 일에 도사가 아니신가? 우이동의 도선사도 지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수고스럽지만 절을 하나 지으시고 나중에 임금께서 어찌되었느냐고 물으시면 담당공무원들이 다 잘 지었다고 말씀이나 해주시오’라고 말했다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도선국사가 주관하여 절을 지었으니 그것이 오늘날의 성불사라고 한다.

 

암벽에는 삼존불과 16나한상이 새겨져 있어서 놀라움을 던져주고 있다. 옆의 암벽에 있는 불입상과 함께 2002년에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절을 지으려고 하는데 보니까 천안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백학 세 마리가 나타나서 암벽에 부처님의 모습을 부리로 쪼아 새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참이나 부리로 바위를 쪼면서 부처님의 서 계신 모습을 새기고 있던 백학들은 옆에서 어떤 사람(도선국사)이 마치 자기들의 작업을 감독이나 하듯 넌지시 구경하고 있자 ‘우리는 아무런 돈도 받지 않고 할만큼 했으니 나머지는 당신이 하시오’라며 불상을 완성하지 않은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도선국사와 몇몇 인부들이 불상을 완성했다는 것이며 그래서 성불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선국사는 대웅전을 지어놓고 절 이름을 성불사(成不寺)라고 불렀다고 한다. 완성되지 못한 절이라는 뜻이다. 무릇 절의 대웅전에는 삼존불을 모시되 가운데에는 석가모니 부처를 모시며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것이 관례인데 천안 성불사의 대웅전에는 삼존불 중에 가운데의 부처가 없으며 대신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어서 유리창 밖으로 옛날 고려시대에 백학들이 와서 대충 만들어 놓은 불입상(佛立像)을 본존불로 보고 불공을 드리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웅전을 그런 식으로 조치해 놓은 곳은 아마 성불사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꼭 한번 구경가볼 필요가 있다. 그건 그렇고 성불사(成不寺)라는 몇칭은 나중에 성불사(成佛寺)로 바꾸었으니 암벽의 불입상을 더 이상 가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불사의 범종루는 날렵하다. 어느 시기의 건물인지는 확실히 모른다.

범종루의 2층에는 범종, 법고 등이 모셔져 있다. 비교적 새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천안 성불사는 규모가 작은 절이다. 작은 대웅전과 그 위에 산령각이 있고 아래쪽에 범종루가 있을 뿐이다. 다른 절처럼 명부전도 없고 천불전도 없다. 비록 건물들은 약소하지만 보라! 성불사에는 백학 3마리가 와서 부리로 암벽을 쪼아 만든 불입상이 있으며 또 그 옆의 암벽에는 마애석가삼존과 16나한상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16나한상은 마멸이 심해서 각각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므로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야, 거저, 저거이 나한상을 그린 것이로구나!’라는 감탄을 낼 수밖에 없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불사 당국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는 선전이다. 설명문에 의하면 좌우 입상의 협시보살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며 16나한상은 수도하는 모습 등이 매우 자유스럽고 다양한데 현재 이런 종류의 것이 남아 있는 것은 상당히 희귀하여서 결론적으로 대단히 감개가 무량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범부의 눈에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아볼수 없다는 것이니 그것이 탈이면 탈이었다. 성불사 올라가는 길에는 일주문이 있는데 최근에 지은 것이며 필자가 방문하였을 때에는 아직 단청도 칠하지 않아 미완성이었다. 성불사 올라가는 길은 그나마 태조산공원의 등산코스이기도 하다. 태조산에는 청소년수련장도 있다. 예전에는 심심산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길거리의 양쪽을 차지하고 있는 식당가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바로 절 아래까지 차를 몰고 갈수 있다. 도선국사나 태조 왕건이 알았더라면 두분 모두 바쁘신 중에도 ‘여기가 도대체 어디메뇨? 아니, 대한민국이 어찌하여 식당공화국이 되었는가?’ 라면서 놀랬을 것이다. 필자는 마침 천안에 조카가 살고 있어서 2009년 11월 하순에 뜻한바 있어서 함께 관람할수 있었다.

 

아담한 대웅전의 모습.

이것은 최근에 만들어 모신 부처님이다.

산령각이다. 특이하게도 벽쪽에 벽장 같은 구조물이 있다. 단청과 문짝의 불화가 멋스럽다. 그런데 절에서 만들어 세운 설명판에는 산신각이라고 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산령각의 꽃살무늬 창문. 동자승이 말하지 말고 보지 말고 듣지 말고 오로지 부처님에게 경배하라는 듯한 내용의 그림조각이 마련되어 있다. (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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