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부활 이야기/빈 무덤

예수님의 무덤 진실게임

정준극 2008. 10. 7. 18:05

예수님의 무덤 진실게임 (Jesus: Empty Tomb)


필자는 예수님의 무덤에 대한 글을 정리하면서 이 글을 본인의 블록에 공연히 올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기본적으로 믿음이란 의심이 많으면 안되는 것이다. 궁금하고 의심이 난다고 해서 다시 따져볼 필요는 없다. 믿음이란 믿음 자체로서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 정리한 글들은 읽는 분들의 믿음에 혼란을 주려는 생각이 추호도 없음을 우선 밝힌다. 그저 한낱 사족과 같은 참고자료일 뿐이다.

 

예루살렘 성묘교회에 있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와 십자가 아래에 있던 여인들의 모습

 

[동산의 무덤은 임시무덤?]

 

신약성서의 공관(共觀)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무덤에 장사지낸 얘기가 나온다. 공관이라는 뜻은 서로 보는 견지가 같다는 뜻이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말한다. 하지만 공관복음서라고 해도 저자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예수님의 무덤과 관련하여서는 어떤 점들이 다른지 살펴보았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을 십자가가 있던 곳에서 가까운 동산의 무덤에 장사지냈다는 설명이 나오지만 그 동산무덤을 임시무덤으로 사용한 것인지, 또는 영구 무덤으로 생각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예수님은 진짜 어디에 묻히셨던 것일까?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후 부활하실 때까지 사흘 동안 어디에서 무얼 하셨을까?  궁금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에 대하여는 사람에 따라, 학자에 따라 주장이 다르다. 이제 그 주장들을 추적해본다. 말할 나위도 없이 이런 주장들은 한낱 참고자료에 불과할 뿐, 그 이상의,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선 ‘예수님의 실제 무덤은 어디였을까?’라는 궁금증부터 살펴본다.


예루살렘 성묘교회 전경


사도행전 13장 28-29절: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어떤 무덤에 두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누가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는지도 알수 없다. 또 ‘무덤에 두었으나’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두었다’는 것은 잠시 동안 둔다는 뜻으로 해석할수 있다. 그러면 진짜 무덤은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사도행전을 쓴 바울은 회심이후 예수님을 추종하던 사람들을 만나서 여러 얘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베드로도 만났고 야고보도 만나서 함께 지냈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예수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장사 지낸 이야기, 부활하신 이야기, 승천하신 이야기들을 소상하게 들었을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생전에 예수님의 주위에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사람들,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 지낸 일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 고작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뿐인 것은 어떻게 이해할수 있을 것인가? 십자가가 아니라 나무라고 간단히 설명한 것은 또 무슨 연유에서일까?

 

부활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실 때에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은 거의 모두 자기들에게도 해가 미칠까 두려워서 자취를 감추었다. 심지어 가장 믿었던 제자인 베드로마저 십자가의 곁에는 없었다. 만일 베드로가 십자가의 곁에 있었다면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십자가의 곁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글로바의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그리고 요한이 있었다고 한다(마태복음 27장 56절). 아리마대의 요셉이란 사람은 날이 저물어서야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다(마태복음 27장 57절). 그러므로 아리마대의 요셉은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실 때에 십자가 곁에 없었다. 결국, 십자가의 곁에는 슬픔에 젖어 애통하는 여인들만 있었으며 남자는 요한이 유일하게 있었다. 그러면 누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내려 무덤에 두었는가? 여인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한이 혼자서 그런 일을 감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로마 병사들이 그랬을까? 로마 병사들은 그런 일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힘들어 쓰러지시자 길가에 있던 사람을 강제로 끌어내어 십자가를 대신 지도록 했다.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는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십자가에서 내려 장사지내는 일을 도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설에 의하면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친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우선 적당히 임시무덤에 두었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증오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정식으로 장사 지내지 않고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예수님의 시체에 세마포 수의를 입혀 드렸다는 것인가? 또 예수님의 머리에도 수건(수다리움)을 둘렀다고 되어 있는데 누가 그런 작업을 하였다는 것인가? 여인들은 아닐 것이다. 요한도 아닐 것이다. 유일한 설명은 마가복음 15장에 나와 있다.

 

동산무덤 안의 예수님 묘지였다는 장소. 옛날부터 있었다는 근거는 없고 대신에 근자에 관광용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얘기가 있다.

 

마가복음 15장 46절에는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리마대 요셉은 생활이 넉넉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떤 복음서에는 부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리마대의 요셉은 공회의 위원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 지체 높은 사람이 죄인으로 십자가에 처형을 받은 예수를 손수 챙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사서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렸다고 추측할수 있다. 만일 그랬다면 누가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렸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풀수 있다. 하지만 어디에 묻었는가라는 궁금증은 여전히 남는다. 마가복음의 기록에는 단순히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었다고 되어 있다. 누구의 무덤이라는 설명은 없다. 왜 누구의 무덤이라는 기록을 하지 않았을까?


예수의 시신을 누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장소. 바위이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시체를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22장 51-53절에 보면 “51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하여 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렸다는 것을 증거하였다. 하지만 마가복음과 마찬가지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두었다고만 기록하였다. 누가복음의 저자도 예수님을 정확히 어디에 장사지냈는지 모른다는 것인가?  마태복음에는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힌트가 있다.


골고다 서북방 약 80 미터 지점에 있는 예수의 무덤이라는 곳


마태복음 27장 59-60절에는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넣어 둔 무덤은 아리마대의 요셉이란 사람이 자기가 죽은 후에 쓰려고 바위에 새로 판 무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넣어 두었다’는 표현이 마음에 걸린다. 이 말은 사도행전의 ‘무덤에 두었으나’라는 표현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 단순히 잠시 동안 두었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할수 없다. 왜 온전한 장사를 지냈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다른 성경구절을 보면 안식일이 시작되는 저녁이 가까워오므로 시간이 없어서 예수님의 시체를 임시로 바위 무덤에 두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그러면 예수님의 시체를 잠시 두었다가 정식으로 장사지낸 곳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 곳이 있기는 있는 것인가? 정식으로 장사를 지내긴 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언제 그랬다는 것인가? 안식일 기간 중에는 그런 일을 할수 없다. 그렇다면 임시로 장사지낸 상태로 있었다고 밖에 생각할수 없다. 마태복음의 이 말씀과 이사야 53장 9절의 말씀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것보다도 안식일이 지나서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가보니 이미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실상 다른 장소에 정식으로 장사 지냈다는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사야 53정 9절에는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그’라는 것은 물론 예수님을 일컫는 말이다. 예수님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또 예수님이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리마대 요셉이 부자이기 때문에 그가 사용하려 했던 무덤에 있게 된 것을 부자와 함께 있었다고 표현한 것인가? 사실, 당시의 유태인으로서 자기가 죽으면 장사지낼 무덤을 미리 파놓을 정도라면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선지자 이사야는 그의 예언을 통하여 예수님이 묻힌 장소를 암시하였다. 


예수의 무덤이라는 곳의 입구. 누가복음 24장 6절에 나오는 천사의 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He is not here - For He is risen)라는 글이 적혀 있다.


한편,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표현인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이라는 것은 ‘아직 아무도 타본 적이 없는 나귀’라는 내용과 무언가 상통하는바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관심을 갖게 해준다. 누가복음 19장 30절에는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는 기록에 있다. 예수님께서는 본인이 아직 아무도 장사지낸 일이 없는 새 무덤에 묻힐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계셨다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아직 아무도 타본 일이 없는 나귀에 앉아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아직 아무도 장사 지낸 일이 없는 무덤에 묻히신 것은 사무엘의 말씀을 상고케 하는 것이다. 구약성서 사무엘상 6장 7절에는 “멍에를 메어보지 아니한 젖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아직 멍에를 매지 아니한 소에 얹어 이끌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내가 새 계명을 주니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사무엘이 말한 언약궤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일까? 구약시대의 성궤는 두명의 천사가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서 두명의 천사를 보았다는 것은 성궤를 지키는 두명의 천사가 있다는 표현과 우연의 일치인가?


4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을 장사 지낸 것과 관련하여 새로운 사실이 추가되어 있다. 요한복음 19장 41-42절을 보면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날은 유태인의 준비일이여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라는 기록이 있다. 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옆에 있던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어머니인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하였던 것이다. 그런 요한인데 만일 예수님을 아리마대의 요셉의 무덤에 장사 지냈다면 그렇다고 기록하였을 것이다. 아리마대 요셉이란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지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많은 도마에게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요한은 예수님의 시체를 시간이 없어서 동산에 있는 (어떤 무덤 같은 곳에) 임시로 두었다고 말하고 있다. 임시로 급히 동산에 둔 것은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유태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때부터 시작하여 토요일 해질 때까지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기본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죽은 자를 장사 지내는 일과 같은 것은 안식일에 금기사항이다. 예수님이 운명하신 시각이 금요일 오후 늦게였으므로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서 임시로 장사 지낸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사항이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가 안식일 중에는 무덤을 방문하지 못하고 안식일이 끝난후 첫날이 되는 새벽에, 즉 일요일 새벽에 ‘동산'에 예수님의 시체를 임시로 둔 무덤을 찾아가보았던 것이며 가서 보니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묘교회 내의 예수 무덤이 있었다는 장소.


막달라 마리아는 처음에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막달라 마리아는 동산지기가 이미 예수님의 시체를 임시장소에서 옮겨 다른 곳에 있는 영구 무덤에 가져다 놓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건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요한복음 20장 2절에 이러한 상황이 설명되어 있다. 기록된바 “(막달라 마리아가)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고 말하였다. 왜 모른다는 말인가? 임시 무덤에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을 둔 곳을 보았다(마가복음 15장 47절). 그런데 일요일 새벽에 가서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누가 일요일 아주 이른 아침에 (또는 안식일 중에)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믿었던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동산지기라고 믿은 사람과의 대화 내용은 요한복음 20장 15절에 구체적으로 나온다. 기록된바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라고 되어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잘못 알고 예수님의 시체를 정식으로 장사지냈거든 어디에 시체를 두었는지 제발 알려 달라고 간청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막달라 마리아의 말에는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서 정식으로 장사를 지내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이상의 기록으로 보아 예수님의 시체는 안식일 때문에 동산의 어디에 임시로 두었으나 안식일이 지나자 동산을 지키는 동산지기가  다른 무덤으로 옮겼다고 생각할수 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묘교회 내에 새단장된 예수의 무덤. 2017년 3월. 성묘교회를 분할 운영하는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그리고 성지 관리부서 등이 연합하여 재건을 담당했다.


예수님을 못 박았던 유태인들은 예수님이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내둘렀다. 예수님의 시체를 놓아 둔 무덤의 앞에는 경비병을 두어 무덤을 지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보고를 받자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인 것을 기회로 몰래 시체를 훔쳐가지 않았나?’라고 즉각적으로 생각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태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도둑질 했다는 명분을 고안해 낸 것이다. 유태인으로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큰 죄악이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사태를 돌리려 했던 것으로 생각할수 있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일은 원인이 어디에 있던 예수님을 참소하여 죽게 만든 대제사장과 장로들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제자들이 안식일 밤에 시체를 훔쳐갔다면 대제사장의 경비병들은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성묘교회 내의 예수 무덤 안에 그려진 부활 예수


대제사장은 경비하던 군인들에게 돈을 주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말하라고 했다. 한스 폰 캄펜하우젠(Hans von Campenhausen)이란 학자는 그때의 유태인들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유태인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동산지기(Gardener)가 예수님의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았느냐고 의심하자 말을 바꾸어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서 다른 곳에 두고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그런 얘기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다. 폰 캄펜하우젠은 유태인들은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무덤 지키는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초대 기독교의 전도자들이 덧붙인 얘기로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갔다는 비난을 반박하기 위해 썼다는 것이다. 동산지기가 예수님의 시체를 옮겼다는 주장은 여러 반응을 불러 일으켰지만 누구도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추적을 하지 않았다. 물론 동산지기에 대한 얘기는 수세기 동안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비공식 기록에 나오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없었다. 과연 요한은 왜 요한복음에 동산지기에 대한 얘기를 썼을까? 무엇을 설명코자 했던 것일까?


동산에 있는 무덤에 우선 예수님의 시체를 두었다는 요한의 기록이 어떤 변명적인 수단이라면 요한은 변명하는데 서투른 사람이 아닐수 없다. 동산지기가 아무것도 모르고 예수님의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면, 다시 말하여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의 시체가 동산에 없다면 막달라 마리아로서 그 사실을 조금이라도 의심할 필요가 있었을까?  

 

예루살렘 인근에는 예수의 무덤처럼 둥근 돌로 문을 막게 되어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부활절 지키기

 

부활절 날짜를 지정하는 규칙은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 신앙을 성문화하고자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됐다. 당시 부활절은 춘분이 지난후 첫번째로 맞이하는 보름 후의 첫번째 주일을 부활주일로 지키기로 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율리우스력을 따르는 등 몇몇 기독교 종파들이 다른 달력을 사용하고 동방 정교회는 일주일 뒤 부활절을 지내는 전통이 있어 전 세계에서 부활절은 각기 다른 날짜에 기념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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