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오페라/시작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정준극 2009. 3. 14. 00:54

한국의 오페라 -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 공연된 오페라는 외국오페라단에 의한 것이었다. 일제 강점 시기인 1940년 10월 경성 부민관(현 서울 태평로 소재)에서 일본 후지와라(藤原)가극단이 내한하여 공연한 ‘카르멘’이었다. 오케스트라는 만주 하얼빈교향악단이 맡았다. 우리나라 음악인들에 의한 최초의 오페라 공연은 해방후인 1948년 1월 16일 이인선(李寅善)이 주도한 조선오페라협회가 당시 명동 시공관의 무대에 올린 ‘라 트라비아타’였다. 비올레타는 소프라노 김자경(金慈璟)과 마금희(馬今喜), 알프레도는 테너 이인선(李寅善)과 옥인걸(玉仁傑), 제르몽은 베이스 황병덕(黃炳德)과 오현명(吳鉉明)이 맡았다. 이인선은 세브란스 의사였지만 테너로서 유명했으며 그의 동생은 역시 음악을 전공한 이유선(李宥善)이었다. 그러므로 1948년은 우리나라 오페라의 원년이며 1998년은 우리나라 오페라 연혁 반세기를 기록하는 해였고 2008년은 한국오페라6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60여년전 조선오페라협회가 한국인에 의한 첫 오페라를 공연한 때에 비하여 현재의 모습은 어떠한가? 2009년 현재 전국에 1백개 이상의 오페라단이 간판을 내걸고 있으며 갈라의 형태까지 포함하여 매년 120-130여회의 오페라가 공연되고 있다. 1년에 오페라에 출연하는 인원만 해도 성악전문가 1천여명에 이른다. 오페라 전용극장으로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하여 대구오페라하우스, 성남아트센터 등이 활용되고 있고 소극장에서도 챔버오페라 스타일의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다.

 

 경북오페라단의 '코지 판 투테' (2007)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 작곡가에 의한 최초의 오페라는 어떤 것일까? 한형석(1910-1996)이 작곡한 '아리랑'이라고 한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초연되지 못하고 중국 시안(西安)의 양부위청년당(실험극장)에서 1940년 5월 22일 초연되었지만 한국인이 작곡한 최초의 오페라라고 간주할수 있다. 독립운동을 고취하는 오페라였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공연된 창작오페라는 1950년 5월 20-29일 부민관에서 서울오페라단 창단기념으로 현제명의 '춘향뎐'을 공연한 것이었다. 이도령에는 이인범과 이상춘, 춘향에는 이관옥과 김혜란, 월매에는 이정희, 변학도에는 김학근과 오현명이 출연한 것이었다. '춘향전'은 장일남이 작곡한 것도 있다. 1966년 초연되었다.

 

1940년 3월 중국 시안에서 초연된 한형석의 '아리랑' 포스터

                    

국내에서 오페라가 공연되는 형태를 살펴보면 몇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전문 오페라단이 공연하는 경우이다. 국립오페라단, 서울시립오페라단, 김자경오페라단 등 오페라전문의 단체가 공연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문오페라단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단체들이 약1백개 이상이나 된다. 둘째의 경우는 외국 오페라단을 초청하여 오페라를 공연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외국으로부터 오페라 출연진 모두와 오케스트라를 초청하여 오페라를 공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대부분 몇몇 주역 출연자만 초청하여 공연하거나 또는 연출가나 지휘자를 초청하여 국제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경우이다. 셋째는 오페라단이 아닌 단체가 오페라를 공연하는 경우이다. 주로 문화예술회관들이 직접 오페라를 기획하여 공연하는 경우이다. 예술의 전당은 국립오페라단과는 별도로 오페라를 자체 제작하여 공연하기도 한다. 이밖에 일반문화재단에 의한 오페라 공연도 더러 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음악제에서 오페라가 공연되는 경우도 이에 속한다.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윤이상의 ‘류퉁의 꿈’이 공연된 것은 그러한 경우이다. 넷째는 합창단 등 음악단체들이 오페라를 공연하는 경우이다. 부천필코러스라는 합창단이 ‘라 트라비아타’, ‘메리 위도우’등을 공연한 것은 좋은 예이다. 대전시립합창단도 창작오페라인 ‘실크로드’를 공연하였다. 하지만 주역급, 또는 연출 등을 책임 맡은 사람은 외부에서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 각 오페라단에 소속되어 있는 오페라 연출가들은 극히 소수이며 대부분 오페라단에서는 공연 때마다 연출가를 모셔오기에 바쁘다.

 

이곳저곳에서 오페라 연출을 맡아하던 오페라연출가들이 이력이 붙어 자신들이 직접 오페라단을 설립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아직도 전문 오페라 연출가의 불모지대이다. 다섯째는 음악대학들이 오페라를 공연하는 경우이다. 대부분 음악대학들은 1년에 한번, 또는 2년에 한번씩 학생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연출 등은 주로 성악전공의 지도교수가 담당하며 오케스트라는 음대오케스트라가 맡는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기 어려운 대학에서는 외부로부터 단원들을 구해오고 지휘자를 초청해서 임시로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기도 한다. 다만, 대구 계명대학교는 상설오페라단을 유지하고 있으며 전용 무대도 마련되어 있다. 여섯 번째는 종교단체들이 종교내용의 오페라를 공연하는 경우이다. 대구지역의 가톨릭신부가 주도한 푸른평화오페라단이 ‘아씨시의 프란치스꼬’를 무대에 올린 것과 불교오페라단을 지향하는 바라오페라단이 ‘야수다라와 아난다의 고백’을 공연한 것은 좋은 예이다.

 

광주오페라단의 창작음악극 '김치' 공연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어떤 오페라들이 공연되고 있는가? 가장 많이 공연되는 것은 유럽의 정통 오페라들이다. ‘나비부인’ ‘라 트라비아타’ ‘라 보엠’ ‘마술피리’ ‘피가로의 결혼’ ‘카르멘’ '여자는 다 그래' '사랑의 묘약'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인기 오페라들을 무대에 올리면 대부분 손해는 보지 않는다. 하기야 잘 알려진 오페라를 자주 공연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현대 오페라도 비교적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셈이다. 실험무대 겸 실적무대라고 할수 있다.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 메노티의 ‘영매’, 호이비의 ‘스카프’, 스트라빈스키의 ‘요리사 마브라’등은 좋은 예이다. 이 경우에는 관객들의 반응이나 입장료 수입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하다. 셋째는 한국 작곡가에 의한 창작 오페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창작오페라의 공연이 상당히 활발해 졌다. 게다가 젊은 작곡가들이 의욕을 가지고 창작오페라를 내놓고 있어서 우리나라 창작 오페라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의 활동을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민관 합동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소재로서 오페라를 작곡한 경우도 있다. 아마 외국인에 의한 첫 창작오페라는 1947년 일본의 다카기 토우로쿠(高木 東六)가 작곡한 ‘춘향’일 것이다. 이 작품은 해방후 재일동포들이 모금하여 작곡을 의뢰한 것으로 1948년 11월 일본에서 공연되었다. 공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성곡오페라단은 이순신장군을 주제로 한 오페라를 여러 외국인들에게 작곡을 의뢰하여 1998년부터 2005년에 이르기까지 오페라 ‘이순신’을 전국 각지의 무대에 올렸다. 작곡자는 N. Lucolano, G. Mazzuca, N. Samale, A. Vladislav, V. Dimitry 등이었다.

 

 서울시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 공연 포스터 (2008). 우리나라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중 하나.


우리나라 오페라 공연과 오페라단의 운영에 대하여는 사실 문제점들이 많다. 전통적인(고질적인) 문제점과 새로운 문제점들로 구분할수 있다. 최근 들어서 난립했다고 말할 정도로 오페라단들이 많이 설립된 배경은 무엇인가? 정부로부터, 또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무조건 오페라단을 설립하는 경우가 다분히 있다는 설명이다. 지방자치단체들로서는 자기지방이 문화예술에 낙후된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아서 자체 오페라단 등 예술단체의 설립을 열심히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막대한 공공예산을 들여서 경쟁적으로 첨단 문화예술회관을 짓는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비롯하여 합창단, 오페라단 등을 소속으로 설립한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특히 오페라 문화의 창달을 위해서는 가히 찬사를 받아 마땅한 처사들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생긴 오페라단의 질적 수준까지도 높이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어떤 지방자치단체는 급기야 예산만 사용하고 실적이 없는 지방오페라단에 대하여 폐쇄를 결정하기까지 했다. 다음으로의 문제는 레퍼토리의 중복이다. 너도 나도 ‘나비부인’과 ‘라 트라비아타’와 ‘라 보엠’을 공연한다. ‘사랑의 묘약’이나 ‘팔리아치’, 또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여자는 다 그래'는 대학오페라의 단골 메뉴이다. 그러다보니 연출에 따라 작품의 내용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다. 무릇 모든 오페라는 작곡가의 의중을 중요시하여 공연되어야 한다. 연출자들이 자기들 편리한대로 마음대로 내용을 바꾸어서 공연하면 곤란한 일이다.

 

되도록 돈을 적게 들이고 오페라를 제작하려는 것은 정말 문제이다. 무대장치, 의상, 조명, 오케스트라에 대한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가상하지만 그렇다고 기본적인 무대장치마저 생략한다면 문제이다. 오페라는 눈으로 보는 것이다. 무대장치가 중요하다. 현대적 무대를 만든다는 명분아래 무대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출연자에 대한 출연료(개런티)도 고질적인 문제이다. 웬만한 오페라단의 경우, 주역으로 출연코자 하면 출연료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후원금을 내야할 판이다. 신인들로서는 오페라에 출연토록 해준것만 해도 감지덕지하라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신인들은 이러이러한 오페라에 주역 출연했다는 이력 한줄을 쓰기 위해 출혈을 감수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나라에 오페라 공연 전문 성악가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경우에 대학교수들이 오페라 경력을 앞세워 출연한다. 그러므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레슨해야 하는 입장에서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다. 연습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반대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소홀하게 된다. 앞으로 언젠가는 교수는 교수, 오페라 성악가는 오페라 성악가로서 분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상당수 오페라단들이 재정적으로 자립하고 있지 못한 것도 큰 문제이다. 어떤 오페라단은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오페라단들은 운영의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오페라에 대한 열정만 가지고 시작한 것 같다. 그러니 마케팅이 제대로 될리가 없다. 출연자들이 (심지어 합창단원 포함) 열심히 표를 소비해야 한다. 출연료를 티켓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재정적으로 자립하는 것은 오페라단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한국의 오페라단과 오페라공연은 수많은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어둡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뭐니뭐니해도 열의 만큼은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세계 속의 한국 오페라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힘찬 노력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보라! 1년에 음대라는 간판이 붙은 대학교를 졸업하는 성악도들이 얼마나 되는지! 수백명이다. 그리고 수많은 학생들이 외국으로 유학의 길을 떠난다. 한국에서 배운 것은 거의 백지로 돌리고 떠난다. 그들은 외국에 가서(주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공부하고 돌아온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와서 설 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정부는 정책적으로 국내 오페란단체들을 후원하여 되도록이면 많은 오페라를 무대에 올려 젊은 성악도들의 몇년에 걸친 공부가 헛되지 않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 

 

 전북오페라단의 시극 '만인보' (시인 고은씨의 생애 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