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오페라/한국의 오페라

창작오페라 소고(小考) - 1

정준극 2009. 3. 14. 11:59

창작오페라 소고(小考) - 1


세상의 오페라 중에서 어느 것은 창작 오페라가 아니겠느냐마는 우리나라에서 '창작오페라'라는 말은 어느새 우리나라 작곡가에 의한 우리나라 소재의 작품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만일 외국 작곡가가 비록 우리나라의 소재를 가지고 오페라를 작곡했다고 해도 창작오페라로 보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작곡가가 작곡한 오페라이지만 줄거리가 우리나라의 것이 아닌 외국적인 것이라고 하면 창작오페라라고 보기가 어렵다. 진은숙(Unsuk Chin: 1961-)이라는 분이 독일에서 '이상한 나라의 알리스'(Alice in Wonderland)라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2007년 뮌헨오페라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다. 아무리 한국 오리진의 작곡가이지만 '이상한 나라의 알리스'를 창작오페라의 범주에 넣기는 어렵다. 윤이상(Isang Yun: 1917-1995)이 독일에서 1972년에 뮌헨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심청'(Sim Tjong)이라는 오페라를 만들었다. 독일어 대본이다. 아무리 우리나라 전래 민화를 소재로 하고 한국계의 작곡가가 작곡했다고 해도 창작오페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독일은 윤이상의 오페라를 독일의 오페라라고 간주한다.

 

현제명의 '춘향전'은 우리나라 창작 오페라의 효시라고 할수 있다.

 

몇가지 예외가 있다. 대한공론사(코리어 헤랄드)에서 오래동안 활동하였던 제임스 웨이드(James Wade: 1930-1983)가 재미작가 리챠드 김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작곡한 ‘순교자’(The Martyred)는 창작오페라인가 아닌가? 웨이드씨는 우리나라에 오래 체류하면서 활동했기 때문에 거의 한국인이나 다름없는 분이다. 우리나라 작곡가로 간주해도 크게 틀린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순교자'는 창작오페라의 범주에 들어가도 무리가 없다. 더구나 내용도 6.25 사변에 대한 것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다. 프랭크 마우스(Frank Maus)라는 분이 오페라 ‘하멜과 산홍’을 작곡했다. 이 오페라는 2004년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립오페라단이 공연했다. 조선 효종시대에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랜드의 하멜과 제주도의 명기 산홍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멜과 산홍’은 비록 외국인이 작곡했지만 창작오페라로 간주함이 바람직하다. 해방후인 1947년,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들이 우리나라가 해방된 것을 기뻐하여 한국적인 오페라를 만들어 공연키로 했다. 재일동포들은 돈을 모아 우선을 일본에 있는 한국 작곡가에게 의뢰를 하려고 했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할수 없이 일본인 작곡가인 다카끼 도로쿠(高木 東六)에게 ‘춘향전’의 작곡을 의뢰했다. 다카끼가 작곡한 오페라 ‘춘향전’은 이듬해인 1948년 10월 동경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가 창작오페라인가 아닌가? 물론 아니다. 대사가 일본어로 되어 있다. 기왕에 춘향전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춘향전'을 소재로 한 지금까지의 오페라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우리나라 창작오페라들이 가장 자주 소재로 삼은 것이기 때문이다.

 

- 오페라 '춘향전'. 현제명. 1949

- 오페라 '춘향전'. 장일남. 1966

- 오페라 '춘향전'. 박준상. 1986

- 뮤지컬 '대춘향전'. 김희조. 1968

- 신창악오페라 '춘향전'. 김동진. 1993

 

북한에서도 이면상이란 사람이 1948년에 가극 '춘향전'을 내놓은바 있다. 북한에서는 평양예술단이 1988년에 민족가극 '춘향전'이란 것을 발표했는데 그것은 집체작이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방 후에 일본에서 다카끼 도로쿠가 1947년에 일본어로 된 '춘향전'을 내놓은 것이 있다.

 

오페라 '춘향전'의 피날레 장면.

                        

번안오페라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박과장의 결혼작전’이라는 것이다. 1999년 12월 빛소리오페라단이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했다. 원작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다. 번안오페라이기 때문에 피가로를 박과장으로, 백작부인을 사모님으로, 수잔나를 미스 심(沈)으로 바꾸어 놓았다. 예울음악무대가 2003년 3월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복덕방 왕사장’이라는 작품도 번안오페라이다. 원작은 파사티에리의 ‘시뇨르 델루소’(Signor Deluso)이다. 주인공 델루소를 왕사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타이틀과 출연자들의 이름이 한국이름 이라고 해서 이들을 창작오페라로 볼수는 없다. 코리아체임버오페라단은 2005년 7월 국립극장에서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오페레타를 공연했다. 원작은 프란츠 레하르의 ‘웃음의 나라’(Das Land des Lächelns)이다. 유럽의 귀족여인이 중국 황태자와 결혼하여 중국에 갔지만 모든 것이 생소하여 끝내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코리아체임버오페라단은 무대를 중국이 아니라 한국으로 바꾸어 놓았다. 귀족여인의 이름은 그대로 리자(Lisa)이지만 중국의 황태자는 태인이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바꾸었다. 비록 타이틀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이고 주인공들이 한국인이지만 오리지널은 레하르의 오페레타이므로 창작오페라가 될수 없다.

 

로얄오페라단은 2002년 10월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달구벌 중개사’라는 오페라를 공연했다. 원작은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이다. 피가로는 부동산 중개사, 백작은 부장검사, 수잔나는 간호원, 바르톨로메는 의사 등으로 바꾸었다. 예울음악무대는 2013년 4월에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다래와 달수, '오페라연습'이라는 제목의 번안오페라들을 무대에 올렸다. '다래와 달수'는 모차르트의 '바스티엔과 바스티엔느'를 번안한 것이며 '오페라연습'은 독일의 알베르트 로르칭이 작곡한 Opernprobe(오페라 연습)을 번안한 것이다. '김중달의 유언'이라는 작품은 푸치니의 '자니 스키키'를 번안한 것이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섬진강 나루'는 영국의 벤자민 브리튼의 '컬류 리버'(Curlew River)를 번안한 것이다. 이러한 번안오페라에 대하여는 찬반이 있다. 관객의 쉬운 이해를 위해 번안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 아무리 소재가 한국의 것이 아니더라도 창작오페라로 간주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이철웅 작곡의 ‘아씨시의 프란치스꼬’이다. 이탈리아의 성자 프란치스꼬를 주인공으로 삼은 종교오페라이다. 2006년 2월 푸른평화오페라단이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이 제작한 번안오페라 '섬진강 나루'. 벤자민 브리튼의 '컬류 리버'를 번안한 것이지만 우리나라 판소리의 아름다움도 살린 작품이다. 2013년 3월 국립극장에서 열린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에서 선을 보였다.


창작의 상대어는 표절이다. 표절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작곡가가 이미 작곡해 놓은 작품 중에서 일부를 가져와 마치 자기가 작곡한 것처럼 해 놓는 것이 표절이다. 하지만 여러 작곡가들의 여러 작품 중에서 여러 부분을 가져와 이들을 종합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은 멋도 모르고 이를 창작이라고 부른다. 마치 과학계에서 이를 ‘연구(Research)’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첫 창작오페라는 어떤 작품인가? 부산출신의 한유한(한형석)이라는 분이 1937년에 내놓은 ‘리나’와 1940년에 중국 시안(西安)에서 발표한 ‘아리랑’으로 보아야한다는 주장이 있기는 있다. ‘리나’는 스토리가 나라를 잃은 폴란드의 노음악가에 대한 것이다. ‘아리랑’은 만주에서의 항일운동을 그린 것이다. 이 두 오페라는 중국에서 공연되었다. 대본은 중국어와 한국어로 되어 있지만 한국어 공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안에서의 '아리랑' 초연에는 장개석도 참석했다고 한다. 한유한은 중국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활약한 분이다. 어쨌든 한유한의 ‘리나’와 ‘아리랑’은 우리나라의 첫 창작오페라라고 간주하기가 어렵다는 주장들이다. 해방 전에 우리말과 우리예술을 지키자는 뜻에서 잠시 생산된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견우직녀’ ‘콩쥐팥쥐’ ‘은하수’와 같은 우리 민담을 소재로 안기영(安基永: 1900-1980)이 곡을 붙인 음악극도 있다. 이 음악극을 당시에는 오페라라고 부르지 않고 순수하게 가극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들을 창작오페라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음악평론가 박용구(朴容九)선생께서 지칭한대로 ‘향토가극’이다. 작곡가 안기영은 한때 조선 제일의 테너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재능의 음악가였지만 월북하였다.

 

한유한(한형석)

                     

우리나라 창작오페라의 정식 시초는 1949년 현제명(1902-1960)이 완성한 ‘춘향전’(또는 대춘향전)이라고 보는 측이 많다. 현제명의 ‘춘향전’은 6.25사변이 나기 직전인 1950년 5월 서울 부민관(현재의 서울시의회 회관)에서 초연되었다. 현제명은 1958년에 오페라 ‘왕자 호동’을 내놓아 다시한번 우리나라 창작오페라의 기틀을 다졌다. 이후 수많은 창작오페라가 우리나라 오페라무대를 장식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창작오페라는 재미가 없다는 얘기들이다. 정통 유럽 오페라에 비하여 스토리가 드라마틱하지 못하고 아리아와 합창에 있어서도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중평이다. 그래서인지 창작오페라에는 관객이 많이 오지 않는다. 제발 와서 자리를 빛내 달라고 초대장을 보냈는데도 그 시간에 골프나 치겠다는 생각으로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창작오페라는 인기 있는 대형 오페라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초연이 최종공연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창작오페라들, 예를 들면 현제명의 ‘춘향전’, 이건용의 ‘봄봄’, 이영조의 ‘황진이’, 홍연택의 ‘시집가는 날’ 등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 되어 명색을 유지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 창작오페라가 흥행에 성공하고 정통 유럽의 오페라에 비하여 손색없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의 오페라계가 풀어야할 또 하나의 숙제이다. [88서울올림픽 등을 기념하여 미국의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인 지안 카를로 메노티가 '시집가는 날'의 음악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오페라가 있다는 기록뿐이지 제대로 공연되고 있지 않아서 섭섭하다.]

 

근자에 국립오페라단이 창작팩토리(Factory)사업에 의해 국내 유망 작곡가에 의한 창작 오페라를 계속 선보이고 있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실제로 2011년 10월에는 김지영 작곡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박지운 작곡의 '도시연가'가 서울과 대구에서 무대에 올려졌다. 문제는 이들 오페라를 어떻게 국제화하는냐는 것이다. 비엔나의 슈타츠오퍼 또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될수 있도록 마케팅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외국에서도 그런대로 환영을 받지 않았던가! 중국의 창작오페라인 '뮬란', 또는 일본의 창작오페라인 '겐지모노가타리'는 외국에서도 관심을 끌고 공연되었다. 우리나라 오페라 작곡가들의 해외활동도 적극 후원되어야 한다. 중국 출신의 탄 던이나 브라이트 솅이 근자에 명성을 높이고 있는 것을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지영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한 장면. (Credit: Int'l Business Times)

 

2011년에 국립창극단이 주관하여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를 무대에 올린 것은 획기적인 사항이었다.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는 독일의 여러 극장에서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영어 제목으로는 Mr Rabbit and the Dragon King 으로 되어 있다. 어찌보면 한국적인 오페라가 갈 길을 제시해 준 작품이라고 볼수 있다.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의 한 장면. 2011.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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