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 이야기/마리아의 어머니 안나

안나는 누구?

정준극 2009. 8. 20. 22:24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

 

오스트라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성모마리아의 어머니인 성안나를 다른 성인들보다도 더 숭배하고 있다. 그래서 성안나에게 봉헌된 교회가 많으며 성안나를 수호성인으로 받드는 교회도 많다. 비엔나의 안나가쎄에 있는 성안나교회는 대표적이다. 감리교나 장로교와 같은 개신교에서는 마리아의 친정어머니, 즉 예수님의 외할머니가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과 동방교회에서는 마리아의 친정어머니를 마리아와 거의 동격의 성인으로 간주하여 숭배하고 찬양한다. 안나(Anna)는 히브리어로 한나(Hannah)이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이다. 영어의 앤(Ann), 앤느(Anne)등은 모두 같은 어원에서 나온 이름이다. 안나라는 이름은 현재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신약성경의 4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경외서인 야고보복음서에만 나온다. 야고보복음서(Gospel of James)에 의하면 마리아의 어머니는 안나이며 안나의 남편, 즉 마리아의 친정아버지는 요아킴(요아힘: Joachim)으로 직업은 목자였다고 한다. 세례요한의 아버지는 제사장이었고 마리아의 아버지는 목자였다는 것은 무언가 의미있는 내용이다. 안나와 요아킴 두 사람은 결혼한지 몇 년이 되었지만 아이가 없었다고 한다. 어느날 천사가 안나와 요아킴에게 각각 나타나 아이를 가질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마침 요아킴은 멀리 출타중이었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수태소식을 전한 천사는 일반 천사가 아니라 대천사라고 되어 있다. 훗날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 천사가 대천사 가브리엘이었으며(누가 1: 26)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스카랴와 어머니인 엘리사벳에게 나타나 수태고지를 한 천사도 가브리엘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천사로부터 아이를 수태할 것이라는 소리를 들은 안나는 너무나 감사한 나머지 만일 아이를 낳으면 하나님의 종으로서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안나와 요아킴은 결혼하고 나서 예루살렘에 살았다.

 

안나와 요아킴이 천사로부터 각각 수태고지를 받고 있다.  

 

안나는 양떼를 데리고 멀리 출장갔다가 오랫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 요아킴을 예루살렘의 황금문에서 마중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마리아의 부모들이 예루살렘에 살았다는 얘기가 성립된다. 만일 안나가 나사렛에 살았다고 하면 남편이 돌아오는 것을 마중하기 위해 그 먼 예루살렘 성문까지 갔을 리가 없다. 예루살렘의 황금문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안나는 저 멀리서 요아킴이 오는 것을 보고 얼른 나가서 마중하였다. 요아킴도 멀리서부터 안나를 알아보고 바쁜 걸음으로 달려왔다. 요아킴과 안나는 서로 포옹하며 수태소식을 기뻐하였다. 혹자는 안나와 요아킴이 황금문에서 만나 포옹할 때에 수태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천사가 안나와 요아킴에게 수태고지를 한 때에 잉태되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그럴듯하다. 안나의 수태축일은 7월 26일로 지키고 있다. 이렇게 하여 전설인지 사실인지 모르지만, 마리아도 성령으로 잉태함으로서 마리아의 무오(無汚)탄생과 그후 예수님의 무오탄생에 대한 기본을 마련해주었다.

 

어린 마리아를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고 있다.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기 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것 같다.

 

예로부터 화가들은 성모의 일생을 주제로 삼아 많은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에 의하면 성모의 일생은 세가지 획기적인 사건으로 구성된다. 마리아의 탄생, 마리아의 헌정, 마리아의 결혼이다. 이런 주제로 그림을 그릴 때마다 대개는 안나가 함께 등장한다. 안나와 요아킴은 마리아가 세 살 되던 해에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마리아를 예루살렘 제2성전에 들여보내어 제사장을 도와 성전의 일을 보도록 했다. 마리아의 탄생에 대한 스토리는 구약시대 사무엘의 탄생과 비슷한 점이 있다. 사무엘의 어머니의 이름도 한나(Hannah)였다. 안나는 히브리어로 한나이다. 한나도 결혼한지 몇해가 지났지만 아이가 없었다. 그러다가 사무엘을 낳게 되었다. 한나는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어린 사무엘을 성전으로 보냈다. 한나가 어린 사무엘을 성전으로 보내어 제사장을 돕도록 한 것은 안나가 마리아를 성전에 보낸 것과 같다. 안나도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가계에 속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따지고 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같은 집안사람들이다.

 

마리아가 어린시절 봉사했던 예루살렘 성전(헤롯이 지음) 모델

 

초기의 로마 가톨릭은 안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성경에 등장하지 않으며 외경인 야고보복음서에나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12세기부터 기톨릭에서 성모숭배사상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성모의 어머니인 안나에 대하여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한편, 동방교회는 일찍이 6세기부터 안나를 크게 숭배하였다. 동방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안나는 ‘신의 선조’(Forebear of God)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할머니’로서 추앙을 받았다. 동방교회에서는 12대축제에 마리아의 탄생과 마리아의 성전 헌정을 포함하고 있다. 유럽의 성화에는 안나가 붉은 옷을 입고 초록색 만토를 둘렀으며 간혹 손에 책을 든 모습으로 등장한다.

 

한손에는 성경을 들고 있고 다른 한손으로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받들고 있는 안나 

 

어떤 성화에는 안나가 작은 마리아를 품에 안고 있으며 작은 마리아는 어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이 있다. 이처럼 안나-마리아-예수의 세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삼위일체 사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어떤 성화에는 안나-마리아-예수의 세 사람과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그림이 함께 들어 있는 것도 있다. 안나는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는 성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예수님이 할례를 받을 때,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할 때의 그림에는 등장한다. 전설에 의하면, 안나는 아기 예수와 마리아와 요셉이 천사의 지시에 따라 애급으로 피난가자 얼마후에 애급으로 가서 마리아와 합류하여 산후조리도 해주고 살림도 돌봐주면서 지내다가 나중에 다시 나사렛으로 함께 돌아왔다는 것이다. 안나는 예수님의 공생을 그린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보아 안나는 예수님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현대의 성화에서는 안나와 요아킴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대신 간구하는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갈멜파수도원의 안나제단에 있는 안나의 결혼과 요아킴의 자선 장면

 

가톨릭과 동방교회에서는 일찍부터 안나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신학적인 연구를 많이 수행해왔다. 그중에서도 안나의 결혼에 대한 연구는 흥미롭다. 상당수 신학자들은 안나가 요아킴과 결혼하여 평생을 지냈다고 주장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안나가 적어도 두 번, 많게는 세 번 결혼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세 후반기에는 안나가 세 번 결혼했다는 설이 대단한 설득력을 가지고 대두되었다. 안나는 요아킴과의 첫 번 결혼에서 마리아를 낳았고 두 번째는 글로바(Clopas)라는 사람과 재혼하여 역시 마리아라는 딸을 낳았으며(글로바의 마리아) 세 번째는 남편의 이름은 모르지만 살로메(Salomae)라는 딸을 두었다는 것이다. 마가복음 15장 40절을 보면 골고다의 장면을 설명하는 중에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에서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안나의 두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마리아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지만 살로메는 안나가 세 번째 결혼에서 낳은 딸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아무튼 야고보복음서에 의하면 글로바의 마리아와 살로메는 성모 마리아의 동생이 된다.

 


성전에 봉헌되는 어린 마리아(Presentation of Mary). 티티안 작품

 

살로메는 헤롯 안티파스에게 졸라서 세례 요한의 목을 자른 그 살로메가 아니다. 십자가 근처에 있었다는 살로메는 사도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로서 세베대의 부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신학자들이 연구해 낸 또 하나의 얘기는 안나의 언니인 소베(Sobe)가 세례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친족간(이종사촌간)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즉, 예수님의 외할머니는 안나이며 세례 요한의 외할머니는 안나의 언니인 소베라는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나이 차이가 너무 나는 것이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엘리사벳은 여자로서 임신하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고 한다. 거의 40세가 훨씬 지났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직 10대의 소녀로 보고 있다. 당시 유태인 사회에서는 여자가 13세가 넘으면 결혼할수 있었다고 한다.

 

이집트 콥틱교회의 안나 벽화. 스가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안나도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은후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말하지 않는 것이 유행이었던 모양이다.

 

안나의 마리아 출산과 관련하여 4세기에는 안나가 처녀의 몸으로서 마리아를 낳았다는 주장이 있었다. 즉, 요아킴은 이름만 남편이었으며 부부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16세기에도 크게 부각된 일이 있다. 16세기의 신비주의 신학자인 발렌틴 봐이겔(Valentine Weigel)은 안나가 성령의 힘으로 마리아를 잉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1677년 봐이겔의 주장을 일축하고 안나는 마리아를 일반 여인들처럼 출산했다고 교본을 내렸다. 그렇지만 마리아가 원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되었다는 것도 함께 가르쳤다. 마리아가 원죄에서 벗어나 잉태했다는 것을 무오수태(Immaculate Conception)라고 부른다. 한편, 일부 신학자들은 마리아의 무오수태와 처녀출산은 개념이 다른 것이므로 혼돈하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로 로마 가톨릭에서는 마리아의 탄생축일을 9월 8일에 지킨다. 왜 그날인지는 잘 모르겠다.

 

안나가 성모와 아기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조각. 브루고스.

 

가톨릭교회는 안나를 성인으로 삼았다. 기독교의 성인은 신약의 세계에서부터 비롯된다. 미안하지만 구약의 사람들에 대하여는 성인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신약에서 성인으로 인정된 사람들 중에서 가장 고참이 안나이다. 그 다음이 성요셉, 성모마리아, 성엘리사벳, 성세례요한 등이며 그 다음이 성베르도 등 사도들이다. 성안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의 수호성인이다. 사위 요셉이 목수였기 때문에 목수들의 수호성인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인 것도 당연한 사항이다. 이밖에 아마도 말을 타고 애급으로 성가족을 만나러 갔다고 믿어서 말타는 사람들의 수호성인,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할머니가 되므로 할머니들의 수호성인, 애급까지 가서 마리아의 산후조리를 해주고 살림을 보살펴 주었기 때문에 전업주부의 수호성인, 자수 놓는 사람, 이밖에도 임신한 여인, 옷 만드는 사람, 마구간 지키는 사람의 수호성인이다. 성안나는 캐나다, 프랑스, 브리타니, 퀘벡, 푸에르토 리코, 미쉬간, 코네티커트, 산타 안나 푸에블로, 뉴멕시코의 시마(Seama), 뉴멕시코의 타오스(Taos), 스페인, 마르사스칼라(Marsaskala), 필리핀, 브라질의 상파울로 인근지역 등의 수호성인이다.

 

어린 마리아를 성전에 봉헌함. 15세기 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