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 더 알기/엘리사벳과 사가랴

세례요한의 아버지 스가랴

정준극 2009. 8. 23. 18:50

세례요한의 아버지 스가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 스가랴(사가랴)가 분향할 때에 천사가 나타나 엘리사벳의 수태를 고지하는 장면

 

누가복음에 의하면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스가랴(사가랴)는 헤롯대왕 시절에 아비야(Abijah)반열의 유태 제사장이며 바리새인(Pharisee)으로 되어 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의 직분은 아론의 자손들이 순번제로 맡았다. 이는 다윗왕 때로부터 내려오는 관례에 의해서였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는 분향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매일 분향했다. 그러나 제사장 직분을 맡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분향하는 일을 맡는 것은 제사장 직분을 맡은 기간 중에 겨우 한두번 정도밖에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때 제사장의 전례에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주의 사자(천사)가 나타나 사가랴에게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요한이라고 할 것이며 요한은 오래동안 기다리던 메시아(구세주)를 예비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누가 1: 12-17). 이 얘기를 들은 사가랴는 놀라서 자기와 아내 엘리사벳이 이제 늙어서 아이를 가질 입장이 아닌데 어떻게 그 말을 믿겠느냐며 '아이고, 천사님도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라면서 의아해 했다. 그러나 천사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대천사(천사장) 가브리엘임을 밝히고 이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특별히 보내심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사가랴가 믿지 않을 것 같으므로 가브리엘의 말이 이루어질 때까지 말을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때로부터 사가랴는 벙어리 신세가 되었다. 참고로 가브리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람' 또는 '하나님의 메신저'라는 뜻이다. 

 

사가랴가 집에 돌아오자 엘리사벳은 이미 잉태한 상태였다. 성령의 힘으로 잉태하였을 것이다. 엘리사벳이 잉태한지 여섯 달이 지났을 때 사촌인 마리아가 방문하였다. 마리아 역시 대천사 가브리엘의 말에 따라 성령으로 잉태한 직후였다. 사실 말이지만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이 많은 사촌인 엘리사벳도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기간이 되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게 되었고(6월 24일에 태어났다고 함) 8일이 지나자 유태의 관례에 따라 할례를 하러 성전으로 갔다. 가족들과 친지들은 아기에게 관례에 따라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고 하려 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요한이라고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사가랴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사가랴는 글씨 쓰는 판(서판)에 아들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로부터 사가랴는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기 시작했다. 예언의 내용은 누가복음 1: 68-79에 기록되어 있다. 아기 요한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졌으며 하나님의 사역을 정식으로 시작할 때까지 유대 광야에 머물며 준비했다.

 

이탈리아 토리노 수도원의 기도서. 전체면에는 세례요한의 탄생 장면이며 하단에는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이 그려있다.

                                                              

예루살렘 인근의 키드론 골짜기(Kidron Valley)에 야드 아브샬롬(Yad Avshalom)이라는 건축물이 있다. 다윗의 아들인 앗살롬(Avshalom)의 무덤이다. 하지만 학자들의 견해는 달랐다. 건축물 안에 쓰여 있는 글을 보면 사가랴의 무덤이 거의 확실하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2003년에 야드 아브샬롬의 내부에 적혀있는 암호와 같은 글자를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순교자이며 제사장이며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의 무덤’이라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곳이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무덤이라고 확신하였던 것이다. 히브리대학교의 기데온 회르스터(Gideon Foerster)교수는 야드 아브샬롬이라고 알려진 건축물의 안에 적혀 있는 글의 내용은 이미 6세기에 기록된 문서는 주장을 했다.  즉 “사가랴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와 함께 묻혔다‘라는 기록과 같은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바라본 키드론 골짜기. 이곳에 사가랴가 묻혀 있다는 주장이다.

                                 

사가랴는 어떻게 죽었나? 마태복음 23: 35에 보면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니라”라는 기록이 있다. 신학자 오리겐(Origen)은 여기에 나오는 사가랴가 바로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라고 주장했다. 기독교의 경외서에 따르면 사가랴는 헤롯이 동방박사들로부터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과 인근 마을에 있는 두 살 아래의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을 때에 이를 반대하다가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사가랴는 그때 헤롯의 군사들이 태어난지 여섯 달 밖에 되지 않은 아들 요한이 있는 곳을 고하라고 다그치자 요한을 구하기 위해 항거하다가 대신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며 그로부터 요한은 집을 떠나 광야에서 숨어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경외서인 야고보복음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로마가톨릭은 사가랴를 부인인 엘리사벳과 마찬가지로 성인으로 인정하여 9월 23일을 축일로 삼고 있다. 루터교의 성인력(聖人曆)에도 사가랴를 선지자로 존경하여 9월 5일을 사가랴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동방정교회는 9월 5일을 엘리사벳과 함께 사가랴의 축일로 지키고 있다. 동방정교회는 엘리사벳을 족장시대의 부족장과 같은 지위로 보고 기념하고 있다. 정교회의 결혼식에서는 신랑신부에게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이름을 거명하며 이들처럼 흠이 없는 생활을 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정교회에서는 6월 24일을 세례자 요한의 축일로 지키기도 하지만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기념일로 정하고 있기도 하다. 아르메니아교회는 나고르노 카바라크(Nagorno Karabakh)에 있는 간드자사르(Gandzasar)수도원에 사가랴의 유골이 남아 있다고 믿고 있다.

 

간드자사르 수도원의 세례요한 교회에 사가랴의 유골이 간직되어 있다고 한다.

 

이슬람도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역사적 존재를 믿고 있다. 무슬림들은 사가랴를 이슬람 선지자중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영어를 사용하는 무슬림들은 사가랴를 Zakariya라고 적는다. 아랍어의 차카리야와 같은 발음이다. 무슬림들은 사가랴가 알레포(Aleppo)의 대모스크에 매장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세례요한의 유대 이름은 요카난 벤 체카리야(Yochanan ben Zecharyah)이다. 체카리야의 아들 요카난이라는 뜻이다. 사가랴라는 표기는 순전히 한국식이며 요카난을 요한이라고 번역한 것은 마틴 루터가 그리스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시리아 제2의 도시인 알레포. 무슬림들은 가운데 보이는 대모스크에 사가랴가 묻혀 있다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