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 더 알기/헤롯 안티파스는 누구?

헤롯 안티파스와 티베리아스

정준극 2009. 8. 23. 21:30

헤롯 안티파스와 티베리아스

 

안티파스는 유태인들의 반란을 걱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의 권세를 유지하자면 로마제국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로마제국의 환심을 사려면 도로를 닦고 도시를 세우는 것이 중요했다. 안티파스는 아버지 헤롯대왕이 그랬던 것처럼 도시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백성들을 공사에 투입하면 그만큼 불만과 소요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일석이조였다. 안티파스는 우선 파괴된 세포리스를 재건하고 요새화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페레아의 베타람프타(Betharamphtha)에 성벽을 쌓았다. 베타람프타는 나중에 아구스도 황제의 부인인 리비아(Livia)의 이름을 따서 리비아라고 개칭되었으나 리비아가 세상을 떠나자 아구스도 황제의 딸인 율리아스(Julias)의 이름을 따서 율리아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아구스도가 세상을 떠나고 주후 14년에 티베리우스가 로마황제가 되었다. 안티파스는 새로운 황제 티베리오스를 위해 무언가 사업을 벌여야 했다. 그리하여 갈릴리호수 서쪽 연안에 티베리아스(Tiberias)를 건설키로 했다. 티베리우스 황제를 높여서 붙인 도시 이름이었다.

 

티베리아스에서 바라본 갈릴리 바다

 

티베리아스는 부족한 것이 없는 도시였다. 티베리아스의 주민들은 인근 엠마오(Emmaus)의 온천에서 목욕을 즐길수 있었다. 안티파스는 로마인들과 함께 유태인들의 환심도 사야 했다. 제1차 유태-로마 전쟁이 끝난후 티베리아스에는 경기장, 궁전, 기도를 드릴수 있는 성소 등이 들어섰다. 티베리아스는 유태인들의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안티파스는 유태인의 율법에 대하여도 신경을 썼다. 그는 주화를 발행함에 있어서 자기의 얼굴을 넣지 않도록 했다. 대부분 통치자들은 주화에 자기의 초상화를 넣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안티파스는 유태인의 율법에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사항이 있음을 유념하여 자기의 초상화를 주화에 넣지 않았다.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가 주후 26년에 유태 총독으로 부임하여 예루살렘의 헤롯궁에 로마신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자 안티파스는 빌라도에게 간청하여 이를 철거토록 했다. 유태인들은 그러한 안티파스를 나쁘지 않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안티파스가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일이 생겼다.

 

1945년 당시의 티베리아스

 

안티파스는 분봉왕이 되자 나바테아의 아레타스 왕의 딸 파사엘리스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안티파스는 로마를 방문하였을 때 로마에 있는 이복동생 헤롯의 집에 머물면서 헤롯의 부인인 헤로디아스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이복동생 헤롯은 헤롯대왕과 대제사장 시몬의 딸 마리암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헤로디아스는 누군가 하니 헤롯대왕의 손녀로서 헤롯대왕과 하스모네아왕 알렉산드로스의 딸 마리암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알렉산더의 딸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헤로디아스는 안티파스의 조카가 되는 셈이다. 이른바 사랑에 빠진 안티파스와 헤로디아스는 결혼하기 위해 각각 이혼키로 합의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안티파스의 첫째 부인 파사엘리스는 몰래 마케루스까지 갔고 그곳에서부터는 나바테아 군대의 호위를 받아 나바테아로 건너갔다. 나바테아에 온 파사엘리스는 아버지 아레타스에게 안티파스를 징벌해 줄것을 눈물로서 간청하였다. 아레타스 왕은 아무 잘못도 없는 딸을 안티파스가 눈이 멀어 버리려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로써 안티파스와 나바테아의 왕 아레타스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었고 결국 전쟁을 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예수 그리스도. 로기에르 반 데어 봐이덴(Rogier van der Weyden)작품.  

 

그러한 때에 자기의 영토 안에서는 보다 골치아픈 문제가 일어났다. 세례요한이 안티파스와 헤로디아스의 결혼을 부정한 것이라고 소리치며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주후 28-29년이었다. 세례요한은 안티파스의 영토인 페레아의 북단,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외쳤으며 회개하는 사람들에게는 세례를 주었다. 세례요한은 안티파스의 결혼이 모세율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유태인에게 있어서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은 큰 죄악이었다. 안티파스는 세례요한을 미워하지 않을수 없었다. 실제로 안티파스가 세례요한을 증오한 것은 세례요한이 백성들을 충동하여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두려워서 였다고 한다. 안티파스는 세례요한을 체포하고 결국은 목을 베어 처형하였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헤로디아스의 딸(살로메)이 세례요한을 죽여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순교했다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 블로그의 세례요한편을 보면 좋을 것이다.

 

헤롯 안티파스의 놀람. 루카스 크라나흐 작품. 옆에 앉아있는 여인이 헤로디아스이며 세례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들고 있는 여인은 살로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