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이야기/사랑하시는 제자는?

사랑하시는 제자는 누구? - 2

정준극 2009. 9. 25. 10:47

사랑하시는 제자는 누구? - 2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공회의원인 니고데모를 제외하고 예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의 후보에 들어갈 인물은 영순위로서 사도 요한, 두번째가 미지의 제사장, 그 다음이 나사로, 그 다음이 막달라 마리아이다. 이제 한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살펴보자.

 

[예수의 사촌동생인 요한]

세베대의 아들 요한을 예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교회의 오랜 전통이다. 다만, 그 전통이란 것은 성경이 써진지 80 여년이 지난 2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생긴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와는 관련이 멀다. 성경에는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표현이 두어번 나온다. 교회는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요한이 바로 그 제자라고 믿고 그렇게 선전했지만 과연 어떤 요한이냐는 문제에 봉착하면 별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요한이라고 하면 여러 명이 있지만 대표적인 요한은 세베대의 아들이라는 요한, 그리고 에베소교회가 요한의 서신 및 요한계시록을 썼다고 주장하는 장로 요한이 있기 때문이다. 에베소교회는 장로 요한이 나중에 요한복음도 완성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상당수 학자들은 에베소교회의 주장을 존중하여서 2세기경부터 시작된 교회의 전통, 즉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 바로 그 제자라는 사항에 대하여 '아니올시다'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예수께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세베데(Zebedee)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시다.

 

세베대의 아들 요한에 대하여는 몇가지 의문 및 궁금증이 있다. 첫째는 가난한 갈릴리 호수의 어부였던 요한이 예루살렘에 집을 가지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점이다. 둘째는 평범한 어부였던 요한이 대제사장과 연결이 되고 로마 총독 빌라도와도 잘 알아서 예수의 심문을 계속해서 지켜볼수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장 열렬제자라고 하는 베드로도 두려워서 감히 예수께서 심문받는 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건물 밖에서 하인들과 함께 불이나 쬐고 있었지 않았는가? 또 하나 궁금증은 만일 요한복음을 요한이 썼다면 왜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예수를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입장에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기록한 요한복음을 썼다는 것은 개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가문의 영광일 것이다. 그런데도 저자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몇가지 궁금증에 대하여 누구도 확실하게 반론을 제기할 입장이 아니므로 교회는 전통적으로 요한을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로 간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십자가 아래에서 성모와 함께 있는 사람이 요한이라는 설명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아래에 있는 요한에게 어머니를 잘 보살펴 달라고 당부하였다는 것이다.

 

[익명의 제사장]

유명한 작가 휴 숀필드(Hugh Schonfield)는 그의 저서 ‘유월절 음모’(The Passover Plot)에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익명의 제사장이라고 주장했다. 숀필드는 그 익명의 제사장은 예수의 비밀제자로서 유태의 고관들과도 친분이 많았으므로 예수의 심문에 참여할수 있었다고 내세웠다. 이어 그는 최후의 만찬도 그 제사장의 집에서 이루어졌다고 암시했다. 그는 유월절 식사를 호스트한 사람이므로 최후의 만찬 중에 예수의 옆에 앉아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은 이 익명의 제사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 다만 열두제자만을 생각하여 그린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미지의 제사장은 예루살렘에 살고 있고 대제사장 등 유태의 고위층에 연줄이 있는 사람이라는 조건에는 부합하지만 다른 점은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익명의 제사장이 확실히 바로 '사랑하시던 제자'라고 볼수는 없다.

 

사람들이 예수에게 홍포를 입히고 가시면류관을 씌운후 조롱하고 있다. 마티아스 스톰(Matthias Stom) 작품. 익명의 제사장은 예수에 대한 심문 장면 뿐만 아니라 이런 장면들도 자세히 목격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다시 살려주신 나사로]

상당수 학자들은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다름 아닌 베다니의 나사로라고 주장했다. 나사로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이며 병에 걸려 죽었으나 죽은지 4일만에 예수께서 살려주신 인물이다. 나사로를 ‘사랑하시는 제자’로 보는 근거 중의 하나는 요한복음 11장 1-3절의 말씀 때문이다. 나사로가 병에 걸렸는데 3절을 보면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사로가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것이다. 제자라고 하면 반드시 열두제자만을 말한다고 볼수 없다. 예수의 말씀을 듣고자 따르는 사람이면 모두 제자라고 말할수 있다. 그러므로 나사로를 제자라고 해서 어색할 일이 하나도 없다. 요한복음 11장 5절과 36절에도 예수께서 나사로를 사랑하시었다는 말이 나온다. 즉, 11장 5절에는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36절에는 예수께서 나사로가 이미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비통해 하니 이에 유태인들이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오신 예수

 

그러한 나사로인데 요한복음에는 12장 이후 나사로라는 이름은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13장 이후에 가서 ‘사랑하시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한두번 더 나온다. 예를 들어 13장 1절을 보면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는 구절이 등장하지만 내용에 대하여는 자못 이해하기가 힘들다. 학자들은 요한복음의 저자가 나사로라는 이름을 달리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역시 납득하기가 어렵다. 한편, 요한복음 11장 18-19절을 보면 라사로의 집이 베다니에 있다고 되어 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2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서울의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의 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사로는 예루살렘에 자주 왕래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교분을 맺었을 것이다. 더구나 일설에 따르면 나사로는 다윗가문의 사람으로 상당히 부유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더더구나 예루살렘의 고위층들과 쉽게 친분을 맺을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심문할 때에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참관할수 있었으며 예수가 부활하신 후에 예수께서 당부한 대로 성모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모셔와 유숙토록 했다는 것이다. 

 

한가지 신통한 것은 네 복음서 중에서 오로지 요한복음만이 나사로에 대하여 언급을 했고 다른 세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 몇 명은 이미 나사로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일으키실 때에 몇몇 제자들도 함께 있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1장 16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보고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했다는 기록을 보면 알수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요한복음을 제외한 다른 복음서는 나사로를 살리신 대단히 중요한 기적을 왜 기록하지 않았을까? 왜? 왜? 아무튼 나사로야 말로 ‘예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의 후보자로서 가장 합당하다.

 

'나사로를 살리심'.(Resurrection of Lazarus). 장 주베네 작. 다른 제자들도 뒤에 서 있다. 예수의 양 옆에 마리아와 마르다가 무릎을 꿇고 있다. 

 

[예수를 지극히 따랐던 막달라 마리아]

지금까지 나온 여러 저서와 영화를 보면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그려놓았다. 이런 저서와 영화들은 여러 가지 근거를 대면서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다른 누구보다도 사랑하시었다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은 한걸음 나아가서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가 비밀리에 결혼했다고도 주장했다. 물론 교회를 비롯한 상당수 학자들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했으며 딸 까지 두었다는 설에 대하여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학자들은 예수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제자가 막달라 마리아라는데 대하여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여러 면에서 고찰한대로 실제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근거는 많이 있다. 가장 특별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를 가장 먼저 목격했고 그같은 위대한 복음을 가장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19세기에 발견된 경외서인 ‘마리아복음서’에 의하면 제자 중 한사람인 레위(Levi)가 베드로에게 “우리 구주께서 그 여자를 잘 알고 계십니다. 때문에 우리보다 그 여자를 더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그 여자는 막달라 마리아를 말한다. 또 다른 경외서인 ‘빌립복음서’도 마리아와 예수가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식의 설명을 했다.

 

베다니에서 어떤 여인이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어 씻고 긴 머리로 씻음. 예수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막달라 마리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왼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주장이 있다. 원래 예수의 옆의 그 사람은 전통적으로 세베대의 아들 요한일 것이라고 알려져 왔었다. 그런데 그 젊은 사람이 여자처럼 생겼다고 자꾸 주장하는 바람에 막달라 마리아일것 같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는 여러 근거를 들어서 아주 그럴듯한 각본이 만들어졌다. 심지어는 긴머리, 볼륨있는 가슴, 작은 얼굴 등을 얘기하며 여자라는 주장이 일어났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성경에서는 그 ‘사랑하시는 제자’를 He라고 하여 남성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요한복음 20장 2절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즉, 막달라 마리아가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나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어떤 학자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막달라 마리아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추기 위해서 그런 구절을 만들어 넣었다는 주장을 했다. 참 말들도 잘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예수의 왼편에 있는 사람이 문제의 인물. 전통적으로 요한이라는 주장이었으나 최근에는 소설과 영화를 통하여 막달라 마리아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다른 후보자들]

어떤 학자들은 이상에서 설명한 세배데의 아들 요한, 베다니의 나사로, 익명의 제사장, 막달라 마리아 등을 제쳐놓고 또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심지어는 바울(사울)이나 가롯 유다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예수를 핍박하고 팔아먹기까지 한 인물들이므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에 따라 이들이 ‘사랑하시는 제자’일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어떤 학자는 ‘사랑하시는 제자’가 실존인물이 아닌 가공인물이라는 주장을 했다.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면 모두 ‘사랑하시는 제자’가 될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제 지금까지의 설명을 종합하자면, 여러 후보자 가운데서 나사로가 가장 유력하다고 말할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 아니라고 할수도 없다. 아직도 크리스챤들은 요한이 예수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제자라는 전통적인 믿음을 유지하고 있다. 사족이지만, 어떤 학자들은 예수가 동성연애자로서 제자 중의 한 사람과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주장을 했다. 많은 학자들은 '정말 허황된 소리'라고 일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