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물들/십자가의 행방

로마의 예루살렘 성십자교회

정준극 2009. 10. 31. 06:08

[성십자가](Holy Cross: True Cross)

로마의 예루살렘 성십자교회 건설에 사용

 

독일 트리어대성당의 십자가와 함께 있는 성헬레나 기념상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며 기독교인들의 삶 자체이다. 예수께서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만일 갈보리 언덕에 세워졌던 바로 그 십자가가 지금 어디엔가 보존되어 있다면 어떨까?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죽기 전에 단 한번만이라도 그 진짜 십자가를 보고 싶어 하여 난리도 아닐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오리지널 십자가는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불쏘시개로 사용했나? 아니면 다른 죄인들을 계속 처형하는데 사용했나?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면 그대로 방치해 두었는데 세월이 흘러 지각의 변화와 함께 땅 속에 묻혀 있게 되었던 것을 4세기경에 로마의 콘스탄틴(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성헬레나)가 예루살렘의 골고다에서 기적적으로 발굴했다는 것이다.

 

성십자가의 발견. Agnolo Gaddi 1380년. 전설에 의하며 성헬레나는 예루살렘의 골고다에서 세개의 십자가를 찾아냈는데 어떤 것이 진짜 예수를 매단 십자가인지 몰라서 걱정하던중 방금 매장하려던 어떤 시신을 가져다가 차례대로 각각의 십자가에 올려 놓았더니 그 중 한개의 십자가에 올려 놓았을 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이 예수의 십자가인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헬레나의 옆에 있는 사람이 예루살렘 주교인 마카리오스.

 

전설에 따르면 헬레나 모후는 인부들을 동원하여 십자가가 있다고 생각되는 지점을 계속 팠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모두들 삽을 놓고 그만두자고 했으나 그래도 기왕에 파기 시작하였으니 조금만 더 파보자고 간신히 설득하였고 이에 인부들도 어쩔수 없이 조금 더 깊이 팠더니 과연 나무로 만든 큰 기둥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발굴한 큰 기둥들은 모두 세 개였고 쇠못들도 나왔다고 한다. 큰 기둥이 세 개인 것은 예수님의 좌우에 매달렸던 강도들의 십자가도 함께 땅 속에 묻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큰 기둥이 세 개나 나오자 그중에서 진짜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떤 것인지 몰라서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자 영특하신 헬레나 모후는 어떤 병든자를 데려와 각각의 나무기둥 위에 차례대로 올라앉아 보도록 했다. 과연! 병자가 그중에서 어떤 한 개의 기둥에 올라앉자마자 평생의 고질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둥이야 말로 진짜 예수님을 매달았던 기둥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전설에는 곧 매장하려던 어떤 시신을 가져와서 각각의 십자가에 올려 놓았더니 진짜 십자가에 누였던 시신이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이 진짜 십자가를 영어로는 True Cross(참십자가)라고 표현한다. 만일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닌 강도들의 십자가를 진짜 십자가로 믿어서 기도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무런 효험도 없을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래서 진짜 십자가를 골라내는 것이 중요했던 모양이다.

 

예루살렘의 골고다에 있는 성묘교회 지하의 성헬레나 채플. 이 장소에서 진짜 십자가를 발견했다고 한다.

 

헬레나 모후는 예수님의 십자가라고 믿어지는 나무기둥과 다른 나무 토막들을 잘 모시고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일설에는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갔다고 되어 있다. 아무튼 헬레나는 그 나무기둥들을 기본으로 하여 로마에 ‘예루살렘 산타 크로체’(Santa Croce: 성십자가) 교회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예루살렘 산타 크로체' 교회에는 그 옛날 성지에서 가져온 그 십자가기둥이 있다고 하여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실상 ‘예루살렘 산타 크로체’라는 명칭은 이 교회의 바닥을 헬레나가 예루살렘의 갈보리 언덕에서 가져온 흙으로 덮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갈보리 언덕의 흙으로 교회바닥을 만들었기 때문에 로마가 아니라 예루살렘 땅이라는 설명이었다. ‘예루살렘 산타 크로체' 교회에는 십자가의 위에 INRI라고 써서 붙였던 간판의 조각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헬레나는 십자가 나무기둥들을 발견한 예루살렘의 갈보리 언덕에 별도의 성묘교회를 세웠다. 나중에 여러 교단에서 성묘교회를 증축할 때에 지하의 성십자가를 발견했다고 믿는 장소에 성헬레나채플을 마련했다. 십자가상의 예수께서 ‘목마르다’라고 하셨을 때 사람들이 신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대었다고 한다. 로마의 ‘예루살렘 성십자' 교회는 그 해면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단하다. 성십자가를 헬레나가 발견한 이래 너도나도 성십자가의 다만 한 조각이라고 얻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로마의 '예루살렘성십자가교회'. 성헬레나가 예루살렘에서 발견하여 가져온 성십자가를 기초로하여 지었다고 한다. 이 교회의 바닥은 역시 헬레나가 예루살렘으로부터 가져온 흙으로 깔았다고 한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라는 이름이 붙었다.

 

결과,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예수님이 달리셨던 십자가의 조각을 간직하고 있다는 교회가 여러 군데가 있게 되었다. 물론 진위를 판가름하기 어려운 실정들이지만 교회에서 그렇다고 하는데 믿을수 밖에 없다. 유럽에는 그런 교회들이 적어도 수십곳이나 된다. 대체로 성헬레나를 수호성인으로 숭배하고 있는 교회에는 성십자가의 파편이라고 하는 오래된 나무 조각들을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는 각 교회에 그런 주장들을 삼갈 것을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곳은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의 아레쪼에 있는 성프란시스코 사원, 베니스, 비엔나의 제국보물실 등이다.

 

비엔나의 제국보물실(샤츠캄머)에 전시되어 있는 성십자가 조각. 성헬레나가 예루살렘에서 발견한 진짜 십자가의 조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