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토리오의 세계/오라토리오 대탐구

오라토리오란?

정준극 2011. 5. 3. 22:02

오라토리오가 뭐길래?

성담곡(聖譚曲)의 모든 것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의 사촌 쯤 된다. 공연예술이라는 커다란 장르에서 보면 같은 식구이다. 하지만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는 서로 다른 점들이 많다. 오페라는 일반적으로 역사적 사실이나 신화에 나오는 로맨스, 배신, 음모, 살인 등의 내용을 스토리로 삼지만 오라토리오는 주로 기독교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삼는다. 오페라는 야외이건 실내이건 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오라토리오는 주로 교회 또는 수도원에서 공연했다. 개신교 작곡가들의 오라토리오는 대개의 경우 성서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지만 가톨릭 작곡가들은 성자의 생애에 대한 작품을 작곡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오페라 중에도 성서 이야기를 담은 것이 허다하며(이집트의 요셉, 삼손과 델릴라, 모세와 아론, 살로메, 아씨씨의 성프란체스코 등) 오라토리오라고 해서 반드시 성경의 이야기나 성자의 생애를 그리지 않은 것들도 많다('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전투', 외디푸스 렉스 등). 오라토리오는 17세기 초에 이탈리아에서 대단히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7세기에 본격적인 오페라가 등장하여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자 오라토리오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교회는 사순절 기간 중에 세속적인 오페라의 공연을 금지했다. 오페라가 스펙터클하면 더구나 당연히 공연금지였다. 사순절 기간 중에는 절제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기간에 사람들은 오페라를 볼수 없게 되자 대신 오라토리오를 보았다. 그리하여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상당기간 동안 공연될수 있었다.

 

'신비한 탄생'.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오라토리오의 좋은 주제이다.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대표적이다. 그림은 산드로 보티첼리 작품.

 

일반적으로 오라토리오는 오케스트라, 합창, 독창, 앙상블이 등장하는 대규모의 음악작품이다. 오라토리오에도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주역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며 아리아가 나온다. 그렇지만 공연예술의 장르별로 볼때 오페라는 음악극장(musical theater)에 해당하는 반면, 오라토리오는 콘서트 작품(concert piece)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오라토리오를 오페라처럼 무대에서 공연하며 오페라를 오라토리오처럼 콘서트로 공연할수 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단순히 공연예술의 장르로서 구별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라토리오에서는 등장인물간에 어떤 감정을 주고 받는 인터액션(interaction)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아주 단순하다. 그리고 무대 배경도 거의 필요없으며 의상도 반드시 입을 필요가 없다.

 

오라토리오는 언제부터 정식으로 등장하였을까? 1600년경이라고 보고 있다. 학자들은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Emilio de Cavalieri)라는 사람의 '영혼과 육체의 표상'(Rappresentatione di Anima e di Corpo)을 오라토리오의 효시로 보고 있다. 물론 그 전에도 오라토리오와 비슷한 성격의 작품들이 있긴 있었다. 예를 들면 루두스 다니엘리스(Ludus Danielis: 다니엘 연극)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다니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교회 전례상의 라틴어 드라마이다. 다니엘의 이야기를 다룬 중세의 드라마는 두세편이 있는데 그중에서 하나가 단성음악을 붙여 이야기를 노래로 부른 것이다. 이것을 최초의 오라토리오라고 간주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래도 본격적인 오라토리오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오라토리오라고 해서 반드시 성경의 이야기나 성자의 생애에 대한 것을 다룬 것은 아니다. 일찍이 몬테베르디는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전투'(Il Combattimento di Tancredi e Clorinda)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최초의 세속적 내용을 담은 오라토리오라고 할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교회음악도 좀더 개방적인 모습으로 변화되어 갔다. 교회에서는 모테트(motet)가 유행하였는데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모테트의 대화 스타일이 좀 더 적극적으로 발전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르네상스 대화체 모테트'라고 불렀다. 간간히 다성음악을 사용한 올트레몬타니(Oltremontani)의 모테트는 특별히 그러했다. 올트레몬타니라는 말은 산(알프스) 저쪽이라는 뜻이다. 즉, 북부 이탈리아에서는 알프스 넘어의 독일, 프랑스, 플레미쉬(네덜랜드와 벨기에 지역)의 모테트를 올트레몬타니라고 불렀다. 당시 플레미쉬 등의 작곡가들은 가톨릭의 본산인 이탈리아에 와서 이탈리아의 종교음악을 공부하며 모테트를 작곡했다. 그 작품들은 종래의 모테트와는 달리 다양성을 지녔기 때문에 초창기 오라토리오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라토리오의 원조는 교회에서 종교적인 내용의 대화에 음악을 붙인 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래서 대화를 한다는 의미에서 오라토리오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것들을 원조 오라토리오라고 한다면 모테트와는 어떻게 다른가? 성경을 배경으로 한 것, 라틴어 대본으로 되어 있다는 것, 음악도 붙였다는 것으로 볼때 모테트와 오라토리오의 차이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오라토리오는 대사를 읊을 때에 좀 더 드라마틱하게 한다는 점이 모테트와 다르다. 말하자면 성서의 이야기를 라틴어로 읽어 내려가는 평범한 수준이 아니라 대사를 연극에서처럼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오라토리오는 등장인물간에 서로 대화하는 스타일이어서 현실감 내지 생동감이 조금이나마 있었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오라토리오라는 말은 16세기에 로마에 있는 성필립 네리(St Philip Neri) 성당의 예배실(Oratory)에서 대화가 포함된 종교음악을 연주한 일이 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설명도 있다.

 

조반니 프란체스코 아네리오(Giovanni Francesco Anerio)라는 사람이 있었다. 1619년에 14편의 대화로 구성된 Teatro harmonico spirituale라는 작품을 썼다. 사도 바울의 말씀을 대화체로 만든 것이다. 가장 긴 대화는 무려 20분이나 걸리는 것이다. 4명의 솔리스트가 등장한다. 해설자인 '역사학자'(Historicus: T), 사도 바울(T), 하늘의 음성(B),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한 아나니아(T)이다. 합창단도 나온다. 군중들이다. 음악은 대위법을 위주로 한 마드리갈 스타일이다. 필립 네리(Philip Neri)라는 사람이 쓴 Congregazione dell'Oratorio(기도처의 회중)라는 작품도 있다. 성령이 감동하여 찬양하는 파트도 나온다. 성령을 노래로 표현한다는 것은 생각치도 못했었는데(또는 불경스럽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필립 네리는 과감히 시도하였다. 아무튼 음악을 결들인 오라토리오는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고 교회뿐만 아니라 기도처(Oratory)와 같은 특별 건물에서도 전문 음악가들이 연주하기 시작했다. 다시 설명하거니와, 이런 오라토리오들은 모테트와는 달리 드라마틱한 면이 있었으며 대사도 서로 대화하는 스타일로 진전되었다. 카발리에리의 Rappresentatione di Anima e di Corpo(영혼과 육체의 표상)는 사실 오라토리오라고 보기에 어렵다. 왜냐하면 연주 중에 액팅과 댄싱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성부곡(Monody)스타일의 음악을 상당히 보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카발리에리의 작품을 오라토리오 보다는 오페라로 간주한다면 최초의 오라토리오는 피에트로 델라 발레(Pietro della Valle)의 Oratorio della Purificazione(정결의 오라토리오)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도 문제가 있다. 연주 시간이 고작 12분이라는 것이다.

 

17세기 후반에 종교적인 오라토리오를 세속화하는 추세가 있었다. 오라토리오 형태의 음악을 궁정이나 대중극장에서 공연하는 일이 있었다. 내용은 대체로 세속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세속적인 내용의 오라토리오라고 해도 종교적인 성향이 가미되었다. 예를 들면 '천지창조' '예수의 생애' 또는 성서에 등장하는 삼손이나 기드온과 같은 영웅적인 인물의 이야기, 또는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들의 이야기이다. 또 한가지 변화는 오라토리오의 대본이 일반 오페라의 대본 스타일로 변해갔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오라토리오 대본가들의 대부분이 일반 오페라의 대본도 썼기 때문이며 오라토리오의 작곡가들이 일반 오페라도 작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일반 오페라 스타일의 대본을 오라토리오에도 적용했던 것이다. 작곡가 중에서도 오페라 작곡에 더욱 전념했던 사람들은 오라토리오를 작곡할 때에 아리아의 비중을 크게 높혔다. 반면, 합창은 점차 축소하였다. 또 한가지 대변화는 오라토리오에서도 여성 성악가들을 기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주로 해설자 역할을 맡거나 레시타티브를 맡았지만 차츰 주인공으로서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했다.

 

17세기 중반에 이탈리아의 오라토리오는 대체로 다음 두가지 형태로 나눌수 있다.

첫째는 오라토리오 볼가레(Oratorio volgare)이다. 세속적인 오라토리오라고 할수 있다. 스토리보다도 음악의 형태가 오페라 스타일이기 때문에 세속적인 오라토리오라고 부른다. 비록 세속적인 오라토리오라고 구분하지만 내용은 주로 성서적인 것이다. 교회에서 설교와는 별도로 연주되어서 교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좋아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자코모 카리씨미(Giacomo Carissimi: 1605-1674)의 '다니엘'(Daniele). 카리씨니는 이른바 로마학파의 원조로서 초기 바로크 음악의 대거장이었다.

- 마르코 마라쫄리(Marco Marazzoli: 1602-1662)의 성도마(S Tomaso). 마라쫄리는 당대 바로크음악의 거장이었다.

이밖에도 프란체스코 포지아(Francesco Foggia: 1603-1688), 루이지 로씨(Luigi Rossi: 1597-1653)등 바로크 작곡가들의 오라토리오 볼가레가 있다.

 

두번째는 오라토리오 라티노(Oratorio latino)이다. 오라토리오 볼가레가 이탈리아 말로 부르는 것인데 반하여 오라토리오 라티노는 글자 그대로 라틴어로 부르는 것이다. 라틴어로 된 오라토리오는 로마의 산 마르첼로 알 코르소(San Marcello al Corso)교회에 속한 Oratorio del SS Crocifisso에서 시작되었다. 비아 델 코르소에 있는 산 마르첼로 교회는 교황 마르첼루스2세(-39)를 기념하는 교회이다. 오라토리오 라티노의 대표적인 작곡가는 자코모 카르씨미이다. 그의 Jephte(입다)는 이 장르 최초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다른 오라토리오 라티노와 마찬가지로 Jephta도 단막이다.

 

로마의 산 마르첼로 알 코르소 교회

 

후기 바로크 오라토리오들은 종교적 오페라라고 할만큼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로마와 나폴리에서는 알렉산드로 스칼라티(Alessandro Scarlatti)가 오라토리오 작곡을 주도하였다. 비엔나에서는 궁정시인인 메스타스타시오(Metastasio는 필명이며 원래 이름은 Pietro Antonio Domenico Trapassi: 1698-1782)가 매년 오라토리오 대본을 시리즈로 만들어 냈다. 이것을 안토니오 칼다라(Antonio Caldara: 1670-736)과 메스타시오의 절친한 친구인 요한 아돌프 하쎄(Johann Adolph Hasse: 1699-1783)이 오라토리오로 만들어냈다. 메스타스타시오의 대표작은 La passione di Gesu Cristo(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다. 그의 대본으로 1730-1790년간에 무려 35명이나 되는 작곡가들이 오라토리오를 작곡하였다. 한편, 독일에서는 하인리히 쉬츠(Heinrich Schuetz: 1585-1672)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에 대한 바로크 오라토리오를 만들어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수난곡들은 그 웅장한 규모와 거룩한 음악으로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텔레만과 칼 하인리히 그라운(Carl Heinrich Graun: 1704-1759)가 각각 Der Tod Jesu(예수의 죽음)이라는 오라토리오를 작곡하였다. 텔레만 이후에는 C.P.E. 바흐가 흥겨운 스타일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하여 오라토리오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탈리아 오라토리오의 선구자인 자코모 카리씨니. 근데 몹씨 화가난 모습이다. 왜?

 

영국에서는 어떠한가? 조지 왕조(1714-1830)에는 독일 출신의 국왕과 독일 출신의 작곡가가 영국의 오라토리오를 부흥 발전시켰다. 불후의 걸작인 오라토리오 '메시아'로서 유명한 조지 프레데릭 헨델이 크게 활동하였다. 헨델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서 주제를 가져와 오라토리오를 작곡하기도 했다. 헨델은 영국 최초로 영어로 된 오라토리오인 Esther(에스더)를 작곡했다. '메시아'도 영어로 된 오라토리오이다. 헨델의 영향을 받아 헨델풍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한 사람들은 많다. 대표적인 작곡가는 암스텔담의 유태인 사회에 고용된 리다르티(Cristiano Giuseppe Lidarti: 1730-1793)였다. 그는 히브리어로 된 Esther를 작곡했다.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와서도 계속 독일 작곡가들에게 오라토리오를 의존하였다. 해마다 열리는 버밍햄 페스티벌은 새로운 오라토리오 발표의 장소로 유명한데 1846년에는 펠릭스 멘델스존에게 오라토리오 Elijah(엘리아)를 의뢰하기도 했다. 멘델스존의 '엘리아'는 헨델의 '메시아', 하이든의 '천지창조'와 함께 세계 3대 오라토리오로 불리는 것이다. 멘델스존의 Elijah는 훗날 독일어로 번역되어 Elias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었다. 영국 출신의 오라토리오 작곡가로서 빼놓을수 없는 사람은 존 스테이너(John Stainer)이다. 그가 1887년에 완성한 Crucifixion(십자가산의 고난)은 오늘날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19세기의 엘가(Elgar)도 오라토리오를 부흥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요한 아돌프 하쎄

 

20세기에 들어와서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의 위세에 밀려서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중에도 스트라빈스키가 1927년에 Oedipus Rex(외디푸스 왕)이라는 오라토리오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어 프랑스에서 첫 선을 보임으로서 오라토리오의 부흥기미가 보이기도 했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938년에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슈미트(Franz Schmidt)가 '일곱 인을 봉인한 두루마리'(Das Buch mit sieben Siegeln)을 내놓아 공전의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이밖에 2차 대전후의 오라토리오로서는 아서 오네거(Arthur Honegger)의 Jeanne d'Arc au Bûcher(화형장의 장다크), 크르치츠토프 펜데레키(Krzysztof Penderecki)의 St Luke Passion(성누가수난곡), 르네 클레망시크(Rene Clemencic)의 Kabbala(카발라), 오스발도 골리요프(Osvaldo Golijov)의 La Pasion segun San Marcos(성마태수난곡) 등이 등장하여 관심을 끌었다. 대중음악가들도 오라토리오의 작곡에 손을 댔다. 예를 들면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Liverpoll Oratorio(리버풀 오라토리오)를 작곡한 것이다.

 

오라토리오는 어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형식이다.

- 서곡(Overture): 관현악 연주이다.

- 아리아(Arias): 각종 아리아를 솔리스트들이 부른다.

- 레시타티브(Recitative): 다음에 이어지는 줄거리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 합창: 영광의 장면 등에는 합창을 사용한다. 팀파니와 트럼펫은 오라토리오의 특징이다.

 

조지 프리데릭 헨델

 

오늘날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오라토리오들로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초연된 해를 기준으로 정리해 보았다. 볼드체는 세계의 3대 오라토리오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 1716: 안토니오 비발디의 Juditha triumphans(유딧의 승리)

- 1724: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St John Passion: Johannes-Passion(요한수난곡)

- 1724: 게오르그 리델(Georg Riedel)의 Gospel of Matthew(마태복음 전편)

- 1727-1736: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St Matthew Passion: Matthäus-Passion(마태수난곡)

- 1734: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Christmas Oratorio: Weihnachtsoratorium(성탄오라토리오)

- 1736/1739: 요한 아돌프 하쎄의 Serpentes ignei in deserto(광야의 구리뱀)

- 1732: 조지 프레데릭 헨델의 Esther(에스더)

- 1733: 조지 프레데릭 헨델의 Deborah(드보라)

- 1739: 조지 프레데릭 헨델의 Saul(사울)

- 1739: 조지 프레데릭 헨델의 Israel in Egypt(애굽의 이스라엘)

- 1741: 조지 프레데릭 헨델의 Messiah(메시아)

- 1743: 조지 프레데릭 헨델의 Samson(삼손)

- 1747: 조지 프레데릭 헨델의 Judas Maccabaeus(유다스 마카베우스)

- 1748: 조지 프레데릭 헨델의 Joshua(여호수아)

- 1752: 조지 프레데릭 헨델의 Jephtha(입다)

- 1769: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의 Die Israeliten in der Wüste(광야의 이스라엘민족)

- 1798: 요셉 하이든의 The Creation: Die Schöpfung(천지창조)

- 1801: 요셉 하이든의 The Seasons: Die Jahreszeiten(사계)

- 1803: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Christ on the Mount of Olives: Christus am Ölberge(감람산의 그리스도)

- 1836: 펠릭스 멘델스존의 St Paul(성바오로)

- 1843: 로베르트 슈만의 Paradise and the Peri: Das Paradies und die Peril(낙원과 사탄)

- 1846: 펠릭스 멘델스존의 Elijah(엘리야)

- 1854: 엑또르 베를리오즈의 L'enfance du Christ: The Childhood of Christ(그리스도의 유년시절)

- 1862-66: 프란츠 리스트의 Christus(그리스도)

- 1867: 테오도르 뒤부아(Théodore Dubois)의 Les sept paroles du Christ(그리스도의 칠언)

- 1900: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의 The Dream of Gerontius(게론티우스의 꿈)

- 1903: 에드워드 엘가의 The Apostles(사도들)

- 1906: 에드워드 엘가의 The Kingdom(왕국)

- 1927: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Oedipus Rex(외디푸스 렉스) - 오페라 겸 오라토리오

- 1929: 아르투르 카프(Artur Kapp)의 Hiiob: Job(욥)

- 1938: 프란츠 슈미트의 Das Buch mit sieben Sieglen: The Book with Seven Seals(일곱 인을 봉한 두루마리)

- 1941: 마이클 티페트(Michael Tippett)의 A Chilld of Our Time(우리 시대의 어린아이)

- 1950: 알렉산더 탄스만(Alexandre Tansman)의 Isaie le prophéte(선지자 이사야)

- 1968(수정본 1990): 한스 베르너 헨체의 Das Floss der Medusa: The Raft of the Medusa(메두사의 뗏목)

- 1976: 로렌초 페레로(Lorenzo Ferrero)의 Le néant 또는 l'onn ne peut arriver(허무)

- 2005: 일라야라자(Illayaraja: 인도의 영화음악 작곡가)의 Thiruvasakam: Sacred utterance(성스러운 대화)

- 2006-10: 줄리안 앤더슨의 Heaven is Shy of Earth(하늘은 이 세상의 부끄러움)

- 2007: 에릭 아이들(Eric Idle)과 존 뒤 프레(John Du Prez)의 Not the Messiah(메시아가 아님) 또는 He's a Very Naughty Boy(그는 참으로 건방진 소년이로다)



 

오라토리오 연주. 솔리스트들이 있고 일반적으로 대규모의 합창단이 등장한다. 1857년 런던 수정궁에서의 헨델 페스티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