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페스티벌/BBC Proms

한여름 밤의 음악향연 - 런던의 BBC 프롬스

정준극 2012. 5. 25. 16:38

한여름 밤의 음악향연 - 런던의 BBC 프롬스(The Proms)

2012년 런던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

7월 13일부터 9월 8일까지 클래시컬 음악 페스티벌

 

로열 알버트 홀에서의 BBC 프롬스 마지막 밤의 마지막 프로그램에서는 영국의 애국적인 노래를 부른다. 환호하는 청중들.

 

한여름 밤을 찬란하게 수놓는 대표적인 음악의 향연으로서는 비엔나에 ‘비엔나 페스트보헨’(Wiener Festwochen)이 있고 잘츠부르크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런던에 ‘프롬스’(The Proms)가 있다. 프롬스는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음악의 향연이다. 프롬스는 1백년이 넘는 연혁을 통하여 영국 국민들에게 무한한 음악적 기쁨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위대한 음악가들을 배출했다.

 

프롬(Prom)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대학이나 고등학교의 댄스파티를 말하지만 런던의 음악제인 ‘프롬스’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런던의 ‘프롬스’는 프로메네이드 콘서트(Promenade concerts)의 준말이다. 프로메네이드는 산책길을 말한다. 그러므로 프로메네이드 콘서트는 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원 같은 곳에서 열리는 야외 연주회를 말한다. 이러한 공원에서의 야외연주회가 발전하여서 오늘날 알버트 홀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프롬스가 된 것이다. 프롬스는 BBC 방송국이 주관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BBC The Proms>라고 부른다.

 

프롬스는 한여름에 장장 거의 두 달 동안 열리는 클래시컬 음악의 대축제이다. 다른 나라의 여름음악제들이 통상 한달 이내인 것에 비하여 런던의 프롬스는 두 달이나 계속되는 대단한 행사이다. 2012년에는 7월 13일에 시작하여 9월 8일에 끝나도록 되어 있다. 2012년의 프롬스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2012년도 런던올림픽을 축하하는 ‘런던 2012 페스티발’의 중요한 파트를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2년도 런던 올림픽은 7월 27일부터 8월 12일까지 열린다. 영국은 런던올림픽에 즈음한 모든 문화예술 행사를 ‘런던 2012 페스티발’이라는 깃발아래 세계에 영국의 문화예술을 자랑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준비했다. 프롬스는 7월 27일 런던올림픽의 개막일에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환희의 송가)을 연주한다. 2012년도 프롬스는 베토벤의 교향곡 전편을 연주하는 대장정을 계획하고 있는 중에 7월 27일의 ‘환희의 송가’는 그같은 베토벤 사이클의 절정이다. 또한 2012년도 프롬스는 지난 60여년동안 현대음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인 프랑의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의 주요 작품들을 사이클로 연주한다. BBC 프롬스의 모든 연주회 실황은 BBC 라디오로 생중계되며 웹사이트에서 HD 사운드로 들을수 있다. 그리고 프롬스에서도 특별한 연주회는 BBC TV로 방송되며 나중에 DVD로서 전세계에 배급된다.

 

프롬스의 중심 장소는 런던의 알버트 홀이지만 영국의 다른 장소에서도 여러 음악행사가 진행된다. 프롬스는 근년에 이르러 차세대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행사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초보자를 위한 클래시컬 음악 입문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2012년에는 왕립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에서 Proms Plus Sing이라는 타이틀로 초보자를 위한 클래시컬 음악회가 열리며 런던의 하이드파크, 글라스고우 시청, 벨파스트파크에서도 열린다. 프롬스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밤에 알버트 홀에서 열리는 연주회이다. 이날 밤에 알버트 홀에 입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이드파크 등 런던의 여러 곳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음악회를 볼수 있도록 한다. 이날 밤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영국의 애국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근년에는 주로 토마스 아느(Thomas Arne)가 작곡한 Rule! Britannia를 부른다. 영국인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애국적인 노래이다. 연주회장이나 공원이나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이 노래가 나오면 모두 일어나서 유니온 잭을 흔들면서 후렴 파트를 힘껏 부른다. 노래의 전반부는 전문 성악가들이 불러야 하는 힘든 파트이지만 후렴 부분은 누구든지 따라 부를수 있다. <Rule! Britannia! Britannia rule the waves. For Britons never never never shall be slaves.>라는 가사이다. 오늘날 이 노래는 마치 프롬스의 주제가처럼 되어 있다.

 

BBC 프롬스는 2012년으로서 무려 118회 째의 시즌을 기록한다. 처음 시작된 것이 일찍이 1895년이기 때문이다. 프롬스의 탄생을 가능케 한 사람은 로버트 뉴만(1858-1926)이다. 당시 새로 완공한 런던의 퀸스 홀의 관장으로서 뛰어난 흥행가였다. 로버트 뉴만은 음악을 연주회장을 찾아온 사람에게만 선사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프로메네이드 콘서트, 즉 프롬스를 창설하였다. 프롬스는 공식적인 연주회보다는 덜 형식적이며 게다가 입장료도 일반 연주회보다 싸게 책정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수 있게 했다. 헨리 우드(Henry Wood: 1869-1944)라는 사람도 결코 잊을수 없는 인물이다. 음악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던 헨리 우드는 불과 10대의 나이에 오르가니스트, 반주자, 작곡가, 편곡가, 성악 코치, 합창 지휘자, 오케스트라 지휘자, 아마추어 오페라단 지휘자로서 활동한 특별한 인물이었다. 로버트 뉴만과 헨리 우드는 생각이 같았다. 클래시컬 음악의 진흥을 위해 우선 일반대중들이 클래시컬 음악에 재미를 붙일수 있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후 수준을 점차 높여서 이들을 클래시컬 음악 열렬 팬으로 만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초창기의 프롬스는 첫 월요일을 ‘바그너의 밤’으로, 금요일은 ‘베토벤의 밤’으로 정하는 관례가 있었다.

 

프롬스를 창설한 로머트 뉴만

 

헨리 우드는 1895년에 프롬스의 첫 번 연주회 때부터 지휘자로 임명되어 수십년을 봉사하면서 클래시컬 음악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래서 오늘날 아직까지도 ‘BBC 프롬스’를 ‘헨리 우드 프로메네이드’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헨리 우드는 젊고 재능 있는 연주자들을 육성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그는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마치 투쟁을 하는 것처럼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에는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리허설 때에는 대리를 보내고 자기는 본연주가 있을 때만 나타나는 일이 유행이었다. 헨리 우드는 그런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진지한 리허설로 인하여 오케스트라의 수준은 크게 높아졌다. 프롬스가 가장 활발하였던 시기는 1920년대였다. 이때에 헨리 우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클로드 드비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모리스 라벨, 본 윌렴스 등 당시 주도적인 작곡가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가졌다.

 

반세기동안 프롬스를 지휘해온 헨리 우드. 프롬스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1차 대전이 일어나자 대중들은 ‘독일’이라는 말에서 ‘독’자만 나와도 싫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뉴만과 헨리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두 사람은 ‘음악예술은 세계 공통의 것이다. 어떤 편견에 의해서 논쟁을 벌이거나 증오심을 갖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1915년에 퀸스 홀의 사실상 소유자인 챠펠(Chappel)출판사는 뉴만과 우드가 프롬스의 본부로 사용하고 있는 퀸스 홀의 임대료를 제대로 내지 못하자 이들의 오케스트라를 넘겨받고 명칭도 ‘뉴 퀸스 홀 오케스트라’라고 변경하였다. 그러나 챠펠 출판사는 프롬스를 운영하면서 적자만 보았다. 그리하여 1927년에 챠펠 출판사는 프롬스에서 손을 놓겠다고 선언했다. 그 해에 BBC가 공영방송으로서 재출범하였다. 새로 출범한 BBC는 ‘정보, 교양, 오락’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이것은 바로 헨리 우드의 프롬스에 대한 비전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BBC는 프롬스를 떠맡게 되었다. 이어 1930년에 BBC교향악단이 발족하여 프롬스의 프로그램을 전담하게 되었다.  

 

1939년에 영국이 독일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자 BBC도 전시체제로 전환되면서 음악부서를 대폭 축소하였다. 이어 BBC는 프롬스를 지원할수 없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헨리 우드는 개인 스폰서들을 구하러 다녔다. 그결과 1940년과 41년 시즌에는 개인들의 후원으로 프롬스를 개최할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의 공습이 격화되는 바람에 1940년 시즌은 겨우 4주간만 계속되었다. 그러던중 1941년 5월에 프롬스의 본부인 퀸스 홀이 폭격으로 크게 파괴되었다. 런던에서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가질수 있는 장소는 로열 알버트 홀이 유일했다. 그래서 프롬스는 1941년에 로열 알버트 홀에서 열렸다. 그리고 다행히 BBC가 1942년에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에는 프롬스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어려운 중에도 프롬스를 후원키로 했다. 이후 프롬스라고 하면 BBC를 연상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로열 알버트 홀에서 프롬스의 마지막 밤 콘서트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4년은 프롬스로서 중요한 해였다. 프롬스가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해였으나 그 해에 프롬스를 반세기 동안 지휘했던 헨리 우드가 75세로서 세상을 떠났다. 전쟁이 끝난후 전통적인 ‘바그너의 밤’은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하고 나자 새로운 분위기의 사회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1953년부터는 ‘비엔나의 밤’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아름답고 화려한 왈츠와 경쾌한 폴카가 전쟁으로 지친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었다. 이어 프롬스의 프로그램은 주요 작곡가들을 기념하는 것에 치중되었다. 예를 들면 1957년과 1958년에는 시벨리우스와 본 윌렴스의 서거를 기념하여 이들의 교향곡 사이클의 마련되었다.

 

1950년부터 말콤 사젠트(Malcom Sargent)가 BBC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편, 1950년대에는 프롬스에 다른 오케스트라도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만체스터 할레 오케스트라는 런던 이외 지역의 오케스트라로서는 처음으로 프롬스에서 연주했다. 이어 본마우스(Bournemouth)교향악단, 리버풀 필하모닉 등도 출연하였다. 지휘자로서는 말콤 사젠트경 이외에도 존 바르비롤리경, 베이실 카메론, 챨스 그로우브스, 콜린 데이비스, 노만 델 마르, 챨스 매커라스 등 거장들이 프롬스를 지휘하였다.

 

1959년에 BBC에 윌렴 글로크(William Glock)가 음악책임자로 부임하자 프롬스의 성격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프롬스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고전 작곡가들의 오케스트라 레퍼토리는 축소되고 대신 보다 실험적인 스타일의 작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프롬스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적 추세가 반영되었다. 1959년부터 1964년 사이에 프롬스에서 선을 보인 새로운 작품들은 기존의 작품들에 비하여 배가 넘었다.

 

1963년 시즌은 게오르그 솔티, 레오폴드 스토코브스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같은 국제적으로 저명한 거장들이 프롬스에 참여하였다. 1966년에는 최초로 외국 앙상블인 모스크바 라디오 오케스트라가 참여하였다. 이어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폴란드방송교향악단, 체코필하모닉 등이 프롬스를 빛내 주었다. 이 시기야 말로 일견 보수적인 프롬스가 국제적인 페스티벌로 탈바꿈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1960년대에 도입한 또 하나의 중요한 이벤트는 오페라의 도입이었다. 1961년에 글린드본 오페라가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공연한 것이 시초였다. 이와 함께 서구가 아닌 지역의 음악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 등의 음악이 소개된 것이다. 그런가하면 타악기만을 위한 연주회, 재즈와 가스펠 연주회, 전자음향 연주회가 소개되었고 한편 어린이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도 개발되기 시작했다.

 

BBC는 매 시즌마다 상당한 수의 새로운 작품을 의뢰하고 있다. 주로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이다. 프롬스 청중들에게 최근의 음악적 경향을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1970년대부터는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도입하였다. 예를 들면 ‘심야 연주회’ 또는 작곡가나 연주자들과 대화를 나눌수 있는 ‘프리 프롬 대화의 시간’(Pre-Prom Talks)등이다. 1994년에는 프롬스 100주년 기념연주회가 열렸다. 이같은 연륜을 바탕으로 이제 프롬스는 매년 약 70회의 연주회를 주관하게 되었다. 그러나 1895년 이래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헨리 우드의 주장인 ‘폭넓은 분야의 음악을 연주한다. 최고의 수준으로 연주한다. 최대의 관중을 유치한다’는 변하지 않았다.

 

하이드 팍에서 프롬스 연주를 보며 환호하는 런던 시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