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비엔나소년합창단

아우가르텐과 무트(MuTh)

정준극 2013. 4. 7. 21:05

비엔나소년합창단의 본부 아우가르텐(Augarten)궁전

 

아우가르텐 궁전은 1948년부터 비엔나소년합창단의 본부로 사용되었다.

                                       

비엔나소년합창단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는 아우가르텐 궁전(Augartenpalais)은 1692년에 비엔나의 자카리아스 레브(Zacharias Leeb)라는 사람이 개인저택으로 지은 건물이다. 그는 비엔나에서 알아주는 부유한 상인으로 아우가르텐을 지을 때에는 시의회 의원이었다.  설계건축은 당대의 건축가인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어라흐(Johann Bernhard Fischer von Erlach)가 맡았다. 폰 에어라흐는 비엔나에 있는 칼스키르헤(Karlskirche), 비엔나 교외의 쇤브룬 궁전, 호프부르크에 연결되어 있는 스페인승마학교 등을 설계한 사람이다. 1780년에 요셉 2세 황제가 아우가르텐을 황실의 사냥숙사로 사용하기 위해 매입하였다. 요셉 2세 황제는 검소하고 절약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우가르텐이 지나치게 화려하고 방대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우가르텐 궁전의 뒤편에 작고도 실용적인 건물을 별도로 지었다. 사람들은 새로 지은 작은 건물을 요셉슈퇴켈(Josephstöckel)이라고 불렀다. 슈퇴켈은 단층의 별채라는 뜻이다. 요셉슈퇴켈은 오늘날 비엔나소년합창단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모르겐콘체르테가 열렸던 가르텐잘(가든 홀). 화보리타를 개축한 건물이다.

                                     

요셉 2세는 새로 지은 별채를 화보리타라고 불렀다. 실은 비엔나에 화보리타 궁전이란 것이 따로 있었다. 현재의 4구 뷔덴(Wieden)에 있는 테레지아눔 김나지움 건물이다. 사랑스러운 건물이라는 뜻에서 화보리타라는 이름을 붙인 일종의 슈타트팔레(시내궁전)였다. 한편, 요셉 2세보다 훨씬 앞서서 요셉 2세의 외할아버지, 즉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인 샤를르 6세는 1712년에 아우가르텐을 황제의 별장으로서 임대하여 사용한 일이 있다. 샤를르 6세는 아우가르텐의 정원을 프랑스 스타일로 대규모로 개선하였다. 그리고 이때에 궁전 이름을 화보리타라고 불렀다. 뷔덴에 있는 화보리타를 생각해서였다. 뷔덴의 화보리타 궁전은 나중에 샤를르 6세의 딸, 즉 요셉 2세의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학교건물로 사용하였다. 오늘날의 테레지아눔이 그것이다. 다시 샤를르 6세로 돌아가서 그는 아우가르텐, 즉 화보리타에서 1740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샤를르 6세의 외손자인 요셉 2세로서는 위대하신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여 아우가르텐을 아예 황실 소유로 매입하고 새로 지은 검소한 건물을 화보리타라고 불렀던 것이다. 요셉 2세 황제는 1772년에 화보리타의 일부를 가든 홀(Gartensaal: 가르텐잘)로 개축하였으며 얼마후 부터는 가든 홀에서 기분도 그렇지 않고 하여서 간혹 아침에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이를 모르겐콘체르테(Morgenkonzerte)라고 불렀다. 아침 콘서트라는 뜻이다.


비엔나 아우가르텐에서의 소년합창단 리허설


1781년, 25세의 나이에 잘츠부르크를 떠나 비엔나에 정착한 모차르트는 요셉 2세의 당부에 의해 1782년 5월 26일부터 모르겐콘체르테의 지휘를 맡았다. 그러다가 1791년에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자 모르겐콘체르테는 이 사람 저 사람이 지휘를 하였으며 1795년부터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이그나즈 슈판치그(Ignaz Schuppanzigh)가 책임지고 지휘를 맡기 시작했다. 그후 가든 홀에서의 모르겐콘체르테는 오스트리아 제국 초대 황제인 프란츠 1세(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는 프란시스 2세) 시절인 1820년부터 '5월 1일 콘서트'로 확대되었다. 베토벤도 슈판치그의 지휘로 가든 홀에서 피아노 작품들을 선보이고 연주했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아버지)도 이곳에서 연주를 했다. 슈베르트도 피아노 연주를 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18세기말 비엔나회의 기간중에 또는 그 이후에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명랑하고 사랑스러운 것이어서 사랑을 받았다. 브람스, 프란츠 리스트, 리하르트 바그너,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 등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5월 1일 콘서트'에 참석하였다.

 

1873년에는 비엔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비엔나 엑스포)를 위한 축제가 아우가르텐에서 열렸다. 프란츠 요셉 1세 황제와 러시아의 알렉산더 2세 황제가 참석하였다. 아우가르텐은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기 전인 1934년부터 1936년까지 연방수상인 쿠르트 슈슈니그(Kurt Schushnigg)의 공관으로 사용되었다. 아우가르텐은 2차 대전 중에 폭격을 맞아 상당부분이 파손되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1948년에 아우가르텐을 비엔나소년합창단의 본부로 사용토록 허락했다. 비엔나소년합창단은 연주회의 수익금으로 복구공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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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극장(Musik und Theater: MuTh) - 비엔나소년합창단 전용 무대

  

2012년 12월에 오픈한 무트(Musik und Theater). 아우가르텐의 남단 아우가르텐슈피츠라는 장소에 건립된 콘서트 홀 및 극장이다.

 

비엔나소년합창단은 편리한 장소에 자체 극장을 갖고 싶어했다. 언제라도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리허설을 할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극장이 있으면 더욱 바람직했다. 무대연습을 할수 있기 때문이었다. 비엔나소년합창단은 과거에는 연주를 할 때에 무대에 가만히 서서 피아노반주에 맞추어 노래만 부르면 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춤도 추고 연기도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연출에 대한 무대연습이 필수였으며 그럴만한 무대가 필요했다. 비엔나소년합창단의 단장인 독토르 오이겐 예써(Dr Eugen Jesser)가 앞장서서 자체 극장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합창단 측은 당국을 설득하여 아우가르텐의 남단, 아우가르텐슈피츠(Augartenspitz)에 부지를 마련할수 있었다. 주소는 2구 레오폴드슈타트의 오베레 아우가르텐슈트라쎄(Obere Augratenstrasse) 1E 번지이다. 오베레 아우가르텐슈트라쎄와 카스텔레즈가쎄가 만나는 곳이다.


요제프 2세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차르트. 알라미 제공

 

설계는 젊고 유능한 요한네스 크라우스(Johannes Kraus)와 미하엘 라부거(Michael Lawugger)가 맡았다. 아우가르텐에 인접하여서 극장을 짓는다고 하자 지역주민들은 물론이고 여러 사회단체에서 반대가 심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서깊은 아우가르텐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동네 사람들은 청소년들을 위주로하는 극장이 들어서면 시끄럽고 피곤하기 때문에 싫다고 했다. 그러나 찬성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리하여 건축공사는 2010년부터 착수되었다. 그리하여 2012년도 저물어 가는 12월 9일에 역사적인 오픈을 하였다. 역사적이라고 말한 것은 비엔나에 극장이 새로 건설된 것은 10년 만에 처음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트(MuTh)의 극장. 주로 어린이들이 비엔나소년합창단의 연주회 실황을 영화로 관람하고 있다.

 

극장이름은 무트(MuTh)라고 정했다. 음악(Musik)과 극장(Theater)이라는 단어에서 가져온 신조어이다. 무트라는 말은 독일어의 Mut라는 단어와 발음이 같다. Mut는 '용기'라는 뜻이다. 극장 무트가 용기로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수 있다. 공연장은 4백석 규모이다. 첨단 음향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공연장은 독토르 오이겐 예써 할(Dr Eugen-Jesser Hall)이라고 부른다. 독토르 오이겐 예써 홀은 '비엔나 어린이 극장'이라는 연극단체의 본부로서도 사용된다. 이 극단이 제작하는 연극은 최근들어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다. 건물에는 전시공간도 있으며 국내식당, 워크샵을 할수 있는 방 등이 있다. 무트에 가려면 대중교통수단으로서는 지하철 2호선에서 타보르슈트라쎄(Taborstrasse)에서 내리면 된다. 전차는 2번을 타고 역시 타보르슈트라쎄에서 내리면 된다. 버스는 5B이다. 건물은 현대식이지만 현관은 바로크 스타일이다. 건물은 아우가르텐의 오래된 담장에 붙어서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