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세계/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고난의 역사

정준극 2014. 9. 28. 18:57

근대사 속의 팔레스타인

A Brief History of Modern Palestine

 

세계 1차 대전이 끝난후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신탁통치 아래에 들어갔다. 국제연맹이 1922년에 그렇게 결정했다. 팔레스타인의 현대사는 영국의 통치가 끝난 후로부터 시작된다. 팔레스타인의 분할, 이스라엘의 창설, 이에 따른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분쟁이 팔레스타인 현대사의 골자이다.

 

[팔레스타인 분할] 1947년에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계획을 제안했다. 팔레스타인 장래에 대한 유엔 총회 결의문 181(II)에 의한 것이다. 결의문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신탁통치를 종식하고 팔레스타인을 두개의 국가, 즉 하나는 유태인에 의한 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아랍인에 의한 국가로 분할한다는 계획을 제안했다. 다만, 예루살렘-베들레헴 지역은 유엔이 직접 보호하고 관리한다고 제안했다. 결의문은 두 국가의 국경선에 대하여도 자세히 규정했다. 이와 함께 두 국가간의 경제문제, 종교문제, 소수민족의 권리문제 등도 규정하였다. 결의문은 영국군이 1948년 8월까지 철수하며 1948년 10월까지는 새로운 독립된 국가들을 수립하도록 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 계획을 받아 들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랍 지도자들은 당연히 거절했다. 아랍 연맹은 팔레스타인 분할을 방지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군사조치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스라엘은 영국의 신탁통치가 끝나는 하루 전날 독립을 선언했다. 국경선은 유엔 결의문에 명시된 그대로를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아랍 연맹은 새로 구성된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했다. 1948년의 아랍-이스라엘 전쟁이다.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1949년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이스라엘은 유엔의 분할계획에 따라 아랍측이 차지하기로 되어 있는 지역의 일부분을 더 차지하였다. 트랜스조단이 요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관리키로 했다. 가자 지구는 이집트가 관할하는 것으로 했다.

 

[6일 전쟁] 1967년 6월 5일부터 10일까지 이른바 6일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 가자 지구와 시나이 반도를 가져왔고 요르단으로부터는 요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가져왔으며 시리아로부터는 골란 고원을 가져왔다. 유엔 안보리는 결의문 242를 채택하고 이스라엘에게 6일 전쟁에서 획득한 지역들로부터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유엔 결의문 242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국가들이 각기 국제적으로 인정된 영토 내에서 어떠한 위협이나 군사적 행동으로부터 평화롭게 지낼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고 했다.

 

가자 지구의 전쟁으로 인한 폐허

 

[1973년 전쟁] 1973년 10월, 시나이 반도에서는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전쟁이 다시 벌어졌고 골란 고원에서는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이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유엔 결의문 339에 의해 휴전이 성립되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양측 전선에 배치되었다. 유엔평화유지군은 1979년에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협정이 체결되자 이집트 전선으로부터 철수하였지만 골란 고원에서는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철수하지 않고 있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등장] 1974년에 아랍 연맹(Arab League)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대표하는 유일한 법적 조직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PLO가 요단강 서안을 대표하는 것은 포기토록 했다. 그 해에 PLO는 유엔 총회에 옵서버 자격을 인정받아서 참석했다. 1988년에 PLO의 팔레스타인국가위원회(PNC)는 팔레스타인독립선언을 승인하였다. 선언문에는 '팔레스타인 땅에 팔레스타인 국가(State of Palestine)를 수립하며 수도는 예루살렘이다'라고 명시했다. 선언문은 또한  PLO가 유엔 결의문 242호에 근거하여 모든 국제적 협상을 추진한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봉기(Intifada: 1987-1993)] 인티파다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자 지구 등지에서 일어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봉기를 말한다. 이스라엘은 거의 20년 동안이나 가자 지구와 요단강 서안지대 그리고 동예루살렘까지도 점거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억압하였다. 이를 참다 못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1987년 12월에 대규모 저항운동을 전개했다. 인티파다였다. 그로부터 1993년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서는 1천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저항운동을 하다가 죽음을 당했고 수천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또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감옥생활을 하거나 팔레스타인에서 추방을 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평화 협상] 1993년에 이스라엘과 PLO는 오슬로에서 처음으로 만나서 평화합의서(Oslo Accords)에 서명했다. 합의서에 의해 팔레스타인국가당국(Palestine National Authority: PNA)이라는 기구가 설치되었고 이 기구가 현재 PLO가 관할하고 있는 지역의 행정책임을 맡도록 했다. 합의서는 당시 가자 지구와 요단강 서안의 일부를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 군이 철수토록 요구했다. 그러나 합의가 추진되지 못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오슬로에서 합의서가 서명된지 2년 후인 1995년 11월,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합의서에 서명한 이차크 라빈(Yitzhak Rabin) 이스라엘 수상이 암살 당한 것이다. 그후로 이스라엘과 PLO는 제3국의 주선으로 서로 만나 여러번에 걸친 평화협상을 했지만 특별한 성과는 없었다.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2011년 9월, 팔레스타인국가당국의 대통령인 마무드 아바스는 PNA가 유엔 총회와 안보리로부터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고 발표했다. 며칠 후에 아바스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 그같은 사안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당국 간에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 국가 당국을 하나의 국가로서 인정하는 조치를 취했다. 팔레스타인 국가(State of Palestine)이다. 그러나 미국,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이모저모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언제 마무리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요단강 서안에 있는 이스라엘-요르단의 국경 검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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