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 -1
원작은 테브예와 딸들(Tevye and the Daughters)
1964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래 장수 레퍼터리
작곡을 맡은 제리 보크
'선 라이스, 선 세트'(Sun Rise, Sun Set), '이프 아이 워 어 리치 맨'(If I Were a Rich Man)과 같은 구슬프면서도 어딘가 감미로운 노래가 생각나는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영화로 만들어져서 1960년대와 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더구나 잊지 못할 추억의 명화로 남아 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뮤지컬로서 처음 브로드웨이에서 선을 보인 것이 1964년이므로 2019년으로 55주년을 맞이한다. 그래서인지 근간에 이 뮤지컬에 대한 관심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뮤지컬 그룹들이 너도나도 한번 쯤은 다시 무대에 올리고 싶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모든 것을 재조명해 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디쉬어로 된 단편들에 바탕을 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그렇게 인기를 끌 줄은 아무도 생각치 못했었다. 이디쉬는 히브리어와 독일어의 혼성으로 된 말이다. 주로 동구에 사는 유태인들이 쓰는 말인데 요즘에는 미국에 있는 유태인들도 이디쉬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우선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 대한 여섯 가지 사실들을 알아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의 미츠바(mitzvah)를 위해서이다. 미츠바라는 말은 계율이라는 뜻이지만 선행이나 덕행이란 뜻도 있다. 즉, 앞으로 더욱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라는 뜻이다.
원작자인 숄렘 알레이켐
'선 라이스, 선 세트' 등 모든 노래의 가사를 지은 사람은 숄렘 알레이켐(Sholem Aleichem: 1859-1916)은 러시아(현재는 우크라이나)에 속한 폴타바 자치령의 보론코 유태인 집촌에서 태어난 극작가 겸 작가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숄렘 라비노비츠(Sholem Rabinowitz)이며 숄렘 알레이켐은 펜 네임이다. 숄렘 알레이켐은 이디시어로 '그대에게 평화를'이란 뜻으로 유태인들의 일상적인 인사말이다. 아랍 사람들의 '살람 알레이쿰'이나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영어의 How do you do와 같은 말인데 그것을 이름으로 사용했다. 숄렘 알레이켐은 유머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노래 가사를 보면 유머와 인간미가 그대로 담겨 있다. 큰딸 차이틀과 가난한 양복장이 모텔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마을 남자들이 병을 머리어 얹고 추는 이른바 보틀 댄스(Bottle Dance)는 대단히 인상적인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춤은 원래 유태인 민속 춤이 아니다. 안무를 맡은 제롬 로빈스가 창안해 낸 활기에 넘치면서 화려한 춤일 뿐이다. 제롬 로빈스는 뮤지컬 안무의 대가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집시'의 안무를 맡아서 명성을 드높인 인물이다. 그는 결혼식에서의 춤을 안무하기 위해 정통 유태인들의 결혼식이 열리면 일부러 가서 자세히 관찰하였다. 로빈스는 결혼식 피로연에서 유태인 남자들이 추는 민속 춤을 보고 전율하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피로연에서 어떤 남자가 술병을 머리 위에 얹고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사람들 사이를 이리 비틀 저리비틀 거리면서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보틀 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로빈스가 창안한 보틀 댄스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면이 되었다. 그리고 큰 딸의 결혼식에서 마을 사람들이 신부의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부르는 '선 라이스, 선 세트'(Sun Rise, Sun Set)는 이후 유태인 결혼식에서 가장 사랑받는 축하 노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결혼식에서도 축가로 부르는 레퍼터리가 되었다.
정통 결혼식 후의 피로연에서 남자들이 추는 보틀 댄시(병춤). 유태인들의 민속 춤은 아니었다.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초연 이래 어찌나 인기가 좋았던지 26개월 동안 무려 9백회의 공연이 입장권 매진이었다. 공연 투자자들에 대한 이익 배당금은 352%였으니 본전만 뽑아도 좋다고 생각했던 투자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리하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브로드웨이에서 3천 2백회의 공연을 기록하였으니 세계의 뮤지컬 역사상 유례없는 대기록이었다. 처음에 제작자들은 혹시나 유태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서 호감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시기는 1905년이고 장소는 짜르가 통치하는 제정러시아의 한 장소였으며 내용은 어떤 무명의 평범한 유태인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 었다. 별로 내세울 내용도 아닌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대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음악을 미국의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출신으로 뮤지컬 음악 작곡가인 제리 보크(Jerry Bock: 1928-2010)가 작곡했고 가사는 미국의 작사가인 셀던 하니크(Sheldon Harnick: 1859-1916)가 맡은 작품이다. 제리 보크는 '텐더로인'(Tenderloin), '맨 인 더 문'(Man in the Moon),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She Loves Me), '애플 트리'(The Apple Tree) 등 여러 뮤지컬의 음악을 완성한 작곡가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무대는 1905년 제정러시아의 '정착구역'이다. '정착구역'은 영어로 Pale of Settlement 라고 부르며 러시아어로는 체르타 오세들로스티(Cherta osedlosti)라고 부르는데 기왕에 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정착구역'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대로 설명코자 한다.
러시아 서부의 어떤 유태인 정착구역
'정착구역'은 제정러시아의 서부지역을 말하며 1791년부터 1917년까지 유태인 또는 다른 소수민족들이 제정러시아 당국의 허락을 받고 정착했던 지역들을 말한다. 제정러시아의 서부지역은 수많은 자치령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른바 국경선이 얽히고 설켜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 1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까지는 유태인들이 영구히 또는 임시로 거주할수 있었다. 그러다가 1차 대전이 끝날 즈음에 일어났던 러시아혁명으로 제정러시아가 무너지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자 거의 모든 유태인들의 거주가 금지되었다. 하지만 소수 유태인들은 정착구역에 그대로 거주할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예를 들면 대학교의 학생이거나 또는 교수직에 있는 사람들, 상인조합에서 영향력이 있는 멤버들, 특수 예술가들, 군대 요원들 등이다. 군대 요원의 경우에는 가족을 포함하며 어떤 경우에는 이들 가족들의 가사 도우미도 포함되었다. 그나저나 Pale of Settlement에서 Pale 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Palus에서 가져온 것인데 경계선을 표시하기 위해 박아두는 말뚝을 말한다. 그러다가 어떤 지역을 감싸는 담장 또는 경계선이라는 뜻으로 발전하였다. 정착구역이 있었던 지역은 벨라루스, 리투아니아, 몰도바 전역, 현재의 우크라이나 거의 전지역, 라트비아 동부 일부, 폴란도 동부, 그리고 러시아 서부의 일부를 포함한다. 그래서 정착구역은 서쪽으로 프러시아 왕국과 오스트로-헝가리 제국과 경계를 이루었다. 정착구역은 러시아의 유럽지역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착구역은 종전의 폴랜드-리투아니아 연방, 코사크 수장국(Hetmanate), 오토만 제국의 칸이 통치하는 지역, 예를 들면 크리미아 한국(汗國)이 이에 해당한다. 제정러시아는 이들 지역을 1654년부터 1815년까지 수많은 전쟁 또는 외교적인 협상을 통해 획득하였다. 이들 지역이 제정러시아에 속하기 전에는 이곳 주민들은 유태교, 가톨릭, 동방 귀일 가톨릭(Uniate)의 종교를 가졌었다. 그러다가 제정러시아의 우산 아래에 들어가게 되자 자의반 타이반으로 대부분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게 되었다. 정착지역이 해체된 것은 1917년 혁명으로 제정러시아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부터였다.
정착구역에서 러시아 여인과 유태인 여인의 모습. 유태인은 하층민이었다. 브르노 슐츠 작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스토리는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러시아의 작가인 숄렘 알레이켐의 이디쉬어로 쓴 연작 극본인 '테브예와 그의 딸들'(Tevye and his Daughters 또는 Tevye the Dairyman)에 바탕을 두고 있다. 숄렘 알레이켐은 이 연작들을 1894년부터 시작해서 1914년까지 썼다. 그러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계속 집필을 중단해야 했다. 말하자면 미완성이었다. 숄렘 알레이켐은 1916년에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테브예와 그의 딸들'은 다른 작품들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예를 들면 마크 츠보로브스키와 엘리자베트 헤르초그가 공동으로 집필한 '생애는 사람들과 함께'(Life Is with People)이다. 숄렘 알레이켐이 미완성으로 남긴 '테브예와 그의 딸들'은 1919년에 연극으로 뉴욕에 있는 이디쉬 예술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그리고 실은 1930년대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 '테브예와 그의 딸들'이라는 타이틀의 뮤지컬이 나왔는데 이것은 오프 브로드웨이 작품으로서 아놀드 페를(Arnold Perl)이라는 사람이 음악을 붙인 것이었다. 한편,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유명한 로저스와 햄머슈타인, 그리고 '80일간의 세계일주'로 유명한 마이크 토드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제작할 생각을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그런 아이디어를 포기했다.
영화 속의 테브예.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명예스러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브로드웨이에 올릴 때에 투자자들은 걱정이 많았었다. 내용이 너무 유태적이어서 혹시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아무래도 유태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기 땜누이었다. 심지어 어떤 평론가는 이 작품이 문화적으로 대단히 부적당하며 별로 지성적이지도 않고 또한 겉치레에만 중점을 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더 뉴요커'라는 잡지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쉬테틀 키츄'(shtetl kitsch)라고 불렀다. 쉬테틀이란 단어는 러시아 서부의 유태인 집촌을 말하며 키츄는 저속하다는 뜻의 단어이다. 다시 말해서 '무식한 유태인들의 저속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서 뮤지컬에서는 러시아의 지방 관리를 상당히 동정적인 인물로 그렸다. 그러나 작자인 숄렘 알레이켐은 오리지널에서 러시아의 지방 관리를 '잔인하고 냉혹한' 인물로 표현했다. 그런가하면 오리지널 스토리에서는 피날레에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고 딸들은 각기 흩어져 살기 때문에 테브예가 혼자 쓸쓸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뮤지컬에서는 식구들이 모두 살아 있어서 한두명만 빼고는 모두 미국으로 이민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원작을 무시한 저속한 표현이라고 볼수 있다. 다만, 한가지 주목할 것은 작품의 내용이 2차 대전 중의 유태인에 대한 홀로코스트와 무관하지 않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원작의 스토리는 1차 대전 후 러시아의 혼란을 다룬 것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중에 드디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졌고 그것은 투자자들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생겨나는 대성공이었다.
유태인들의 전통적인 노래와 춤이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스토리는 정착구역의 어떤 유태인 마을에 살고 있는 우유장수인 테브예에 초점을 맞추어진 것이다. 딸 다섯의 아버지인 테브예는 외부로부터의 반유태적인 영향이 가족의 생활을 위협할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유태 종교와 유태 전통을 지켜나가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테브예는 종교적인 관습이 아니라 사랑으로 결혼코자 하는 나이가 든 세 딸들의 강한 주장과 맞서야 했다. 여기에 그는 마을로부터 유태인들을 추방하려는 짜르의 칙령과도 맞서 싸워야 했다. 1964년에 첫 선을 보인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제작은 뮤지컬 역사상 새로운 기록인 연속 3천회 공연을 훌쩍 뛰어넘는 대성공이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뮤지컬 '그리스'(Grease)가 기록을 갱신하기 전까지 10년 연속 공연이라는 최고의 기록을 세운 작품이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롱 런을 기록한 16번째 뮤지컬이었다. 그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뮤지컬의 공연으로 제작자가 상당한 사업이익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대성공이었음을 입증한 공연이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토니상을 아홉 개나 받았다. 최우수 유지컬상, 최우스 음악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안무상 등등이었다. 1971년에는 또 다시 영화로 만들어졌다. 세계적으로 대단한 인기를 끈 영화였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학교나 마을회관에서 꾸준히 공연되는 뮤지컬이 되었다. 더구나 요즘엔 한다하는 오페라단들이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오페라 형태로서 공연하는 추세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오페라의 범주에 넣고 있기도 하다. 도대체 오페라와 뮤지컬은 어떻게 다른가? 사실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말까지 생겨났다. 뮤지컬 극장에서 공연하면 뮤지컬이고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하면 오페라라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뮤지컬 연기자들이 공연하면 뮤지컬이고 오페라 성악가들이 공연하면 오페라라는 쉬운 구분 방법도 생겨났다. 공연에서 개인 무선 마이크를 쓰느나 그렇지 않느냐도 뮤지컬과 오페라를 구별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개인 무선 마이크를 사용하면 뮤지컬이고 그렇지 않으면 오페라라는 것이다.
테브예와 세딸. 차이틀, 호들, 하바
참고로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롱 런을 기록했던 뮤지컬 중에서 '지붕 위의 바이올린'보다 더 롱 런을 기록한 뮤지컬들의 순위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2. 시카고(Chicago) 3. 라이온 킹(The Lion King) 4. 캐츠(Cats) 5.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6. 코러스 라인(A Chorus Line) 7. 위키드(Wicked) 8. 오 캘커타(Oh! Calcutta!) 9. 맘마 미아(Mamma Mia) 10.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11. 렌트(Rent) 12. 저지 보이스(Jersey Bouys) 13. 미스 사이곤(Miss Saigon) 14. 42번가(42nd Street) 15. 그리스(Grease) 16.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
작사가인 셸던 하니크와 제작자인 로빈스는 처음에 뮤지컬의 제목을 '테브예'로 하려고 했었다. 그러는데 러시아의 마르크 샤갈이 숄렘 알레이켐의 오리지널을 바탕으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린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뉴욕의 제작자 등도 이에 따라 뮤지컬의 제목을 '지붕 위의 바이올린'으로 정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라는 것은 우리말로 번역한 것은 원제인 '휘들러 언 더 루프'는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 켜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가파른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은 안정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추락할 위험이 있다. 발란스를 잘 잡아야 미끄러져서 떨어지지 않게 된다. 그것은 곧 러시아에 살고 있는 유태인들의 처지를 말한다. 그 사회에서 전통을 유지하며 지내려면 발란스를 잘 잡아야 하는데 바로 그것이 유태인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지붕 위는 당연히 위험하지만 그래도 거기에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곳에 살 집이 있기 때문이다.
샤갈의 '지붕 위의 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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