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첸조 벨리니
캬풀레티가와 몬테키가
I Capuleti e i Montecchi - The Capulets and the Montagues
타이틀: I Capuleti e i Montecchi (The Capulets and Montagues). 전2막 4장의 서정적 비극(Tragedia lirica).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와 흡사한 내용으로 제노아 출신의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 1788-1865)가 대본을 썼다. 로마니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소설가인 반델로가 쓴 소설을 참고로 했다고 한다.
초연: 1830년 3월 11일 베니스 훼니체극장(베니스 카니발 시즌 중). 초연에서 로메오는 당대의 메조소프라노 주디타 그리시(Giuditta Grisi)가 맡았으며 줄리에타는 소프라노 마리아 카라도리 알란(Maria Caradori-Allan)이 맡았다.
주요배역: 카펠리오(줄리에타의 아버지, 캬풀레티가의 가장: B), 줄리에타(카펠리오의 딸: S), 로메오(몬테키가의 가장: MS), 테발도(줄리에타와 결혼할 청년: T), 로렌조(캬풀레티가의 의사: B)
베스트 아리아: O quante volte[오 얼마나 많이](S), Se Romeo t'uccise un figlio[로메오가 그대의 아들을 죽였다면](MS)
사전지식: 로미오와 줄리엣을 주제로 한 이 오페라에서는 이례적으로 메조소프라를 주인공 로메오로 삼았다. 벨리니는 이 오페라에서 사실상 소프라노보다는 메조소프라노에 상당히 많은 비중을 두었다. 마치 노르마에서 메조소프라노역인 아달지사에게도 많은 비중을 둔것과 같다.
에피소드: 벨리니는 이 오페라를 작곡하는데 단 한달 반의 시간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가 이미 작곡한 오페라 '자이라'(Zaira)의 멜로디를 상당히 인용하였다. 파르마에서의 '자이라' 초연은 야유를 받은 실패였다. 벨리니는 파르마의 모욕을 베니스에서의 '캬퓰레티...'로 복수하였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캬퓰레티'는 대성공이었다. '캬퓰레티' 1막에서 줄리에타의 아리아 Oh, quante volte는 1825년 나폴리에서 초연을 가졌던 '아델손과 살비니'(Adelson e Salvini)에 나오는 넬리의 로만짜인 Dopo l'oscuro nembo의 멜로디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벨리니는 1830년 12월 라 스칼라에서의 '캬뷸레티' 공연을 위해 스코어의 일부를 수정하였다. 라 스칼라 공연에서 줄리에타의 역할을 메조소프라노 아말리아 쉬츠 올도시(Amalaia Schutz-Oldosi)가 맡기로 되어 있어서 그를 위해 음역을 낮추었던 것이다.
라스 팔마스. 무덤의 장면
대본을 쓴 펠리체 로마니가 '캬퓰레티가와 몬테키가'의 스토리를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바탕을 두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작가인 마테오 반델로(Matteo Bandello: c 1480-1562)의 소설 '로메우스와 줄리에타'를 바탕으로 삼았다는 것이 오늘날의 정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스타일의 스토리는 중세 이전부터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전래 민화로, 또는 전설로서 퍼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이탈리아의 반델로가 처음으로 소설로 정리하여 발표한 것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도 반델로의 소설을 참고로 하여 희곡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썼다는 주장이 있다. 한편,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아서 브룩(Arthur Brooke: -1563)이 1562년에 쓴 운문시인 '로메우스와 줄리엣의 비극적 이야기'(The Tragical History of Romeus and Juliet)와 윌렴 페인터(William Painter: 1540?-1595)가 1567년에 쓴 '환락의 궁전'(Palace of Pleasure)이라는 산문시를 크게 참고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16세기의 작가들인 프랑수아 드 벨르포레스트(Francois de Belleforest:: 1530-1583)와 피에르 보에스튀오(Pierre Boaistuau: 1517-1566)가 로미오와 줄리엣 스타일의 소설을 쓴 것이 있는데 펠리체 로마니가 오페라 대본을 쓸 때에 이들의 소설들을 참고로 했다는 주장도 있다.
새로운 연출의 '캬풀레티가와 몬테키가'. 바바리아국립오페라
펠리체 로마니가 반델로의 소설을 참고로 했건 또는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참고로 했건 그가 처음에 썼던 오페라 대본은 벨리니를 위한 것이 아니라 페사로 출신의 작곡가인 니콜라 바카이(Nicola Vaccai: 1790-1845)를 위한 것이었다. 바카이는 로마니의 대본으로 1825년에 '줄리에타와 로메오'라는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벨리니의 '캬퓰레티'보다 5년 앞선 일이었다. 벨리니는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으로부터 베니스 카니발을 위한 오페라의 작곡을 부탁받자 평소부터 잘 알고 있던 로메오와 줄리에타에 대한 스토리가 적합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침 로마니가 바카이를 위해 썼던 오페라 대본이 있었으므로 로마니에게 부탁하여 그 대본의 내용을 좀 손질하여서 다시 사용하자고 제안하였다. 로마니로서도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미 써 놓았던 대본을 조금 손질하여 벨리니가 사용토록 하여 '캬퓰레티'가 탄생하게 되었다. 사족이지만 로마니가 이미 써 놓은 대본으로 루이지 스케볼라(Luigi Scevola)라는 사람이 1818년에 연극을 무대에 올린 일이 있고 토리아니(E Torriani)라는 사람이 음악극 형태의 작품을 만든 것도 있다. 사실상 로메오와 줄리에타에 대한 주제는 이탈리아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이 주제를 가지고 오페라 대본을 만든 것도 몇 개가 있다. 루찌(Luzzi)라는 사람이 루이지 마레스칼키(Luigi Marescalchi: 1745-1812)라는 사람을 위해 대본을 쓴 것이 있고(1785년 베니스 공연), 포파(Foppa)라는 사람이 니콜로 친가렐리(Niccolo Zingarelli: 1752-1837)를 위해 쓴 대본이 있으며(1796년 밀리노 공연) 부오나이우티(Buonaiuti)라는 사람이 구글리엘미(Guglielmi)를 위해 쓴 때본도 있다(1810년 런던 공연). 이탈리아 작곡가로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탕으로 하여 오페라를 작곡한 경우는 1865년 트리에스테에서 초연을 가진 필리포 마르케티(Filippo Marchetti: 1831-1902)의 '로메오와 줄리에타'로서 대본은 마르첼로(M M Marcello)라는 사람이 썼다.
현대적 연출의 '캬풀레티가와 몬테키가'. 2009 바바리아국립오페라 공연
벨리니가 베니스의 라 페니체로부터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고 '캬퓰레티'를 작곡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던 당시에 그는 '해적'(I pirata)의 초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해적'에서 주인공인 이모제네의 역할으느 메조소프라노 주디타 그리시가 맡도록 되어 있었다. 라 페니체극장은 벨리니에게 새로운 오페라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시간이 없으나 한달 반 안에 완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라 페니체가 시간이 없었던 것은 그 전에 조반니 파치니라는 작곡가에게 오페라를 부탁했으나 펑크가 났기 때문이었다. 벨리니는 '캬퓰레티'를 작곡하면서 주디타 그리시에게 로메오의 역할을 맡기기로 하고 작곡을 했다. 그러나 남자 역할을 맡기에는 소리가 약하다는 얘기가 있어서 결국 마리아 카테리나 로살비나 카라도리 알란(Maria Caterina Rosalbina Caradori-Allan)이라는 긴 이름의 메조소프라노가 맡게 되었다. 한편, 벨리니는 의사 로렌초의 역할을 베이스가 맡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테너로 바꾸었다. 아마 초연에서의 로렌초가 테너 라니에리 카발리에리(Ranieri Cavalieri)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물론 그 후의 공연은 대체로 로렌초를 베이스가 맡는 것으로 되어 있다.
로메오의 엘리나 가란차와 줄리에타의 안나 네트렙코
'캬퓰레티'가 처음 선을 보였을 때에는 4 장면으로 구분된 것이었다. 그런데 1832년 볼로냐에서 공연될 때에 로미오를 맡았던 마리아 말리브란(Maria Malibran)이 마지막의 무덤 장면을 벨리니가 작곡한 것 대신에 니콜라 바카이가 작곡한 '줄리에타와 로메오'의 마지막 막으로 대체하였다. 바카이의 마지막 막인 무덤 장면이 더 실감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보다는 아마 바카이의 무덤 장면에서 로메오의 노래가 부르기에 더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벨리니의 '캬퓰레티'에서 로메오를 콘트랄토가 로메오를 맡을 경우에는 바카이의 마지막 막을 대신 공연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었다. 예를 들어 1833년에 파리와 런던에서 '캬퓰레티'가 공연될 때에는 바카이의 마지막 막을 대신 공연하였다. 그때 로메오는 당대의 전설적인 소프라노 주디타 파스타(Giuditta Pasta)가 맡았었다. 그리고 리코르디와 같은 음악출판사에서 '캬퓰레티'의 악보를 출판할 때에는 바카이의 4막 스코어를 추가로 첨부하였다. 그러다가 1834년 플로렌스에서 주세피나 론치 데 베니스(Giuseppina Ronzi de Begnis)가 로메오를 맡았을 때부터는 원래대로 벨리니의 스코어를 사용하였다. 바그너는 성악가 중에서 빌헬미네 슈뢰더 드브리앙을 대단히 숭배하였다. 특히 드브리앙이 1834년에 라이프치히에서, 1835년에는 마그데부르크에서 '캬퓰레티'의 로메오를 맡았을 때에는 그 공연을 보고 너무도 감격하여서 평생을 잊지 못하였다.
오페라 '캬퓰레티'가 근세에 들어와서 리바이발 된 것은 벨리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1935년, 벨리니의 고향인 카타니아에서였다. 그후 1937년에는 미국의 뉴올리언스에서 미국 초연이 있었다. 그러다가 전쟁 중에는 잠잠하였다가 전쟁이 끝난지 한참 후인 1954년에 팔레르모에서 다시 모습을 보였다. 로메오는 줄리에타 시미오나토(Giulietta Simionato)가 맡았고 줄리에타는 로산나 카르테리(Rosanna Carteri)가 맡은 공연이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1966년에 라 스칼라 공연을 준비하면서 로메오를 테너가 맡도록 했다. 테너 자코모 아라갈(Giacomo Aragall)이 맡았고 줄리에타는 레나타 스코토(Renata Scoto)였다. 그리고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테발도를 맡았다. 이처럼 로메오를 테너가 맡도록 한 버전은 그후 암스테르담, 로마, 에딘버러 페스티발 등에서 공연되었다. 하지마 요즘의 추세는 역시 벨리니의 오리지널 대로 로메오를 메조소프라노 또는 콘트랄토가 맡는 것이다.
결혼식을 앞둔 두 사람
줄거리: 너무나 잘 알려진 스토리이므로 굳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스토리가 아주 약간 다르므로 소개한다. 벨리니의 오페라이므로 주인공들의 이름이 이탈리아식으로 표현된 것도 유념해야할 사항이다. 다만, 1막이 시작되기 전의 상황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벨리니의 '캬퓰레티가와 몬테키가'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내용과는 달리 두 가문이 정치적인 견해가 달라서 라이발이 되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캬퓰레티가는 귈프(Guelph)당에, 몬테키가는 기벨리네(Ghibelline) 당에 속한 것으로 되어 있다. 두 당은 정치적으로 크게 라이발이었다. 캬풀레티가의 리더는 카펠리오이다. 카펠리오에게는 방년 14세의 아름다운 여식이 하나 있다. 줄리에타이다. 카펠리오는 줄리에타를 테발도와 결혼시킬 생각이다. 그렇지만 줄리에타는 이미 로메오라는 청년을 만나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로메오는 나이는 아직 젊지만 캬퓰레티가와 라이발 관계에 있는 몬테키가의 리더였다. 두 사람의 연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캬퓰레티가의 주치의로서 줄리에타가 비밀을 말할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로렌초(로렌스)뿐이다. 그런데 마침 전쟁이 있었고 여기에 참여했던 로메오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실수로 카펠리오의 아들, 즉 사랑하는 줄리에타의 오빠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로인하여 로메오는 멀리 추방당한다. 여기까지가 서론이다. 오페라의 무대는 베로나에 있는 카펠리오의 저택과 그 주변이며 시기는 13세기이다. 참고로 말하면, 베로나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다른 이름이다. 비극의 여신의 이름은 전혀 아니었다.
제1막 1장. 카펠리오의 저택이다. 줄리에타의 아버지 카펠리오가 사람들을 불러놓고 자기 아들을 살해한 원수 집안의 로메오에게 끝까지 복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앞장서서 몬테키가의 로메오에게 죽음을 선물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테발도이다. 테발도는 줄리에타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캬퓰레티가의 원수인 로메오를 죽여서 복수를 하겠다고 말한다. 테발도의 아리아가 E serbata a questo acciaro 이다. 테발도를 믿음직스럽게 생각한 카펠리오는 하루라도 빨리 딸 줄리에타와 테발도의 결혼을 추진할 생각이다. 그 배경에는 자기의 정치세력을 넓히려는 속셈도 있다. 캬풀레티가의 주치의사인 로렌초만이 로메오에 대한 복수를 반대한다. 왜냐하면 줄리에타와 로메오가 아무도 몰래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어떤 젊은 귀족이 한 무리의 병사들과 함께 카펠리오를 방문한다. 그는 몬테키가를 대표하여 온 평화사절로서 두 가문사이의 오랜 원한을 평화로 전환하기 위해 왔다고 자기를 소개한다. 실은 겁도 없이 카펠리오의 저택을 찾아온 로메오였다. 로메로는 줄리에타의 오빠를 죽인후 멀리 추방되었다가 줄리에타가 너무 보고 싶어서 몰래 베로나로 돌아왔던 것이다. 몬테키가의 대표로 온 청년은 추방당하여 있는 로메오가 카펠리오의 아들을 비록 실수이지만 죽인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다고 전한다. 로메오의 아리아가 Se Romeo t'uccise un figlio이다. 평화사절이라는 귀족 청년은 두 가문의 화해를 위해 로메오와 줄리에타를 결혼시킬것을 간곡하게 제안한다. 그러나 카펠리오는 줄리에타에게는 테발도가 결혼상대자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말하며 몬테키가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는 피를 부르는 복수만이 있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몬테키가의 대표(로메오)는 캬퓰레타가의 전투 제안을 어쩔수 없이 수락한다. 로메오의 아리아가 La termenda ultirce spada 이다.
1막 2장. 줄리에타의 방이다. 줄리에타는 로렌초로부터 테발도와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지시를 전해 듣고 깊은 시름에 빠진다. 줄리에타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로메오를 생각하며 자기의 운명을 한탄한다. 줄리에타의 로만차가 Oh! quante volte 이다. 그러자 로렌초가 줄리에타에게 실은 로메오가 몰래 돌아왔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해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로메오가 비밀 통로를 이용해 줄리에타의 방으로 숨어 들어온다. 로메오는 줄리에타에게 멀리 도망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줄리에타는 아버지를 버리고,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며 떠날수는 없다고 말하며 갈등한다. 그러면서 상심을 치유할수 없으므로 죽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선언한다.
1막 3장. 카펠리오 저택의 다른 장소이다. 줄리에타와 테발도의 결혼식을 위해 손님들이 도착한다. 로렌초는 손님들 틈에 로메오가 변장하여 있는 것을 알아채고 로메오를 슬며시 만나 카펠리오의 손에 죽을수도 있으므로 어서 베로나를 떠나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로메오는 결혼식이 그대로 진행될수 있게 내버려 둘수 없다고 말하며 자기 동료들과 함께 소동을 벌인다. 그 통에 결혼식은 지체된다. 결혼식장에 나타난 줄리에타는 결혼식이 연기된 것과 군중들 틈에 로메오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로메오는 다시한번 줄리에타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간청한다. 두 사람이 막 도망가려는데 카펠리오와 테발도가 나타난다. 카펠리오와 테발도는 몬테키가의 사절대표로 온 청년이 로메오인 것을 알아 챈다. 그리하여 로메오를 죽이기 위해 달려 갈때 줄리에타가 로메오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의 앞을 가로 막고 나선다. 그러자 카펠리오는 저 청년의 이름이 자기의 아들을 죽인 로메오라고 소리친다. 위기에 처한 로메오는 동료들의 호위를 받으며 가까스로 피신한다. 두 연인은 만나자 마자 헤어져야 했다.
로메오의 키바셀리나 카사로바와 줄리에타의 안나 네트렙코. 원작에는 줄리에타가 14세로 되어 있다. 조숙.
제2막 1장. 줄리에타는 방에서 로렌초로부터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잠시후 나타난 로렌초는 로메오가 무사히 피신하기는 했지만 연기되었던 결혼식은 내일 당장 열리기로 되었다고 전한다. 로렌초는 줄리에타에게 신비한 약을 내밀며 이 약을 마시면 심장이 잠시 멈추며 깊은 잠에 빠지게 되어 사람들이 죽은 것으로 알게 될것이며 그런 내용을 로메오에게도 미리 전하겠으니 잠에서 깨어나면 로메오가 옆에 있을 것이므로 둘이서 멀리 떠나면 될것이라고 말한다. 줄리에타는 잠시 주저하다가 로메오를 생각하여 신비한 약을 마신다. 한편, 카펠리오는 하인들에게 결혼식 준비를 서두르라고 지시한다. 그때 마치 죽어가는 듯한 줄리에타가 그래도 아버지 카펠리오에게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억지로 나타나서 아버지에게 자기를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쓰러진다.
줄리에타의 안나 카테리나 안토나치
2막 2장은 카펠리오 저택의 다른 장소이다. 로메오는 로렌초가 나타나지 않자 조바심으로 로렌초를 찾아 나선다. 카펠리오 저택 주위를 서성이던 로메오는 마침 테발도와 마주친다. 두 사람은 칼을 빼어 결투를 한다. 그러나 잠시후 비탄의 소리와 함께 장례행렬이 지나간다. 줄리에타의 장례 행렬이다. 놀란 두 사람은 칼을 던져 버리고 줄리에타의 죽음은 각각 자기들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흐느낀다. 2막 3장. 캬퓰레티가의 지하 납골당이다. 가운데에 줄리에타의 시신이 놓여있다. 줄리에타가 정말로 죽은 줄로 알고 있는 로메오가 줄리에타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려고 나타난다. 그리고는 자기도 죽음을 선택키로 결심한다. 동료들을 물리치고 혼자가 된 로메오는 줄리에타에게 마지막 키스를 한후 준비해간 독약을 몰래 마시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때 줄리에타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로메오가 옆에 있는 것을 보고 일단은 안심한다. 줄리에타는 모든 일이 로렌초의 계획대로 잘 진행되는줄 알고 있다. 그러나 로메오는 이미 실제로 죽음의 직전에 서 있다. 이 사실은 안 줄리에타의 희망은 순간 사라진다. 두 연인은 운명이 자기들을 방해하는 것을 깨닫는다. 줄리에타는 로메오가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얘기를 하자 자기도 진짜 독약을 마시고 로메오의 몸위에 쓰러진다. 캬퓰레티가의 사람들과 몬테키가의 사람들은 이 모든 비극이 카펠리오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하며 그를 비난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명음반]
로메오, 줄리에타, 테발도, 지휘자, 오케스트라
- 1958: Fiorenza Cossotto, Antonietta Pastori, Renato Gavarini - Lorin Maazel, RAI Orchestra and Chorus, Rome
- 1975: Janet Baker, Beverly Sills, Nicolai Gedda - Giuseppe Patane, New Philharmonia Orchestra and the John Alldis Choir
- 1984: Agnes Baltsa, Edita Gruberova, Dano Raffanti - Riccardo Muti, Royal Opera House, Covent Garden Orchestra and Chorus
- 1997: Vesselina Kasarova, Eva Mei, Ramon Vargas - Roberto Abbado, Munich Radio Orchestra and Chorus
- 1998: Jennifer Larmore, Hei-Kyung Hong, Paul Groves - Donald Runnicles, Scottisch Chamber Oorchestra and Chorus
- 2005: Clara Polito, Patrizia Ciofi, Danilo Formaggio - Luciano Acocella, Orchestra Internazionale d'Italia
- 2008: Elina Garanca, Anna Netrebko, Joseph Calleja
(2013. 10. 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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