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궁정극장(Burgtheater: 부르크테아터)
비엔나 궁정극장
부르크테아터는 합스부르크제국의 궁정극장이다. 원래는 K.K. Theater an der Burg(제국극장: K. und K.는 Kaiser und König의 약자로서 합스부르크제국을 의미한다.)였다. 부르크테아터는 1741년 합스부르크제국의 마리아 테레제 여제가 설립하여 문을 열었다. 원래는 호프부르크의 미하엘러토르(정문) 오른 쪽에 있었다. 호프부르크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엔나 시민들은 부르크테아터를 그냥 ‘디 부르크’(Die Burg: 궁전)라고 불렀다. 부르크테아터의 연극배우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연기와 대사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당시의 연극 애호가라면 부르크테아터의 배우들이 어느 곳에서 공연하든지 이들의 연기 스타일과 대사를 단번에 구별할수 있을 정도였다. 마리아 테레제의 아들로서 황제가 된 요셉2세는 부르크테아터를 ‘독일어국립극장’이라고 불렀다. 독일어 연극만을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모차르트에게 독일어 오페라의 작곡을 요청했을 정도로 독일어에 대한 애착을 보였던 요셉2세는 이 극장에서 3편의 모차르트 오페라를 초연토록 지원하였다. ‘후궁에서의 도주’(1782), ‘휘가로의 결혼’(1786), 그리고 ‘여자는 다 그래’(1790)이었다. 물론 이 3편의 오페라중에서 실제로 '후궁에서의 도주'만이 대본이 독일어로 되어 있다. 그러나 부르크테아터는 협소하였다. 프란츠 요셉황제는 1888년 링슈트라쎄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 호프부르크의 궁정극장을 이전토록하였다. 설계는 드레스덴 슈타츠오퍼를 설계한 유명한 고트프리트 젬페르(Gottfried Semper)와 카를 프라이헤르 폰 하제나우어(Karl Freiherr von Hasenauer)가 맡았다. 아름답고 화려하며 정중한 극장이 완성되었다. 주로 연극을 공연했지만 오페라를 비롯한 다른 음악회들도 종종 열었다.
2차대전이 막바지에 올랐던 1945년 3월 12일, 비엔나의 중심가는 연합군의 집중포화로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부르크테아터도 슈타츠오퍼와 마찬가지로 심하게 파손되었다. 그로부터 꼭 한달후인 4월 12일, 부르크테아터는 원인 모를 화재로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비엔나시는 1953-55년에 걸쳐 부르크테아터를 복구하였다. 비엔나시는 슈타츠오퍼와 함께 부르크테아터의 재건에 최우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부르크테아터에서 사용하는 독일어는 독일어 연극을 공연하는 모든 극장의 모델이라는 전통이 있다. 그 전통은 계속 이어지져 오고 있다. 부르크테아터의 천정화는 구스타브 클림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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