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2

오데싸 오페라-발레 극장(Odessa Opera and Ballet Theater)

정준극 2007. 9. 16. 17:52

오데싸 오페라-발레 극장(Odessa Opera and Ballet Theater)

오데싸 오페라 하우스(Odessa Opera House)

Odessa Academical Opera and Ballet Theater

 

아름다운 오데싸 오페라 하우스

 

흑해에서 가장 중심되는 도시인 우크라이나의 오데싸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수많은 영욕의 세월을 지켜본 도시이다. 그건 그렇고 통상 오데싸 오페라 하우스라고 불리는 오데싸 오페라-발레 극장은 오데싸의 명물 1번지이다. 오데싸 시민들은 오데싸 최고의 명소인 오페라 하우스가 세계에서 두번째로 아름답고 훌륭한 극장이라는 자부심에 넘쳐 있다. 오데싸 시민들은 겸손하게도 비에나의 부르크테아터(궁정극장)이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극장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비엔나 궁정극장 대신에 비엔나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 다음으로 훌륭한 극장이라고 주장한다. 어쨋든 이들의 비엔나 존경심은 본받을 만한 일이다.

 

오데사 오페라 하우스의 오디토리움

 

현재의 오데싸 오페라 하우스의 전신은 거의 같은 위치에 건설된 오데싸 오페라 극장이다. 1810년에 생페테르부르크의 건축가가 완성했다. 다만 현재의 극장과 다른 점은 당시에는 현관을 흑해에 면하여 건설했다는 것이다. 극장은 처음에 귀족들과 부호들의 지원으로 운영되었으나 점차 재정이 어렵게 되었다. 이에 1831년 당시 오데싸 총독인 미하엘 보론스토프(Michael Voronstov)라는 양반이 대책을 강구해 주었다. 오데싸는 교통의 요지에 있는 항구이다. 때문에 수많은 외지인이 이 항구를 통해 들어온다. 오데싸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검역을 받도록하고 그 수익금을 유명 성악가 초청 경비 및 극장 운영비로 쓰도록해 주었다.  

 

오데사 오페라 극장

 

오데싸 오페라극장이 문을 연지 60여년만인 1873년 뜻하지 아니한 대화재가 발생하여 극장은 잿더미가 되었다. 오래동안 오직 오페라만을 사랑하는 오데사 시민들은 새로운 극장을 지어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당장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짧은 시간안에 상당한 기금이 모아졌다. 설계를 국제공모했다. 40여명이 응모했으나 마땅하지 않아 일단 보류했다. 그러는중 1875년에 그랜드 오페라극장(Grand Opera Theater)가 문을 열게 되었다. 오데싸 시민들은 더욱 분발했다. 잿더미 위에 새로 짓는 오페라 하우스는 일단 그랜드 오페라극장 스타일로 짓기로 했다. 비엔나의 유명한 건축가 페르디난트 펠너(Ferdinand Fellner)와 헤르만 헬머(Hermann Helmer)에게 설계를 의뢰하였다. 이 두 사람으로 말씀드리자면 유럽 여러곳에 70여개의 극장을 설계하고 건설한 경력이 있었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극장과 비엔나의 부르크테아터도 이 두 사람이 설계했다. 그만한 실력이면 되었다. 1884년 정초식을 가졌으며 3년후인 1887년 드디어 오매불망하던 오데싸 오페라 하우스가 완성되었다. 이름은 오데싸 시립극장이라고 불렀다.

 

오데사 오페라 하우스 메인 스테이지

 

이 극장은 오데싸에서 처음으로 전기로 불을 밝힌 건물이 되었다. 에디슨회사를 고용하여 전기 등불을 설치했다. 뿐만 아니라 오페라극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냉방시설도 갖추었다. 1세대 에어콘이라고 할수 있는 시설은 다름아니라 얼음을 마차로 실어다가 극장 지하공간에 집어 넣고 여기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을 객석의 의자 밑 통풍구로 나오게 만든 것이다. 하여튼 여름에도 시원하게 오페라와 발레를 관람할수 있었다. 건물의 현관은 이탈리아 바로크 스타일이다. 그러나 메인 홀은 프랑스 루이14세 스타일로서 황금빛 스투코(Stucco)로 현란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화마가 또 찾아 왔다. 1925년의 극장은 대화재로 골격만 남게 되었다. 재건을 위해서는 금화로 1백50만 루블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오데싸 시민들은 그 엄청난 예산에 입이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몇년후 오페라 하우스가 새롭게 완성되자 오데싸 시민들은 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나 아름답게 지어졌기 때문이었다. 온갖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된 오데싸 오페라 하우스는 고대 박물관과 같았다. 새로 지은 극장의 이름은 오데싸 아카데미 오페라 -발레극장이라고 불렀다.

 

아름다운 오데사 오페라 하우스

 

몇개의 조각 작품을 소개하면 유리피데스의 비극에 나오는 히몰리투스(Hippolytus) 조각상, 아리스토파네스의 코미디 The Bird(새)의 장면 조각상, 큐피드가 마스크와 노래하며 춤추는 조각상, 오르페우스가 시타라(Cithara)를 들고 반인반마의 괴물인 켄타우르(Centaur)에게 노래를 부르는 조각상, 9명의 뮤즈 여신중 하나인 테르프시코레(Terpsichore)의 조각상, 비극의 여신인 멜포메네(Melpomene)가 표범들이 끄는 병거를 타고 달리는 조각상, 제우스의 조각상, 천사들 조각상 등등 귀중한 조각상이 수도 없이 설치되어 있다. 정문의 벽감에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미하일 글링카, 시인 알렉산드르 푸쉬킨, 작가 니콜라이 고골(Nikolai Gogol), 극작가 알렉산드르 그리보에도프(Alexandr Griboyedof)의 흉상이 안치되어 있다. 아름다운 조각들이다.  

 

오페라 하우스 상단의 조각

 

2차대전 당시 이 극장은 폭격으로 다소 손상되었다. 1944년 4월 10일 오데싸가 파치스트로부터 해방이 되자 이를 기념하여 극장 벽에 명판을 만들어 붙였다. 얼마후 소련의 니키타 흐루스쳬프 수상이 오데싸를 방문했다. 그는 우선 오데싸 오페라 하우스의 안부부터 물었다. 다행히 한쪽만 파손되었다고 보고하자 안심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완전 독립하자 극장 지붕에 설치했던 소련 상징물(별과 망치와 낫)은 당장 철거되었다. 그리고 이름도 현재의 오데싸 오페라-발레극장으로 확정했다. 오데싸 오페라 하우스는 세계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건물일 뿐만 아니라 공연되는 작품의 수준도 매우높다.

 

알렉산드르 푸쉬킨, 미하일 글링카, 니콜라이 고골,  알렉산드르 그리보예도프의 흉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