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세하고 빛난 음성 Fritzi Jokl (프리치 요클)
1920년대와 40연대 사이에 독일은 탁월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들을 여러명 배출하였다. 로테 쇠네(Lotte Schöne), 아델레 케른(Adele Kern), 마리아 이보귄(Maria Ivogün), 이르마 바일케(Irma Beilke), 밀리짜 코르유스(Miliza Korjus), 이렌느 아이징거(Irene Erisinger), 그리고 프리치 요클....몇명만 꼽아보면 그렇다. 프리츠 요클은 아름답고, 섬세하며, 매끄럽게 빛나는 음성을 가졌다. 그의 음성은 매호적으로 감미롭다. 그는 최고의 아티스트로서 놀랄만큼 찬란하며 상상에 넘쳐있다. 그러한 요클도 메트로에서 릴리 폰스와 비두 사야오(Bidu Sayão)가 거의 모든 주역을 맡아하는 바람에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비엔나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주로 활동했던 그는 유태계라는 이유 때문에 나치의 핍박을 받아 독일을 떠날 수 밖에 업었다. 요클은 천신만고로 미국으로가는 이민자의 행렬에 참여할수 있었다. 1937년 미국으로 온 그는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인 잭 지겔(Jack Siegel)과 결혼하였으며 메트로에 진출하여 지난날의 영화를 되새겨보고자 했지만 앞에서 말한대로 릴리 폰스, 비두 사야오등이 메트로의 스타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 틈이 없었다. 그 후 요클의 음성은 사석에서나 들을수 있었다.
요클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오페라에 데뷔하여 5년을 지냈다. 독일 오페라에서 소년역할은 모두 요클의 차지였다. 그러다가 점점 어른 역할을 맡게 되었다. 로지나, 케루비노, 오스카, 우르벤, 블론드헨, 조피 등이었다. 요클의 조피 역할은 대오페라 팬들과 평론가들로부터 특별한 찬사를 받았다. 그후 베를린의 폭스오퍼(Volksoper)에 들어가 콘스탄체, 노리나, 비올레타 등에 출연하였으나 폭스오퍼가 경영상 어려움 때문에 문을 닫게 되어 쾰른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는 쾰른에서 프리마 돈나로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한편 뮌헨에서는 작곡자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자신의 지휘로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에서 체르비네타를 맡아 더할수 없는 찬사를 받았다. 요클은 뮌헨에 몇해 동안 있으면서 대단한 찬사를 받아다. 그는 이곳에서 질다, 네다, 올림피아, 마르첼리나, 로잘린데 등을 자기의 레퍼토리에 추가했다.
콘스탄체(후궁에서의 도주)
1932년 요클은 지휘자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의 초청으로 베를린 크롤 오페라에 초청되었으나 정치상황이 급변하자 오토는 베를린을 떠났고 요클도 무대에 설 기회를 갖지 못했다. 마침 유태인들이 경영하는 몇 개 극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유태인 아티스트들을 받아 들였다. 관중들도 거의 유태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요클은 나치의 핍박을 용하게 피해 미국으로 갔다. 요클은 미국에 온후 30여년을 지내다가 1974년 세상을 떠났다.
노리나(돈 파스쿠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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