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마 돈나 배우 Fritzi Massary (프리치 마싸리)
1882년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196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난 프리치 마싸리는 이름난 소프라노 겸 유명한 배우였다. 비엔나의 유태인 가정에서 세딸중 첫찌로 태어난 마싸리(원래 이름은 Friederika Massaryk)는 어릴때부터 이미 성악 레슨을 받아 17세 때에 린즈(Linz)국립극장 무대에 등장하는 재능을 보였다. 그후 비엔나에서 몇 번의 오페라 무대에 등장하였다가 결국은 베를린에 정착하였다. 프리치 마싸리는 베를린 메트로폴극장의 간판스타였다. 이곳에서 그는 주로 파울 링케(Paul Lincke)의 오페레타에 출연하여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그가 어디를 가든지 마싸리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환영하였으며 베를린의 여인들은 마싸리의 유행을 따르기에 바빴다. 1916년, 34세 때에 그는 동료인 막스 폰 펠렌버그(Max von Pellenberg)와 결혼하였고 전보다 더 무대에 전념하여 요한 슈트라우스, 자크 오펜바흐, 레오 팔스, 프란츠 레하르 등의 오페레타에 프리마 돈나로 출연하였다. 그리고 1926년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 출연하기까지 했다.
마싸리는 뛰어난 미모와 연기로서 영화에 출연하여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오페라 아티스트, 또는 영화배우가 어느 예술가보다 대중들의 환영을 받았다. 마싸리가 베를린에 있으면서 출연한 영화는 비올라(1912), 턴넬(1915), 슈탐불의 장미(1919), 사랑의 어리석은 춤(1919)등이다. 결혼한지 18년후인 1934년, 그의 후원자였던 남편은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마싸리는 두 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점차 예술 활동은 주춤하였다. 더구나 이 시절에 마싸리는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히틀러의 나치에게 핍박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그는 1938년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거쳐 런던으로 떠났으며 다시 미국으로 이민 가서 할리우드에 정착했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는 별로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는 1969년 비벌리 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87세.
한나(메리 위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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