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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겟다의 스승 Carl Martin Oehman (칼 마르틴 외만)

정준극 2008. 2. 28. 15:09
 

▒ 니콜라이 겟다의 스승 Carl Martin Oehman (칼 마르틴 외만)


스웨덴에 바그너 소프라노로서 비르기트 닐쓴이 있다면 바그너 테너로는 칼 마르틴 외만이 있다. 그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바그너의 로엔그린, 탄호이저 등 비교적 리릭한 테너역할에서 대성공을 거둔 위대한 테너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오페레타에 전념하여 레하르의 ‘웃음의 나라’에서 수총(Sou-Chong)의 역할만 7백회 이상을 공연하였다. 그러므로 눈감고도 수총을 맡아할 정도로 수총맨이었다. 무대에서 은퇴후 그는 훌륭한 성악교사로서 활동했다. 세계 최고의 테너로 우뚝 선 니콜라이 겟다(Nicolai Gedda)와 위대한 핀란드 출신의 베이스 마티 탈벨라(Matti Talvela)는 칼 마르틴 외만의 제자이다.

 

'삼손과 델릴라'에서 삼손 역을 맡은 칼 마틴 외만


칼 마틴 외만은 스웨덴의 플로다(Floda)라는 마을에서 루터교회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스웨덴 육군의 장교로 복무하다가 음악을 위해 군복을 벗고 스톡홀름왕립음악원에서 피아노, 오르간, 음악이론을 공부하였다. 졸업후 성악으로 방향을 정하여 스톡홀름에서 카를 겐첼(Carl Gentzel)에게서 공부했으며 나중에는 밀라노에서 성악을 공부하였다. 그의 첫 오페라 데뷔는 1914년 요테보리(Göteborg)에서 오버(Auber)의 프라 디아볼로(Fra Diavolo)에 출연한 것이었다. 1919년부터(우리나라에서 삼일운동이 일어난 해) 그는 스톡홀름의 왕립오페라단에 합류하여 그루보터 1941년까지 20여년동안 정규 단원으로 활약하였다. 외만의 첫 국제적 명성은 1924년 메트로에서였다. 그때에는 바그너가 아니라 미국 초연의 예누파(Jenufa)로였다. 당대의 마리아 예리차가 상대역이었다. 그는 메트로에서 삼손(Samson)도 맡아 호평을 받았지만 어쩐 일인지 그후 더 이상 메트로의 무대에 초청받지 않았다.

 

로엔그린 역의 칼 마틴 외만 


그후 외만은 베를린 슈타츠오퍼와 계약을 맺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1937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까지 외만은 가장 인기있는 위대한 바그너 테너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의 레퍼토리는 로엔그린과 같은 보다 리릭한 바그너 역할이 중심이었지만 베르디의 돈 카를로, 시몬 보카네그라도 그가 사랑하는 작품들이었다. 런던이 외만의 음성을 들은 것은 1927년이었다. 코벤트 가든에서 탄호이저와 슈톨칭(Stolzing)을 부른 것이었다. 히틀러의 나치정권에서 그는 미국이나 영국에서의 공연을 제한받았다. 다만, 베를린과 스톡홀름에서만 출연할수 있었다. 결국 그는 1937년 무대에서 은퇴하였다. 그리고 오페레타와 같은 가벼운 역할을 맡다가 성악교수로서 활동하여 니콜라이 겟다와 같은 위대한 테너를 양성하였다.

 

'아이다'에서 라마메스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