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테너

최고의 데미 캬락테레 Georges Thill (조르즈 틸)

정준극 2008. 3. 1. 23:04
 ▒ 최고의 데미 캬락테레 Georges Thill (조르즈 틸)

 


조르즈 틸은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테너로서 조국인 프랑에서 영웅과 같은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당시의 일반 테너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저 소리만 부드럽고 곱게 내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그의 음성에는 화려함과 함께 굳건하고 강한 힘이 있었다. 대표적 역할은 마스네의 마농에서 데 그류(Des Grieux)였다. 마스네의 마농에서 그가 부른 아리아 Ah! fuyez douce image는 다행히 음반으로 남아있다. 아직까지 그만한 데 그류 역할을 찾아 볼수 없다는 것이 프랑스 음악계의 한결같은 목소리이다. 조르즈 틸은 1897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에 대한 경력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청년시절 파리 증권거래소의 장외 중개인으로 일했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그는 자기의 고객들이나 동료들을 위해 간혹 파티를 열고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오페라 아리아를 불렀다. 그는 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일이 없다. 다만 음반을 들으면서 유명한 테너들의 아리아를 듣고 외웠을 뿐이었다. 테너 성공사례의 전형이었다.

 

1916년, 1차대전때 그는 프랑스군에 입대하여 최전방에 배치되었다. 그는 전방생활을 하면서 동료들에게는 친절하고 상관들에게는 예의를 다하며 언제나 솔선수범하는 용기를 보여주어 모든 장병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고 파리로 돌아온 그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삼촌의 사업을 도우면서 지냈다. 착한 삼촌은 조카 틸의 성악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파리음악원에 들어가 본격 공부토록 권면하였다. 마침내 틸은 성악가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파리음악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진전이 없자 그는 나폴리로 떠나 새로운 변화를 기도하였다. 나폴리에서 그는 19세기 이탈리아 벨칸토의 대가였던 페르난도 드 루치아(Fernando de Lucia)로부터 개인레슨을 받을수 있었다. 루치아 선생은 틸에게 프랑스식 딕션(가사로 노래부르기)과 감성적인 스타일에 이탈리아식 벨칸토 레가토와 메자-보체(mezza-voce) 스타일을 혼합한 독특한 발성을 가르쳤다. 그로부터 2년후, 틸은 ‘데미 캬락테레’ (Demi-caractére)음성을 가진 훌륭한 테너가 되어 프랑스로 돌아왔다. 즉, 테노레 디 그라지에(우아한 테너)와 테노레 디 포르자(힘있는 테너)의 중간에 해당하는 음성의 테너를 말한다.


그는 오페라에 데뷔하기 전에 자기가 맡을 역할에 대하여 진지하게 공부하였다. 그래서 자기에게 적합한 역할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여 무대에 섰다. 사람들은 그를 최고의 데 그류라고 하지만 그 자신은 오펜바흐의 ‘아름다운 헬렌’에서 파리스왕자 역이 자기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역할이며 탄호이저는 맞지 않는다고 말한바 있다. 1924년 파리 오페라에 마스네의 타이스에서 니시아스(Nicias)로 데뷔하였고 1926년 라 트라비이타의 프랑스 초연에 알프레도로 출연하였으며 1928년에는 코벤트 가든(삼손과 델릴라), 1930년 라 스칼라(안드레아 셰니에, 황금서부의 아가씨), 1931년에는 메트로에 데뷔하여(돈호세, 로메오, 파우스트, 라크메의 제라르) 놀랍도록 아름답고 감미로운 음성을 들려주었다. 그가 주로 맡은 역할은 투란도트(칼라프왕자), 카르멘(돈 호세), 토스카(카바라도씨), 딕 존슨(황금서부의 아가씨) 등이다. 그는 수많은 음반을 남겼다. 이들 음반을 통해 우리는 하늘이 내려준 것과 같은 그의 아름다운 고음을 들을수 있다. 특히 리골레토의 질다와의 듀엣에서 하이D플랫을 힘들이지 않고 낸 것이라든지 파우스트의 Salut! demeure chaste et pure에서 하이C를 낸 것은 참으로 절묘한 아름다움으로 평가되고 있다. 틸은 1953년 파리 오페라에서 팔리아치의 카니오를 마지막으로 오페라 무대와 작별하였다. 그후 3년동안 여러곳을 다니며 콘서트 연주회를 가졌다. 그런후 1956년 완전히 음악으로부터 은퇴하였고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1984년 프랑스의 드라귀낭(Draguignan)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