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세계 3대 오페라 필라

세계 오페라의 3대 기둥

정준극 2008. 3. 4. 16:28

세계 오페라의 3대 기둥

 

파리 팔레 갸르니에(국립오페라극장)의 조각


오페라의 세계에는 이른바 3대 기둥(필라)이 있다. 세계 오페라를 떠받치고 있는 세 개의 오페라 학파(Opera School)라고 말할수 있는 기둥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오스트리아이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어 권역이므로 독일+오스트리아로 표기 한다. 영국이 푸대접 받고 있는 것은 미안한 일이다. 영국도 훌륭한 오페라 작품을 많이 내놓았지만 ‘세계적’이라고 꼽을 만한 작곡가와 작품은 거의 없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오페라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것이 키포인트이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 유럽국가에서도 훌륭한 작품들이 찬란하게 생산되었으며 세계 오페라 연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러시아와 동유럽 여러 나라들도 따지고 보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오스트리아라는 커다란 필라(Pillar)에는 가려져 있다. 그러면 이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오스트리아의 세 기둥은 각기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가?


아름다운 멜로디의 이탈리아 오페라

 

이탈리아는 오페라의 원조 및 본가라는 자부심과 함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최초의 오페라는 어느 나라의 누가 작곡한 것이냐는 질문이 퀴즈에 나온다면 대답은 이탈리아의 몬테베르디이다.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단연 멜로디 중심이다. 듣는 사람의 감각을 황홀하게 해주는 감미로운 멜로디이다. 오페라라고 하면 우선 아리아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리아가 나오는 오페라라고 해서 무조건 오케이는 아니다. 우선 듣기에 좋은 아리아여야 한다. 이탈리아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는 듣기가 좋다. 그래서 이탈리아 오페라가 오랫동안 세계 오페라 무대를 휩쓸었던 것이다. 도니제티, 로시니, 벨리니로 대표되는 이탈리아산 벨칸토 오페라는 아름다운 아리아에 중점을 둔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단순히 아름다운 아리아만을 내놓은 것이 아니다. 베르디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가능성을 한 단계 높여준 위대한 인물이다. 베르디는 아름다운 음악에 인간 내면세계의 격정, 그리고 인간 능력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의 섭리를 담은 스토리를 전달해 주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그런 면에만 치중하다보면 분별을 잃는 경우도 있다. 현실을 소홀히 하게 되며 메시지가 논리적이지 못할 경우가 있다. 즉, 스토리(대본)에만 너무 집착하다보면 음악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찾지 못하고 형식에 흐를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다(Aida)는 성악과 오케스트라 음악의 새로운 조화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아이다의 등장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연혁에 일대 전기를 마련해 준 것이었다.

 

베르디의 '리골레토'에서 리골레토와 질다                                            
                         

현대를 사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들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그로 인한 인간성 회복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른바 베리스모(Verismo) 작품이다. 고전적인 대본은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은 종교적이며 사상적이고 교훈적인 스토리보다는 음악의 내용에 보다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다. 오케스트라 음악도 아리아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그러한 생각의 한 부분이었다. 신예 작곡가들은 도니제티, 로시니, 벨리니의 작품을 구세대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다만, 베르디의 경우에는 구세대와 신세대의 가교 역할을 한 인물로 간주하였다. 베르디의 뒤를 이은 사람이 푸치니이기 때문이다. 푸치니에 이르러서는 음악의 틀 보다는 인간의 감정 표현이 우선이었다.


관현악과의 조화를 강조한 프랑스 오페라

 

프랑스의 오페라 무대는 라모(Rameau)의 Castor and Pollux(캬스토와 폴럭스)와 같은 작품으로 대변된다. 프랑스에서는 이를 트라제디 리릭(Tragédie Lyrique)이라고 불렀다. 글자 그대로라면 서정적 비극이다. 명칭은 그렇더라도 실제로는 일반적인 오페라를 의미한다. 다만, 웃고 즐기는 코믹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라모는 프랑스 특유의 기질이 배어있는 오페라를 고수하고 발전시킨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러다가 글룩이 프랑스에 이주해 오면서부터 프랑스풍의 클래식한 오페라는 당분간 뒷전으로 물러나 있어야 했다. 글룩의 오페라는 음악과 연극의 조화를 추구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개혁적인 시도였다. 그레서 글룩을 개혁주의자라고 부르며 그의 오페라는 개혁작품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글룩은 독일인이면서 프랑스에 이탈리아 오페라 스타일을 수출한 선구자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기본적으로 프랑스 오페라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프랑스 오페라의 아버지라고 하는 장 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가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짐작할수 있는 일이다. 때문에 프랑스는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꽃피우지 못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여기에 독일 출신의 마이에르베르가 혜성과 같이 등장하여 프랑스 오페라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프랑스 오페라를 발전시킨 이면에는 프랑스 이외의 나라 사람들이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오펜바흐도 그렇고 앙브루아즈 토마도 그러하다. 그러나 아무리 외국적 입김이 있었다고 해도 프랑스는 프랑스이다. 알레비, 베를리오즈, 오버, 비제, 마스네, 구노 등은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의 대표적 인물들이다. 


프랑스 오페라 학파에 있어서 기악은 성악을 지원하는 입장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자니 자연히 성악을 지원하는 입장에서의 기악적 효과를 중시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프랑스의 관현악적 표현은 다른 나라의 경우보다 훨씬 풍부하다. 실제로 성악과 기악적 효과의 콤비네이션은 고전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에 비하여 더 뛰어나다. 프랑스의 오페라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사촌이라고 할수 있지만 이탈리아가 감성에 치우치고 있는데 반하여 프랑스 오페라는 상당히 신중하게 이성적인 사고방식으로 짜여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지나칠 정도로 계산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도를 넘을 정도로 현란한 것은 아니었다. 스토리의 선택에서도 프랑스 오페라는 신중한 성향이었다. 특히 프랑스 오페라는 대본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대사가 지니고 있는 감칠맛 나는 뉘앙스를 놓치지 않고 반영하는 것은 프랑스 오페라의 특성이다. 하기야 프랑스 사람들은 세계에서 프랑스어가 가장 예술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프랑스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오페라에 대하여 높고 넓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마스네는 진정한 의미에서 마이에르베르와 구노를 계승한 프랑스 오페라 학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반면 비제의 카르멘에는 어느 누구도 모방할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또한 드빗시의 ‘플레아와 멜리상드’는 어찌 보면 완전히 낭만적인 프랑스 스타일에서 분리된 표현주의적 서정성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오선지라는 화폭에 인간의 감성과 자연의 순수함을 있는 그대로 그려 놓은 것과 같다.

 

비제의 '카르멘'의 무대 


프랑스에서 오페라 코믹(Opera Comique)은 오페라 중에 대사가 있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의 그랑 오페르(그랜드 오페라)는 그야말로 웅장한 스케일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랑스의 초기 그랜드 오페라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로시니의 귀욤 텔(1829)과 마이에르베르의 로베르 르 디아블(Robert le Diable)을 꼽을수 있다. 그랜드 오페라는 보통 5막으로 구성되었다. 중간에는 완전한 발레 순서로 된 인터루드가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는 구노의 파우스트이다. 대단한 규모였다.


음악적 드라마를 연출한 독일 오페라

 

독일 오페라 학파는 마치 어떤 목적을 위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작품을 내놓는 것으로 주류를 이루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아리아를 중심으로 했다면 독일+오스트리아의 오페라는 이러한 성악적 전시효과를 무시하고 성악과 오케스트라의 균형을 위해 노력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여 음악을 무대의 한 파트로서 발전시켰다는 특징이 있다. 독일 오페라 학파는 연극과 음악이 조화를 이루려면 음악이 대사를 충분히 뒷받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일은 베버(Weber)를 기수로하여 낭만주의 오페라의 선봉에 섰다. 낭만주의(로맨티시즘)라고 해서 혹시 로맨틱한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독일의 낭만주의는 독일 전래의 전설에 기본을 둔 초자연주의와 신비주의의 혼합물이다. 그래서 독일 낭만주의 작품에는 울창한 숲, 마법, 악마, 저주, 희생, 구원과 승리라는 공식이 포함된다. 베버는 독일 낭만주의를 완성시켰고 바그너는 이를 승화시켰다. 그리하여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을 거치면서 발판을 다진 독일이 오페라는 이후 바그너에 이르러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놀라운 오페라가 창출되었으며 바그너를 계승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탐미롭고 관능적인 음악으로 최고의 금자탑을 쌓았다. 독일 오페라의 또하나 특징은 낭만주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음악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독일+오스트리아는 음악의 역사에 있어서 놀라운 역할을 하였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작곡가들은 거의 모두 독일+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고 활동했다.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슈베르트, 베버, 멘델스존, 브람스,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요한 슈트라우스, 구스타프 말러, 쇤베르크 등등. 어찌하여 신은 독일에만 위대한 작곡가들을 보내셨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런 독일+오스트리아이므로 오페라의 세계에서도 최고의 존재라고 말할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소홀히 할수도 없는 존재이다.  

 

 베버의 '마탄의 사수' 피날레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