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독일-오스트리아

모차르트, 볼프강 아마데우스

정준극 2008. 3. 14. 15:08

천상의 멜로디, 천재의 하모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음악 역사상 고전시기의 피크에 살았던 인물이다. 우아함과 아름다움과 세련됨, 그리고 고귀함이 풍미하던 시대였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비엔나 고전음악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모차르트의 작곡에 대한 탁월함, 그리고 그의 만능의 다방면성은 아무도 따를수 없는 것이었다. 모차르트는 음악의 모든 장르에서 고전작곡의 완전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모두 22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 중 10편은 소년시절에 만든 것이다. 18세기 초 당시의 오페라를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구식인 것 같고 정체된 느낌을 주지만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예나 지금이나 한 결 같이 신선함을 던져주고 있다. 모차르트는 역사상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이다. 모차르트는 천부적 재능으로 우아함을 작곡한 사람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정식 이름은 Wolfgang Amadeus Mozart이지만 세례명은 Johannes Chrysostomus Wolfgangus Theophilius이다. 아마데우스 (Amadeus)는 Theophilius의 라틴어 변형이다. 가족들은 모차르트를 Wolfgangerl 또는 Wolferl이라고 불렀으며 결혼하고 나서는 Wolfie(볼피)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Wolfie는 집에서 심심풀이로 오페라나 작곡하는 것을 더 좋아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레오폴드(Leopold) 모차르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린 아들의 천재성을 과시하고 싶었다. 역시 피아노 솜씨가 뛰어났던 누나 난네를(Nannerl)을 데리고 유럽 각국을 순회 연주했다. 돈 푼이라도 벌자는 속셈도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 레오폴드는 아들 모차르트의 우수한 연주 솜씨를 과학적 현상이라고 선전하면서 손님을 끌어 모았다. 영국에서의 포스터를 보면 ‘과학을 신봉하는 모든 이들이여! 유럽에서, 아니 인간 세상에서 가장 신동인 독일의 어린 소년 볼프강 모차르트가 여기 왔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모차르트는 눈을 가린 채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피아노 건반을 가린 채 연주하기도 했으며 단 한번 들은 곡을 그 자리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다시 연주하는 솜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누나 난네를도 하프시코드를 기차게 연주하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어린 볼피와 난네를은 마치 규모가 작은 순회서커스단의 단원처럼 유럽의 여기저기를 순회 공연하였다. 만일 오늘날처럼 제트여객기가 있었다면 아마 출연료 많이 주는 한국에도 와서 한달 정도는 머무르다가 중국으로 갔을 것이다.


 '후궁에서의 도주'. 베를린 공연을 보고 즉흥적으로 지휘하는 모차르트의 모습


모차르트는 13세 때 억지로 직장을 가졌었다. 잘츠부르크 대주교 궁정의 오케스트라 악장 겸 오르간 연주자로 취직했다. 그러기를 12년 동안이나 봉사했다. 하지만 대주교는 모차르트를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시도 때도 없이 연주여행이랍시고 돌아다니지를 않나, 그렇지 않으면 돈 더 주는 다른 직장이 없을까 하며 기웃거리지를 않나, 하여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대주교는 모차르트를 해고하였다. 모차르트는 ‘에라, 기왕에 잘되었다!’라는 심정으로 잘츠부르크를 훌훌 털고 떠났다.


모차르트가 일했던 잘츠부르크 대주교궁. 잘츠부르크대성당 인근에 있다.


● 독일어 오페라의 첫 출현


모차르트는 비엔나 행 마차 티켓을 샀다. 이번에는 아버지와 함께가 아니라 혼자였다. 어릴 때 모차르트는 비엔나 연주 여행을 간 일이 있다. 비엔나는 음악활동의 중심지였고 사람들은 신동 모차르트에게 열광한 일이 있었다. 쇤브룬궁전에서 연주했을 때 마리아 테레자여제가 찬사를 보냈던 일, 넘어진 자기를 마리 앙뚜아네트 공주가 일으켜 주었던 일들이 새삼스럽게 생각났다. 그러나 장성하여 다시 찾아간 비엔나는 생각처럼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했다. 모차르트는 오페라를 쓰며 근근이 생활했다. 이 시기에 모차르트는 콘스탄체 베버라고 하는 젊은 아가씨와 결혼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하숙집 둘째 딸이었다고 한다.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모차르트는 그의 이국적이며 코믹한 걸작 오페라 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후궁에서의 도주)의 여주인공 이름을 콘스탄체라고 붙였는지도 모른다. 이 오페라는 독일어 대본이다.

 

'후궁에서의 도주' 피날레.



그때까지만 해도 비엔나에서 공연되는 거의 모든 오페라는 이탈리아 말이었다. 모차르트는 사람들이 오페라의 대사를 직접 알아듣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2세가 모차르트의 이같은 생각을 후원하였기에 독일어 오페라가 가능했다. 프란츠2세는 저 유명한 마리아 테레자 여제(女帝)의 뒤를 이어 황제의 오른 인물이다. 모차르트는 오페라의 대사를 보다 확실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반주에 맞추어 대화하는 레시타티브를 회피하고 오늘날의 오페레타나 뮤지컬에서와 같은 직접 대화 스타일을 택하였다. 징슈필(Singspiel)이었으니 굳이 번역하면 ‘노래 연극’(Sing play)이었다.

 

'마술피리'의 환상적인 무대


● 완벽한 편안함과 감미로움

모차르트의 재능은 천부적인 것이었다. 음악이 머리의 한 구석에서 끊임없이 샘처럼 솟아 나왔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샘솟듯 솟아 나오는 음악을 오선지에 착착 옮겨 적는 일이었다. 모차르트는 여러 형태의 작품을 수많이 생산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오페라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멜로디는 단순하고 우아하며 폭 넓은 감성을 지닌 것이었다. 그는 여러 주역들이 동시에 노래하는 스타일을 좋아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멜로디로 노래하더라도 가사는 모두 정확히 전달되도록 배려하였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칼라(음색)를 마스터하였다. 특별한 효과와 사운드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어떤 특정 악기를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기도 했다. 

 

'피가로의 결혼'. 비엔나 슈타츠오퍼




모차르트는 오페라에 가장 궁합이 맞는 스토리 발굴에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예를 들어 피에르 드 보마르세(Pierre de Beaumarchais)의 소설을 대본으로 한 Le Nozze di Figaro(피가로의 결혼)이었다. 당시에는 거의 금기사항이었던 귀족사회와 군주정치에 대한 반항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들어 보면 안다. 서곡은 명랑하고 활기차며 샴페인과 같은 찬란한 짜릿함이 있다. 아리아는 어떠한가? 주옥과 같다. 모차르트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 주는 것과 같다.  ‘피가로’의 초연이 있은지 1년 후, 프라하오페라극장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조카딸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모차르트에게 새로운 오페라 작곡을 의뢰했다. 이 성스럽고 경하해야 할 결혼식 축하 작품으로 택한 스토리는 엄숙한 경종을 던져주는 Don Giovanni(돈 조반니)였다. 희대의 바람둥이 돈 후안(Don Juan)의 얘기였다. 대 히트였다.

 

'돈 조반니'에서 돈 조반니와 돈나 안나, 돈나 엘비라


모차르트의 오페라 수첩

[초기작품] ● Die Schuldigkeit des ersten Gebotes(1766 잘츠부르크. 종교적 Singspiel) ● Apollo et Hyacinthus(1967 잘츠부르크. 라틴 코미디) ● Batien und Bastienne(1768 비엔나. Operetta) ● La finta semplice(1768 비엔나. Opera buffa) ● Mitridate, rè di Ponto(폰토의 왕 미트리다테. 1770 밀라노. Opera seria) ● Ascanio in Alba(1771. 밀라노 Serenata teatrale) ● Il sogno di Scipione(스키피오네의 꿈. 1772 잘츠부르크. Serenata drammatica) ● Lucio Silla(1772 잘츠부르크와 밀라노. Dramma per musica) ● La finta giardiniera(사랑의 정원사 1774. 잘츠부르크와 뮌헨. Opera buffa) ● Il rè pastore(1775 잘츠부르크. Dramatic festival opera) ● Thamos, King of Egypt(1779 잘츠부르크. Incidental music) ● Zaïde(1779 잘츠부르크. Singspiel)

[후기작품] ● Idomeneo, rè di Creta(크레테왕 이도메네오. 1781 뮌헨. Opera seria) ● 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후궁에서의 도피. 1782 비엔나. 코믹 징슈필) ● L'oca del Cairo(1783 잘츠부르크. Dramma giocoso) ● Lo sposo deluso, 또는 La rivalità di tre donne per un sole amante(1783 잘츠부르크. Opera buffa) ● Der Schauspieldirektor(음악감독. 1786 비엔나. Comedy with music) ● Le Nozze di Figaro(피가로의 결혼. 1786 비엔나. Opera buffa) ● Don Giovanni(돈 조반니. 1787 프라하. Dramma giocoso) ● Così fan tutte(여자는 다 그래. 1790 비엔나. Opera buffa) ● La clemenza di Tito(티토의 자비. 1791 프라하. Opera seria) ● Die Zauberflöte(마적. 1791 비엔나. Grand opera) * Dramma giocoso: 활발하고 우스운 형태의 음악극. 오페라 부파와 같은 성격의 작품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인 '티토의 자비'의 피날레 장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