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영국

헨델, 조지 프레데릭

정준극 2008. 3. 18. 09:16
 

영국 음악의 구세주

조지 프레데릭 헨델

 


대륙에서 떨어진 영국 땅에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이미 17세기 이전에 유입되었다. 베니스 프로덕션의 오페라가 영어로 번역되어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 이럴 즈음에 독일 출신으로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조지 프레데릭 헨델(George Frederic Handel: 1685-1759)이 영국의 오페라계를 1차 방문하여 헨델표 이탈리아 오페라를 선보였다. 이탈리아어로 오페라가 공연되니 이탈리아 오리지널 오페라를 구경하지 못했던 런던시민들은 베니스나 밀라노로 돈 들여서 오페라여행을 가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었다. 영국 사람들이 헨델의 이탈리아 오페라를 정말 흥미 있어 했는지 아닌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하여튼 헨델의 런던에서 대 성공이었다. Rinaldo(리날도)는 데표적이었다.

 

'리날도'(사뮈엘 레이미)


헨델은 바로크시대의 가장 저명한 작곡가이다. 헨델은 바흐와 같은 해에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바흐가 조국 독일을 고수한 반면 헨델은 이탈리아로 가서 공부했고 영국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 웃기느라고 하는 말이지만 독일 출신의 헨델이야 말로 영국을 대표하는 가장 훌륭한 작곡가라고 선전되어 있다. 또 한가지 바흐와 공통되는 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안과의사에게서 백내장 수술을 받은 것이다. 아무런 마취를 하지 않고 어려운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고통을 참는 데에는 도사였다고 할수 있다. 다만 바흐가 백내장 수술의 여파로 합병증이 생겨 결국 수명을 단축하는 비운을 겪었지만 헨델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헨델의 아버지가 외과의였기 때문에 아들의 세균 감염에 각별히 조심을 했던 것 같다.

 

'세르세스'(데니스 하마로바)


헨델은 법률공부를 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열여덟 살 젊은 나이에 함부르크로 가서 작곡가 겸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헨델은 이탈리아 오페라가 장차 유럽을 휩쓸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래서 22세 때에 단신 머나먼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오페라라는 것을 어떻게 작곡하는지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탈리아에서 헨델은 스칼라티(Scarlatti)를 비롯한 당대의 저명한 작곡가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한 때 헨델은 이탈리아에 눌러 앉아서 밥벌이나 할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수많은 원어민 오페라작곡가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고향 앞으로!’를 택했다. 사람들은 함부르크로 돌아온 그를 환영하기는커녕 알아 모시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영국행 배표를 끊었다. 옛날 리날도의 성공신화를 재연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헨델은 ‘영국만이 나를 환영하도다!’라는 마음으로 영국을 방문하여 지내다가 얼마후 아예 영국으로 귀화했다. 마침 헨델의 후원자였던 하노버선제후가 영국의 조지1세로 등극하자 헨델은 영국으로 귀화하기를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헨델은 조지1세의 특별 배려로 평생 연금을 받게 되었다.

 

'세멜레'(루스 앤 스웬슨)


헨델은 30년 영국 생활에서 모두 36편의 이탈리아 스타일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하지만 당시의 영국사회는 헨델의 이탈리아어 오페라에 대하여 처음에는 미친듯이 환영하다가 무슨 변덕이 들었는지 점차 환영하지 않았다. 처음 한두번은 헨델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좋다고 하면서 난리였지만 얼마 지나고 부터는 ‘알아 들을수 없는 이탈리아어 오페라를 왜 알아들으려고 애써야 하는가?’라는 약간의 자책감 때문에 외면을 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자 영국인들의 외국어 재능부족은 알아주어야 했다. 아무튼 헨델의 이탈리아어 오페라는 별로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철석같이 믿었던 조지1세가 왕위를 물러나고 제임스라는 사람이 왕이 되자 ‘별로 쓸모도 없는 헨델에게 왜 돈을 주느냐?’는 말 한마디에 왕실로부터의 재정 지원조차 끊어졌다. 그나마 일부 돈 많은 상인들이 후원금을 내 주어서 먹고 살며 간간히 공연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약효가 미약했다. 게다가 모처럼 공연되는 헨델의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하여 관객들은 옛날 생각은 하지 않고 마치 불쌍한 사람을 동정이나 하듯 야유를 퍼붓기기 일쑤였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헨델은 이탈리아 오페라를 이해하지 못하는 영국인들을 위해서 더 이상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실은 이탈리아 스타일의 오페라를 공연할 때마다 적자여서 결국 파산지경에 이르렀던 것이 주요 이유였다. 대신 오라토리오(Oratorio)로 방향전환을 했다. 가사는 영어를 사용했다. 와! 과연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가장 유명한 오라토리오는 1742년 초연된 Messiah(메시아)였다. 어찌나 인기를 얻었는지 연주회장은 자리를 구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연주회장의 좌석 스페이스를 조금이라도 많이 만들기 위해서 신사들은 칼을 차지 않고 입장토록 했고 숙녀들은 후프치마(아래쪽이 지나치게 부풀은 스타일)를 입지 않고 입장토록 할 정도였다. 오늘날 헨델의 ‘메시아’는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의 단골 메뉴가 되었고 영국등 기타 유럽 국가에서는 부활절에도 열심히 연주하는 곡목이 되었다. 오라토리오 이외에도 헨델은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는 순수 기악곡을 많이 작곡했다. 아름답기도 했지만 경쾌하여 듣기에 편한 곡들이다. 헨델은 만년에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놈의 백내장! 그래도 오라토리오를 지휘했다. 베토벤은 귀가 안들리는 상태에서 지휘를 했는데 헨델은 눈이 안보이는 상태에서 지휘를 했다. 런던에서 세상을 떠나자 영국사람들은 그제서야 ‘헨델은 영국인이다. 우리가 너무 무심했다’면서 왕족, 또는 진짜 영국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한 사람이나 들어 갈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하였다.

 

'아리오단테' 현대적 연출


헨델은 40편이 넘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작곡했다. 하지만 현재 알려져 있는 것은 31편이다. 대부분 영국 런던의 왕립음악원장으로 재직할 때에 썼다. 당시의 오페라 풍조는 주제와 형식을 대단히 제한한 것이었다. 도덕적 및 정치적으로 불건전해서는 안되며 전통적인 작곡방식을 사용해야 했다. 게다가 소프라노 역할도 카스트라토, 알토 역할도 카스트라토를 대령해야할 입장이었다. ‘이래가지고야 어디 공연이라고 할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헨델은 여주인공을 카스트라토가 맡도록 하는 오페라를 썼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남자 소프라노의 출연이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몇 몇 유명한 옛날 오페라의 아리아는 카스트라토가 불러야 제 맛이 난다는 주장이 있다. 예를 들면 오페라 Serse(세르세)에서의 Ombra mai fu(Largo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곡)라든지 또는 Rinaldo(리날도)에서의 Lascia ch'io pianga 등이다.


'아그리피나'


헨델의 오페라 수첩

● Acis e Galatea(아치스와 갈라테아: 1718. 대본: John Gay) ● Admeto(1아드메토: 727 런던 Haymarket 극장) ● Agrippina(아그리피나: 1708-09. 대본: Grimani) ● Alcina(알치나: 1735. 대본: Antonio Marchi) ● Alessandro(알레싼드로: 1726? 대본: Paolo Antonio Rolli) ● L'Allegro, il Psenseroso e il Moderato(1740. 대본: Charles Jennes) ● Almira(1705. 대본: Feutsking F. Christian) ● Amadigi di Gaula(1715. 대본: Nichola Francesco Haym) ● Ariodante(1735. 대본: 헨델) ● Athalia(1733. 대본: Racine) ● Berenice(1737. 대본: 미상) ● Esther(1718. 대본: John Arbuthnot, Alexander Pope) ● Flavio(1723. 대본: Nicola Francesco Haym) ● Floridante(1721. 대본: Rolli) ● Giustino(1737. 대본: Beregani) ● Giulio Cesare in Egitto(이집트의 줄리어스 시저: 1724. 대본: Nicola Francesco Haym) ● Hercules(1745. 대본: Thomas Broughton) ● Imeneo (1740. 대본: Silvio Stampigilia) ● Jephta(1752. 대본: 미상) ● Judas Maccabaeus(1747. 대본: 성경을 기본으로 Morell) ● Orlando(1733. 대본: Braccioli) ● Ottone(1723. 대본: Nicolo Francesco Haym) ● Partenope(1730. 대본: Silvio Stampiglia) ● Poro, re dell'Indie(1731. 대본: Metastasio) ● Radamisto(1720. 대본: Nicolo Francesco Haym) ● Riccardo primo, red'Inghilterra(1720. 대본: Rolli) ● Rinaldo(1711. 대본: Rossi) ● Semele(세멜레: 1744. 대본: William Congreve) ● Serse(1738. 대본: 미상) ● Tamerlano(1724. 대본: Nicolo Francesco Haym) ● Teseo(테세우스: 1713. Nicola Francesco Ha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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