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유럽의 다른 국가

고메스, 안토니오

정준극 2008. 3. 19. 10:12
 

브라질의 국민적 영웅

안토니오 고메스

 

 

 

 

안토니오 카를로스 고메스(Antonio Carlos Gomes: 1839-1896)는 브라질의 위대한 작곡가이다. 고메스는 19세기를 빛낸 뛰어난 고전음악 작곡가이다. 그는 신세계인 라틴아메리카의 작곡가로서는 처음으로 그의 작품을 유럽에 전파한 역사적 업적을 이루었다. 고메스는 지금의 캄피나스(Campinas)인 산 카를로스(São Carlos)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지휘자 마누엘 호세 고메스(Manuel jose Gomes)였으며 어머니 역시 음악가인 화비아나 마리아 하과리 카로도소(Fabiana Maria Jaguari Cardoso)였다. 따리서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음악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은 형인 호세 페드로 데 산타나 고메스(Jose Pedro de Sant'Ana Gomes)였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역시 지휘자인 형은 동생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고메스를 브라질황제인 돈 페드로2세(Don Pedro II)에게 소개하여 주었으며 리우 데 자네이로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할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고메스는 포르투갈을 포함한 이베리아문화와 브라질 특유의 이국적 문화를 융합하여 탁월한 작품세계를 개척하였다. 그리하여 유럽에서는 느낄수 없는 새로운 분위기의 오페라를 창출하였다.


첫 오페라인 Noite do Castelo(궁성의 밤. 1861)과 Joana de Flanders(플랜더스의 호아나. 1863)는 포르투갈 말로 작곡된 것이다. 이 두 작품에 감명을 받은 브라질황제는 그의 재능을 아껴서 밀라노로 유학 보냈다. 대표작인 과라니(Il Guarany: 1870)는 인디오에 대한 스토리로서 라 스칼라에서 공연되었다. 과라니는 대성공이었다. 좀처럼 호평을 보내지 않는 밀라노의 음악 평론가들도 입을 모아 일 과라니를 찬양하였다. 평론가들은 고메스를 베르디, 로시니와 같은 유럽의 거장들에 견줄수 있는 위대한 작곡가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고메스는 과라니때문에 당시 이탈리아의 빅토르 엠마누엘 국왕으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았으며 그 영향으로 과라니는 유럽의 주요 극장에서 계속 공연되었다. 얼마후 브라질로 돌아온 고메스는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과라니의 브라질 초연을 주선하였다. 밀라노에 못지않은 대갈채를 받았다. 고메스는 어디를 가든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밀라노 유학당시 만났던 피아니스트 아델리나 페리(Adelina Peri)와 결혼하였다.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고메스는 Fosca(포스카: 1873), Salvatore Rosa(살파토레 로사: 1874), Maria Tudor(마리아 튜도르: 1879) 등을 작곡하여 찬사를 받았다. 마리아 튜도르는 과라니와 함께 오늘날에도 가장 자주 공연되는 고메스의 작품이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고메스는 브라질에서 흑인 노예들이 자유와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것에 대하여 감명을 받아 노예해방을 주제로 한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로 스키아보(Lo Schiavo: 1889)였다. 그후 다시 브라질로 돌아간 고메스는 브라질이 공화국으로 선포되었을 때 고향인 캄피나스에 있었다.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데오도로 다 폰세카(Deodoro da Fonseca)는 고메스에게 브라질공화국의 새로운 국가(國歌)를 작곡해 줄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 직전의 돈페드로 황제에게 충실하였던 고메스는 공화국대통령의 간곡한 청탁을 물리치고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이듬애에는 오페라 Condor(1891)를 작곡하여 브라질 음악의 위상을 다시한번 세계에 떨쳤다. 이듬해인 1892년에 작곡한 칸타타 콜롬보(Colombo)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4백주년을 기념하는 것으로 로마의 콜럼버스축제에서 초연되었다. 몇 년후 그는 브라질의 파라(Para)주지사로부터 파라주음악원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자 더 이상 사양하기도 어려워 고국인 브라질로 영구 귀국키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브라질에 도착한지 얼마후 그는 이미 노년기의 쇠약함으로 파라주음악원장으로 취임하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다.

 

'일 과라니'(플라치도 도밍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