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유럽의 다른 국가

알베니스, 이삭

정준극 2008. 3. 19. 10:14

스페인의 신동

이삭 알베니스


이삭 알베니스

               

우리가 보통 알베니스라고 부르는 이삭 마누엘 프란치스코 알베니스 이 파스쿠알(Isaac Manuel Francisco Albeniz y Pascual: 1860-1909)은 스페인이 자랑하는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이고 지휘자이다. 알베니스는 후기 낭만주의 시기의 선구적인 작곡가 중의 하나로서 그 시대의 동료들과 후배 작곡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의 피아노 작품들은 스페인의 민속음악을 살린 것이어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근자에는 그의 피아노곡 또는 오케스트라곡이 기타곡으로 편곡되어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아스투리아스(전설), 그라나다, 세비야, 카디스, 코르도바, 카탈루냐, 마요르카, 그리고 탱고 D 는 클래시컬 기타을 위한 뛰어난 작품들이지만 알베니스는 이 곡들을 원래부터 기타를 위해 작곡한 것은 아니었다.


알베니스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 지대의 피레네 산맥에 있는 카탈로니아 지방의 캄프로돈(Camprodon)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세관 관리였다. 알베니스는 음악신동으로서 네살 때에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알베니스는 일곱 살 때에 파리음악원의 피아노과 입학시험에 합격하는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음악원 당국은 알베니스가 너무 어리다면서 입학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후 그는 열두 살 되던 해까지 비록 어린 아이였지만 음악공부를 하기 위해 여러번이나 집을 떠나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놀라운 의지를 보여주었다. 알베니스는 네살 때에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했지만 정작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모습을 보인 것은 아홉 살 때부터였다. 그의 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딸 클레멘티나와 이삭(알베니스)을 데리고 스페인 북부 지방에서 순회 연주회를 가진 것이다. 실상 그의 아버지는 세관 관리였기 때문에 이도시 저도시로 출장을 다니는 일이 빈번했으며 그런 기회를 이용해서 마치 레오폴드 모차르트처럼 딸과 아들의 연주회를 주선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알베니스의 방랑적 음악활동과 관련해서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그는 열두 살 때에 미지의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스페인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배에 몰라 올라탔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쿠바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는 쿠바에서 다행히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탈수 있어서 미국에 도착하여 뉴욕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고 이어 서부의 샌프란시스코까지 가서 연주회를 가졌으며 나아가 영국으로 건너가서 리버풀과 런던에서 연주회를 가졌고 계속해서 독일로 가서 라이프치히에서 연주회를 가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알베니스는 15세의 소년일때에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난 피아니스트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전혀 사실무근인 것은 아니다. 알베니스는 세계의 여러 곳을 다니며 피아노 연주를 했는데 혼자서가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세관 관리여서 세계의 여러 나라, 특히 스페인의 식민지들을 둘러 볼 기회가 많았고 그때마다 아들 이삭을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나중에 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삭이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다는 스케줄과 그의 아버지 앙헬이 출장을 갔다는 일정과 일치하였다는 것이다.


이삭 알베니스가 태어난 카탈로니아 지방의 캄프로돈

           

알베니스는 1876년, 그러니까 16세 때에 라이프치히음악원에서 잠시 머물다가 브뤼셀의 왕립음악원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다행하게도 벨기에 국왕 알폰소의 개인비서인 귈레르로 모르피가 왕실장학금을 주선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모르피 백작은 알베니스의 음악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훗날 위대한 음악가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 알베니스는 1886년 1월에 파리에서 그의 '세비야'(Sevilla)가 초연될 때에 이 곡을 모르피 백작의 부인에게 헌정하였다. 알베니스는 1880년에 프란츠 리스트로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기 위해 부다페스트에 갔으나 리스트는 봐이마르에 가고 없었다. 1883년에 스페인으로 돌아온 그는 펠립 페드렐(Felip Pedrell)이라는 작곡가를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펠립 페드렐은 알베니스에게 스페인의 음악을 만들어 보라고 권유했다. 그리하여 나온 것이 '에스파냐 노래'(Chants d'Espagne)였다. 이 모음곡의 첫 악장인 전주곡은 나중에 스승인 펠립 페드렐의 세상을 떠나자 '아스투리아스(전설)'(Asturias(Leyenda))이라는 타이틀로 바꾸었다. '아스투리아스(전설)'은 오늘날 가장 훌륭한 클래시컬 기타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원래는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었다. 사족이지만 알베니스의 피아노 작품 중 상당 부분이 나중에 프란치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에 의해 기타 곡으로 편곡되었다. 1888년에는 바르셀로나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다. 이 때 피아노 제조가인 에라르드는 알베니스의 음악만을 위해서 20회의 연속 콘서트를 후원하였다. 이제 알베니스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국민적 음악가로서 널리 존경을 받게 되었다.


이삭 알베니스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알베니스가 정상에 있었던 것은 유럽 전역에서 순회 콘서트를 가졌던 1889년으로부터 1892년까지라고 보고 있다. 알베니스는 1890년대에 런던과 파리에서 지냈다. 그는 런던에 있을 때에 몇편의 뮤지컬 코미디를 작곡했다. 이 작품들은 부유한 프란시스 모니 쿠츠(Francis Money-Coutts) 남작의 관심을 끌었다. 모니 쿠츠는 알베니스를 위해 '헨리 클리포드'(Henry Clifford)와 아서왕 전설과 관련된 3부작 오페라의 대본을 제공하였다. 3부작 중에서 첫번째인 '멀린'(Merlin)은 스코어가 분실되었으나 최근에 복구되어 공연되었다. 나머지 두 편인 '렌슬롯'(Lancelot)의 경우는 제1막만 노래를 위한 피아노 스코어를 완성하였다. '귀네브르'(Guinevrere)는 마지막 파트를 완성하지 못했다. 알베니스는 40세가 되는 1900년부터 브라이트병(Bright's Disease)로 고통을 받기 시작했다. 피아노 연주는 더 이상 하기가 어려웠고 대신 작곡에만 집중했다. 그는 1905년과 1908년에 그의 마지막 걸작인 '이베리아'(Iberia)를 완성했다. 12개의 피아노 곡으로 구성된 모음곡이다. 이베리아는 스페인이 있는 반도를 말한다. 이보다 앞서 그는 1883년에 그의 제자인 로시나 호르다나(Rosina Jordana)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두 사람은 세 자녀를 두었다. 블랑카, 라우라, 알폰소였다. 블랑카는 어릴 때에 세상을 떠났고 라우라는 화가가 되었으며 알폰소는 피아니스트로서 레알 마드리드에서 연주했으나 나중에는 외교관이 되었다. 알베니스의 증손녀인 세실리아 아티아스는 프랑스 대통령인 니콜라스 사르코지(재임: 2007-202)의 첫번째 부인이었다. 


이삭 알베니스와 부인 로지나 호르다나


알베니스는 1909년 5월 18일에 신장병으로 결국 세상을 떠났다. 향년 48세였다. 프랑스 남서부의 라부르(Laburd)라는 곳에 있는 깡보 레 벵(Cambo-les-Brains)이란 곳에서였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볓 주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의 그랑 크루아(대십자가) 훈장을 받았다. 알베니스의 묘소는 바르셀로나의 몽후익(Montjuic) 공동묘지에 있다. 알베니스의 사인이 된 '브라이트 병'은 소변을 만들어내는 신장구조(사구체와 네프론)에 염증이 생기는 병으로 사구체신염, 신장염이라고도 하는 병이다. 이 병의 증상이 심하게 되면 고혈압과 심장병을 동반한다. '브라이트 병'이라고 하는 것은 1827년에 영국의 의사인 리챠드 브라이트 박사가 처음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알베니스의 묘지

            

알베니즈의 오페라 수첩

● Cuanto más viejo (뮤지컬 드라마. 1882 빌바오) ● Catalanes de Gracia (뮤지컬 드라마. 1882 마드리드 Teatre de Guzmán) ● The Magic Opal (리릭 코미디. 1893 런던 Lyric Theater) ● Poor Johathan (오페레타. 1893 런던 Prince of Wales' Theater) ● San Antonio de la Florida (뮤지컬 드라마. 1894 마드리드 Teatro de Apolo) ● Henry Clifford (1895 바르셀로나 Gran Teatro del Liceu) ● Pepita Jimenez (리릭 코미디. 1896 바르셀로나 Gran Teatro del Liceu) ● Merlin (1950 바르셀로나 Cine-Teatro Tivoli)


리릭 오페라  '페피타 히메네스'의 한 장면. 아르헨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