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궁전/슈타트팔레

팔레 에스켈레스 (Palais Eskeles)

정준극 2008. 4. 21. 10:17

팔레 에스켈레스 (Palais Eskeles)

 

팔레 에스켈레스. 현재는 비엔나 유태박물관이다. 


팔레 에스켈레스는 호프부르크 앞의 미하엘 광장에서 스페인승마학교를 거쳐 캐른트너슈트라쎄 쪽으로 가다가 나오는 좁은 골목길인 도로테르가쎄(Dorotheergasse) 11번지에 있다. 현재는 비엔나 유태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이 건물은 한때 유태인 금융인으로 저명인사인 에스켈레스 가문의 소유였기 때문에 팔레 에스켈레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원래 이 자리에는 15세기 초부터 도로테어 수도원(Dorotheerstift)이 있었다. 수도원을 세운 사람은 아우구스틴 교회의 참사회원이었다. 16세기에는 옆의 부지들도 매입하여서 수도원의 건물을 확장하였다. 오늘날의 도로테르가쎄 11번지의 팔레는 이때에 결정된 것이다. 1782년에는 요셉 2세의 수도원 통폐합 정책이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의 도로테르가쎄 11번지에 있던 수도원은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으로 통폐합되었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은 시내에 별도의 수도원 건물이 필요 없으므로 교회와 부속 건물들을 전당포로 사용하도록 전세를 놓았다. 그때의 전당포는 오늘날 골동품 및 예술품 경매장인 도로테움의 전신이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의 소유였던 도로테르가쎄 11번지 건물은 1804년에 아우구스트 폰 홀츠마이스터라는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 그후에는 안나 마리아 폰 디트리히슈타인이라는 여인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가 주인으로 있는 동안인 1805년부터 1807년까지 이 집의 한쪽에 모차르트의 부인인 콘스탄체와 두 아들인 프란츠 사버 볼프강(Franz Xaver Wolfgang)과 칼(Karl)이 세들어서 살았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항이 아닐수 없다.

 

유태박물관 현관

 

그러다가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퇴각했던 1812년에는 에스터하지 가문의 파울 안톤 3세라는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 1년후에는 당시 수상이던 벤첸 안톤 폰 카우니츠 리트버그 백작의 아들인 알로이스 카우니츠 리트베르크(Kaunitz Rietberg) 공작의 소유가 되었으나 그가 파산하자 저택은 아른슈타인 및 에스켈레스 은행으로 넘어갔다. 1827년에는 헝가리의 알렉산더 나코 데 첸트 미클로스(Alexande Nako de Szent Miklos) 백작이 매입했다. 그때에는 팔레의 이름도 팔레 나코라고 불렀다. 그후 이 팔레는 거의 70년 동안 나코 백작의 가족과 이들의 후손들이 살았으며 건축가인 이그나즈 플라이셔와 잘로몬 슈타인에게 매각되었다. 1895년에는 베르너 오토마르 미트케(Werner Ottomar Miethke)라는 부유한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 그는 이 건물을 미술관으로 만들고 이름도 '갤레리 미트케'(Galerie Miethke)라고 불렀다. 미트케는 이 건물을 미술관 또는 미술품 판매장으로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 현재의 대리석 현관과 카페 등은 그 때 만들어진 것이다. 갈레리 미트케는 칼 몰(Karl Moll)과 같은 위대한 화가의 자문으로 높은 명성을 쌓았다. 그 여파로 1차 대전이 끝난 후에 팔레 에스켈레스는 '청년 예술가협회'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1936년부터 1993년까지 이 저택은 도로테움 경매장의 소유가 되었으며 일부는 오스트리아 정부의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3년 11월 18일에 새로운 유태박물관으로 출범하였다. 비엔나 유태박물관은 팔레 에스켈레스를 재단장하여 재출범하기 전에는 자이텐슈테텐가쎄 4번지의 이스라엘문화협회 건물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현재 자이텐슈테텐가쎄 4번지에는 유덴플라츠(유태 광장) 유태박물관이 있다.

 

유태박물관의 기증품 전시실


[유태박물관에 대하여는 본 블로그의 홀로코스트 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므로 참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