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궁전/슈타트팔레

팔레 에프슈타인 (Palais Epstein)

정준극 2008. 4. 21. 10:16

 팔레 에프슈타인 (Palais Epstein)

 

링슈트라쎄의 팔라멘트와 자연사박물관 사이에 있는 팔레 에프슈타인

 

독토르 칼 렌너 링(Dr Karl Renner Ring)의 자연사박물관과 팔라멘트(의사당)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팔레 에프슈타인은 그냥 지나칠수 있는 건물이지만 실은 슈타트팔레의 리스트에서 무시하지 못할 존재이다. 비엔나의 상공인이며 은행가인 구스타프 리터 폰 에프슈타인(Gustav Ritter von Epstein)이 지은 저택이기 때문에 팔레 에프슈타인이라고 부른다. 팔레 에프슈타인을 설계한 건축가는 테오필 프라이헤르 폰 한젠(Theophil Freiherr von Hansen)이다. 그는 바로 옆 건물인 웅장하고 아름다운 팔라멘트를 설계한 인물이다. 비엔나의 전통적인 바로크 저택과는 달리 팔레 에프슈타인은 전형적인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다.

 

팔레 에프슈타인의 어느 방

                

1873년 5월 9일은 비엔나로서 잊지 못할 날이다. 비엔나의 증권거래가 파탄을 맞은 날이다. 이를 그륀더크라흐(Gründerkrach)라고 부른다. '설립자들의 파탄'이라는 뜻이다. 경제가 파국을 맞이하자 에프슈타인은 은행파산을 막기 위해 이 건물을 영국의 제국대륙가스공사(ICGA)에게 매각했다. 1902년에는 이 건물을 오스트리아 정부가 인수하여서 행정법원 청사로 사용하였다. 그후 1922년에는 비엔나교육청의 본부건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일과의 합병 후에는 오스트리아의 행정을 책임지는 제국지방장관(Reichsstatthalter) 집무실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1955년 오스트리아가 독립국으로 선포될 때까지는 소련군 사령부로 사용되었다. 소련군이 철수하자 이 건물은 잠시동안이지만 음악공연예술아카데미의 분교로 사용되었다가 2002년부터는 다시 교육청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대대적인 내부수리를 마치고 나서는 팔라멘트의 제2사무실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건물의 지하층에는 이 건물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건물의 현관은 얼마전에 예전 그대로 복원되었다. 사전 요청에 의해 가이드 투어가 1층에서 시작된다.

 

팔레 에프슈타인 현관의 네오 르네상스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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