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부활 이야기/이상한 주장들

십자가 이후에 대한 이상한 주장들

정준극 2008. 10. 7. 18:15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이상한 주장들

- 그저 그런 주장들이 있다는 것 일뿐, 믿을만한 얘기가 아니다 -


질문 1: 예수님의 무덤은 어디에 있나?

설명: 예루살렘의 동산무덤은 임시일 뿐이며 진짜 무덤은 인도 북부 카쉬미르(Kashmir)지방의 칸 야르(Kan Yar)에 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후 인도의 카쉬미르로 오셨다고 한다. 예수님은 유스 아사프(Yus Asaph)라는 이름으로 인도에 계셨다고 하며 인도에 오시어 거의 40년을 더 사시면서 복음을 전하셨다고 한다.

 

카쉬미르의 칸 야르에 있는 예수님의 무덤이라는 건물(Khanyar Rozabal: Kan Yar Rosa Bal)

                                

질문 2: 십자가 처형을 받은 사람 중에 살아남은 사람도 있나?

설명: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고 하지만 실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혼절하셨던 것뿐이고 그런 예수님을 무덤에 잠시 놓아두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흘만에 깨어 일어나셨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십자가라고 하면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다음으로는 죽음을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십자가 형벌을 받고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저명한 유태역사학자인 요세푸스(Jesephus)는 1세기경 팔레스타인에서 있었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나는 티투스 케사르(Titus Caesar)의 명령을 받고 케랄리우스(Ceralius)와 함께 테코아(Thecoa)라는 곳으로 가서 그곳에 병영을 설치할수 있는지를 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약 1천명의 기병들과 함께 갔었다. 그곳에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여러 명의 죄수들이 십자가 처형을 받은 것을 보았다. 그 중에서 세명은 나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이 모습을 본 나는 비통한 심정을 참기가 어려워 티투스에게 가서 도움을 청했다. 티투스는 즉시 그들을 십자가에서 내려 잘 치료해 주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현장에 가서 보니 이미 두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만이 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나중에 그는 회복되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십자가 처형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내려서 잘만 치료해 주면 살아 날수 있다는 얘기가 성립된다. 더구나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간 고행을 하는 등 어려움에 단련되어 있으므로 아무리 모진 십자가 형벌이었지만 살아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질문 3: 예수님은 정말 인도에 가셨나?

설명: 예수님이 인도에 가신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찾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마태복음 15장 24절). 그런데 인도, 페르시아(이란), 파르티아(Parthia)지역의 일부 사람들이 DNA 테스트 결과 유태인의 후손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다는 사명을 다하시기 위해 인도에 가셨던 것이다. 둘째, 예수님은 불교에서의 예언을 완성하기 위해 인도에 가셨다고 본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석가의 가르침에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셋째, 최근 수잔느 올쓴(Susanne Olsson)과  같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인 모세, 아브라함 등의 무덤도 인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무덤이 인도에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넷째, 예수님은 십자가 형벌에서 살아나셨으며 그 제자들이 예수님을 숨겨 인도로 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당시 예수님의 목에는  로마가 내걸은 현상금이 붙어 있었으므로 되도록 속히 이스라엘을 빠져나와 인도로 갔다는 것이다.

 

카쉬미르의 예수님의 무덤이라는 곳에 있는 예수님의 발자국과 상흔들


질문 4: 예수님은 언제 인도에 가셨나?

설명: 학자들 사이에서는 세가지 의견이 있다.


첫째, 젊은 시절에 갔었다는 것이다. 이는 엘리자베트 클레어(Elizabeth Claire)와 같은 학자들이 특히 주장하는 것으로 근거는 헴미스(Hemmis)의 수도원에서 니콜라스 노토비치(Nikolas Notovitch)가 발견한 두루마리이다. 오늘날 개신교가 사용하고 있는 신약성경에는 12세 때부터 30세까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하여 어떠한 기록도 없다. ‘잃어버린 18년’이다.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때에 인도에 갔다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다는 주장이다. 둘째, 십자가 이후에 인도에 가셨다는 주장이다. 예수님은 젊은 시절 이미 불교에 대하여 배우고 자랐다는 것이며 인도에 가신 것은 십자가에서 생존하신 후였다는 것이다. 셋째, 예수님은 젊은 시절 인도에 갔다가 왔으며 십자가 사건이후 다시 인도에 가셨다는 것이다. 오늘날 여러 학자들은 세 번째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생존하신후 인도에 가시어 나머지 생애를 보내셨으며 그곳에서 최후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휘다 후쓰나인(Fida Hussnain)박사, 홀거 케르스텐(Holger Kersten), 안드레아스 화버-카이저(Andreas Faber-Kaiser)같은 학자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카쉬미르의 슈리나가르(Shrinagar)에 있다고 주장했다.


질문 5: 예수님이 인도에 가셨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설명: 여러 문서에 예수님이 동쪽으로 여행하셨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카쉬미르에서 지내셨다는 장소도 근거로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슈리나가르의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예수님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을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도와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는 유태인 혈통의 사람들의 고향을 추적하였더니 카쉬미르였다는 것도 예수님과 인도를 연결하는 하나의 고리라는 주장이다.


질문 6: 예수님은 어떤 길로 인도에 가셨나?

설명: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 다메섹(다마스커스) 동쪽을 통하여 나아가셨으며 이어 동부 터키를 거쳐 인도에 가셨다고 한다. 그후 이란을 거쳐 아프가니스탄의 작은 마을인 헤랏(Herat)을 통과하였으며 이어 오늘날 파키스탄의 탁실라(Taxila)를 지나 최종적으로 인도 카쉬미르의 슈리나가르에 도착하셨다는 것이다.


질문 7: 교통수단도 없던 때에 그 먼 길을 어떻게 가실수 있었는가?

설명: 예수님의 제자중의 한 사람인 도마(Thomas)가 1세기에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인도에 갔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인도에 가시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영국 BBC방송의 ‘예수는 죽었는가?’(Did Jesus Die)라는 프로그램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동부에서 해상으로, 또한 실크 로드와 향신료 로드를 통해 동방으로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방송은 도마가 예루살렘에서 가자(Gaza)로 내려간후 향신료 대상들과 함께 예멘으로 가고 그곳에서 배를 타고 인도로 갔다고 추정했다. 이런 루트는 당시 일반적인 것으로 여러 사람들이 택하였던 것이라고 한다.


질문 8: 그런 루트를 택하였다는 기록이 있는가?

설명: 많은 학자들이 예수님이 인도에 갔었다는 주장을 점차 지지하고 있다. 심지어 현대의 학자들도 그렇게 언급하고 있다. 얀 마르텔(Yan Martel)의 베스트 셀러 The Life of Pi(파이의 인생)에도 언급되어 있으며 영국에서 발간되는 The Fortean Times라는 잡지에도 게재된바 있다. 2003년 BBC가 방송한 ‘Did Jesus Die?’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인도로 가는 길이 자세히 소개되었다.


질문 9: 예수님이 인도에 가셨다는 주장은 어떤 종교에서 믿고 있나?

설명: 예수님이 인도에 가셨다는 주장은 아마디야(Ahmadiyya) 무슬림사회가 특히 주장하는 스토리이다. 그러나 힌두교의 The Bhavishya Mahapurana라는 문서에도 예수님의 인도 방문에 대한 자료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헴미스(Hemmis)의 수도원에서 니콜라스 노토비치(Nikolas Notovitch)가 발견한 두루마리에도 그런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한다. 예수님의 인도 방문 스토리는 서방세계의 학자들도 주장하고 있는 사항이다. 케르스텐, 화버-카이저, 진 매트록(Gene Matlock)등이다.


질문 10: 예수님이 인도에 가셨다는 얘기는 성경이나 코란에는 왜 없는가?

설명: 성경이나 코란에는 예수님이 인도에 갔었다는 내용이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관련되는 부분은 있다. 코란에는 예수님을 이사르(Issar)라고 표현하였다.


질문 11: 예수님의 인도 방문과 토리노의 수의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설명: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셨다는 이론과 예수님의 시체를 쌌었다는 세마포에 예수님의 형상이 찍혀 있었다는 이론은 대단히 흥미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쌌었다는 수의가 이른바 토리노의 수의(Shroud of Turin)이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토리노의 수의에 남아 있는 혈흔과 수의에 찍힌 사람 형상의 구조를 보면 수의로 쌌던 사람은 아직 살아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토리노의 수의가 정말 예수님 당시의 것이었는지, 또는 후대의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바티칸이 주도한 과학적 조사에 따르면 토리노의 수의가 중세 때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세상을 떠나지 않으셨다는 주장이다.


질문 12: 예수님이 불교도였다는 얘기는 무엇인가?

설명: 예수님의 불교도였다는 것은 확인할수 없으나 예수님과 불교가 여러 가지고 관계가 있다는 연구가 있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불교의 가르침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 결론이다. 예수님이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가르침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어떤 학자는 불교의 원천이 이스라엘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유태교와 불교와의 유사점들을 열거하였다.


문 13: 예수님이 인도에 가셨다는 웹사이트의 문서와 정보는 믿을수 있는 것인가?

설명: 고문서들은 아직 방사선 연대측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정황이나 자료들을 볼 때 신빙성이 있고 출처가 분명하다. 그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주장을 꾸며내어 이득을 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정교회와 기독교는 예수님이 인도에 가셨다는 이론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무런 관련이 없는 힌두교는 지지하고 있다. 실제로 힌두교 문서인 바비슈야 마하푸라나(Bhavishya Mahaurana)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동은 힌두교도들에게 별로 관련이 없는 것이다.


질문 14: 카쉬미르 스리나가르의 무덤에 묻혔다는 사람은 누구인가?

설명: 스리나가르에 있는 로자 볼(Roza Bol) 무덤에는 분명히 누군가가 묻혀 있다. 지방 기록과 무덤에 있는 표지판을 보면 그의 이름은 유스 아사프(Yus Asaph)라고 한다. 힌두교 문서인 Bhavishya Mahapurana에는 당시 카쉬미르에 자신이 이사-마시(Isa-masih)라고 하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으며 간혹 ‘하나님의 아들’로 불러졌다고 한다.


카쉬미르 지방에서 내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무덤의 주인공은 예언자로서 먼 타국에서 카쉬미르로 왔다고 한다. 그는 무덤의 방향으로 보아 이스라엘의 오리진인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무덤 바로 옆에는 그의 족적(足跡)이 각인되어 있다. 그것을 자세히 보면 발에 상처가 있음을 볼수 있다. 그가 한때 십자가형을 당했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질문 15: 예수께서는 돌아가신후 부활하실 때까지 어디에서 무얼 하셨나?

설명: 대단히 어려운 신학적인 사항이다. 신약성경에 힌트를 주는 내용이 있기는 하다. 베드로전서 3장 18-19절을 보면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영’(Spirit)과 ‘육체’(Flesh)는 그리스도의 영과 육을 말한다. 베드로전서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후 육체는 죽었지만 영이 살아나시어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물론 옥이라는 곳이 어디인지, 무슨 감옥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무슨 내용을 선포하셨다는 것인지는 더 연구해 보아야 할 사항이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내용은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made alive by the spirit)라는 표현이다. 이는 예수님의 영혼이 육체에서 떠나심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27장 50절에는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리마대 요셉이 사람들을 시켜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고 세마포로 쌌던 것은 영혼이 떠난 육체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아무튼 예수님의 영혼은 십자가상에서 육체와 분리되어 아마도 하나님 앞으로 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랬다가 사흘 후에 약속하신대로 다시 나타나신 것이다. 부활후 다시 나타나셨을 때에는 영과 육이 합한 상태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영혼이 없는 예수님의 육체가 단독으로 여러 활동을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얘기이기 때문이다. 도마가 예수님의 옆구리에 있는 창 자국을 만져보았으며 손과 발에 있는 못 자국을 보았던 몸은 영과 육이 합하여 있는 상태이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함께 떡을 떼어 식사도 하셨던 예수님도 영과 육이 합하신 상태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단순히 영이라고 한다면 떡을 떼어 잡수시고 생선을 구워 먹으실 필요가 없으실 것이다.


베드로는 일반 사람들을 souls로 표현하였으며 spirits라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신약성경에서는 spirits라는 단어를 천사나 악마를 설명할 때에 사용하였으며 사람에게는 사용하지 않았다. 혹자는 성경에 예수님께서 지옥을 방문하셨다고 주장한다. 사도행전 2장 31절의 말씀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라”을 보면 음부(陰府)라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음부는 지옥(Hell)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영혼이 최후의 심판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하데스(Hades: 연옥)를 말한다. 다시 말하여 하데스는 죽은 자들이 부활을 기다리며 임시로 머무는 곳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에는 지옥과 하데스(음부)의 차이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기록된즉,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랑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옥(Hell)은 죽은자들이 심판을 받아 가는 영원하고 마지막인 장소이며 연옥(하데스)은 임시 장소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육체가 무덤에 있는 사흘 동안에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러 가셨다는 것이다(베드로 전서 3장 19절). 다만 선포(proclaim)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할것이다. 옥에 있는 영들이란 타락한 천사들을 말한다는 설명도 있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 옥에 들어간 타락한 천사들을 말한다. 베드로 전서 3장 20절에 그 내용을 분명히 전하고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어떤 내용의 말씀을 선포하셨는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메시지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구원의 메시지라고 해도 타락한 천사들을 구원하려는 메시지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붙들어 주시려는 메시지라고 얘기이다. 히브리서 2장 16절에 보면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고 적혀 있다. 예수님의 선포는 아마도 사탄에 대한 승리를 선포한 것이라고 한다. 베드로 전서 3장 22절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라고 되어 있다. ‘권세’들과 ‘능력’들도 모두 천사와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이다.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게 된 것은 사탄에 대하여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골로새서 2장 15절에 보면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스스로 달려 돌아가신후 십자가의 승리를 선포하셨다고 할수 있다. 그런가하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후 곧바로 낙원에 이르셨다는 설명이 있다. 누가복음 23장 43절의 말씀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신 것을 보면 다른데 가신 것이 아니라 낙원에 가신 것이 아닐수 없다. 그리고 강도 한사람을 낙원으로 이끄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그를 따르고 믿은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낙원으로 가셨다고 할수 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후 부활하실 때까지 사흘 동안 타락한 천사들 또는 믿지 아니한 자들에게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구원에 대한 두 번째 기회는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우리가 죽은후에 심판을 받는다고 되어 있다(히브리서 9장 27절). 그때에도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사흘 동안 무엇을 하셨는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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